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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ism

사라지지 않는 지표로서의 생산양식: 동시대 예술의 작업 경향의 조건에 관하여

by 정강산 2019. 12. 16.

(인용은 진보평론 84호에서 하셔요-)

 

사라지지 않는 지표로서의 생산양식: 동시대 예술의 작업 경향의 조건에 관하여[각주:1]

 

 

정강산

 

 

 

전체는 부분과 같지 않다(...)”

Aristotle, Posterior Analytics, Translated by H. Tredennick, E. S. Forster,

Harvard University Press, 1960. p.634.

 

“(...)특수한 이익은 전체의 보존으로 연결된다.”

헤겔, 󰡔법철학󰡕, 임석진 역, 한길사, 2008, p.524.

 

“(...)모든 미적 정립에서 문제되는 존재는 언제나 인간 세계이다.”

게오르그 루카치, 󰡔미학 3󰡕, 임홍배 역, 미술문화, 2002, p.49.

 

나는 정신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화폐는 만물의 현실적인 정신이다. 그렇다면 그 소유자가 어떻게 정신이 없는 사람이겠는가? (...)화폐는 나의 욕구를 표상의 존재로부터(...) 감각적이고 현실적인 현존재로 전화시키며, 표상으로부터 삶으로, 표상된 존재로부터 현실적 존재로 전환시킨다. 화폐는 이러한 매체로서 진정한 창조적 힘으로 존재한다.”

칼 마르크스, 󰡔경제학-철학수고󰡕, 김태경 역, 이론과 실천, 1987, pp.116-117.

 

 

 

 

1. 들어가며: 자유낙하 하는 주체에게 토대를 허하라

 

 ‘진리’, ‘을 판가름하는 과정에 있어, 확고한 인식론적 기초를 상정하고자했던 토대주의의 흐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목 이후 대략 이성과 사유에 내기를 거는 데카르트적 전통을 한편으로, 경험과 감각에 내기를 거는 로크적 전통을 다른 한편으로 하여 발전해왔다. 전자가 이성에 정초하여 특정한 명제를 설명하고자 했다면, 후자는 그러한 설명을 경험에 근거 짓고자 했다. 여기서 토대란 인식론적 정당화, 즉 하나의 믿음은 어떤 방식으로 조건 지워지는가에 대한 답변에 다름 아니다. 어떤 명제의 타당성을 논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명제들을 호출하며, 결과적으로 어떤 확고한 판단의 지반도 내놓지 못한 채 끊임없는 퇴행을 거듭하는 것을 중단하기 위해 인간이 필요로 했던 것은 모종의 기초였을 것이다. 한편 판단과 믿음을 위해 절대적이고 정태적이며 위계적인 근간을 설정한 이러한 토대주의에 대항하여 정합주의는 인식론적 모델의 가변성과 유동성을 인정하고자 했다. 어떤 믿음을 그 자체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족적인 증거의 원천으로 남겨두는 토대주의와 달리, 정합주의자들은 정당한 앎, 지식, 믿음 등은 특정한 명제들의 연쇄가 만들어내는 설명체계의 배치 속에서 조건 지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각주:2] 반면 이들에 맞서 회의주의는 믿음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려는 어떤 시도도 완벽히 정당화 될 수 없다고 간주하며, 타당한 앎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이 지점에서 회의주의는 신적 존재와 사물의 본질을 파악 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agnosticism)과 공명하게 된다. 회의주의를 제외하면, 한동안 이들 에 대한 대립된 입장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진리와 참에 도달 할 수 있는 나름의 설명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보를 다루는 능력이 평준화되어 모두가 제 나름의 사실을 전하고, 수초 단위로 새로운 사실들이 갱신되며, 비합리적인 적대감을 부추기거나 비상식적인 소식을 실어 나르는 가짜 뉴스가 일상 깊숙이 침투한 탈 진실(post-truth)’의 시대에, 혹은 온갖 이미지와 기호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 위와 같이 진리와 앎을 대하는 두 가지 경합하는 전통적인 입장은 본격적으로 도전받게 된다.[각주:3] 어떤 토대도 무시될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어떤 정합성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이 고상한 철학적 사변들은 구조적으로 힘을 잃을 운명에 처하는 것이다. 이에 조응하듯 심화되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각광받으며 점차 학술 장에서 헤게모니를 쥐어가는 철학적 표현으로서 반 토대주의(anti-foundationalism)이다. 근거의 부재, 상대주의, 계보학, 다원주의, 접합이론, 우연성과 사건 등에 기대어 형이상학과 총체화하는 설명체계에 반기를 드는 니체와 푸코, 혹은 나아가 라클라우와 무페, 바디우의 반 토대주의적 경향은 (기존의)앎의 토대와 기초가 공격받는 상황의 징후이자 동시에 그러한 상황을 합리화하는 알리바이로서 기능한다. 이들 반 토대주의 철학은 기존 담론이 뿌리내린 모종의 토대라는 관념을 공격하지만, 동시에 정합주의에 속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히토 슈타이얼은 이렇게 인지적 토대가 위기에 처한 상황을 자유낙하상태라는 감각적 유비를 통해 주목했다.

 

 “역설적이게도, 낙하하는 동안 우리는 마치 붕 떠 있는 듯 하다거나, 아예 움직이고 있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낙하란 상관적(relational)이다. , 낙하하면서 향하게 되는 그 무엇이 없다면 낙하를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 바닥(ground)이 없이는 중력의 기운이 미미할 것이고, 우리는 하중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우리 주변의 사회 전체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낙하 중인지도 모른다. 이는 완전한 정체 상태로 느껴질 것이다. 마치 역사와 시간이 종료된 듯,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것처럼. (...)낙하 중에 사람들은 자신이 사물이라 느끼거나 사물이 스스로를 인간이라 느낄지도 모른다. 보고 느끼는 관습적인 양식들은 와해된다. 모든 균형감각이 흐트러진다. 시점(perspective)은 비틀리고 배가된다. 시각성의 새로운 유형들이 발생한다.”[각주:4]

 

 여기서 히토 슈타이얼이 주장하는 것은 토대, 즉 바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주체에게 주어진 것은 낙하에 대한 감각이라는 것이고, 이에 조응하는 동시대적 이미지는 대상에 대한 편집증적 파악을 가능케 하는 3D 전면도 · 수직성이 강조되는 조감도 · 위성사진 등이 내비치듯, 안정적인 지면에 선 단안시점의 주체를 상정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대항해시대의 측량술과 선형원근법이 만들어낸 시각성 이후의 변화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레 개입하는 위와 같은 재현 장치들은 보다 우월한 자가 아래를 향해 일방적으로 굽어보는 감시의 시선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것을 작동시키며 현재의 수직화된 사회관계를 정확히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흥미로운 분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째서 그러한 (새로운 시각성과 공명하고 공모하는)토대 없는 자유낙하의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나아가 그것을 기꺼이 긍정하고자 한다.

 

 “이러한 많은 새로운 시각성 내에서는 심연으로의 절망적 추락으로 보였던 것이 실제로 새로운 재현의 자유임이 입증된다. 이 점은 (...)우리가 처음부터 근거를 필요로 한다는 관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각주:5]

 

 하지만 우리는 그처럼 자유낙하를 마냥 긍정해야할까? 오늘날의 시각성과 지배적 심상의 특징으로서 자유낙하에 주목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단순히 토대가 부재하는 상태를 긍정하는 것은 우리가 합의 혹은 공통의 인지적 상태에 도달 할 수 있는 어떤 가능한 단서도 없다는 점을 반복하여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점에서 자유낙하는 파악할 수 없고 규정 불가능한 세계를 마주한, 언어를 잃은 후기자본주의의 정신분열증적 주체가 갖는 심상으로서의 히스테리적 숭고의 다른 표현이지 않은가.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인지적 공황상태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는다. 진리를 위해 초월적인 근본을 전제하는 토대주의와 논리의 일시적 배치만을 강조하는 정합주의의 한계를 넘기 위해 반 토대주의에 머무르는 것은 지나친 우회일뿐더러 옳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인간들이 이미 가진 공동성과 공통의 의례, 삶의 방식으로부터 앎의 근거를 확보하는 동시에, 그들의 유동성과 가변성을 인지해가며, 그러한 공통의 지반을 실체화시키지도 않는 길을 찾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유물론은 토대주의와 정합주의 각각의 한계를 넘어서며 진리를 드러내는 가장 유력한 방식을 제시할 수 있다.[각주:6]

 일찍이 마르크스가 주목했던 토대와 상부구조의 변증법적 관계는 한 사회구성체 내부에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하여 그것이 끝내 어떤 방향으로 지양되고 전화할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즉 변화할 수밖에 없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 속에 다른 무엇들과 함께 놓인 대상은 필연적으로 시공을 축으로 하여 서로 관계하며, 그 각각의 상태는 동적이고, 따라서 완전히 닫힌 상태로부터 벗어난다. 서로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정태적이고 독자적인 대상들은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에 대한 부정성으로서 작용하며, 단일한 대상 내부에도 그것을 더 이상 그것이 아니게끔 하는 절대적 한계이자 가능성이 존재한다. 역사 유물론은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사회적 실재를 구성하는 작인들의 배치가 만들어내는 효과를 파악한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매개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고, 이로부터 우리가 기대어 사고하고 행위 할 수 있는 공동의 지반이 발생한다는 필연성은 앎의 기초가 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변화하는 사회적 관계에 따라 그때그때의 성좌(constellation)로서 구성되는 것이다.[각주:7] 즉 역사유물론이 제공하는 기초에 대한 심상은 우리의 앎에 모종의 근거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러한 근거들이 역사의 각 국면에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배치들로 인해 항구적으로 실체화 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내가 하려는 작업은 바로 오늘날의 토대 없는 자유낙하의 상태를 전체 사회적 관계의 변동의 부분으로서 규명하고, 이를 통해 실체화 되지 않는 앎의 토대를 그려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예술은 그때그때의 사회적 실재의 변화를 그 자신 내부에 각인시킨 단자로서 주목될 것이며, 동시대 예술의 경향성은 금융세계화에, 보다 제한적으로는 법정화폐와 변동환율제에 기대고 있음이 드러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채택하는 관점은 역사주의적 관점, 혹은 역사유물론의 관점, 또는 정치적 무의식의 관점이다.[각주:8] 이러한 관점 하에서 예술은 자율적이지만, 그 자율의 조건을 규정하는 여타의 심급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러하며, 독자적인 실체이지만 전체 사회적인 배치 속에 놓여 있음으로서 그러하다. 예술은 사회의 여느 부문이 그러하듯 이런 저런 이데올로기들에 논리적으로 후행하며, 대체로는 그들과의 공모 속에서, 때로는 그들과 길항하며 그 속에서 스스로를 정초한다. 보다 정확히는, 예술은 그것이 하나의 발화이자 텍스트인 한, 결코 텍스트로 환원될 수 없는 실재에 대한 하나의 반응으로서 촉발된 알레고리적 행위로서, 적극적인 해석의 대상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포스트구조주의의 언어적 유희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로 실재에 대한 능동적이고도 무의식적인 반응이자 하나의 증상적 발화로서 예술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러한 작업을 거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술을 실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족적인 것으로서 간주하게 되는 것으로, 어떤 의미로도 정박되지 않는 주관성의 악무한의 연쇄 속에서 그것을 추상성 속에 용해시켜버리게 된다.

 반면 우리의 접근에서 예술은 실재; 객체에 대한 반응이자 실재의 상황과 조건들을 근본적으로 초월할 수 없는 형식임과 동시에, 실재의 상태 자체로 완전히 환원될 수는 없는 충동을 보존하고 있다. 이때 실재란 생산양식과 그로부터 일정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회구성체의 시간적 연속성을 지시하며(이러한 연속성은 변증법적이기에, 상징화되기 어렵다), 지속적으로 물질적 과정에 근거하여 재생산되길 요구하는 인간의 삶이 지닌 절대적인 한계로 인해, 마르크스라면 자연과 인간의 신진대사를 매개하는 실천으로서의 노동이라 불렀을 모종의 구조적 선차성으로 인해 역사의 각 국면마다 형성되는, 현실적인 동일성의 기제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공동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인식의 준거가 되는, 그럼에도 우리의 개념이 미처 파악하지 못할 지평을 향해 변화하고 있는 세계 자체가 바로 실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세계화, 후기자본주의, 신자유주의라는 기표 하에 간신히 정박시켜 두었던 실재에 대한 최근의 상 이후, 이를 상대하는 예술은 어떤 형식으로 그 논리들에 반응하고 있는가? 본 글은 객관적인 세계의 변화가 예술 내부에서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2. 흔적으로서의 바니타스(Vanitas), 흔적으로서의 헤겔

 

 이러한 접근이 제기되는 이유를 해명하기 위해, 우리는 우선 근대적 예술의 시원으로 돌아가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인상주의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가장 흔한 설명은, 사진기술의 발명에 따라 회화에 남은 공간은 그때그때 세계의 달라지는 모습을 좇는 시신경의 흐름을 기록하는 것이었다는 지적이다. 이렇듯 1860년부터 약 30년간 지속된 인상주의의 출현은 다소 기술결정론적 맥락에서 독해되는 경향이 있으나, 실은 자율적으로 사고하며 개체로서 그 자신의 생애주기를 직접 관리하기 시작하는, ‘내면을 갖게 된 개인(혹은 문제적 개인)이 출현하는 징후를 알린 근대소설이 봉건적 신분관계의 종식과 시민사회의 발전 속에서 나타나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각주:9] 근대적 노동 분업이 편재하게 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야만 했던, 모종의 분할을 자신의 내적 논리로 끌어들이며 시각적 자율을 표현한 예술의 최초의 물화 경향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인상주의가 대혁명을 통해 부르주아적 사회관계와 모더니티의 제요소들이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닦였던 프랑스에서부터 퍼져나갔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상파 화가들은 부르주아적 감각에 기댄 채 산책자의 시선으로 도시의 풍경을 다루며, 망막에 명멸하는 빛을 주관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들은 대상을 재현하기보다 대상을 보는 주체의 감각과 시각을 표현했던 것이다. 이는 그들이 작품의 구성에서 어떤 필치도 나타나지 않게 억눌렀던 이전의 양식들에 비해, 붓놀림; 필적(brushstroke)의 흔적을 전면화 시킨다는 점에서 뚜렷하게 포착된다. 여기서 붓놀림은 단순히 여러 장식적 기법 중 선택 가능한 하나의 기술(technique)이 아니라, 봉건적 가치망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주관적 심상을 표현하는 개인의 발생, 즉 개인 작가의 탄생을 암시하며, 그러한 주관성의 경향성 자체를 물질화한 단자로서 이해되어야 한다.[각주:10]

