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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베트남 파병일지

by 정강산 2023. 11. 29.

[공간 힘 전시 <주피터 프로젝트 no.2>(2022. 12. 6 - 12. 23)아카이브 섹션을 위해 작성한 글] https://spaceheem.com/jupitr/

 

베트남 파병일지

 

 

 

19458: 일본제국 패망으로 식민지 조선 해방

 

19459: 베트남, 프랑스를 몰아내고 들어온 일본의 패망 직후, 독립운동을 주도해온 공산주의자들과 호치민을 중심으로 베트남 민주 공화국’(베트민)선포

 

194611: 프랑스, ‘베트남 민주 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으며 식민지 재건을 위한 군대 파견 및 하이퐁(Hải Phòng) 일대에 폭격 및 함포사격

-베트민에서 수천명의 시민들이 사망.

12: 호치민, 프랑스에 (독립)전쟁선포, 1차 인도차이나 전쟁(1차 베트남전) 발발

-프랑스, 8년간 이어진 전쟁 기간 내내 프랑스군, 외인부대, 그 외 식민지들에서 충원한 베트남인, 아프리카인을 포함, 50만 명 이상의 병력을 투입하는 것으로 대응.

-프랑스 측 약 16만명 사상자, 베트민 측 24만명 사상자 발생.

 

19496: 프랑스, 바오다이 황제를 앞세워 베트남국건립

-식민정책에 대해 무장항쟁을 시도하는 베트민을 베트남 내부에서 분열시키고자 함.

 

19506: 한국전쟁 발발

 

19537: 한국전쟁 휴전협정 체결

-유엔군 총사령관 미 육군 장군,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서명.

-한반도 중앙의 북위 38도 선을 기준으로 남북분단 고착화.

12: 이승만, 동남아시아 국가 일대에 1차 친선사절단 파견

-1개월 간 남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버마 등을 방문하며 반공통일전선 결성타진.

 

19542: 이승만, 미국에 한국군 1개 사단 라오스 파병제안

-미 정부 최고 관료들을 비롯, 미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한국군 파병제안 검토.

: 이승만, 2차 동남아시아 친선사절단 파견 및 인도차이나 주둔 중인 프랑스군 관료들에게 한국군 파병 제안

5: 프랑스, 디엔비엔푸(Điện Biên Phủ) 전투에서 베트남에 완전 패배

6: 한국 진해서 국제반공대회 개최, 아시아민족반공연맹(APACL) 결성

-한국, 남베트남, 대만, 필리핀, 태국, 홍콩, 마카오, 류큐 등이 참석.

7: 한반도 평화협정과 베트남 분단 협약을 골자로 하는 제네바 협정 개최

-한반도 평화협정에 관한 논의는 미국에 의해 거부됨.

-베트남을 북위 17도선을 기준으로 일시 분단(북베트남/남베트남) 협의, 이후 독립정부 약속.

-프랑스, 베트남에서 철수.

9: 미국, 필리핀, 태국, 파키스탄, 프랑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이 참여하는 반공산주의 군사동맹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 창설

-중국과 소련을 염려하여, 북진통일론과 연결되는 보다 과격한 이승만 식 국제반공조직을 저지하고자 함.

 

195510: 미국, 응오딘지엠(Ngô Ðình Diệm)을 지원하여 친미반공성향의 국가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의 단독정부 건립

-베트남 인민 대부분이 좌익(세력)에 호의적인 상황을 염려하여 분단을 고착 시키고자 함. 남베트남에 군사적, 경제적 원조 시행.

-이로서 호치민의 북베트남과 응오딘지엠의 남베트남 간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개시 ([2]베트남 전쟁).

-이승만, 응오딘지엠이 국가원수로 취임한 남베트남 정부를 곧바로 승인.

 

19568: 응오딘지엠, 정치적 반대파들 전부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처형 및 투옥

-쿠데타로 실각하기 전까지 처형자의 수가 5만에서 75천여 명에 달함.

 

19575: 응오딘지엠, 미국 방문

-아이젠하워 대통령, 지엠정권 지지표명.

