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최은철 개인전_〈요제프 하이든을 위한 골상악 세레나데〉(광명, 오분의일, 2024.9.3.-9.29)을 위한 노트

정강산 2024. 9. 20. 17:03

*‘’ ‘규격화’ ‘편집증적 과학에 대한 오류와 같은 부분은 선생님의 직접적인 작업 주제이기도 하고, 작가노트를 통해 충분히 암시가 된 거 같아 제가 개입하게 되면 외려 군더더기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제안해주신 삶과 죽음에 대한 짤막한 에세이를 만들어 보는 게 보다 우회적으로 맥락을 풍부하게 할 수 있을거라 판단하고 그런 작업들을 몇 개 준비해봤습니다.

홑화살괄호 ‘<>’로 각각의 버전을 표시했고, 이 중 작가님께서 낫다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서 배치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각 버전 아래에는 이탤릭체로 해당 버전을 작성하게 된 배경과 의도를 포함해 대략의 개요를 적어두었으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1>

 

감바스에 다양한 재료를 넣길 좋아하던 124년 전 죽은 스페인의 바티스타(Bautista)

프로야구를 출범시켰다며 전두환을 지지하던 36년 전 죽은 한국의 김씨

전공투 세대 연구로 박사논문을 썼던 14년 전 죽은 일본의 스즈키(鈴木)

방산업체에서 용접작업을 하며 축구를 즐기던 5년 전 죽은 독일의 슐츠(Schulz)

위스키를 입에 달고 살며 보리농사를 짓던 1주일 전 죽은 영국의 스미스(Smith)

기자로 활동하며 이슬람교를 열렬히 신봉하던 어제 죽은 에티오피아의 아베베(አበበ)

가톨릭 신자로서 게이 미인대회에 입상했던 내일 죽을 필리핀의 마키식(Makisig)

이란은 아랍어가 아니라 페르시아어를 쓴다고 관광객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던 1년 뒤 죽을 이란의 아후라 야즈다( اهورا یزدا)

시리아 내전의 미국 책임을 규탄하며 친미파와 대립하던 17년 뒤 죽을 시리아의 알아사드(الأسد)

삼류 무에타이 선수로 생활하다 승려가 된 46년 뒤 죽을 태국의 빤야라춘(ปันยารชุน)

농민공으로 생활하다 사천음식점 체인을 내 출세한 249년 뒤 죽을 중국의 차오()

아무도 읽지 않는 도스토옙스키와 레닌을 좋아해 괴짜 취급을 받던 538년 뒤 죽을 러시아의 스미르노프(Смирнов)

그들이 죽었대도, 죽는대도

얼굴도 모르는 나로서는

오늘도 무던히 신이 난다

어제 된장국은 참 맛이 좋더라

잠이 모자란 내게

오늘 오후 회사에서의 낮잠은 참 달았다

내일은 미뤄뒀던 영화를 봐야겠다

요즘 날씨가 선선하니

2453년전 이집트에서 죽은 아무개의 삶에 대해

내가 아무런 관심이 없듯

내가 눈을 감아도

지구 반대편 화창한 날씨 아래 가정집에서 한 수저를 뜨는

우루과이의 에밀리아노(Emiliano)

이미 눈을 감은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세와 표정으로

내가 아마 다시는 맡지 못할 냄새를 풍기는 저녁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오늘의 나처럼

 

 

 

 

 

(<1> 개요: 여태 지구를 거쳐간 현생인류 수백억의 개체가 제각기 가졌던 셀 수 없는 문화와 습속, 사건, 사연들의 무지막지한 규모가 무색하게도- 산자는 그들을 개의치 않으며, 과거에 살았던 그들은 오늘날 산자의 삶과 생각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아득한 단절감과 망각, 필연적인 무지를 암시해보려 했습니다.)

 

 

<2>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은 생전에 어머니 곁에 묻히길 원했으나 미처 그에 관한 유언을 써두지는 못했다.

레닌이 죽자 스탈린은 우상화를 통한 정권 안정을 위해 그를 미라로 만들었다. 레닌의 아내였던 크룹스카야는 신문에 기고하며 그를 미라화시키지 말 것을 호소했지만 별수 없었다.

스탈린의 뜻대로 러시아 전역과 전 세계에서 레닌의 시신을 영접하기 위한 행렬이 줄을 이었다.

그 뒤 영묘의 연단은 10월 혁명 기념일, -소 전쟁 전승 기념일 등 굵직한 기념일마다 소련 지도자들이 연설을 하는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수십 년간 소련의 지도자들은 연설을 할 때면 항상 시신이 된 레닌의 후광에 의존했다.

그 뒤를 이어 자신을 화장해달라고 유언한 중국의 모택동, 화장과 더불어 동상을 세우지 말 것을 유언한 베트남의 호치민 모두 미라가 되어 레닌의 전철을 밟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레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늙고 병약해졌으며 영묘를 찾는 발길도 점차 끊어졌다. 어느새 영묘가 위치한 붉은광장에는 정치인들보다 축제를 즐기러 온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더 많아졌다. 곧이어 정치인들의 발길은 영영 끊겼다.