 이때 인상주의는 근대적 시각성의 최초의 표현으로서, 자율적인 내면과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시각을 갖게 된 주체의 시점을 나타내며,[각주:11] 이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심급은 근대적 노동 분업과 이에 따라 분할 되어가는 근대적 사회관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인상주의가 결정적으로 신고전주의에 반기를 들었던 조류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는 보다 명백해지는데, 신고전주의는 사그라드는 신분제의 귀퉁이에서 여전히 수혜를 누리던 당대의 아카데미화단의 귀족적인 하비투스를 집약한 형식으로서, 신화, 종교, 경전적인 역사적 장면들을 다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인상주의자들은 신고전주의적 시각에서는 사사로울 수밖에 없는 단순한 도시의 일상적 모습들을 비롯한 풍경들을 자신의 대상으로 설정했으며, 비의식적으로 시각장에서 앙시엥 레짐의 시각적 이데올로기를 청산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들이 신고전주의 일색의 살롱전의 심사기준에 맞섰고, 이에 황제 나폴레옹 3세가 마지못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롱 낙선전을 허가했으며, 이것이 관에 매개된 아카데미의 살롱을 벗어나 독립화가 전(Salon des Indépendants) 결성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근대적 시각성을 사회적으로 관철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당대의 구시대적 잔제에 대한 부르주아적 생활양식의 완전한 확립과 승리를 표지하는 것이다.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1863)는 그런 점에서 전환기의 새로운 계급적 헤게모니를 시각장 내부에서 관철시킨 일종의 지표인데, 여기서 인상주의는 산업자본주의 초기 단계의 문화적 단자로서 간주될 수 있다.[각주:12] 그와 동시에 유미주의와 깊은 영향을 주고받은 것으로 간주되는 인상주의 특유의 화사함과 빚에 대한 감각적 묘사는 초기 자본주의의 추한배면을 덮어 가리는 동시에 그에 저항하는 시선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예컨대 후기 인상주의로 분류되는 고흐는 비참하고 칙칙하며 소외된 세계를 사생의 대상으로 설정함에도 불구하고, 준 자율적 공간으로 분화된(혹은 물화된) 예술적 영역에 기대어 그들을 시각적으로 전치시키고 있다. 즉 제임슨의 표현대로, “반 고흐에서 그 내용, 즉 처음의 원재료들은 농사의 비참함과 황량한 시골의 궁핍이라는 전체 대상세계로서, 그리고 고된 중노동이 있는 전체 미발달된 인간세계로서, 가장 잔인하고 위협적이며, 원시적이고 소외된 상태로 전락한 세계로서 간단히 파악될 수 있으나, “(...)사과나무와 같은 것들은 환각적인 색의 표면으로 터져 나오며, 농촌의 흔한 사물들은 갑자기 그리고 화려하게 빨강과 초록의 색조로 뒤덮이는 것(...)”이다.[각주:13]

 시간을 좀 더 뒤로 돌려보면, 플랑드르 회화의 풍경화는 가장 즉자적인 수준에서 객체를 미적대상으로서 관조하기 시작한 주체의 예비적 시점을 증언한다. 이때 주관성은 아직 인상주의에서처럼 색감과 사생될 대상의 외연을 재구성하는 데에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근대의 여명기라 불리는, 무역과 상업을 통해 자본주의로의 점진적인 이행을 준비하고 있었던 15-17세기 네덜란드와 그 인근 지역들에서 풍경화가 나타났던 것은 보다 심화된 주관성을 표현하는 인상주의가 프랑스에서 출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연이 아니다. 당시 플랑드르는 이미 13세기부터 방직공, 방적공, 축융공, 염색공 등의 노동 분업에 근거한 자본주의적 방직산업이 있었고, 여기서 생산은 상인 자본가가 원료와 생산도구를 제공함으로써 완제품을 시장에 팔고, 장인들이 임금을 받는- 원형적인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로서의 선대제를 통해 이뤄졌다. 또한 플랑드르는 직능인 및 상인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유럽 교역의 중심지로서, 도시의 권한이 영주의 권한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지역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초기 자본주의적 국민국가로의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각주:14] 요컨대,

 

 “크기는 작았으나 중세에 이들 지역은 강력한 잉글랜드 왕국,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사이에 놓여있었고, 바다와 가까운 그들의 유리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으며, 경제적으로 번영했다. 그들을 바다로 연결해주는 훌륭한 수로 시스템과 잉글랜드 왕국과의 긴밀한 교역관계를 통해, 15세기에 브뤼헤(Bruges)와 겐트(Ghent)의 플랑드르의 도시들은 경제적으로 번창한 양모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영국의 양으로부터 생산된 양모는 플랑드르의 방직공에 의해 직조되었고, 시장에 팔리고 다른 유럽의 도시들에 수출되었다.”[각주:15]

 

 이러한 조건 위에서 플랑드르의 풍경화는 점차 발전되어온 농업에서의 생산성증가가 보다 많은 잉여를 만들어내고 농업 자체의 과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장 판매와 장거리 무역 등의 상업적 유통의 과정을 확립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삶과 신체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연 자체가 미적 방식으로 관조될 수 있는 시기의 시선을 드러내며, 전원의 풍경을 고된 노역의 장소로서 보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의 시대적 시선을 표지한다. 일찍이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가 지적했듯, 풍경은 역사적 산물이며, 상상의 공간이자 완벽함의 상태에 있는 어떤 전체성에 대한 상징이다.[각주:16] 농부들은 (심미적)풍경을 모르며, 생트빅투아르 산(Sainte Victoire)을 보는 화가의 시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곳을 본다는 세잔의 통찰은 풍경화의 역사적 조건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각주:17] 요컨대 벨기에 태생의 작가 루벤스의 플랑드르 축제장터(Flemish Kermis)(1630), 무지개가 있는 풍경(The Rainbow Landscape)(1636)은 이미 땅(land)이 아니라 풍경(landscape)을 인식하게 된 시점에서의 보기의 방식을 내보인다. 자연과 문화가 분리된 조건, 즉 비로소 벗어날 수 없는 제2의 자연에 살게 된 인간이 볼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을 초과하는 무엇이다. 그러나 여기서 풍경은 그 자체로 이미 유토피아적 열망을 투사하는 장소로서 조명된다. 넓은 시야로 포착된 북적거리는 시골마을의 연회 장면은 모종의 유기적인 집단성과 공동성을 체화한 이들의 세계를 드러내며, 밝은 표정으로 농부들이 거니는 경작지와 숲 너머로 무지개가 펼쳐진 전원의 모습은 돌아갈 수 없는 대문자 자연에 대한 갈망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들이 묘사된 기법상의 지표는 어떤 집단적 삶의 세계, 자연으로의 회귀가 불가능한 것이라는 사실 또한 말해준다. 플랑드르 유파는 인상주의와 마찬가지로 의 묘사에 민감하게 주의를 기울였으며 색의 농담에 의해 공간감을 표현하는 대기원근법(aerial perspective)과 선 원근법 등에 근거하여 대상을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묘사했는데, 이는 각각 점차 심화되어가는 자본주의적 물화에 조응하여 자율을 확보해가는 시각적 감관과 예술, 그리고 측량술과 항해술 등의 테크놀로지를 통해 합리화 되어가는 주체의 시선에 대한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다.[각주:18] 한편 플랑드르 회화와 비슷한 시기에 네덜란드에서 등장한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 또한 어떤 생산물이 그것이 지닌 본래의 쓰임새와 무관하게 미적 방식으로 관조될 수 있는 시기의 시선을 드러낸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분화가 일어나기 이전에 사물은 바니타스 정물화에서처럼 번뜩이는 매혹적인 형상으로, 혹은 음험한 죽음으로, 또는 생의 덧없음에 대한 알레고리로 나타날 수가 없다. 요컨대 직접적인 소비와 관계없이 존재할 수 있는 잉여가 존재하고, 재화가 그 자체를 초과하는 의미를 갖게 된 상황에서야말로 오브제들은 바니타스 정물화와 같은 방식으로 보일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업 경향은 인간이 점차 심화되어가는 상품의 세계를 마주하는 대가로서, 신의 보호와 영생에의 약속을 버리고 죽음을 직시해야하는 세계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을 표지하는 흔적이자, 점차 사물에 형이상학적 시선을 투사할 수 있게 된 주체의 심상을 내보이는 역사적 지표이다.[각주:19] 또한 이는 베버적 의미에서의 탈주술화와 합리화의 미술적 흔적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태생의 작가 얀 다비즈 데 헴(Jan Davidsz de Hem)디저트가 있는 책상(A Table of Desserts)(1640)은 아마도 동방과의 무역으로부터 조달해온 온갖 종류의 과일들과 이국적인 접시들, 악기 등이 묘사된 정물화로, 그 오브제들의 표면은 신비로울 만큼 번뜩인다. 그러나 그가 그린 것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언급한 바 있는 상품의 방대한 집적으로 나타나는 (wealth)’이자, 세속성 자체이다. 즉 바니타스 정물화는 죽음에 대한 천착을 한편으로, 어떤 부족함도 없는 신비롭고도 풍족한 상품들의 (탈주술화된, 그러나 동시에 주술화된)세계의 모습에 침잠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유토피아적 계기를 담지 한다. 데 헴의 시선 속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이미 도래한 것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플랑드르 유파의 풍경화와 바니타스 정물화는 중상주의적 시초축적의 특수한 문화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보편으로서의 생산양식이 특수로서의 부문적 현상들을 통해 개별로서 나타나는 위와 같은 사례들은 당연하게도 비단 예술의 범주에 국한된 진술이 아니라, 철학을 비롯한 제 분과 영역들에서까지 관측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18세기의 칸트에게 주체와 객체, 존재와 인식, 지성과 감성의 분리는 이미 하나의 대답으로서 제시되었는데, 여기서 각 영역은 마치 순수 이성실천 이성이 그러하듯, 서로 완전히 구분되는 것으로 설정되며, 물 자체; 객체의 본질 혹은 절대자; 자연에 대한 인식은 포기되거나 유보된다. 이는 철학사 내부의 지엽적인 쟁점을 해결 하고자 했던 하나의 자율적인 철학적 응답임과 동시에, 그 자율의 조건을 초과하는 대상을 배면에 지님으로써만 나타날 수 있었던 하나의 징후이기도 하다. 이러한 견지에서 일찍이 존 레텔(Alfred Sohn-Rethel)은 칸트의 이원론이, 교환에 매개된 노동 분할, 즉 현실의 상품 교환행위가 재생산하고 또한 교환행위를 위해 필요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라는 현실의 이분법 위에서 가능해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구상과 실행의 본격적 분리라는 자본주의적 노동 분업은, 칸트의 젖줄이자, 토대이며, 칸트를 역사화 할 수 있는 계기이다.[각주:20] 즉 칸트의 선험은 바로 자본주의를 가리킨다. 신의 죽음에 이어 열린 이성의 공간과 도덕의 위상을 재확립하는 것이 칸트 기획의 전제였음을 감안할 때, 총체적 매개자로서의 신의 죽음은 이미 부르주아적 질서의 출현과 관련된 어떤 현실의 분할 과정에 근거해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 분할의 실체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할이라는 점을 그려 보이는 레텔의 주장은 강한 설명력을 지닌다. 이때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는 단순히 나열 가능한 특정한 노동의 성격들이 아니라, 임노동 자체의 발생,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 분화, 교환행위를 매개하는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화폐의 위상 심화, 시장적 평균으로 수렴한 총노동속에서 무차별한 인간노동으로 평준화된 추상노동과 개별 작업장 내에서 수행되는 개별적인 구체노동이라는 노동의 이중성 등의 역사적 결절점을 가리킨다.[각주:21]

 

 마찬가지로 19세기 초부터 전개된 헤겔의 변증법은 시민사회와 국가가 대립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던, 그러나 서로가 어떤 유기적 통합의 가능성을 내비치던 생산양식의 국면을 지시하는 지표로서 조명될 수 있다. 당시 시민사회는 구체제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헤게모니 투쟁을 하던 근대적 경제인들의 원자화된 세계로서, 국가는 귀족적이고 전제적인 세력들이 장악한 보편적인 힘이자 통합을 종용하는 세계로서 남아 있었다. 이렇게 시민사회의 발생에 따른 이해 타산적 주체가 하나의 문제로서 등장하고, 이들에 대한 국가의 위상이 재정립되어가는 상황에서,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은 세계사세계사적 개인이라는 헤겔의 표현대로 양자의 힘의 관계를 재배치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특이점이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이후 농민들의 압도적 지지 속에서 유럽을 통합하며, 봉건적 반혁명의 시도들을 회생 불가능할 만큼 제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을 통해 나타난- 모종의 분할을 연결하거나 전화시킬 강력한 (부르주아적)매개의 계기가 바로 헤겔의 무의식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각주:22] 즉 변증법은 신흥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지의 혁명적이고도 폭발적인 힘에 대한 미메시스에 다름 아니며, 그것을 자신의 조건으로 갖는다.

 그 힘은 혁명 이후 이런저런 문화와 습속을 공유하던 모종의 주관적인 집합적 군상들을 국민; 민족(nation)’으로 호명하여, 이들을 통합된 도량형과 화폐, 단일한 정책, 통치의 권역으로서의 영토 등으로 조직된 국가(state)라는 객관적인 체계와 일치시키도록 했는데, 이것이 바로 나폴레옹을 통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근대국민국가의 모습이다. 물론 그것이 확립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전적으로 위와 같은 조건 속에서 헤겔은 모순된 사회세력들의 분리를 무의식적으로 해결하고자 변증법이라는 기획을 발전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실정적 수준에서 변증법 자체는 계몽 이후 분리되어 각각 극단적으로 실체화된 이성(계몽주의)과 감성(낭만주의)의 문제, 절대자에 대한 인식가능성의 문제 등에 대한 협소한 철학사적 개입으로도 독해될 수 있으나, 동시에 그 기저에는 국가가 자본주의적 경제(시민사회)를 포섭해야 했던, 혹은 자본주의적 경제가 국가를 재규정해야 했던 현실적인 분리와 대립상황이 있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이 국민국가가 본격적으로 심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유기체적 질서와 매개하는 힘에 내기를 걸고, 이성이 개인으로부터 출발하여 가족, 시민사회를 거쳐 지양되어감으로써 비로소 국가에서 주관과 객관의 가장 높은 형태의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가 예비해야 했던 세력 간 힘 조정 국면을 표지하는 하나의 흔적이다.

 이에 근거하여 리얼리즘 이후 모더니즘 예술의 전체 경향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가 예비적으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의식의 전개를 중심으로 조직된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에서 보이는 것처럼, 혹은 재현과 순수한 표현을 이분한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또는 회화 자체의 물질성과 표상을 대립시킨 그린버그의 자기지시적 회화론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절대성과 불멸의 진리에 대한 추구와, 상반되는 두 항을 전제하는 심층모델[각주:23]의 시대로서 특징지어지는 모더니즘시기의 문화 생산물들은 금과 연동되어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가동되었던 태환 화폐 체제와 매개된 것이 아니었을까? 어떤 생산양식 내부의 일정한 시퀀스들을 규정하는 세부적인 작인을 고려함에 있어, 상품 교환이 매개되는 방식으로서의 화폐 및 그 형태는 가장 결정적인 정수로서 여겨져야 하지 않을까? , 피에르 빌라르가 말했듯, 화폐 현상이 무엇보다 복잡하고 심원한 현상들에 대한 징표나 표지 혹은 정보 제공자라면,[각주:24] 우리는 특정한 문화의 발생과 그 양상이 어떤 화폐거래 방식 속에서야말로 필연적으로 그 나름의 독특한 자율적인 공간을 지니게 되며, 그 형식을 자신 내부에 각인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 세계적으로 19세기의 후반의 통화제도는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하여 은행권(지폐)의 태환으로 조직되었는데, 여기서 화폐는 귀금속이라는 현실의 상품에 단단히 정박되어있으며, 일정한 금의 가치를 재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지시대상과 그것에 대응하는 가치표지는 상호간에 모종의 심층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으레 모더니즘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셈해지는 이원적 심층; 이원론은 당대 화폐질서의 환유이며, 그것이 지닌 절대성에 대한 확신은 바로 금 화폐체제의 안정성으로부터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모더니즘의 기획 전반이 지시대상과 재현체제를 둘러싼 각축 속에서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찍이 페르낭 브로델은 귀금속이 화폐의 역할을 수행했던 시기를 추적하며 금의 이동과 국가 간 헤게모니의 이동 사이의 연결에 대해 의미심장한 진술을 남긴 바 있다.

