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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주희샘의 작업은 띵작

by 정강산 2018. 2. 27.

망원사회과학 연구실의 대모- 김주희 샘의 작업은 어쩌면 이분화된 성매매의 성격(그것이 폭력인지 혹은 노동인지를 준별하는)에 관한 논쟁이 지닌 한계에 개입하는 시도를 초과하는 함의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여성의 신체 자체가 명백히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에서 소비의 대상으로 위치지어져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소비를 추동하는 원인이 성매매 업소와 금융제도(이들은 넓은 범주의 '재생산기구' 혹은 "이데올로기 장치"로 번역될 수도 있을 것이다)의 복합적 작용에 의해 우선적으로 매개되어 있음을 논증하는 것은- 여성성과 성적 적대라는 제 2물결 페미니즘의 주요한 개념적 축과, 섹스가 젠더의 산물이라는 버틀러식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전제 양자를 부분적으로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비판하는 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업을 진지하게 보는 이라면 본 작업이 뤼스 이리가레이와 주디스 버틀러를 동시에 논파하는 길을 열어보여준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그 접근은 소여의 생물학적 성과, 그것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계기 사이에서 어느 것을 실체화하지 않으며, 페미니즘을 둘러싼 숱한 논의에서 반복되어 온 성보수주의, 일종의 극단화된 인간주의라 할 법한 약자성과 피해자성에 대한 천착, 맥락없는 성별대립에서부터- 안티페미니즘과 성차의 존재에 대한 전적인 부정에 이르는 오류들을 빗겨갈 수 있게 해준다('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젓는다'지만 노를 제대로 젓지 않으면 배가 이상한 곳으로 간다). 탈성매매 옹호론자들이 가진 순진한 경제주의적 가정을 비판하면서도 성매매 방지법의 폐지엔 반대하거나, 섹스에 관한 도덕주의를 비판하면서도 포르노 산업을 비판하는 변증법적 논리들은 이 작업이 지닌 미덕의 일례일 뿐이다. 한편으로 이런 입체적 분석의 엄밀성과 저력은 단지 본 작업이 '정치경제학적 접근'을 그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객관적으로 구조지어진 세계의 체계적인 동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 성이라는 항을 그와의 관계 속에서 사고한다는 점에서 나온다. 이런 식으로 표현해도 된다면, 한국에선 보기 드문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형식을 암호처럼 숨겨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을텐데, 이렇게 생산양식,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여러 제도들과 성차가 함께 사고되는 한, 성적 대상화와 비대칭적 폭력을 둘러싼 해묵은 쟁점들 역시도 주관적, 윤리적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그 원인이 되는 객관적 대상들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엄격한 이론적 바탕 위에서 폭넓은 리서치와 현장조사를 통해 한국 성산업의 구조와 모순을 실증적으로 조망해낸 지점은 이 작업이 지닌 또 다른 주된 미덕이다. 페미니즘을 입체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김주희 샘의 작업을 꼭 살펴봤으면 좋겠다. 이런 책은 페미니즘의 진보와 발전적 계승을 위해 단행본이 나오자마자 즉시 구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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