9: 한국, 남베트남 정부와의 공식 외교관계 수립에 이어 응오딘지엠의 한국 방문

 

195811: 이승만, 응오딘지엠 초청으로 남베트남 방문

 

19593: 남베트남에 한국 태권도시범단 파견되어 남베트남 사관학교 순회

 

196012: 남베트남 내의 공산주의자들 주도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 결성

-미 제국주의 타도와 남베트남의 정치경제적 개혁, 베트남 통일을 도모하고자.

-호치민의 북베트남과의 연계 하에 남베트남 내 반정부 투쟁 개시.

 

19615: 박정희, 쿠데타로 집권

-대의원 헌법기관 해산, 정당 및 사회단체 해산.

-중앙정보부 설치.

11: 박정희, 미국 방문하여 케네디 대통령과 회담

-케네디에 군사원조 및 경제원조 요청.

-박정희, ‘한국은 반공국가로서 극동의 안보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가능성 타진.

 

19623-4: -미간 한국의 베트남전 파병 절차논의

5-7: 한국정부, 비밀리에 남베트남에 군사사절단 파견

11: 박정희, 미국에 망명한 이승만에게 2만 달러 전달

: 박정희, 남베트남에 군사시찰단 파견

-현지 전황과 규모에 대한 시찰.

12: 박정희, 남베트남에 한국군 태권도교관단 파병하여 남베트남 군인 교육

 

196311: 남베트남 정부의 계속되는 실정에 이어 군사쿠데타로 응오딘지엠 피살

: 존슨, 국가안보조치각서(NSAM) 273호를 통해 미군 1만여명 베트남 파병

12: 박정희 정부, 헌법 제 1장 제 6조를 수정하여 파병의 법적 기반 마련

-‘국토방위에 한정되었던 한국군의 임무 범위를 국회동의를 받을 경우 해외파견까지 가능하도록 확대.

 

19643: 박정희 정부, 3,000-4,000 규모의 한국군 파병을 주한 미국대사에 제안

4: 미국, 한국을 비롯 25개국 정부에 공식적인 베트남 파병요청의사 표명 (더 많은 깃발 캠페인)

6: 한국정부, 미국과 남베트남에 파병 규모, 절차 협상

-남베트남의 정식요청 즉시 군대를 파병하기로 협의.

7: 한국정부, 베트남 파병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도록 압박

8: 미국, 북베트남군이 미국군함을 공격했다는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전 전면개입

-존슨의 명령으로 북베트남 일대에 선전포고 없이 폭격 감행.

-당초 명목상은 북베트남과 미국이 후견하는 남베트남 사이의 내전이었으나, 공식적인 국제전으로 전쟁 확대.

9: 한국, 남베트남에 한국군 군사지원단 파병 (1차 파병)

-1이동외과병원 요원 130여명과 태권도 교관단 10여명, 부산항에서 출발하여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에 도착.

-이동외과병원은 붕타우에 주둔, 태권도 교관단은 남베트남 육·해군 사관학교 및 육군 보병학교에서 지도.

12: 존슨, 박정희에게 한국공병부대 요청

-박정희, 전투부대까지 파병하는 것으로 미국에 역제안했으나 보류됨.

 

19651: 남베트남 정부, 한국에 공병단 수송부대 공식 요청

-‘국군의 해외 추가파병에 대한 동의안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가결

3: 한국, 후방지원 및 건설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2,000명 규모의 비전투부대(비둘기부대) 파병 (2차 파병)

-인천항에서 출발하여 사이공에 도착, 디안에 주둔.

: 미국, “롤링 썬더(Operation Rolling Thunder)” 폭격으로 6811월까지 북베트남에 100만 톤가량의 폭탄, 미사일, 로켓 투하

: 미국, 3,500명의 미 해병대 베트남 다낭에 투입

4: 미국, 존슨 행정부 하 미지상군 대거 투입 결정

-65년 말까지 20만명의 미군 파병.