 

 “(...)16세기 초에 수단의 금은 이미 포르투갈인들에 의해서 지중해로 가는 직통 루트로부터 새로운 길인 인도양 방향으로 빼돌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처럼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는 시들고 쇠퇴해버렸다. (...)30년 후에 아메리카 귀금속이 세비야를 통해서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마찬가지로 우연처럼 스페인의 권세가 확립되고 만개했다. (...)스페인의 주화가 지중해 전체를 정복하고 그 번영을 17세기 중엽까지 연장시켰다. 그 후 은은 마닐라 방향으로 돌려지거나 아니면 아메리카에 의해 현지에서 흡수되어 더 이상 지중해에 은이 충만한 사태는 사라졌다. 그 때문에 유럽에도 더 이상 은이 넘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쇠퇴이며 퇴락이었다. 18세기 직전에 화폐용 금속의 새로운 유입에 의해서 치유되기까지는 이러한 쇠퇴에 대한 해결책은 없었다. 브라질 금, “미나스 제라이스의 금 유입이 그 해결책이 되었다. 이처럼 세계사의 장들은 동화와 같은 금속의 리듬에 따라서 춤을 추었다.”[각주:25]

 

 여기서 브로델은 특정 지역으로의 귀금속의 이동에 따른 경제권역의 확립과 그에 따른 권세의 흥망에 착안하여 경제적 문제와 국가적 융성함의 문제가 결정지어졌다는 사실을 암시할 따름이지만, 그 함의는 보다 심원하다. 우리는 위와 같은 브로델의 진술에서, 일정한 권역으로의 화폐의 유입은 문화의 융성을 가능케 할뿐만 아니라, 문화의 출현 가능성을 조건 지으며,[각주:26] 나아가서는 우리가 자연스레 행위하고 사고하는 방식을 아우르는 특정한 문화가 나타나는 형식을 규정한다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다.[각주:27]

 오늘날의 철학적 이데올로기를 경유하는 것은 이 점을 보다 명백히 해줄 것이다. 언젠가 바르트가 말했듯, 봉건적 질서에 조응하는 문화적 실천으로부터 부르주아적 질서에 조응하는 문화적 실천(모더니즘)으로의 전환은 곧 지표(index; indice)에서 기호(sign; signe)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각주:28] 이러한 전환은 주로 귀금속과 주화, 기타 현물과 같은 상품화폐(index)가 통용되던 전근대의 봉건적 교환행위에서, 상품화폐가 교환의 배면으로 들어가고 그것을 표상하는 약호들의 체제로서의 가치표지(sign)가 전면화 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즉 실재적 근거이자 토대로서의 실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얻은 (/은 등의 귀금속 본위제에서와 같은)화폐체제는 그 실물의 한계가 허락하는 한에서 제한적으로 자유롭게 운용될 수 있는데, 이는 지시대상에 대해 규제적이고 우연적인 관계만을 맺는 기의와 기표의 기호(sign)체제가 인식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런 점에서 소쉬르는 19세기 초부터 시작되어 온 화폐질서에서의 전환을 언어학이라는 분과를 통해 표지하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각주:29] 즉 지시대상과 분리된 기표와 기의의 기호체제의 등장은 다음과 같이, 일정한 가치를 표지하는 화폐의 역할을 실물로부터 본격적으로 분리시켜내는 역사적 조건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각주:30]: 거듭된 수입과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국제수지 적자와 통화가치절하에 시달리던 영국은 평가절상을 위해 통화개혁을 단행하는 연장에서, 1816년 일정 금액의 금 지불을 명시하는 가치표지로서의 은화토큰을 도입하고, 1819년의 필 법안(Peel’s bill)을 통해- 1797년 일시적으로 제한시켜놨던 금 태환을 1821년까지 재개시켰으며, 본격적인 금 본위제로의 이행을 준비했다.[각주:31] 1871년 독일이 영국에 이어 금본위제로 전환함으로써 19세기의 4분기에 이르면 거의 모든 유럽 지역과 일본까지도 금본위제를 채택하기에 이르는데, 이것은 2차 대전 이전까지 지속되어온 당대 세계의 통화체제의 원형이 되며, 이어 달러에 일정한 비율로 금의 무게를 연동시켰던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도 금환본위제로서 그 모습을 바꾸어 유지되는 것이다.

 이 국면에서 각국의 환율은 고정환율제였고, 화폐의 액면은 현실의 일반적 등가물에 정박되어 있으며, 동시에 화폐는 그 자신의 근거가 되는 상품으로부터 벗어난 자율적인 가치표지기능을 본격적으로 수행한다. 미국에서 1863년과 1864년에 걸쳐 통과 및 시행되었던 국법은행법(National Bank Act)과 더불어 정착된 지급준비제도(reserve requirement system), 예금된 화폐의 보유 비중을 규정함으로써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예금과 대출의 비율을 안정적으로 조절하게 하여 현대적 은행의 기틀을 다졌고, 이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데, 이는 금본위제 하에서 가치 표지 기능이 분리되어가는 과정을 가속시켰다.[각주:32] 그러나 1971년 닉슨의 금태환 정지 선언과 함께 세계의 통화체제는 발본적인 단절을 겪게 되고, 이에 연동되어 있었던 기호 체제 역시 동시에 발본적인 단절을 겪게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특정한 기호의 체제에 기대고 있었던 모더니즘의 시퀀스가 돌이킬 수 없이 종언을 맞이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금본위제가 1820년대부터 1971년까지 유지되었던 것과, 모더니즘이 1840년대의 리얼리즘에서부터 1970년대의 미니멀리즘까지 유지되었던 것은 필연이다. 보편 없는 특수가 공허하고 특수 없는 보편이 추상적이듯, 양자는 서로를 통해서만 모더니즘이라는 전체 속에서 개별의 작인으로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지반에서 형성된 문화의 기호적 체제 위에서, 재현대상(지시체)과 재현의 체제(기호)의 분리를 인식하고,[각주:33] 이 분리를 문제시하거나(초현실주의, 다다이즘, 구축주의, 생산주의), 분리를 가속시키고자 했던(인상주의, 큐비즘, 표현주의, 추상표현주의) 모더니즘 특유의 실천이 그 자율의 조건을 획득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되어 나갔던 것이다. 다시 말해, 클락이 요약한 바 있듯, ‘기호라는 사회적 실재를 인지하도록 관객을 인도하고 싶어 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운동이 거의 파괴해놓은 세계/자연/감각/주관성의 기저로 기호를 되돌리려는 꿈을 꾸었던모더니즘의 모순적 특징[각주:34]의 조건은 바로 그 시기 상품교환을 매개했던 방식에 있었다. 이때 지시체-기호, 재현대상-재현체제의 분리에 대한 인식은 한편으로 삶(실재)과 예술(기호)의 분리에 대한 인식이기도 했는데, 그런 점에서 아방가르드의 추동력이 되었던 이러한 인식은, 아방가르드가 근본적으로 모더니즘적 기획이었다는 점을 반증한다. 즉 양자는 근대의 물화; 분리 경향이라는 동일한 문제적 상황에 대한 다른 방식의 대답들이었다.[각주:35]

 이 장에서 전개된 주장은 예술이라는 부분을 생산양식의 단면이라는 보편 속에서 파악하고자하는 것으로서, 예술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그 자율의 조건을 해명하고자하는 시도로 간주되어야 한다. 세계를 없애 가지는, 즉 세계를 사생하는 동시에 전유하고 품어내는 예술의 생산적인 미메시스적 능력을 긍정하는 아도르노의 주장에 기대어 말하건대, 예술을 비롯한 문화적인 것들은 인간들의 삶의 실천이 조직되는 축으로서의 생산양식의 주요 단면들을 미메시스 하기에, 예술은 본질적으로 예술 아닌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의 논리를 닮는 동시에 그 논리로 환원 불가능한 충동을 보존하는 예술의 정치적 무의식이 성립하게 되는 지점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각주:36] 그러나 동시에 양자는 기계적 인과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해야한다. 중요한 것은 상품화폐-귀금속 본위제- 불환 지폐로 이어지는 과정이 그때그때의 역사; 생산양식의 국면에서 어떤 자본의 동역학이 전개될 수 있는 토대이자, 특정한 동역학의 형식이라는 점이다. 이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특유의 안정성으로 자본주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케인스주의의 물적 조건으로서 기능하며, 그것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양상과 비슷하다. 나아가 산업자본에 대한 금융자본의 헤게모니; 실물에 대한 화폐의 우위의 국면으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변동환율제 하에서 어떠한 본위로부터도 자유로운 불환지폐 체제 및 그 하위 범주로서의 전자화폐 체제와 논리적으로 조응하며, 그에 기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어떤 기호; 예술의 형식이 자연스럽게 통용될 수 있는 역사적인 제 1원리가 된다.

 

 

3. 법정화폐와 변동환율제 그리고 텍스트(text), 자유낙하의 실체

 

 이제 우리가 본격적으로 물어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세계는 어떨까? 오늘날 기호체제의 작동은 생산양식의 변동을 어떻게 자신 내에 구조화시키고 있으며, 생산양식의 논리는 또 어떤 부문을 통해 자신을 실현해가고 있는가? 닉슨의 1971년 불태환 선언 이후 몰락한 브레튼우즈 체제는 1973년에 이르러 변동환율제로 이행하며, 이로서 금본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어떤 실물적 근거로부터도 자유로운 불태환 화폐, 즉 국가의 법 이외에는 통용 가능한 근거를 갖지 않는 법정화폐의 국면이 열리게 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순수한 가치표지기능만을 수행하는 통화체제로서의 달러-월스트리트 체제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이는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전환의 조건이 되는 것이었다.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형성된 국제적 자본이동의 통제에 대한 관리기조는, 세계 각국이 자국 기업에 대한 자본투자 및 자금조달을 위해 자본이동을 자유화하는 경향으로 이행되었고, 90년대까지 체계적으로 이뤄진 이 과정에서 각국의 금융세력은 전에 없던 헤게모니를 쥐게 된다.

 더불어 애초 국제수지 적자를 메우고 전후 경제를 재건하려는 목적 속에서 설립된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의 기구 역시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기관으로 변모했다.[각주:37]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유지되어왔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기능분리는 이 시기에 다시금 와해되는데, 99년 클린턴 정부에서 상업은행으로 하여금 증권업 겸업을 허용했던 것은 금융자본의 부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변동환율제에서 금융자유화에 이르는 위와 같은 일련의 흐름이 의미하는 것은, 나노초 단위까지 고려해야 할 만큼의 잦은 자본의 유출입에 따른 경제적 속도감의 편재,[각주:38] 국가 간의 경쟁적 환율조정에 의한 환율 변동성 확대이며, 국민국가 단위의 규제와 사회안전망을 사문화시키거나 파괴하는 축적체제의 성립이다. 지주형의 표현대로, 이는 자본이 투자한 나라의 세율, 이자율, 인건비, 노동규제 등이 마음에 안 들면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각주:39] 그에 따라 제1세계의 초국적 기업이 보유한 제조업 시설들은 인건비가 싼 개발도상국이나 규제가 약한 국가 혹은 기타 지리적, 경제적 이점을 가진 지역들로 생산 라인이 분할 이전되기 십상이었고, 노동자들의 쟁의는 명확한 책임주체를 설정하기 어려워졌다. 그 연장에서 초국적 기업과 대기업을 비롯한 규모 있는 법인의 경우 일국 단위에서도 인건비를 비롯한 산업재해 등에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외부의 하청업체[각주:40]와 하도급계약을 맺어 위험을 외주화하는 동시에, 이러한 하청을 사내에서 적용하거나(사내하청), 동일한 사업장 내부에도 파견 도급직, 계약직, 일용직, 시간제 근로 등 여러 형태의 비정규직을 양산하여 저임금의 장시간 불안정 노동을 방기한다. 이들은 외환시장과 주식시장 등의 불안정성과, 금융시장에 매개된 국제유가, 이자율, 금리 등의 변동성이 야기하는 리스크에 대한 대응으로서, 근본적으론 기업의 고이윤을 위해 합리화 된다.

 이 과정에서 강화된 주주들의 권한은 기업으로 하여금 경영악화를 빌미로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해고를 통해 배당금의 파이를 키우려는 시도를 서슴지 않도록 만들었으며, 그 연장에서 경공업, 중공업, 전자공업 등 제조업 산업부문에서조차 금융수단을 매개로 이뤄지는 축적이 점차 확대 및 심화되어 왔다. 이는 결국 산업경영 보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금융차익을 노리는 축적이 선호된다는 것, 온갖 실물의 상품에서부터 채권, 통화, 미래 수익, 심지어 날씨까지도 재산에 대한 증서로서 가공하여 금융상품으로 거래하는 규모가 증대한다는 것 등을 의미한다. 금리가 낮은 곳에서 돈을 빌려 금리가 높은 곳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각주:41] 약세 통화를 사두었다가 해당 통화가 강세를 보일 때 되팔아 차익을 얻는 외환투기 역시 대표적인 사례일 텐데, 예컨대 오늘날 하루 외환거래량은 연간 국제무역량의 수십배를 상회하는 수준이며,[각주:42] 이런 정도로 활성화된 금융시장에의 투기 자본의 유출입은 일국의 경제 전체를 초토화 시킬 정도로 통제를 벗어나 있다. 1992년 유대계 금융자본가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투기 자본이 영국의 파운드화를 사재기하여 달러를 매입함으로써 파운드화의 가치를 폭락시켜, 결국 타 기축통화들에 비해 낮아진 화폐가치로 인해 영국 기업의 원자재 수입 가격이 상승하고, 그에 따라 물가 상승과 경상수지 적자 심화 등을 야기하며 영국 경제에 치명적인 중상을 입혔던 것은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리스크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것이었다. 더불어 이러한 금융시장의 리스크와 변동성을 관리하기 위해 등장한 파생상품은 이제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금융상품이 되어 엄청난 시장 규모를 갖게 되었다. 파생상품은 원자재와 농산물을 비롯한 실물에서부터 채권, 증권, 주식, 날씨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그 특정의 기초자산을 어떤 시점에서 일정한 가격으로 거래하는 것(선물), 특정의 기초자산을 어떤 시점에서 일정한 가격으로 거래할 권리를 거래하는 것(옵션), 어떤 시점에 일정한 환율과 금리 등을 거래 당사자 간 서로 교환하는 것(스왑) 등을 통해 수백 수천의 복잡한 조합으로 형성될 수 있는 금융상품으로서, 말 그대로 본래의 자산으로부터 파생된상품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리스크의 통제 자체가 다시금 리스크에 기반한 이윤의 원천이 되며, 시간 역시 미래의 손익이라는 명목 하에 그 자체 순수한 상품으로 전화된다.[각주:43] 단적으로 한국의 경우만 해도, 세계은행(WB)에 의해 집계된 2018년 명목 GDP16194억 달러이나, 2018년의 장외파생상품거래 규모는 약139535억 달러에 달하는 수준이다.[각주:44]

 그렇게 오늘날 우리는 잠시 안락사 되었던 금리생활자가 다시 무덤에서 돌아온 국면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실물 경제의 성장이 동반되지 않는 이러한 금융의 팽창은, 결국 서비스업이나 제조업에 기초한 실물부문의 잉여가치의 확대재생산 체계에서 벗어나려는 한에서 항상적인 위험을 극복하지 못할뿐더러, 외려 위기를 초래한다. 2007-2008년의 미국 발 세계금융위기는 2000년대부터 과열되어 온 부동산 버블에 기대어, 은행이 낮은 신용등급을 가진 이들에게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금융상품(서브프라임 모기지)을 공급하고, 금융회사들이 이 대출들을 묶어 부채담보부증권(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을 비롯한 파생상품들을 발행함으로써 거품이 점차 과열되다가 부동산 버블의 붕괴와 함께 미국의 대형은행 및 금융회사를 시작으로 전 세계의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했던 과정이었다.

