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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트럼프에 관한 노트

by 정강산 2017. 4. 1.

2016년 11월 11일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참인 것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이를테면 지금 미국 대선을 둘러싼 트럼프의 당선에 대해 회의를 품지않는 일부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윤리적 협박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극과 극- 이 기표의 배열은 우파와 좌파의 특성에 대한 정확한 정리를 함의하고 있다. 오늘날 극과 극의 사이에 위치할 수 있는 정치적 포지션은 온건한 중도를 표방하는 리버럴들로서, 그들은 이러나저러나 초국적인 시장질서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 위에서 규범, 법, 제도, 관습 등의 총체를 적당한 시늉을 통해 조작하는 척하며 사실상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유지시키겠다는 입장을 취하며, 적당한 이윤율의 보장과 적당한 복지, 적당한 제제를 통한 적당한 안정을 통해 전 세계적 교역과 금융의 커넥션에 어떠한 압력도 가할 필요가 없음을-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을 통해 관철시킨다. 

이러한 사정은 아마도 1920, 30년대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나치즘과 파시즘이 창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무력한 온건 좌파들과 전후 황폐해진 경제를 적당한 수준에서 회복시키겠다는 리버럴들의 몸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춰졌을 것이라 능히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극우적 가치로 무장했으나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세계를 그려보여주었던, 파시즘에 대한 수많은 지식인들의 동요, 대중들의 압도적인 지지는 단순히 그들의 선전에 놀아난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한 수준에서 마찬가지로 변화를 상징하는 좌파적 모델은 러시아 혁명을 통해 수많은 국가들로 전이된 볼셰비즘의 원형인 전위일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으나 의식적이고 규정적인 수준에서 이뤄지는 변화를 상징했으며- 혁명 이후 수많은 반동세력에 의한 반혁명에서 드러나듯, 세계가 송두리 째 변화하게 될 것임을 시사하는 정도에 상응하는 공포를 유발했다. 단순히 그들의 기득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반발감이 아니라, 실로 변화될 세계의 모습을 가늠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극과극의 양 모델은 모두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준비되지 않은 자들이 그 앞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마치 못볼 것을 보았을 때 일어나는 감정과 유사한- 충격과 공포, 경악인 것이다. 극과 극이 수렴되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변화에 대한 강렬한 희구에서 비롯되는 공포감이다. 

따라서 미국 대선의 맥락에서, 샌더스로 표상되었던 대중들의 갈망을 견인할 좌파적 비전이 정치의 장에서 헤게모니를 관철시키길 실패했을 때- 그 열기가 반대 급부인 트럼프로 옮아가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다. 기껏해야 그 내용이 동맹국들에 대한 미군주둔비용과 방위비를 상승시키거나, 상속세와 법인세를 폐지, 감축하거나, 소득 최상위 계층에 대한 세율을 감소시키거나, 저소득층에게 연방 소득세를 면제시키거나, 반이민정책을 비롯한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식의 볼품없는 것이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국가적 차원의 핌피로 수렴되는 보호무역주의일 뿐이라 해도- 그것마저 지금과는 다른 세계의 맹아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실망하거나, 미국의 향후를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트럼프는 결국 그의 이러저러한 추문들과 몰지각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꺼이 지지하기로 마음먹은 대중들의 의식상태의 반영이자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라, 그의 여러 결점들을 결과적으로 허용하고 두둔할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좌파들의 무능력, 뚜렷한 대안을 자처하지 못한 힐러리, 보다 정확히는 트럼프를 지지할 조건을 마련한 자본주의적 원리에 있다. 이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은 더욱 더 규정적이고 치밀하게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좌파적 비전을 관철시킬 힘을 확대해나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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