: 미국, 한국에 특사를 보내 연대규모의 전투병력 파병 요청

5: 박정희, 미국방문하여 존슨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

-한미우호관계 증진, 한국군 베트남전 추가 파병, 미국의 대한경제원조에 대한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 발표.

6: 남베트남 정부, 한국에 1개 전투사단 파병 공식 요청

8: 한국군의 추가파병안이 대한민국 국회서 가결

10: 수도사단(맹호부대) 및 제2해병여단(청룡부대)으로 구성된 전투부대가 베트남에 파병 (3차 파병)

-부산항에서 출발, 수도사단은 퀴논에, 2해병여단은 캄란에 주둔.

 

19661: 미 부통령, 한국 방문하여 전투병력 추가 파병 요청

3: 추가 파병안 대한민국 국회 가결

4: 한국, 수도기계화사단 26연대와 제 9사단 파병 (4차 파병)

- 26연대(맹호부대)4월에 퀴논으로, 9사단(백마부대)10월 닌호아로 배치.

6: 미국, 하노이 및 하이퐁 유류고 폭격

8: 남베트남 주둔 미군 30여 만 명 육박

10: 박정희, 남베트남 방문

 

19681: 북베트남 인민군,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구정대공세 실행

-남베트남 사이공의 미대사관이 점거되는 장면이 뉴스보도를 타며, 미국민들의 사기 저하, 미국 내 반전 여론이 강세.

3: 존슨 대통령, 베트남전 여론 악화로 재선 포기

5: 1차 파리평화회담 개최

-베트남민주공화국(북베트남)과 미국이 정전협정 논의.

 

19691: 미국 대통령에 닉슨 당선

4: 닉슨, 북베트남서 남베트남으로 병력과 군수물자를 이송하는 호치민 루트로 이용되고 있는 베트남-캄보디아 국경 지대를 폭격하게 해달라며 캄보디아 국왕 시아누크에 서한

-시아누크가 이를 거부하여 미국은 캄보디아에 친미 군부 쿠데타를 도모하며(19701), 혼란한 정국을 두고 정부군과 캄보디아 공산당 간 캄보디아 내전 발생.

5: 2차 파리평화회담 개최

-베트남민주공화국, 베트남민족해방전선, 미국,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이 정전협정 논의.

7: 닉슨, 닉슨독트린 발표 (베트남전의 베트남화’[=/= 미국화])

-미국 스스로가 베트남전과 같은 직접적 개입을 피할 것을 명시.

-직접적 내정간섭 및 전쟁 수행에서 간접적 내정간섭 및 지원으로의 (대아시아) 외교정책의 전환.

-이에 따라 남베트남의 정치·경제·군사 자립을 위한 원조로 베트남 정책이 변동되며 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가 추진됨.

9: 호치민 사망

 

19704: 캄보디아로 전쟁확대

-북베트남이 친미정권 괴뢰정권에 맞선 캄보디아 공산당을 지원하며 캄보디아 내전에 파병.

 

19715: 미국, 호치민 루트 차단 위해 라오스 침공하며 전쟁확대

12: 한국, 미군 철수에 따라 베트남에서 제2해병여단 철수

 

19721: 미국, 친미 군부 론놀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캄보디아 내전에 남베트남 주둔 미군을 개입시켜 캄보디아 침공

4: 주월 한국군 1차 철군완료. 9,476명의 병력 철수

 

19731: 파리평화협정 체결

-베트남민주공화국, 베트남민족해방전선, 미국, 베트남공화국이 협정에 조인.

-베트남의 주권을 인정하는 제네바회담 이행을 재천명.

-미국 및 외국군의 베트남 개입 포기와 철수 명시.

3: 베트남서 한국군 철수 완료

-2개 보병사단이 주축이 되는, 남베트남에 주둔하던 37,000여명 전투 병력이 차례로 철수.

: 베트남서 미군 철수 완료

 

19754: 북베트남 및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 함락

: 베트남에서 한국 대사관 철수

5: 베트남공화국 대통령이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에 무조건 항복

 

19764: 베트남 남북통일총선거 실시

7: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출범

-사이공이 호치민시로 개명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