 물론 이러한 금융부문의 전지구적 심화와 발달; 금융세계화로의 전환은 브레튼우즈 체제의 몰락에 따른 자동적인 기계적 과정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결과이기에, 그것이 온전히 이해되기 위해서는 이행과정에 작용한 계급적 작인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가 지적하듯, 이러한 금융의 헤게모니를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자본의 수익성위기에서 심화된 1970년대의 구조위기로부터 연원한 것으로서, 상위계급의 고소득보장을 위해 사회경제적 제도를 정비하고 이데올로기적 지형을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관철되었으며,[각주:45] 그 본질은 기업 활동에 무차별적인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발국가들에서 197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전체 국민소득에서 이윤대비 임금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어왔다는 사실은 이러한 지점을 잘 보여주는데,[각주:46] 마찬가지로 여러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노동생산성의 상승에 견주어 임금상승률은 한참 뒤쳐져 있는 상황이다.[각주:47] 그런 점에서 정부의 공공/재정지출 축소, 노조의 권한에 대한 공격, 국영 기업의 민영화, 소득세의 누진성 약화, 자본규제 철폐, 금융시장의 육성 등의 정치경제적 기획으로 나타난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는 그러한 전체 이행의 한 국면에서 벌어진 계급투쟁의 결과를 표지하는 것으로서, 이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라 할 법 한 것은 돌이킬 수 없이 문화와 상부구조에서 관철되고, 기입되며, 전 세계에 강제되는 정언명령이 된다. ‘199’라는 월가 시위의 구호가 주목했던 압도적인 양극화 경향은 이미 전지구적 수준에서 진행되어 온 것으로, 그 결과 우리는 어느 때보다 풍족해 보이지만 유사 이래 가장 빈부격차가 극심한 단계의 자본주의에 접어들었다. 금융세계화란 결국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자신의 내용으로 가지며, 주주와 투자자들, 대기업과 초국적 기업의 높은 이윤을 위해 항상적인 리스크와 변동성 위에서 이뤄지는 금융 자유화 이후의 축적체제이자 마르크스가 언급한 바 있는 순수한 물신형태(M-M’)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기호 체제는 보다 자유로워진 형식으로 탈바꿈한다. 우리가 으레 텍스트라 부르는 것은 그러한 전환의 지표이다. 이 기호 체제의 전환은 결국 어떤 근거로부터도 해방된 화폐의 자유에 대한 미메시스로서, 경제 전체가 실물로부터 벗어난 듯한 착시를 구조화하는 금융의 헤게모니에 의해 심화된다.[각주:48] 이 국면에서 기표는 마치 오늘날의 법정화폐가 그러하듯, 혹은 금융자본이 그러하듯- 어떤 지시체 혹은 심층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 채, 그 자체 자율적인 수준에서 끊임없이 파생되고 미끄러지며, 다른 무수한 계열들로 퍼져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일찍이 금본위의 브레튼우즈 체제가 위협을 받는 60년대 말의 상황에서부터 포스트구조주의자들에 의해 서서히 가시화 된 바 있다.[각주:49] 68년의 에세이 차연(La Différance)”에서 데리다는 그 개념이 63년 처음 언급되었던 수준을 넘어, 지시대상은 물론이고 어떤 최종적인 기의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기표의 유동성을 전제하고, 그리하여 어떤 본질의 현전과도 관계하지 않는 기표의 연쇄를 주장했다. 이 테마는 입말, 육성이 전제하는 모종의 실체’(“충만한 현전”; 혹은 (gold)’)를 비판하고 텍스트 자체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던 직전 작업에서도 반복되었던 것이었다.[각주:50] 한편 바르트 역시 63년의 사라진느(Sur Racine)”에 이어 󰡔S/Z󰡕(1970)를 통해 구조주의에서 포스트구조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작업을 수행했고, 󰡔텍스트의 즐거움󰡕(1973)에 이르러선 완연히 텍스트의 운동에 대한 분석으로 선회했다. 여기서부터 그는 상호텍스트성[각주:51]과 텍스트에 개입하는 유희(jouissance)를 통해 의미를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데에서 이성과 과학에 대한 비판의 가능성을 찾기 시작한다.[각주:52] 바르트는 기호의 등장이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을 포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침잠한- 부유하는 기표들의 연쇄망으로서의 텍스트자체가 역사적인 범주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 점에서 데리다를 위시한 포스트구조주의의 수용이 통화체제의 변동을 주도했던 70-8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여기서 포스트구조주의는 전환된 경제 질서를 기호와 담론의 수준에서 이해할 만한 것으로 재맥락화 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그 자신이 이미 전환된 실재의 질서에 대한 효과이기도 했다. ‘세계화 이후 자본의 외부는 없다는 진술과 텍스트의 외부는 없다는 진술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제임슨이 지적했듯, 모더니즘적 물화의 국면에서 소쉬르를 통해 나타난 기표-기의-지시체의 삼각 모형에 대한 발견이 모종의 심층을 전제하는 재현/실재에 관한 원형적 심상을 제공했다면,[각주:53] 포스트모더니즘적 물화의 국면에서 나타나는 것은 M-M’의 논리에 조응하는- 자기 충족적인 기표의 무한한 연쇄의 차원인 것이다. 실로 오늘날 화폐란 그 어느 때보다 종이 위에 쓴 약호에 불과하며, 그 자체 자율적인 행위자로서 팽창하고 증식되는 듯한 외양을 띠는데, 이것이 바로 후기구조주의적 텍스트성의 근간이 된다.[각주:54] 따라서 60년대의 미적 실천들에서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 특유의 차용(appropriation)의 전략과 혼성모방(pastiche)이 당대의 텍스트와 논리적으로 조응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더니즘적 저자성과 독창성에 맞서는 차용이든, 특정한 맥락 속에 놓여있었던 미적형식들을 그 외양만을 취해 절합하는 공허한 패러디로서의 혼성모방이든, 이들이 특정한 형식을 그 역사로부터 분리해낼 수 있는 것은 기표가 지시대상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상황을 전제하며, 결과적으로 텍스트와 포스트모더니즘적 전략 양자는 본위와 근거로부터 해방된 화폐를 필두로 한 자본주의적 물화의 국면에 기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케인즈적 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금융세계화로도 불리는)로의 전환이라는 실재 속에서 사회의 제 부문들을 비롯한 예술의 양태를 살피기 위해서는, 금환본위에서 불환지폐로의 전환, 산업자본의 헤게모니에서 금융자본의 헤게모니로의 전환 등을 그 지표로 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지표들이 보여주듯, 상품교환을 매개하고 조직하는 방식의 변화는 어떤 근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율적인 기호체제를 촉진하고, 산출한다. 그것이 산출하는 효과는 항상적인 불안정성에서부터 착시감, 유동성, 일회성, 단발성, 일시성, 즉각성 등에 대한 감각이다. 경험 전체가 어떤 실체에도 정박하지 않은 채 부유하는 듯한 상태로서, 히토슈타이얼이 말한 자유낙하의 심상이 비롯되는 곳, 동시에 더 이상 자유낙하 할 수 없는 지면이 자리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문제는 그러한 근거의 부재가 바로 아직 우리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역사라는 토대 위에서 가능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4. 세계가 되고자하는 재현/기계/객체: 한국 동시대 미술의 경향들

 

 (1)‘납작함(flatness)’의 속도와 즉자적 디지타리아트(digitariat)[각주:55]

 이런 조건이 가진 규정성의 자장 내에서 예술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혹은 어떤 제약 속에 놓이는가? 어떤 형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 이 질문들과 함께, 이하의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몇몇 한국 작가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우선 2010년대 중후반기에 지속적으로 호출 되었던 레이어(layer) 혹은 납작함(flatness)이라는 개념의 유행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디지털 매체와 재현장치들이 시지각적 감각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며 그로 인해 변형되는 경험세계와 실재의 범주를 그려내는 한국 동시대미술 작가군을 설명하는 데에 종종 동원되는 레이어는 일정한 두께를 가진 ‘(); 이라는 본래의 의미와는 다소 구별되는 용례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그것은 팝업창으로서 무한히 겹쳐 쌓는 것이 가능한 컴퓨터 프로그램의 인터페이스 모델에 가까운 의미로 통용된다. 말하자면 여기서 레이어란 현실의 질감과 양감이 제거되어 있는, 매끈하게 표백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내부의 기술적 요소들을 통해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상을 만들고 조작해 낼 수 있는 포토샵 특정적인 맥락이 두드러지는 개념인 것이다.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둔 채, 김희천의 home(2017)을 독해해보자. 이 작업은 으레 레이어라는 키워드로 독해된다. 본 작업의 서사 플롯은 일본어를 구사하는 화자가 가상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소녀 탐정 에리카의 자취를 추적하며 서울 일대를 훑고 다니는 과정으로 짜여있으며, 작중 에리카는 실종된 할아버지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다. 여기서 에리카의 시점은 애니메이션으로 작화된 서울의 풍경 속에서 전개되고, 화자의 시점은 카메라로 촬영된 서울의 풍경 속에서 전개되는데, 이 풍경들은 각각 실재에 대한 복수의 레이어를 형성하며, 양자는 서로 교차하거나 두서없이 연결되다가 결국 뒤섞여 들어간다. 이로서 관객은 화자의 위치를 좇고, 화자는 에리카의 위치를 좇으며, 에리카는 할아버지의 위치를 좇는 구도가 생성된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서로의 위치를 정확히 식별해내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실종된 것인지, 에리카는 할아버지의 실재에 접근했는지, 화자의 성지순례는 어디서 종료되는지, 관객이 지켜봐 온 것이 정확히 화자의 시점이었는지 혹은 에리카의 시점이었는지는 서사가 종료되는 순간까지도 불분명한 채로 남는다. 애초에 복수의 레이어들로 파악된 세계 속에서 단일하게 현상 가능한 세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들이 공동의 세계 속에서 조우하지 못한다는 서사 틀은 처음부터 예고되어 있었던 것에 가깝다. 또한 그것은 부유하는 기표들의 체계에서 나타나는- 최종적인 기의로의 안착의 실패와 지시 관계의 붕괴를 재연해 보인다.

 한편 이러한 home의 특징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전형을 제시한 폴 오스터(Paul Auster)뉴욕3부작의 그것과 상당히 동연적이다. 다시 말해 오스터에게 뉴욕이 다뤄지는 방식과, 김희천에게 서울이 다뤄지는 방식은, 양자 모두 의미가 상실되고 실재가 유예되는 공간으로 수렴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닮아있다. 나아가 실종된 이를 찾는 탐정이 등장하는 대목에서부터, 작중인물들이 서로의 위치를 추적하고자 분투한다는 점, 그 과정에서 사실과 허구의 뒤얽힘, 재현된 것과 재현대상 간의 괴리에 대한 혼란스러운 심상이 나타난다는 점, 등장인물들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관람자 또한 길을 잃게 된다는 점까지. 각 작업에서 탐정이 지닌 위상 또한 유사한데, 이들은 모두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모종의 의미들을 조립하고 전체에 대한 상을 그러잡기 위한 시도를 하지만, 끝내 어떤 것도 파악하지 못한 채 의미 부재의 심연 앞에서 좌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home에서 에리카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의미를 파악하는 주체의 모델(탐정)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제스쳐에 가까울 것이다.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 탐정은 설 곳이 없다. 이렇게 대략 30년간의 시차를 두고 상이한 공간에서 유사한 구조의 작업이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닌데, 전지구적 가치사슬 속에서 뉴욕과 서울이라는 공간은 물리적 거리와 문화적 차이를 초과하는 동질성 속에 통합되어 있으며, 근본적으로 60-70년대 이후로 장기지속 되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자장 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각주:56] 그런 점에서 김희천의 작업은 일견 디지털 통신 매체와 재현장치들에 대한 코멘트에서 출발하여 그 자장 내에서 작업을 종결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일찍이 하비가 지적한 바 있는 시공간 압축(time-space compression)[각주:57]의 제 조건들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모종의 압축된 시간감, 압축된 공간감으로서, 이때 주체는 자신이 위치한 시간과 공간을 명확히 알 수 없을 만큼 여러 겹(layer)으로 눌러 붙은 세계를 마주하며, 그 위에서 주체의 시점과 그가 발 디딘 지반은 부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기표; 표면의 무한한 연쇄만으로 이어지는 자율화된 기호체계로의 전환과 정확히 조응한다. 그런 점에서 레이어는 단순히 디지털 재현 기술에 특정적인 의미로서의 레이어에 그치지 않는다.[각주:58] 레이어는 제 아무리 쌓이고 중첩되어도 실재 혹은 총체적세계로 가닿을 수 없는, 불가해하게 압축된 실재의 표면을 암시한다.