그러자 레닌을 생전의 바람대로 땅에 옮겨 묻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영화감독 마크 자하로프과 작가 유리 카랴킨에 이어 대통령 보리스 옐친까지, 레닌 시신의 이장을 주장했다. 이장 계획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으나 그런 주장은 계속됐다.

시신을 둘러싼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엔돌핀과 아드레날린을 내뿜으며 자신들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도덕과 윤리, 여러 당위에 관해 열변을 토했다.

이장 찬성파는 레닌의 생전 바람을 이뤄줘야 하며, 레닌은 구시대의 거추장스러운 유물일 뿐이라고 주장했고, 이장 반대파는 과거 역사에 대한 존중과 레닌으로 상징되는 사회 통합을 강조했다.

그건 실제로 중요한 일이기도 했지만 권리를 박탈당해 슬플 시신은 말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덕과 격정, 아드레날린을 실어나르던 생기롭던 신체들 역시 스러졌고, 시신을 둘러싼 전쟁을 수행하던 이들도 늙어 버렸다.

이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더 이상 그와 같은 시신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2> 개요: 최근 작가님 작업을 관통해온 중요 화두 중 하나가 ‘덧없음’과 ‘허무’라고 생각하는데요, 구시대의 유물과 같은 문명의 아이콘들이 빛바래거나 유약하게 널부러진 장면들을 주로 연출하시는 데서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작업에서도 설탕으로 제작된 해골을 배치해서 그 같은 맥락을 계속 가져가시는 거 같구요. 그런 ‘무상함’에 대한 제 버전의 구체적인 사례를 정리해봤습니다.)

 

 

 

 

 

 

<3>

 

이것은 대기(atmosphere)의 시점이다

최초의 생명이 등장한 후 오늘날까지

하늘에서부터 아래로, 영원히 이어지는 생명의 행렬을 관찰하는 시선이다

무기물이 단순유기물로

단순유기물이 복잡유기물로

이것이 원시세포가 되었다가

최초의 생명체 루카(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원핵생물이 원생생물으로,

원생생물이 식물로 균으로 동물로

어류가 양서류로 파충류로 포유류로

영장상목이 설치동물과 영장동물로

영장동물이 나무두더지류와 날원숭이류와 플레시아다피스류와 영장류로

영장류가 오랑우탄과 고릴라와 침팬지와 사람으로

하나의 점이 이리저리 움직이다

벌레가 되고 나무가 되고

잘난 사람이 되고

못난 사람이 되고

아름답다가 추하다가

영웅과 악인으로 점멸한다

흑인과 백인과 황인과 갈인과 홍인으로 깜빡인다

여기엔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공룡의 후예가 푸아그라가 되고

쥐 같은 것의 후예가 우주로 나가며

하나가 다른 하나가 되는

사라지거나 흩어지거나

다시 모이는

절단면이 없이 매끈한

무한의 롱테이크

 

 

 

 

 

[<3> 개요: 인간은 집이라는 구획된 공간 속에서 낮과 밤, 어제와 오늘, 일, 월, 년 등의 분절된 시간을 감지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에 ‘시작과 끝,’ ‘삶과 죽음’이라는 개념을 마치 실체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집에서)하룻밤 자고 나면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죠. 여기에는 오늘은 ‘끝’났고, ‘사라졌다’(죽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감도로 보면, 집에 들어온 인간은 단절된 공간을 점유했다기보다는 다만 자신의 외부를 벽으로 가리고 있을 뿐, 집 밖의 것들과 이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집에서 느끼게 되는 ‘내가 다루고 신경 써야 할 세계의 사건들이 종료됐다’는 감정은 인간의 직관이 유발한 착시에 가깝죠. 지구는 어제와 오늘을 신경쓰지 않은 채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을 태양을 축으로 ‘연이어’ 돌고 있을 뿐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끝내지 않습니다. 비슷하게 오늘 사회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은 구체적이고 제한적인 시간대를 특정하여 인과를 찾으려하지만, 그 사건은 사실 무한히 이어져 시점을 특정할 수 없는 연속성 위의 한 점으로 있을 뿐입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으로 미국 텍사스에 태풍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추론할 때(인간이 찾아낸 ‘인과’), 그 나비를 거기에 있게 한 유구한 자연사와 누적된 시간들(연속성)은 고려대상에서 밀려난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자신 외부의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곤충에게서 맹렬한 거부감을 느끼거나 다른 문화를 지닌 인간에게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우리와 구별/분절된다는 직관적 착시에 근거하며, 그 같은 착시를 걷어내고 나면 우리나 그들이나 연속된 지평 속에 있는 존재자들이라는 사실만이 남습니다. 서로 구별/분절될 만큼 멀리 떨어져 있기보다는 연결되어 있고, 외려 한 점으로부터 줄곧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요(예컨대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갈라져 나왔던 사실을 떠올려보면 흑인에 대한 백인의 뿌리깊은, 직관적 착시에 기반한 인종차별이 무색해집니다).

그런 점에서 생명이 시작된 이래 현재까지의 과정을 조감도를 통해 롱테이크로 찍어 n배속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타 종/타인간을 타자이자 객체로 두는- 대상을 분절하고 구획하여 안과 밖, 현재와 과거를 나누는 사고를 효과적으로 반성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풀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