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27 문명을 향한 허무의 일점사(concentrated fire): 간략한 최은철 작가론 [2024 수원 아트스튜디오 푸른지대창작샘터 4기 레지던시 결과보고전,(2024.10.18-11.10)를 위해 작성된 글.수원문화재단 레지던지 도록에 선게재됨.] 정강산 1.《요제프 하이든을 위한 골상악 세레나데》에서 제시된 일련의 작업을 논하기에 앞서 최은철의 전작들로 돌아 가보자. 적어도 2017년 이후 현재까지, 최은철이 매료된 주제는 ‘문명과 시간’으로 비친다. 우선 수백 개의 동그란 시멘트 원판 위에 순백색의 녹인 설탕을 올려 에메랄드빛 색소를 덧입힌 작업 (2017)에서 그 같은 기류가 포착된다. 이 작업은 자잘하게 나뉘어가는 빙붕(ice shelf)과 빙산(iceberg)을 연상케 하며, 시멘트로 표상되는 ‘문명’ 위에서 설탕으로 조형된 채 ‘시간’에 따라 녹아 사라지는 극지를 떠올리게.. 2025. 7. 4. 최은철 개인전_〈요제프 하이든을 위한 골상악 세레나데〉(광명, 오분의일, 2024.9.3.-9.29)을 위한 노트 *‘틀’ ‘규격화’ ‘편집증적 과학에 대한 오류’와 같은 부분은 선생님의 직접적인 작업 주제이기도 하고, 작가노트를 통해 충분히 암시가 된 거 같아 제가 개입하게 되면 외려 군더더기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제안해주신 ‘삶과 죽음에 대한 짤막한 에세이’를 만들어 보는 게 보다 우회적으로 맥락을 풍부하게 할 수 있을거라 판단하고 그런 작업들을 몇 개 준비해봤습니다. 홑화살괄호 ‘’로 각각의 버전을 표시했고, 이 중 작가님께서 낫다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서 배치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각 버전 아래에는 이탤릭체로 해당 버전을 작성하게 된 배경과 의도를 포함해 대략의 개요를 적어두었으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감바스에 다양한 재료를 넣길 좋아하던 124년 전 죽은 스페인의 바티스타(Ba.. 2024. 9. 20. 그대들, 어떻게...살 수나 있겠는가: 복합 위기 속 지옥불반도 (뉴스페이퍼 제4호(2023.12.20)에 선게재됨.) 정강산 동시대 한국은 ‘지옥불반도’라는 수식이 약하게 느껴질 만큼 궁지에 내몰려 있다. 요컨대 사람들이 제도정치에 효능감을 가지지 못한다. 정치 위기다. 묻지마/쾌락형 살인과 도를 넘은 민원/갑질에 죽어나가는 이들이 속출한다. 윤리 위기다. 과로사가 줄을 잇고, 청년층은 자녀를 갖지 않으며, 노년층은 눈치와 빈곤 속에 목숨을 끊는다. 재생산 위기다. 이 모든 증상을 규정하는 하나의 메타적 위기가 있다면, 단연 변혁운동의 위기라 해도 좋다. 변혁운동의 위기는 곧 대안 서사의 망실이자 대항 주체의 소멸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나의 실존적 고통이 내 부족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현 세계로부터 부당하게 부과된 것이라는 서사와, 지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 2024. 2. 15. “뱀파이어와 좀비, 혹은 자본주의와 종말을 사유하기”에 대한 토론문 [2022 한국문화연구학회 11월 월례발표회(2022.11.15.) 토론을 위한 글] *김형식의 “뱀파이어와 좀비의 조우, 혹은 자본주의와 종말의 관계: 짐 자무쉬 영화와 맥스 브룩스의 단편 소설을 중심으로”에 대한 논평 “뱀파이어와 좀비, 혹은 자본주의와 종말을 사유하기”에 대한 토론문 정강산 우선 괴담이 일단 대중적인 코드로 성립하기 이전에, 그 발생론 자체에서도 자본주의의 규정을 읽어내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제임슨의 표현대로, 정치적 무의식이 표현되는 최초의 순간을 재구성해내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문화적 대상물들을 역사화할 수 있게 되며, 그를 통해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김형식의 다른 저작들에서는 그 발생론에 관한 부분이 비중있게 다뤄지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본 작업에서는.. 2023. 11. 28. 이전 1 2 3 4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