 ‘납작함에 대한 분석은 이러한 대목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낼 것이다. 납작함은 스마트폰 · PC스크린 등의 디지털 화면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기 시작한 주체의 심상이라는 식으로 기술·매체적 측면에서 협소하게 이해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 배면에는 해석학적 심층 모델의 소멸이라는 상황이 전제되어 있으며, 자본의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동원되어 온 교통 및 통신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심상의 장과, 시간에 의한 공간의 절멸이 전제되어 있다(이는 동시에 시간의 절멸을 의미하기도 한다). 납작함은 시공간 압축의 다른 표현이며, 가상과 대비되는 의미에서의 현실감의 상실이 아니라, 감지 가능한 세계로서의 실재성 자체의 상실을 표지하는 알레고리이다. 결국 납작함의 동력이란 금융세계화와 더불어 가속화된- 이미지와 서비스에서부터 소비재와 금융, 경험에 이르는 상품생산의 회전시간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압축의 감각이 대두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생산에서 회전시간의 가속화는 교환과 소비에서 그에 걸맞은 가속화를 수반한다. 통신 · 정보흐름 체계의 개선은 유통기술(포장, 재고관리, 컨테이너화, 시장반응 등)의 합리화와 결합하여 상품이 더 빠른 속도로 시장체계를 통해 유통될 수 있도록 했다. 전자은행과 신용카드는 화폐의 역방향 흐름의 속도를 개선시킨 혁신의 일부였다. 금융서비스와 시장(전산화된 거래의 도움을 받아)도 마찬가지로 가속화됐고, 흔히 말하는 것처럼 지구적 주식시장에서 ‘24’시간은 아주 긴 시간이 됐다.”[각주:59]

 

 안진국이 옳게 지적했듯, 기술은 그저 납작하지 않다.[각주:60] 납작함이라는 디지털 기술 매체 기반의 심상의 배면에는 단순히 이미지 편집기술과 편재하는 송신장치, 가상현실이 아니라, 위와 같은 금융 및 컴퓨터 공학과 관련된 복잡한 실천과 제도들이 있다.[각주:61] 디지털 전산화와 컴퓨터 프로그램의 복잡한 수학적 공식들은 금융화의 핵심 요소이며, 금융과 함께 발전해왔다. 지난 20-30년간 미국에서 금융 및 보험과 디지털 소프트웨어 · 컴퓨터 시스템 설계 부문이 동시에 성장하며, 제조업 일자리의 큰 감소량을 상쇄하는 경제의 새로운 동력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램 기술에 기대고 있는 디지털 디바이스가 정보와 이미지를 회전 시키는 속도와, 금융이 생산의 각 국면에 개입하고 화폐 자체를 유통 및 회전시키는 속도는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포개어진다.[각주:62] 온전히 디지털 디바이스들에서 연원한 것으로 돌려지는 유동성, 일회성, 단발성, 일시성, 즉각성 등은 금융세계화와 더불어 놀라울 정도로 단축된 자본의 회전시간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공할 속도로 수초마다 갱신되는 이미지, 뉴스 등 정보가들의 가시적인 변화들은- 정리해고, 이직, 파산, 매각, 인수합병, 투기, 젠트리피케이션 등이 빚어내는 실재의 속도에 대한 거울상이다. ‘납작함은 금융화가 개입한 생산의 속도를 자신의 조건으로 삼는다.

 강정석의 GAME I: Speedrun Any % PB(2016)는 위와 같은 조건 속에서 출현하는 납작함의 심상을 보다 징후적으로 체현하고 있다. 그것은 아프리카 TV와 같은 개인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송출되는 기존 FPS 게임방송과 작가 본인이 제작한 게임 화면이 조합된 모종의 플레이 영상이다. 영상 속에서 몇몇 게임들에 대한 유저로서의 체험기와 소감을 전달하는 내레이션은, 이내 개인 스트리밍 방송의 형식을 빌어 관람자를 향해 직접 말을 건넨다. 여기서 나타나는 것은 익명의 관객들과의 영속적인 피드백 과정의 전면화이다. 이때 설정되는 시청자; 관람자게임; 작품사이의 즉각적인 피드백 과정의 속도감은, 나노초 단위로 변화하는 주식시장 및 환율 그래프가 전 세계로 동시에 발신되고 동시에 적시 전자결제를 통해 다시 시장으로 피드백 되는 과정의 속도감과 같으며, 그에 결정적으로 기대고 있다. 더불어 강정석이 직접 제작한 게임 상에서 이루어지는 스피드 런은 어렴풋이나마 오늘날의 지배적인 경험이 근본적으로 어떤 순환의 속도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보인다.[각주:63]

 여기서 캐릭터는 모든 경험 가능한 서사들을 건너뛴 채, 최단 시간 내에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달린다. 달리말해 스피드 런이라는 형식 속에서, 목적지는 캐릭터의 임의적 도달 지점으로 설정되어 있을 뿐- 여타의 서사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에서는 계속해서 달리는 현재만이 유효하며, 그 결과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부유감(sense of floating)에 대한 예찬이자 무의미의 축제이다. 그런 점에서 강정석은 어떤 선험적 의미와 가치도 지니지 않는 장으로서의 내재성의 평면 속에서 들뢰즈의 강렬도가 도착하게 된 역설적인 지점을 보여준다. 강정석에게 주체와 객체 혹은 재현된 것과 지시대상의 분할은 이미 게임과 그 테크놀로지를 매개로 폐지된 것으로 간주되며, 세계에 대한 어떤 판별이 시도된다기보다는 그저 현재의 속도; 강렬도만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납작한 존재에게 허용된 유일한 이념은 현재주의이다. 그에게 시간적으로 앞과 뒤를 분간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공간적 이동은 어떤 속도의 강도 이상의 것으로 셈해지지 않는다. 그 연장에서 그가 스스로 동세대 작가로서 표명되길 주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흥미롭다.[각주:64] 여기서 동세대란 동시대속의 동일한 세대를 암시한다. 그러나 서동진의 지적대로, 동시대는 현재 이외의 시간감을 갖지 않는 담론적 시간성이다.[각주:65] 역사와 토대 없이 불확실성 속에서 부유하는 시간, 미래라는 시간성이 과거와 함께 상실된 시간이 바로 동시대인 것이다. 이 속에서 상이한 주체들 간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는 집합적 동질성이란 비슷한 현상학적 경험에 익숙해져있다는 점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기에, 가능한 주체화란 필연적으로 세대와 같은 정체성의 범주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런 저런 정체성의 구획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실재란 애초에 허구로서 간주되며, 검토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강정석의 작업이 위치하는 층위에 대한 강력한 암시를 제공한다. 요컨대 그의 작업은 현대문화의 깊이 없음을 지시하고 대중문화와 고급예술 사이의 수직적 높이를 평준화시키는 기획으로서 제안된 무라카미 다카시식의 슈퍼플랫(Superflat)의 수준을 초과하여, 감지 가능한 세계로서의 실재 자체가 이미 초압착(Supersqueezed)되어있는 조건 위에서 펼쳐지는 것이다.[각주:66] 그러나 세계가 게임을 비롯한 디지털 디바이스에 매개된 이미지들의 효과로서 나타나고 있다는 그의 주장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실재가 텍스트의 효과로서 구성된다고 말하는 기호체제의 전환을 그 조건으로 삼고 있으며, 변화된 기호체제 속에서 가능한 논리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한편 강정석은 여러 지면을 통해 작가의 전략을 강조해 왔다.[각주:67] 이는 일견 게임 속의 디지털 자아를 연장하여 미적실천에 섣부르게 적용한 듯한 방언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치에서 이념이 떠나간 자리를 메우는 것이 게임이론적 정치공학이듯, 그의 전략은 불안정한 조건 위에서 매 순간마다 생존을 위한 어떤 선택을 감내하며 기회비용을 최소화하고 생애주기를 성실하게 관리하는- 후기자본주의의 예술가 모델에 동반되는 용례에 가까울 것이다.[각주:68]

 그런 점에서 그는 증강된 이미지와 실재의 속도 속에서 압도된 즉자적 디지타리아트(digitariat)의 모습을 체현하고 있으나, 디지털은 그저 닫힌 공간으로만 간주되긴 어렵다. 지젝이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에 기대어 말했듯, “우리 사회의 작동뿐만 아니라 그들의 통제 메커니즘 까지도 규정하는 디지털 네트워크는 오늘날 권력을 지탱하는 기술적 그리드의 최종적인 형상이며, 이들은 인간의 자발적인 행동들에서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감시자본주의의 요체이기 때문이다.[각주:69] 오늘날 권력의 한 측면은 디지털 대타자에게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구성되고, 그렇게 작동하는데, 이 세계에서 인민들은 권력의 일부를 계약 속에서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 외부에서 자신도 모르게 권력의 자양분이 될 정보를 갈취 당한다. 그러나 동시에 디지털은 모든 재화의 이동을 통제하는 장치이자 우리 삶 전반의 조건이 되고, 오늘날의 거의 모든 인간 행동과 경험, 감정을 매개하고 조직한다는 의미에서 공유지이다. 따라서 그곳은 계급투쟁의 장으로서의 열린 공간이자 개입의 공간이지만, 디지털을 자발적인 향유의 공간으로 설정한 채 그 속도감을 탐닉하는 강정석의 아바타가 이러한 실재에 가닿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각주:70]

 

 (2)분기하는 시점들

 반면 함양아의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2019)은 웹 등을 통해 모은 이미지들과 그린스크린으로 직접 촬영하여 채집한 인물들을 조합하여 만든 일종의 현대의 풍속도인데, 여기서 각 인물들은 미세하게 움직이며 오늘날의 경제 체제가 자리잡아온 과정들을 순차적으로 시연해 보인다. 금융가를 연상시키는 마천루가 세워지고, 울타리가 솟아나며, 기계화된 생산 모듈이 등장하는 와중에, 그 속을 이리저리 헤매는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두서없는 풍경은 어떤 시스템에 대한 알레고리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함양아가 구축한 서사 내부의 인물들이 맺는 상호관계가 아니라, 그가 미처 조정할 수 없었던 구성(composition)의 측면이다. 요컨대 이 작업은 콜라주의 방법론에서 나타난 어떤 전환을 체현하고 있다.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에서 콜라주는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다르고도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1956)와 같은 작업에서 나타나듯 안정된 풍경을 구성하기 위해 원근법적 규칙을 준수하며 부분들을 하나의 구도 속에 통합하는 양상도 아니고, 신학철의 한국근대사: 공중누각(1983)과 같은 작업에서 나타나듯 하나의 조형적 형상을 만들기 위해 각 부분들이 전체 속으로 통합되는 양상도 아니다. 함양아의 작업에서 콜라주 된 각 부분들은 일체의 연관도 없이 흩어져있으며, 서로 다른 구도로 투시되어 단일한 시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있다. , 단일한 형상보다는 분기하는 시점 자체가 전면화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단일 시점의 완연한 분열과 와해는 그 자체 심화된 화폐와 기호의 물화를 자신의 조건으로 삼는다.

 이러한 부분의 물화는 비단 함양아 뿐만 아니라 일단의 회화들에서도 관측되는 것인데, 예컨대 김동진에게서는 2016년도 이후로 시점의 소실 자체가 하나의 형식적 쟁점으로 대두되기 시작한다. 단일 오브제를 그린 것들을 제외하면, 그의 작업에서 사물들은 하나의 시점 속에 통합되어 있지 않다. Meaning is Lost(2016)에서 전면에 그려진 목 잘린 신체들은 배경과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놓여있으며 서로 어떤 유의미한 관계도 맺지 못한 채 널브러져 있는 한편, Passive Destruction(2018)에 나타나는 인간, 쓰레기, 동물 등의 대상들은 한 공간을 점유한 것처럼 놓여있으나 어떤 연관도 없는 듯한 시점들 속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다시점적 투사 속에서 각기 상이한 소실점을 지닌 오브제의 연쇄가 만드는 풍경은 결국 내적으로 총체화되는 데에 실패한다. 그가 그것을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이는 단일한 주체의 시선을 전제하지 못하는 시점의 불안정성과 조응하는 구도로서 징후적이다. 말하자면 김동진의 작업은 한데 모여 있지만 각자 상이한 세계에 놓여있는 파편적이고 부분적인 존재들을 드러내며, 따라서 어떤 대상이 전체와 관계 맺는 방식을 파악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물화된 시각성을 체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지적 히스테리 상태에 처한 주체의 시점을 증언하는 것처럼 보인다.[각주:71]

 

 (3)물화된 기계

 브레튼우즈 체제와 케인즈주의의 몰락이 야기한 금융세계화 및 기호의 물화가 만들어내는 현기증 나는 속도 속에서 납작함은 압축된 시공간에 대한 알레고리였으며, 이는 해석학적 심층모델의 상실, 깊이감의 상실을 동반하는데, 이러한 상황은 곧 주체와 객체의 구분 또한 모종의 평면 속에서 압축되는 양상을 야기한다. 그에 따라 이미지와 실재의 경계가 무뎌지고 양자가 동일시되는 정도와 비슷하게, 기계와 인간의 경계는 모호한 것으로 나타나며, 동일시된다. 이 국면에서 기계는 물화되어 인간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자율적인 작인으로 나타나며 인간의 유기적인 부분 혹은 인간 자체로 격상된다. 포스트휴먼이라 불리는 담론적 유행은 그 정제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향의 논의들이 제1세계를 중심으로 제기되어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디선가 기계를 인간의 실존적 부분으로 셈한다는 것은, 그곳에 자율적인 모습으로 현상할 만큼 충분히 기계화된 생산과정들이 전제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인간과 기계의 명증한 분할과 양자의 상이한 위상이 (기호와 지시대상의 분리가 인식되었던 것과 같은 기제에서) 전제되어있던 모더니즘의 국면에서 기계는 미래주의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통제 가능한 하나의 수단이자 약속으로서 나타나지만, 오늘날 기계는 염지혜의 미래열병(2018)에서 기괴한 춤을 추는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형 로봇)가 보여주듯, 그 자체 불가해한 하나의 존재로 나타나는 것이다.[각주:72]

 정금형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조건에서 성립한다. 그는 이런저런 기계들과의 섹스를 연상시키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기꺼이 인형극이라 부를 만큼 기계에 의인화된 역할을 배정하고 있다.[각주:73] 전동 청소기가 등장하는 진공청소기(2007), 러닝머신과 벨트 마사지 기계 등의 운동기구가 등장하는 휘트니스가이드(2011), 심박측정기와 마네킹이 등장하는 심폐소생술연습(2016)이든, 그에게 기계를 사용하는 동작들은 기계와의 접촉으로 전환된다. 그 배면에는 반본질주의적 신체론 및 탈중심화된 주체론이 자리하며, 무엇보다 자동차를 발의 연장으로 간주하는 맥루한식의 사고가 심화될 수 있는- 기계·기술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있다. 그러나 기계가 점차 인간을 닮아가는 듯한 상황은 그 자체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자율적인 사실이라기보다, 생산양식이라는 사회적 실재의 요구에 기대고 있다. 복잡한 디지털 알고리즘을 통해 자가 학습하는 AI가 엔지니어의 소프트웨어에 전적으로 의지하듯, 기계의 자율은 그 자체가 인간의 정밀한 기획과 조립을 통해 구현된 것일뿐더러, 정확히 단기적인 고이윤을 위해 생산과정에서 임금에 해당하는 가변자본의 비중을 줄여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하는 자동화의 시도와 함께 이루어진다. 동시에 인간이 여타의 보철물을 통해 신체를 보완하거나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기계를 닮아 가는 것은 언제나 계급과 계층을 매개하여 차등적이고도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요컨대 루게릭병에 걸린 보통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스티븐 호킹의 장비들을 향유할 수 없다. 양 경우 모두에서 실질적인 변화의 조건이 되는 것은 생산양식이다. 인간의 부분대상이자 인간 자체가 되어가는 듯한 기술을 그 현상학적 층위를 넘어서 조명하게 되면, 결국 인간과 기계의 구분은 뚜렷이 유지되고 있으며, 양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듯한 심상은 이미 그것을 아우르는 사회적 실재(혹은 역사)의 효과에 가깝다. 이 속에서 우리는 기계와 마냥 기쁘게 춤출 수만은 없을 것이다.

