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을 위한 노트
a.마르크스가 추상에서 구체로 나아간 이유, 상품의 서술의 처음으로 삼았는지 아도르노를 통해서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아도르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동일하지 않은 것들을 동일하게 만드는 동일성사고를 심화시키는 교환원리이고, 이때 교환원리는 이미 상품 생산이 이뤄지고 있는 사회를 전제로 한다. 즉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며 사회를 조직하는 실제적인 원리이며, 총체화된 기능의 연관관계를 형성한다. 자본주의의 총체성은 전체 상품교환사회의 체계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러한 총체성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로서 인간에 의해 형성된 총체성이지만, 이내 인간을 지배하는 외부적이고 자연적인 체계로 전화한다. 즉 그것은 객체로서 시작되었으나 주체가 된다.
이때 상품은 구체, 사실, 객체인 동시에- 추상, 의미, 주체이다. 즉 그것은 대상인 동시에 개념이며, 실재인 동시에 가상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사실인 동시에 사회적 관계인 것이다. 허나 눈에 보이는, 지각할 수 있는 감각적 대상으로서의 상품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추상화된 형태로 주어진 대상이며, 그것이 생산되고 유통되어 내게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소거된 채 남아있다. 즉 그것은 가치표지로서의 화폐와 시장에 매개된 방식으로만 드러나는, 초감각적 과정을 거쳐 도달한 구체적인 대상이다. 산노동에 대한 죽은 노동의 지배, 현재에 대한 과거의 지배, 노동의 흔적은 대상으로서의 상품을 아무리 분해해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매개를 이해하기 위해선, 자동적인 무의식적 과정을 통해 추상이 이뤄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허나 이는 노동에서, 혹은 화폐에서 드러나진 않는다. 노동은 상품을 만드는 행위인 한에서 노동이되고, 화폐는 상품의 전화 형태이자 효과인 것이다. 추상이 발생하는 곳은 생산과 분리되어 교환을 기다리는 상품들의 장- 즉 시장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논의는 자본주의의 핵심요인들을 매개하며, 가장 편재하는 동시에 감각적인 대상인 상품에서 시작한다.
b.가치형태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독해하는 작업의 효과는 무엇일까? 그 효과는 자본 1권 1장의 물신주의에 관한 마르크스의 논의에 의거하여 리카도주의적 분배와 프루동 식의 노동 증권과 관련된 기획들, 즉 즉자적이고 명증하며 실제적이라 여겨지는 정치적 프로그램들의 한계를, 본질적 개념을 통해 부정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는 점에 있다. 자본주의에서 상품이 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지를 논하는 것은, 이러한 상품형식을 말소하기 이전까진 화폐의 제거도, 노동의 몫의 확대도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밝혀준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가정하고 이를 상품으로부터 찾음으로써 자본주의 비판의 영속성을 담보하고, 저항의 아포리아를 사고하게 하며, 모든 것들로부터 모순을 찾는 작업을 가능케 한다. 요컨대 상품형식의 극복여부와 이에 대한 매 사안들에서의 비판은, 모든 저항들로부터 부정성을 발견하게 한다. 이는 노동에 대한 권리와 동시에 노동의 폐지를 주장한 마르크스의 작업이 지닌 변증법적 특징이다. 이렇듯 물신주의 비판과 관련된 담론은, 적어도 자본주의를 온전히 비판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의 약점은, 무수한 개개의 현상학적 변화들에 개입하지 못하며, 개념적 추상(그러나 현실의 대상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추상이다)수준에서 논의를 전개하기에, 개별 작업장의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기엔, 혹은 일종의 계급의식을 담지시키기엔 부적합하다는 점에 있다(서동진이 소개하는 영웅적인 예는 '노동의 관점'을 저주한 로베르트 쿠르츠Robert Kurz가 유일하다). 이는 논리와 개념을 통해 파악된 자본주의의 핵심적 원리로서의 가치형태에 집중하는 한, 그로부터 공모하지 않는 행위자를 찾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인데, 이 담론의 급진성은 외려 여기서 연원한다. 즉, 물신주의 비판은 사회주의를 향하는 이론이라기보다는 역사의 불변항으로서의 공산주의를 향하는 이론에 가까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