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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Bad New Days나쁜 새로운 날들 전시/책자 서문

by 정강산 2017. 11. 16.

Bad New Days 전시 서문

 

하나의 시간이 21세기를 배회하고 있다. CCCP의 시간이.

소련(CCCP)의 여러 국영공장들에서 생산되던 시계는 소비에트 블록의 붕괴와 함께 영원히 잊힌 줄 알았으나 2013, 한 기업에 의해 무덤 속에서 끌려나왔다. “CCCP의 시간(CCCP Time)”은 명품 디자이너, 알렉산더 쇼로코프가 선보이고 있는 시계 컬렉션의 이름이다. 이 브랜드는 과학, 정치, 예술의 선두주자였던 한 국가에 영감을 받아 본 컬렉션을 선보이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붉은 별과 낫과 망치가 박혀있는 이 시계가 여러 쇼핑몰을 떠돌고 있는 풍경은 어딘가 섬뜩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것은 모든 급진적인 운동과 아방가르드의 젖줄이었던 이 심볼이, ‘지금 여기서 얼마나 개차반이 되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남성 패션잡지의 대명사 맥심(USA, Nov. 2014)은 이 시계를 이렇게 소개한다.


“(..)대부분의 레닌 동상은 더 이상 그 도시들에 서있지 않다. 반면 저 시계들은 시간의 시험을 견뎌냈으며, 무엇보다도 그 디자인은 여전히 유효하고 힙하다.”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탐구하던 시간의 실험실, 소비에트는 이 세련된 시계만 남기고 시간의 시험대에서 탈락한 것처럼 보인다. 장인의 예술적인 솜씨로 섬세하게 박제된 레트로 룩은 1917년의 시간을 다시 흐르지 않을 시간으로 봉인해 버렸다. 아마 여기서 우리가 상기하도록 허용된 시간은 1990년대 버전의 색안경과 배꼽티의 시간, 1980년대 버전의 포크송의 시간, 1970년대 버전의 마징가Z 액션 피규어의 시간, 1963년 버전의 클래식 카메라의 시간, 1955년 버전의 햄버거의 시간 등일 것이다. 이제 적대의 기억은 소비의 기억으로 윤색된다. 철저히 매개되고 표백된 기억만이 역사의 이름으로 귀환하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선택은 키치가 된 그때 그 시절을 멀찌감치 떨어져 조소하거나, 혹은 향수에 빠져 과거에 침잠하는 일만 남았다.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 상품과 셀럽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탐닉하는 일과 거의 포개어져 시간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면, 예술은 작업을 통해 어떤 얘기를 건넬 수 있을까?

 

<배드 뉴 데이즈>는 이러한 질문을 중심축으로 두고 활동하는 아티스트 콜렉티브다. 쉽사리 기억을 되돌리고 시간에 대한 상상력을 회복할 수 없을 때, 유효한 문제설정은 시간이 닫힌 시대를 직시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각 작업을 통해 현재의 시간이 조직되는 양상을 추궁하고자 한다. 즉 우리는 오늘날 시간의 시험을 보이콧 하려 한다.(주현욱 작가와 함께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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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Bad New Days 책자 서문


<배드 뉴데이즈Bad New Days>는 역사 감각을 상실한 동시대 미술에 대한 비판적 개입을 염두에 둔 작가들의 연합으로, 좋았던 과거가 아닌 나쁜 오늘에서부터 시작하라는 브레히트의 격언을 모티프(motif)로 삼고 있다. 우리는 2017년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아, 그 사건을 현재의 시점에서 기억할 수 있는지 질문하며 첫 모임을 가졌고, 올해 1월부터 지속적으로 세미나와 전시기획 준비를 병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작가들은 각자의 소주제를 토대로 하여 오늘날의 시간성에 대한 탐구를 수행하였다. 역사에 대한 기억()가능성을 점치는 일은 현재 시간의 배열을 인식하는 작업과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100년 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달에 선보이게 된 전시와 병행하여 발행된 이 글들은 그 탐구와 고민의 결과들이다.

 

각 구성원들의 글은 작업과 병행하여 독해할 수 있지만 작업을 부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된 하나의 텍스트로서 완결된 형식을 갖추도록 했다. 이는 작가와 비평가, 큐레이터 등의 역할이 제도적으로 구획된 근대적 분업을 지양하고 작가들이 스스로 전시 전체의 얼개를 짜고 비평을 작성하며 스스로 사유하는 모델을 고안하기 위함이다. 오늘날처럼 작가들의 글이 범람하던 때도 없지만, 동시에 어떤 글은 너무나도 드물다.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에서 상황주의로 이어지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기획들이 정제된 선언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언어는 모든 의미가 귀결되는 최종적인 장이다. 작가가 그 속에서 정제된 방식으로 발언의 지분을 갖는 것은 작업 외적으로 작업의 형식과 맥락을 규정하는 과정을 책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허나 그러한 시도들은 모더니즘 이후 드문 것이 되었고, 이는 여전히 건재한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속에서 보다 심화된 것처럼 보인다. 이제 작가가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작가가 작업 이외의 방식으로 발화를 수행한다는 것은 오늘날 어떤 정치적 제스쳐를 내포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세계와 오롯이 홀로 대면하고자 하는 비판적 태도를 구축해나가는 것을 전시 독해에 중요한 하나의 형식으로서 제시하려한다.

 

본 책자는 참여 작가들의 에세이, 비평문 등을 묶은 6편의 글로 이루어져있으며, 각각 파국과 SF, 페미니즘과 생식, 역사와 기억, 선전과 정치, 신체와 시간,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를 소주제로 두고 오늘날의 시대를 가늠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자 했다. 오늘날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무엇이며, 비판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 우리가 부당하게 매혹당한 것은 무엇인가? 세계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현상하고 있는가? 각 글들은 동시대에 관한 인지적 지도그리기(cognitive mapping)를 시도하려는 의도에서 서로 수렴하며, 이는 본 전시의 작업들을 독해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예술이 그 자체로 사회적 실천으로서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용함을 지닐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자 한다. 확실한 것은 사회 혹은 세계가 변화한다는 것이며, 존재하는 사회적 실체와 세계의 총체적 상을 인식하는 것에서 변화의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드 뉴데이즈는 작업과 비평적 개입을 병행하며 시대를 가늠하는 탐침기가 되고자 하며, 향수에 젖지 않은 채 현재의 시간을 직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