 정금형의 경우와 비슷하게, 김아영의 무의식은 선진 산업 부문의 기술을 전용할 수 있는 제1세계의 경험세계 속에서- 사물인터넷 등과 같이 행위자로서 행세하는 기술적 오브제들이 범람하는 상황에 대해 미학적으로 반응한다. 그의 다공성 계곡(2017)은 모든 무기물들이 자율적인 작인으로 역할 하는 세계를 그려낸다. 여기서 데이터베이스의 조각은 현존을 부여받고, 의인화되어 발화의 행위자로 서사의 전면에 나선다. 그렇게 김아영은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완벽히 사라진 듯한 애니미즘적 풍경을 묘사하는데, 이때 그가 인간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주체와 객체의 분할을 허위적인 것으로 간주할 것을 촉구하는 라투르 식의 존재론에 기대고 있음을 감지하기란 어렵지 않다. 요컨대 그에게 대상(object)이었던 것은 물(thing)로서 이해되고 있다. 인간의 이주에 주목했던 다공성 계곡의 착안점이 페트라라는 데이터 주체의 이주를 서사화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전화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심증을 더욱 굳히게 한다. 그러나 문제는 주체와 객체(대상)의 분할이란 인간의 머릿속에서 벌어진 추상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 개인과 사회, 시민과 국가, 노동과 자본 등의 현실적인 실재의 분할을 이미 그 자신 내에 각인하고 있는 개념으로서, 그 폐기란 관념적으로 쉽게 가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페이스 스캐너 기능이 탑재된 중국의 감시모니터에서 드러나듯, 혹은 구글과 페이스북의 게걸스러운 데이터 수집에서 보이듯, 무심하게 스스로 작용하는 물(thing)의 목적인은 심지어 1킬로바이트(Kilobyte)의 데이터 조각의 경우에라도 이미 사회에 매개되어 있으며, 그 질료인을 한참 초과한다. 우리는 그렇게 사회적 실재에 매개된 물(thing)을 대상(object)이라 부른다.

 그런 점에서 현실적 분할의 지표로서의 주-객의 변증법을 벗어난 순수한 물 그 자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자지구에 낙하되는 네이팜탄이 하나의 객체로서 지닐 수 있는 물(thing)성과 그 행위자성에 주목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실로 외설에 가까울 것이다. 달리말해, 김아영은 군사용 드론을 화자로 내세운 작업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대상은 그 자체로 움직이지 않으며, 그것의 배치와 작동을 결정하는 주체는 인간들이 조직되어 있는 사회적 관계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하는 조건 속에서야말로 그의 작업은 작동한다.[각주:74] 그것은 인간이 극단적으로 객체화되어있는 조건에서 대두되는 이해할만한 시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가 되는 것이 물(thing)들 자체는 아니다. 차라리 주체는 사물을 그러한 방식으로 내비치게끔 하는 사회이다. 이 국면에서 비인간과 기술을 비롯한 기존의 객체는 물화되어 주체와 동일시되거나 주체의 자리를 위임 받는데, 이는 정확히 물화된 기호가 하나의 완결된 세계와 동일시되거나 실체의 자리를 넘겨받는 논리의 다른 버전으로 읽힌다. 즉 그것은 다소의 우회로를 거치지만, 전환된 기호체제의 논리적 궤적에 조응하며, 물화된 사회적 관계의 현상 형태이다.

 현재의 통화·화폐체제와 기표 우위의 기호체제에서, 재현된 것과 지시대상의 간극, 객체와 주체의 간극, 인간과 기계·기술의 간극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재현된 것, 혹은 객체, 또는 기계들은 이제 그 자체 독자적인 작인이자 주체가 되고자 하며, 세계 자체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정치적 분할과 구분, 주체와 객체의 대립과 적대를 만들어내는 실재는 사라지지 않으며, 완전히 자율화된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위상을 지탱하는 원리이자 기반으로 남아있다. 생산양식은 곧 모든 사회적 실천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사라지지 않는 매개자이자 지표인 것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야말로 비로소 예술은 이미 도래한 세계의 전면을 밝게 비출 수 있다.

 

 

5. 나가며: 세계에 모순이 있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이 글에서 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심화 및 지양에 따른 화폐 · 통화체제에서의 전환이 곧 변화된 기호체제의 근간이 되며, 이들이 예술적 형식의 한계이자 조건을 정초한다는 점을 상론하려 했다. 예술의 초월 불가능한 지평은 생산양식이며, 역사이고, 실재이다. 이들은 모든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실천들이 상대하게 되는 최초의 동일성을 가리키는 각기 다른 표현들이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곧 어떤 불가지론과 신비화된 수사학, 혹은 현상학적 비평에 의해 잠식된 예술을 구제하고, 예술이 다시금 세계에 관해 말을 건넬 수 있는 인식론적 계기를 마련하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서 우리가 얻게 될 것은 더 이상의 자유낙하는 없을 것이라는 약속과, 역사적이지만 확고한 판단의 지반이다.

 다소 고전적인 주장이지만, 부분들을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해야하는 일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한 작업이 규명되었을 때야말로 풍부하고 살아있는 세계가 생동감 있는 동학 속에서 파악될 수 있으며, 역사 유물론적 문예론의 유일한 사명은 바로 그렇게 매개된 것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상론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층위와 위상에 놓인 채 자율적인 것으로 현상하는 대상들이 실은 서로 분가분한 관계 속에서 직조된,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것의 양 측면이며, 현실적인 실재의 분할들은 그러한 분할의 조건이 되는 최초의 동일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내는 것. 대립된 것들이 전체 속에서 모순적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내는 것. 동일성과 비동일성, 즉 같은 것과 다른 것 혹은 보편과 특수는 서로 관계하는 한에서 각자의 의미와 존재를 구체적으로 획득한다는 것. 이들을 작업 속에서 밝혀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비평가의 임무일 것이다. 그것은 결국 같지 않은 것들에 대한 발견에서 동일한 하나에 대한 주목으로, 그리고 다시 반대로 양자를 왕복운동 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객관적이라는 바로 그 이유에서 가능한 작업이고,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작업이다.

 

 

  1.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크리틱-에 선 게재된 것이다. [본문으로]
  2. 예컨대 헤겔이 진리는 상론되어야 하며, 상론의 과정 속에서 드러난다고 얘기했을 때, 그는 정합주의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인식론과 신학뿐 아니라 실재론을 비롯한 과학철학 전통, 나아가 경제학에서도 토대주의와 정합주의의 대립은 중요한 지적 분기로서 추적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김광수, “현대 과학철학 및 경제철학의 흐름과 스미스의 과학 방법론에 관한 연구”, 한국경제학회, 󰡔경제학 연구󰡕 621, 2014. pp.133-170. [본문으로]
  3. 탈진실의 조건은 으레 SNS를 비롯한 각종 기술매체상의 발전이 지닌 위상과 관련하여 논의되나, 나는 그 이외에 냉전 이후의 정치 이데올로기적 환경과 신자유주의의 전지구적 관철을 탈진실적 국면의 주요 작인으로 셈하고 싶다. 그것이 바람직했든, 그렇지 않든, 적대의 투명성을 가정할 수 있었던 냉전 이데올로기의 쇠퇴와 유토피아적 장소의 상실은 한편으로 냉소주의와 탈정치화의 심화를 종용했으며, 글로벌 가치사슬 자체를 재구조화시킨 신자유주의의 승리는 적대의 언어가 상실되거나 최소한 굴절되는 계기를 열어젖혔다. 소련이 몰락한 직후 유고슬라비아에서 발생한 종교적, 인종적 대학살, 혹은 IMF의 약탈과 독재자 모부투의 실정 이후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콩고에서 벌어진 끔찍한 마녀사냥을 생각해보라. 거대서사를 불신하는 소서사의 대두라는 차원에서, 혹은 규정적 부정을 대체하는 절대적 부정의 대두라는 차원에서, 냉전의 종언과 자본주의의 승리, 규정(부정)의 불능상태로서의 탈진실은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마이크 데이비스, 󰡔슬럼, 지구를 뒤덮다󰡕, 김정아 역, 돌베개, 2007, pp.242-252. [본문으로]
  4. 히토 슈타이얼, 󰡔스크린의 추방자들󰡕, 김실비 역, 김지훈 감수, 워크룸프레스, 2018. pp.15-16. [본문으로]
  5. 위의 책, pp.36-37. [본문으로]
  6. 한편 이러한 양자의 한계를 넘어설 대안으로 장하석은 과학철학의 전통에 충실하게 다원주의적인 진보적 정합주의를 내세운다. 그에 따르면 과학을 비롯한 일련의 믿음체계란 인간의 인식이 지닌 절대적 한계로 인해 항상적인 수정(revision)을 요청하기에 다원주의적이어야 하며, 믿음의 근거가 되는 일정한 기준은 그러한 변화요구에 조응하기 위해 정합론을 따라야하고, 실재에 대한 반복적인 파악 시도는 진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장하석, 󰡔온도계의 철학: 측정 그리고 과학의 진보󰡕, 오철우 역, 이상욱 감수, 동아시아, 2013. p.431, 447. 생산 개념을 중심으로 독해된 역사유물론은 토대주의와 공명하는 듯 보이나, 섹스, 젠더, 생태, 인종, 계급 등 실재의 상이한 심급들의 배치와 그 역학들을 역사의 한 국면에서 동적인 것으로서 규명하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정합주의와도 공명한다. [본문으로]
  7. 이런 측면에서 벤야민의 성좌개념은 우연성을 실체화하여 이미 존재하는 체계의 규정력을 부당하게 벗어나려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우연적 배치가 필연적인 준거 속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우연성의 필연성을 역설하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벤야민이 '각 요소들을 하나의 점으로 삼아 성립하는 이념이야말로 영원한 성좌'이며 이러한 이념은 "의미 있는 병존가능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총체성"으로서, 현상을 독립적으로 보존하는 동시에 구제한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이에 대한 심증을 굳힐 수 있다. 이는 성좌 개념에 대한 서동진의 독해에 빚지고 있다. 앞서 적시한 벤야민의 주장들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김유동, “성좌: 발터 벤야민의 독일 비극의 원천의 서술구조”, 󰡔독일어문화권연구󰡕 Vol.14, 서울대학교 독일어문화권연구소, 2005. pp.109-136. [본문으로]
  8. 나는 여기서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에서 전개된 예술과 역사의 관계에 대한 분석에 빚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프레드릭 제임슨, 󰡔정치적 무의식: 사회적으로 상징적인 행위로서의 서사󰡕, 이경덕, 서강목 역, 민음사, 2015. 특히 1해석에 관하여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9. 봉건적 신분관계와 신의 영향이 헤게모니적으로 존재하는 한 인간은 자신을 개인으로서 정립할 필요가 없으며, 공동체 혹은 사회와의 괴리 속에서 세계로 환원 될 수 없는 고유한 내면을 반추하며 화해를 도모할 필요 또한 없다. 이때 인간은 주어진 신분이 이미 결정지어 준 삶의 경로를 따라 공동체의 습속을 준수하며 살면 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내면과 생애주기는 전적으로 근대의 발명품이며, 근대 소설의 핵심 테마인 개인과 사회의 갈등과 모순 또한 사회가 그 자체 국가의 관리 및 정치의 대상이 됨으로써 인간들의 의지로부터 자율적인 힘으로 전화하게 된 근대의 특정적인 테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총체성의 회복을 핵심과제로 삼은 루카치의 작업의 주요 조건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게오르그 루카치, 󰡔소설의 이론󰡕, 김경식 역, 문예출판사, 2007 ; 프랑코 모레티, 󰡔세상의 이치󰡕, 성은애 역, 문학동네, 2005. [본문으로]
  10.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는 James D. Herbert, Brushstroke and Emergence: Courbet, Impressionism, Picass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Ltd, London, 2015를 참고하라. 여기서 허버트는 고흐에서부터 쿠르베, 마네, 모네, 쇠라, 피카소 등의 작품을 검토하며, 특히 19세기 후반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에서 전면화 된 붓 터치의 흔적을, 이후의 숱한 미적 갱신들을 예고하는 사라지는 매개자로서 간주한다. 19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점차 두터워지는 붓 터치; 필치는 미적 표현의 결정적인 특이점으로서, (과거의)제도적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적 작가”, “강한 주관성”, “자아의 지표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클라크(Kenneth Clark)는 세잔의 시각적 성취로부터 큐비즘의 출현 조건을 본 바 있다. 이는 Kenneth Clark, Landscape into Art, Beacon Press, Boston, 1961. pp. 121-127을 참고하라). 우리는 허버트에 기대어 모더니즘의 특징으로 간주되는 스타일의 갱신은 바로 이러한 주관성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고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그런 점에서 모더니즘적 작업들을 데카당스로 규정하고자 했던 루카치의 시도는 이해할 만한 것인데, 일부 모더니즘 작품들의 탐미적 경향은 이미 19세기에 대두된 위와 같은 부르주아적 주체 모델의 등장으로부터 가능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그것이 동시에 추한 세계에 맞선 심미성을 통해 유토피아적 충동을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 생산양식의 필연적인 규정성을 드러냄으로써 역사유물론의 설명력을 증명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본문으로]
  11. 우리는 대부분의 미술사가들을 따라 모더니즘 미학의 효시를 시기상으로도 인상주의에 앞선 리얼리즘에서부터 셈해야 한다. 그러나 모더니즘의 출발점이 리얼리즘이었던 것과는 별개로, 리얼리즘과 인상주의의 가장 심원한 차이는 주관성을 예술의 형식 자체에서 상연시켜낸 인상주의의 특징에서 연원하며, 이러한 강력한 주관성의 계기는 인상주의가 본격적인 모더니즘이자 현대미술의 효시로 여겨지는 가장 주된 근거를 제공한다. 한편 리얼리즘 역시 다른 각도에서 근대적(자본주의적) 물화의 계기를 증언하는데, 예컨대 일찍이 클라크(T.J.Clark)를 비롯한 많은 논자들이 주목했듯, 쿠르베의 작업 돌 깨는 사람들(1849), 오르낭의 매장(1850), 시장에서 돌아오는 플라지의 농부들(1850)등에서는 각각 교외의 육체노동의 고됨과, 하나의 종교적 제의에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산만하고 분산된 이들의 시선들, 유기적인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이미 개인화된 인간들이 살아가는 시골의 모습 등이 나타난다. 이는 자본주의적 파편화와 소외에 대한 시선 자체를 객관적인 것으로 간주한 리얼리즘 미학이, 그러한 소외를 덮어 가리고자 했던 유미주의의 거울상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James R. Lehning, Peasant and French : Cultural Contact in Rural France during the Nineteenth Centu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5. 특히 2“The French nation and its peasants”를 참고. [본문으로]
  12. 한편 히토 슈타이얼은 인상주의의 원사가 되는 터너의 그림에서 이미 토대 없음의 징후를 읽고 있다. 요컨대 터너의 노예선, 증기, 속도와 같은 그림에선 단일한 소실점과 수평선 등이 의문에 부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13-14세기의 선형 원근법의 태동 과정에서 이미 근대적 주체의 모습을 발견하는 히토 슈타이얼이 제시한 이러한 설명은 자본주의의 시작을 13-14세기에서부터 소급해가는 브로델 식의 자본주의 모델과 조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필자는 봉건적 사회관계를 고용관계로 합리화 시키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그러한 부르주아적 주관성을 완성시킨 결정적인 모멘텀으로 간주하고자 하기에, 부르주아적 주체의 시점을 체화한 형식으로서 인상주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한편 그러한 근대적 주체의 와해가 시각장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은 소비문화의 표현으로서의 팝아트가 등장했던 1950년대 중반으로 셈해질 수 있는데, 여기서 모더니즘적 스타일은 워홀식의 실크스크린으로 대표되는 포드주의적 대량복제 기술로 대체되기 시작하며, 이는 모더니즘 특유의 각 작가에 고유한 양식적 갱신을 가능케 했던 부르주아적 주관성조차 경제에 완전히 용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본문으로]
  13. 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ke University Press, 1991. p.7. 이와 관련하여 예술에서 초기 자본주의의 기계적 합리성에 가장 열렬히 저항했던 것은 유미주의이기도 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자본주의의 여명기에 주체가 간직했던 유토피아적 충동이 예술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초기 모더니즘 특유의 자율의 미학을 뒷받침한 칸트 식의 목적 없는 합목적성으로서의 미적 판단이 어째서 필연적인지를 짐작 해볼 수 있다. [본문으로]
  14. E. K. 헌트, 󰡔E. K. 헌트의 경제사상사󰡕, 홍기빈 역, 시대의창, 2015. p.78; E.K. 헌트, 󰡔자본주의에 불만 있는 이들을 위한 경제사 강의󰡕, 유강은 역, 이매진, pp.39-49 참고. [본문으로]
  15. Austin Artists Market, What is Flemish Art?”, https://bit.ly/2MHu8hQ. 201910141813분 접속. 한편 플랑드르 회화가 출현한 15세기는, 영국에서 당시 높은 이윤을 남기던 목양업을 위해 공유지에 울타리를 치며 미개간지를 사영화(privatization)했던 인클로저가 정점에 이른 시기이기도 하다. 영국과의 분업 속에서 양모 가공으로 수혜를 입은 플랑드르 지역이 유럽 해상교역의 중심지로 거듭나며 풍경화와 정물화의 주요 생산지가 되었다는 사실은, 특정한 미학적 기획이 이미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의해 매개되어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예컨대 혹자는 여기서 네덜란드 지역의 플랑드르 회화와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 간에 인과관계를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16. Kenneth Clark, Landscape into Art, Beacon Press, Boston, 1961. 1“The Landscape of Symbols”를 참고하라. 케네스 클락은 여기서 중세의 황혼, 근세의 여명을 체화한 인물로서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에 주목함으로써 풍경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데, 그에 따르면 페트라르카는 풍경화가 나타나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어떤 분리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최초의 인간이다. 한편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이해하고 그것과 닮고자하는 실천으로서의 미메시스가 불가능해진 시점을 가리키는 분리의 원형적 모티프로, 일찍이 아도르노는 세이렌의 유혹에 맞서 몸을 돛대에 묶어 욕구를 억제하고 대상과 거리를 유지해야했던 오디세우스의 신화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T. W. 아도르노, M. 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김유동 역, 문학과지성사, 2001. [본문으로]
  17. Joachim Gasquet, Cézanne, Fougères, Encre marine, 2002. pp.262263 quoted in Augustin Berque, Thinking through Landscape, Translated by Anne-Marie Feenberg-Dibon, Routledge, 2013. p.41. [본문으로]
  18. 15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Florence)를 중심으로 한 초기 르네상스 작업들에 플랑드르 회화가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Jeffrey Ruda, “Flemish Painting and the Early Renaissance in Florence: Questions of Influence”, Zeitschrift für Kunstgeschichte, 47. Bd., H. 2, 1984, pp. 210-236. 여기서 제프리 루다는 필리포 리피(Filippo Lippi)와 도미니코 베네치아노(Domenico Veneziano)등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두주자였던 작가들의 작업에서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를 비롯한 플랑드르 작가들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러나 르네상스 작업 특유의 선형원근법과 비례법, 사실적 묘사 등은 단순히 플랑드르 회화의 영향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유럽의 경제적 중심부 중 하나였던 피렌체 또한 그 시작부터 양모 산업으로 크게 번성했으며, 수많은 교역이 이루어지는 도시이자 동시에 전 유럽 지역에 금융을 공급하는 곳이었다는 그 역사적 조건으로부터 반추되어야 한다. 요컨대 플랑드르의 작가들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작가들이 유사한 보기의 방식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양 지역이 놓여있었던 당대의 경제-문화적 조건의 유사함에서 연원한다. [본문으로]
  19. 으레 바니타스 정물화 특유의 허무주의적 배경으로 거론되는, 유럽을 덮쳤던 흑사병과 종교전쟁 등의 음울한 사건들은 오히려 추상적이고 지엽적인 작인들이다. [본문으로]
  20. 알프레드 존 레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황태연, 윤길순 역, 학민사, 1986. pp.30-32, 101-103. 여기서 레텔의 기본적인 관심은, 계몽 철학자로서 칸트가 인간의 과학적 판단 가능성에 대한 합리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선험적 종합판단의 근거로 정신의 영역을 상정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칸트의]‘자기의식의 선험적 통일이란 그 자체가 교환 추상의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 모든 것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하나, 즉 화폐의 통일과 사회적 통합의 통일에 근거하고 있는 상품 교환가능성의 형식의 지적 반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본문으로]
  21. 이에 대해서는 특히 위의 책, p.103을 참고하라. 한편 마르크스는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선의지(good will)”, ‘의무’, ‘정언명령등의 범주들로 조직된 칸트의 󰡔실천이성 비판󰡕, 혁명적 기류 속에 놓여있던 프랑스 및 산업 혁명과 식민지 건설을 통해 팽창해가던 영국에 비해 철학적 의식 이외에 나아갈 곳이 없었던 18세기 후반 독일의 불모적 정세를 반영하고 있으며, 선의지의 실현을 세계 너머로 넘겨둔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칸트의 선의지는 독일의 부르주아 시민(burgher)의 불능, 침체, 불행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들의 프티 부르주아적 이해는 절대 한 계급 공통의 전 국민적 이해로 발전할 수 없으며, 따라서 결과적으로 그들은 다른 모든 국가들의 부르주아들에게 계속해서 이용될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Marx and Engels, “A. Political Liberalism” in “III 5. “Stirner” Delighted in His Construction”, German Ideology, 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45/german-ideology/ch03d.htm [본문으로]
  22. 헤겔이 청년기 때부터 프랑스혁명에 열광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헤겔은 없었을 것이라고 기꺼이 말할 수 있다. 이때 프랑스 혁명은 지배 계급의 정치적 권력 교체라는 협소한 장에서 이뤄진 사건이 아니라 생산양식의 재조정 과정과 전환의 사건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본문으로]
  23. 제임슨은 일찍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안과 밖의 해석학적 모델”, “본질과 현상에 대한 변증법적 모델”, “잠복(latent)과 현시(manifest) 혹은 억압에 관한 프로이트적 모델”, “진정성과 비진정성에 관한 실존주의적 모델”, “기표와 기의 사이의 기호학적 대립의 사멸이라 주장한바 있다. 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ke University Press, 1991. p.12, p.156. [본문으로]
  24. 피에르 빌라르, 󰡔금과 화폐의 역사 1450-1920󰡕, 김현일 역, 까치, 2000. p.20. 이렇게 화폐는 초월적인 제1작인이 아니라, 역사적인 제1작인으로서 조명될 수 있다. [본문으로]
  25. F. Braudel, “Monnaies et civilisations: De l’or du Soudan à l'argent d'Amérique”, Annales, 1(01), 1946, p.22 위의 책, p.14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26. 이러한 관점은 전쟁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상이한 민족; 국가 간의 무력 충돌이라는 협소한 차원을 넘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요컨대 2차 대전은 일제의 중화민국 침략, 혹은 나치의 폴란드 침략이라는 국지적 현상으로 나타났으나, 그 기저에는 타 열강들에 비해 식민지를 갖지 못하고 경제블록을 건설하지 못했던 이탈리아, 독일, 일본 등의 후발 산업 국가들이 상품을 수출할 경로를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식민지 건설에의 요구가 있었다. [본문으로]
  27. 예컨대 오늘날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과 브로커들의 높은 마약 복용율과 퇴폐적인 음주문화는 매초마다 정신없이 변동하는 주식시장과 환시장의 그래프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그들 업무의 기능적인 특징으로부터 연원한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변동성과 위험이 일상화된 후기 자본주의 속에 놓인 주체가 비정상적 신경 각성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반응하며, 산만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알레고리로서 독해될 수 있다. [본문으로]
  28. 롤랑 바르트, 󰡔S/Z󰡕, 김웅권 역, 연암서가, 2015. pp.124-125. 한편 제임슨은 전(pre)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기호체제를 구획하는 바르트와 달리, 리얼리즘-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과정 전체를 자본주의적 발전 국면에서 설명한다. 할 포스터는 한 에세이에서 제임슨이 주장한 기호의 물화과정에 착안하여, 70년대 후반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특징을 설명하는 두 가지 모델- 기표들의 유희로서의 알레고리적 충동, 지표적인 것으로의 전환-을 검토하며, 이를 포스트구조주의의 탈 중심적 전략에 조응하는 것으로 조명하고, 이들 모두가 후기자본주의의 추상화 과정에 빚지고 있음을 논한다. 할 포스터, “거친 기호: 70년대 미술에서 나타난 기호의 분열”, 조정훈 역, 앤드류 로스 외 저, 󰡔포스트모던의 문화 ˙ 정치󰡕, 배병인 외 역, 민글, 1993. [본문으로]
  29.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1906년과 1911년 사이 제네바 대학에서의 강의에 근거하여 소쉬르 사후 제자들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1916년에 첫 불어본이 나왔고, 최초의 단독적인 금본위제는 19세기 초 영국에서부터 시행되었다. [본문으로]
  30. 혹자는 최소한 중상주의 체제에서부터 이미 실제의 귀금속들을 가치표지와 어느 정도 분리시킨 복본위제 및 신용화폐가 사용되었다는 점을 들어 이러한 설명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복본위제에서는 여전히 가치표지로서의 화폐와 상품은 금본위제에서의 강도 이상으로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예컨대 복본위제 하에서 은화는 특정한 은의 무게가 포함된 상품에 가까웠으며, 이는 금화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토큰은 18세기 말 이전까지는 위조의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었기에, 19세기 초의 금본위제 이전까지 화폐의 가치표지기능은 상품으로서의 화폐로부터 온전히 독립적으로 분화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김기수, 󰡔국제통화금융체제와 세계경제패권󰡕, 살림, 2011. p.30. [본문으로]
  31. 한편 영국에서는 18세기부터 애덤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를 비롯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나타나는데, 영국이 산업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정교하게 완성시킨 선두주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가치가 노동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점을 역설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주로 영국에서 나타난 것은 필연이다. 그들은 노동 가치를 통해 점차 구체화되어가는 자본주의의 작동을 인식할 수 있게 된 미네르바의 올빼미였다. 반면 마르크스가 했던 작업은 노동가치가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추상노동과 구체노동의 분리라는 노동의 이중성에 근거한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점을 밝히는 것이었다. [본문으로]
  32. Joshua N. Feinman, “Reserve requirements: history, current practice, and potential reform”, Federal Reserve Bulletin, issue Jun, 1993. pp.569-589. 미국의 국법은행법의 시행은 자체적인 단일 통화시스템을 확립하고 내전에 이은 재정 위기 앞에서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현대 은행이 조직되는 기본적인 원리를 확립함으로써 초기 산업 자본이 안정적으로 금융을 조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 이전까지 각기 다른 민간 은행이 발행하여 국지적인 영역 내부에서만 유통 가능한 화폐가 통용되는 식이었다면, 국법은행법 이후 화폐는 단일화되고 보편화된다. [본문으로]
  33. 상기했듯 이러한 분리는 통화체제에서의 분할에서 가장 순수하게 표현되며,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의 분할, 문화와 자연의 분할, 인간과 사회의 분할 등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분할은 상품경제의 편재라는 공시성 속에서 동시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이자,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정교화 되는 각각의 계기들로 이해되어야 한다. 루카치가 제시한 물화reification’란 바로 이러한 분리의 현상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단독적으로 실체화 될 수 없는 것들이 그러한 분리 속에서 구획 가능한 외양을 띤 채 나타나는 착시를 가리킨다. [본문으로]
  34. T.J. Clark, Farewell to and Idea: Episodes from a History of Modernism, Yale University Press, 1999. pp.9-10; 한편 서동진은 제임슨을 경유하여 “(...)모더니즘의 등장은 바로 현실이 표상된 것이라는 자각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서동진, 󰡔동시대 이후󰡕, 현실문화연구, 2018. pp.252-253. [본문으로]
  35. 이 점은 모더니즘과 대중문화에 대한 제임슨의 분석을 통해서도 이해될 수 있다. 제임슨은 대중문화에서의 물화와 유토피아에서 모더니즘과 대중문화는 모두 동일한 실재·모순을 마주한 상이한 두 표현양식이라 주장한다. 즉 우리가 모더니즘과 대중문화를 분리된 항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신과 봉건적 유대관계 속에서 형성된 유기체적 질서에 조응하는- 각 사회집단의 습속에 깊게 통일된 예술로 하여금 그러한 질서의 체계로부터 벗어나도록 한 실재의 변화 덕분이라는 것이다. 즉 학문분과의 심화, 개인화, 생산과 소비의 분리 등을 아우르는 (근대의) 물화과정에 따라 예술이 삶으로부터 벗어난 순간, 모더니즘과 대중문화의 분화는 예고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에 따르면 모더니즘은 사생(寫生)의 대상이 되는 요소들을 통제하고, 즉각적으로 실체화되지 않는 (모순에 대한) 내재적 보상구조를 갖는 경향이 있지만, 대중문화는 모순을 상상적으로 해결하고 유기체적 조화의 상태를 실체화함으로써 보상의 구조가 전면화 되며, 외려 실재를 억압하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실재로서의 역사에 맞서 모순을 상상적, 상징적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수렴한다. 이에 대해서는 프레드릭 제임슨, 󰡔보이는 것의 날인󰡕, 남인영 역, 한나래, 2003. 11장을 참고하라. [본문으로]
  36. 이런 관점에서 예술은 궁극적으로 역사; 실재의 모순(혹은 불완전함)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에서 피동적이지만, 그 모순을 상징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동시에 능동적이다. 그러한 모순은 보편적이라는 점에서 집단적이고, 정치적이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무의식적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본문으로]
  37. 이에 대해서는 지주형의 훌륭한 정리를 참고하라.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책세상, 2011. pp. 31-32, 60-69. [본문으로]
  38. 지금-여기이외에 역사, 과거, 미래 등의 범주를 고려하지 않는 담론적 시간성으로서의 동시대성이 그 자신의 조건으로 요청하는 시간감이란 바로 이와 같은 속도감일 것이다. [본문으로]
  39. 지주형, 앞의 책, p.63. [본문으로]
  40. 한편 일각에선 그러한 수직적 산업구조가 갖는 위계적 질서를 덮어 가리기 위해 하청업체협력업체로 부르자는 주장도 종종 제기 된다. 이는 노동자를 근로자, 혹은 심미화된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자 하는 시도의 연장에 있는 것으로, 가히 언어의 계급투쟁이라 할만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배상복, “'하청업체'가 아니라 '협력업체'”, 중앙일보, 201781401:00시 등록. 2019114일 오후 10시 접속. https://c11.kr/bwz9 [본문으로]
  41. 지역 은행에서 빌린 돈을 타 지역; 타 국가로 이전 사용하는 행태를 규제하는 법안을 제정해야한다는 주장은 상당부분 이러한 캐리 트레이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본문으로]
  42. 지주형, 앞의 책, p.70 참고. [본문으로]
  43. 장외 파생 상품(Over-the-counter(OTC) derivatives)시장의 규모는 19986721,340억 달러에서 200866721억달러로 10년간 9배 증가하였다(지주형, 앞의 책, 같은 곳). 한편 국제결제은행(BIS)2019년 통계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10주년이 되는 2018년엔 550조 달러 전후로 변동 폭을 유지했다. 혹자는 금융위기 이후로 세계 파생상품시장이 침체되었다고 하지만 이미 2008년의 규모를 초과하여 700조 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에 도달했던 2011년의 급격한 상승폭과 2013년의 다소 완만한 상승폭을 볼 때 파생상품시장의 영향력약화를 예단하긴 어렵다. 여기서 장외란 비표준적인 금융상품이, 중앙 집중화된 공식 주식/증권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주로 중개인을 통해) 거래 당사자들 간에 이뤄지는 상태를 일컫는다. BIS, OTC derivatives statistics at end-December 2018, 02 May 2019를 참고하라. [본문으로]
  44. 자본시장감독국, “2018년 금융회사 장외파생상품 거래 현황”, 금융감독원, 2019. 4. 30. [본문으로]
  45. 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신자유주의의 위기󰡕, 김덕민 역, 후마니타스, 2014. pp.42-46, 372. 한편 지주형은 미국의 연준, 재무부, 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초국적 자본가-엘리트들의 정보네트워크 등으로 그 작인을 제시하고 있다. 지주형, 앞의 책, pp.74-86를 참고하라. [본문으로]
  46. 사이먼 데아킨, “신자유주의 이후의 노동법”, 󰡔국제 노동 브리프󰡕 11월호, 한국노동연구원, 2012. p.8. [본문으로]
  47. 이강국,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한국경제”, 󰡔경제논집󰡕 53(2), 2014. pp. 195-203. [본문으로]
  48. 한편 이러한 착시는 많은 이론적 소요를 낳기도 한다. 예컨대 정동을 만들어내는 비물질노동을 통해 이미 노동 가치를 초과한 지평에서 생산이 공동으로 수행되는 국면에 이르렀고, 따라서 자본을 순수한 법이자 폭력 내지는 상부구조적 제약으로 간주할 것을 주장하는 네그리식 논의는, 고이윤을 위해 제 1세계로부터 개발도상국으로 제조업 생산을 이전하는 초국적 기업들의 분업과, 이를 가능케 하는 전 지구적 가치사슬을 이미 전제하고 있다. [본문으로]
  49. 당시 미국에서 새로운 소비주체로 등장한 여성과 유색인종의 문제설정, 이들을 대학 내에서 수용하려는 정책적 전략 등 보다 미시적인 수준에서 데리다를 위시한 당대의 프랑스 철학의 기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으로는 다음을 참고. 프랑수아 퀴세, 󰡔루이비통이 된 푸코?󰡕, 문강형준, 박소영, 유충현 역, 난장, 2012. [본문으로]
  50. Jacques Derrida, Of Grammatology, translated by Gayatri Chakravorty Spivak.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Baltimore, 1997(1967). 여기서 이미 우리는 텍스트의 외부는 없다”(p.158)라는 유명한 표현을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51. 물론 상호텍스트성에 대한 주목은 바흐친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문제는 그것이 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바르트 등에 의해 재주목 되고, 이어 한 세대를 풍미했던 문화적 우세종으로서 자리할 수 있게 되었던 실재의 조건이다. [본문으로]
  52. 한편 생산미학의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성격에 맞서 작품이 아니라 텍스트를 열린 방식으로 (혹은 창의적으로) 읽기를 지향하는 수용미학의 대두와,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국가와 그 지루함에 맞섰던 68 혁명의 자유주의적 지향은 동시간대에 다른 공간에서 벌어진, 그러나 하나의 실재에서 비롯된 반응으로 독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53. Fredric Jameson, “Periodizing the 60s”, Social Text, No. 9/10, 1984. p.193, 196, 197. 여기서 제임슨은 60년대 초에 미국의 시인 월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가 시적 언어를 통해 세계의 어떤 실체(thing)에 대한 상(image)과 관념을 다루는 데에서 나아가 시적 장 내부의 요소들을 대상 자체로서 상대하는 전환을 보여주고 있음을 논증하며, 이를 지시대상에서 자유로워지는 기호 논리의 예증으로 제시한다. 본 논문에서 그의 관심은 텍스트의 이론,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쇠퇴와 이론의 대두, 녹색혁명, 타자의 정치학의 대두, “세대 격차라는 수사학 등을 60년대를 특징짓는 규정적 작인으로 조명하고, 이들을 자본주의적 물화 과정의 요소이자 필연적인 반응으로 위치 짓는 것이다. [본문으로]
  54. 지시대상과 기의로부터 자유로운 기표의 연쇄는, 가치 실체를 담지하고 있는 제조업/서비스업 등의 실물로부터 자유로운 금융자본의 국면에 대한 환유에 가깝다. 한편 하비는 옳게도 브레튼우즈협정과 미국달러의 금태환 가능성의 붕괴, 그리고 유동적 환율의 지구적 체계로의 전환에 이은 재현의 위기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한 특징으로 제시하며, 공간과 시간에 대한 경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가 화폐로 재현되는 방식의 변화를 살펴보아야한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하비,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 최병두 역, 창비, 2017. pp.204-208. [본문으로]
  55. 폴란드에서 용례화 된 이 개념은 정보사회에서 정보의 수집과 데이터의 통제 권한을 쥔 상위 계급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바 있으나, 나는 여기서 기업과 국가의 디지털 데이터 수집을 통해 정치의 대상이자 착취의 대상이 됨으로써 그들과 화해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는 인민(혹은 집단적 신체)의 형상을 가리키기 위해 디지타리아트라는 용어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서는 69, 70번 각주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56. 폴 오스터의 작업, 특히 유리의 도시잠겨있는 방에서 화자들은 그 자신의 정체성을 실체가 없는 기호의 접합체로 인식하고, 이를 자유롭게 취사선택하거나 그 위에서 인지적 공황상태에 처한다. 이와 유사하게, 김희천의 작업들에서 등장하는 페이스 스왑(face swap)은 개인의 내밀한 정체성과 표정을 담지하고 있는- 레비나스 식의 환원 불가능한 얼굴이 이미 하나의 기호로서 유동하고 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이는 결국 변화된 기호체제의 부유하고 유동하는 측면에 대한 미메시스이며, 그 기호체제의 실체는 자본의 유동성과 변동성 자체이다. 폴 오스터에게 집중적으로 포착되는 것이 글과 언어가 자율화; 물화되는 경향이었다면, 김희천이 응시하는 것은 이미지의 물화 경향이지만, 그들은 결국 동일한 실재의 다른 측면들이다. [본문으로]
  57. 데이비드 하비, 앞의 책, p.185. [본문으로]
  58. 그것은 단순한 레토릭으로 사용되는 경우에도 부유하는 상태, 깊이가 없는 상태 속에서 가능한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모종의 안정적인 지반을 의미하는 ‘home’이라는 제목은 역설적이다. 하이데거적 의미에서 고향이자, 존재가 머무르는 곳으로서의 이란 김희천이 묘사하는 세계에선 일찍이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59. 데이비드 하비, 앞의 책, p.186. [본문으로]
  60. 안진국, "어디에나 있는 헤테로토피아를 부유하는 납작해진 현대미술: 납작(flat), 디지털-인터넷, 편재성, 사악한 혐오 기계, 억압적인 의지", 󰡔미술세계󰡕 8월호, 2019, p.141. 그러나 그는 기술 자체를 실체화하여 혐오의 정동이 분출되는 장치로서의 그 부정적인 측면을 기술의 심연 · 구조와 동일시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외려 문제가 되는 것은 기술이 처한 배치의 상태이다. 변증법적 시선은 기술이 여타 사회적 작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 나아가 그 기술이 추동되어 나온 맥락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즉 디지털 디바이스와 인터넷을 비롯한 그 소프트웨어는 혁명의 장치가 될 수 있는 동시에, 혐오기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
  61. 하비의 지적대로, 오늘날 우리는 상이한 공간들에서 거의 동시에 쏟아지는 이미지들을 경험하며, “세계의 공간들을 (...)일련의 이미지들로 전환하는데, 이는 지구 전역의 50여개의 다른 입지들에서 금융, 시장, 투입비용, 품질관리, 노동과정 조건에 대한 의사결정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공장들을 작동시킬 수 있는 초국적 기업의 작동기제와 동일한 현상이다. 데이비드 하비, 앞의 책, p.199. [본문으로]
  62. 하비는 전지구적 이미지들의 유통체계와 전 지구적 상품의 유통체계가 정확히 하나의 실재에 근거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세계의 지리적 복합성이 밤마다 고정된 텔레비전 스크린 위에 일련의 이미지들로 환원되는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전 세계의 음식은 이제 한 장소에 모이게 됐다.” 위의 책, p.211. [본문으로]
  63. 이는 김희천의 썰매(2016)가 근본적으로 이미지 순환의 속도감을 다루고 있다는 점과도 상통한다. [본문으로]
  64. 동 세대 작가로서, 작가와 운영자, 다중사용자 Massive MultiPlayer 1인칭 Single Player 사이를 긴장감 있게 오가는 이들의 활동을 응원한다.” 강정석, “서울의 인스턴스 던전들”, 반지하, 2015527, 오후 816분 게시. 20191129일 오후 913분 접속. https://c11.kr/bqg4 [본문으로]
  65. 서동진, 앞의 책, pp.12-13. [본문으로]
  66. 슈퍼플랫이 소비사회의 상품들로 인해 모든 문화적 생산물이 평평하고 단일한 깊이를 갖게 된 상황을 인정할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서 제기된 것이었다면, ‘슈퍼스퀴즈드는 슈퍼플랫의 요구가 이미 실현되고 가속되는 국면을 지시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본문으로]
  67. 나는 사회가 조각한 세대론 속 세대가 아닌, 나와 내 주변의 세대를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동세대가 그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이 좋다.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세대 간의 연결점을 지적하는 것도 일종의 전략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흥미가 없다. 채연, “강정석, 인터넷 세대를 위한 영상 비망록”, 아트인컬쳐, 20141208일 오후 38분 게시. 2019121일 오후 8시 접속. www.artinculture.kr/online/2463; “자신이 가진 공간적 문제를 예산 안에서 해결하는 전략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팩이 나온 거잖아요? (...)왜 어떤 사람은 더 잘 팔았는가, 많이 판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얼까를 스스로 학습하게 돼요. 그게 마켓의 즐거움이죠. 상호 참조가 생기고, 전략을 수정하고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윤리적인 지점과 효율화를 동시에 저울질하는데, 이게 아주 일시적이고 아슬아슬한 상태에요. 출구전략이 없으면, 무척 비윤리적인 기업처럼 될 수 있잖아요.” 강정석, 권순우, 김윤익, 김익현, 유지원, 정홍식, “대화: 굿-(GOODS) 2주기(週期)”, 2018717일 게시. 2019121일 오후 8시 접속. https://pia-after.com/?p=609 [본문으로]
  68.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강정석이 은연 중 내비치는 유토피아적 충동을 온당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의 유년기 사진들은 스피드 런의 한복판에서도 갑작스레 외삽 되는 것인데, 그것은 그가 호명하고 머무를 수 있는 유일한 과거에 가까운 것으로서, 온전한 시간을 담지한 사라진 흔적으로서 지속적으로 재등장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69. Slavoj Zizek, "We are already controlled by the digital giants, but Huawei’s expansion will usher in China-style surveillance", Independent, 14 May 2019 10:15. 2019122일 오전 9시 접속. https://c11.kr/bzoj [본문으로]
  70. 여기서 우리는 대자적 디지타리아트의 형상을 보여주는 작업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포렌식 아키텍쳐(Forensic Architecture)움 알-히란에서의 살인(2018)에서 베두인족 거주지를 철거하려는 이스라엘 정부와 원주민들의 계쟁에 개입하여 디지털 재현 장치들과 3D모델링 시스템 등을 통해 정부의 발표와 전혀 다른 사실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냄으로써, 가능한 디지털-계급투쟁의 모델을 모색했다. 한편 자크 블라스(Zach Blas)는 어두운 피부색을 지닌 인종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여성을 정확하게 식별하지 못하며, 동성애자의 관상학적 특징을 파악하는데 사용되는 안면인식 기술을 상대하면서- 스캐닝 되지 않는 익명의 얼굴을 만드는 프로젝트(얼굴 무기화 세트(2011-2014))를 진행한 바 있다. 이들은 정태적인 제3의 자연이 된 디지털 공간을 다시금 정치의 장소로서 조명해낸다. [본문으로]
  71. 이곳에서 전개된 김동진에 대한 분석은 나의 이전 작업을 일부 수정하여 재작성한 것이다. 정강산, “파국은 새로운 가능성을 담보하는가?”, 󰡔퍼블릭아트󰡕 4월호, 2019. [본문으로]
  72. 오늘날 ‘4차 산업 혁명을 둘러싼 공포는 바로 그러한 경향의 무르익은 표현이라 볼 수 있다. [본문으로]
  73. 안소연, "1인 인형극을 통한 행위와 시각의 불편한 유희: 작가 정금형"(인터뷰), 웹진 아르코, 2016, 118일 게제. 2019124일 오전 433분 접속. https://c11.kr/bwz5 [본문으로]
  74. 그러나 아스팔트, 페인트 등의 질료들과 엔지니어들, 관료들의 의지가 섞이며 그 모두가 행위소로 작용하는 균일화의 장으로서 실정적으로(positively) 조명되곤 하는 라투르식의 과속방지턱을 만들어내는 것을 결정하는 곳은 물(thing)이 아니라 관(government agency)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