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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ism

윤석열 정부의 소수자 탄압 양상

by 정강산 2023. 11. 30.

[문화과학 115호 (2023 가을, 9월) '동시대 분석'란에 선게재됨]

 

 

윤석열 정부의 소수자 탄압 양상

 

 

정강산

 

이것은 하늘이 내린 계시입니다. 부총리 각하!

만약 이번 방화가 내 짐작대로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이라면

우리는 이 악랄한 병균에 철퇴를 가해야 합니다!”

-히틀러

 

퀴어들의 파티장을 열어준 대구경찰청장은

대구시 치안 행정을 맡을 자격이 없다

-홍준표

 

여성가족부 폐지

-윤석열

 

 

우파 정부 하의 소수자 탄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각주:1] 그것은 노동자로, 여성으로, 타인종으로, 공산주의자로, 성소수자로, 난민으로, 이주민으로 대상을 달리하며 전개되어왔다. 여기서 소수자는 어떤 위상적 단일함에 차이균열을 도입하는 자로서 철학적 의미의 타자라 해도 좋다.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은 역사의 운동에서 부정을 체현하는 부분이다. 그들이 없이는 역사는 전개를 멈추고 정지하게 된다.

 그리고 세계사가 증명하듯 우파는 언제나 차이를 체현한 대상/타자를 물심양면으로 기각하고자 한다. 극우적 이념으로 무장한 나치는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빌미로 공산주의자에 대한 대중적 혐오를 부추겨 집권했으며, 곧 유대인을 말살함으로써 그 권력 동원에서 정점을 찍었다. 트럼프 또한 강경한 반이민 정책으로 난민과 이주민들에 대한 반감을 전유하여 집권에 성공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에 이르는 과정에서 공고해진 한국의 끔찍한 우파 민족주의는 북한이라는 절대적 타자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우파는 왜 타자를, 부정을 기각하는가? 까닭인즉 인간이 차이에 대해 갖는 즉자적인 동물적 공포와 불안을 전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파적 세계관은 동일성에 기반하는 바, 사회 혹은 세계의 모순에 대한 감각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계급적 분할 혹은 기각할 수 없는 다기한 존재들의 격차를 끝내 지우고 하나의 매끄러운 전체를 전제하는 것. 이어 그 전체를 관철시키려는 관성이 우파의 정신이다. 단일한 하나/일자라는 표상을 저해하는 타자(혹은 부정)를 제거하는 과정은 그리하여 우파의 실천이라 할 법한 것이다. 그렇게 우파는 정지한 역사, 분별되지 않은 무시간적 동일성에 탐닉한다. 그 동일성의 실체는 현재로선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 해도 좋다.

 나는 이 같은 지평에서 윤석열 정권이 소수자를 상대하는 양상을 개괄하고자 한다. 이때 강조되어야 할 것은 윤석열 개인의 의지와 성향이 아닌, 거대한 국가 관료제의 골간을 장악한 우파 정치업자들과 그들을 지탱하는 우파 대중이다. 또한 그들 전체를 관류하는 바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동일성을 관철시키려는 연속적이고 반복적인 논리와 전략이다.

 

 

화물연대에서부터 건설노조까지

 

여느 우파 정부가 그러하듯 윤 정부의 첫 번째 타겟은 노동계로 향했다. 특히 경제침체 국면에서 강성 신자유주의 경향을 띠는 우파 정부는 이윤율 보전을 위해 노동에 대한 공세로 일관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초강경대응으로 나타났다. 2211, 화물연대는 총파업에 나서 안전운임제 유지 확대와 적용 품목 확대 등을 촉구했다. 화물기사들은 제조업체나 유통업체(화주기업)로부터 화물운송에 대한 운임료를 받아 생계를 꾸리는데, 수년째 운임료가 동결된 상태에서 유가가 오르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지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업들은 화물기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거대한 화물 인력시장에서 필요한 만큼만 뽑아 쓰려 했다.

 그 결과 화물기사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서 특정 화주기업의 통제하에 일하지만 법리적으로는 개인사업자이기에 최저임금과 같은 안전망을 적용받지 못해왔다. 이 구조는 화물기사들의 과로, 과적, 과속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20년부터 3년간 도입된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그마저도 모든 화물이 아니라 시멘트, 수출입 컨테이너 품목에만 적용되어 제한적이었기에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의 종료를 멈추고 품목을 확대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애초 본 파업은 앞선 6월 총파업에서 국토교통부가 약속한 안전운임제 확대가 이행되지 않았기에 협상 이행을 요구하는 차원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국토부를 위시한 정부·여당은 이행 대신 업무개시명령이라는 초헌법적 수단을 꺼내들었다. 업무개시명령은 운송업무 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화물운송을 거부하여 국가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때발동할 수 있는 법으로, 불복 시 화물운송 종사자격 정지나 취소 제재를 부과하며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각주:2] 당시 윤석열은 화물연대 파업은 북핵과 같은 위협이라며 괄목할 은유를 만들어냈다. 노동계의 요구를 절묘하게 빨갱이와 유비해 파업의 정당성을 기각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연설비서관과 잔뼈 굵은 참모들의 검토를 거친 발언일 테지만, 대통령의 강경 기조를 어필하기엔 충분했다.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화물기사들은 결국 파업을 철회했다.

 이를 계기로 윤 정부의 노동탄압에는 본격적인 추동력이 생기게 되는데, 그것은 건설노조를 향한 핍박으로 이어졌다.[각주:3] 231월 윤석열의 신년사에서 가장 강조된 것은 노사법치주의 확립이었다. 이는 화물연대 파업 진압에서 지지율 반등이라는 재미를 보고 그 흐름을 이어가겠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119일부터 경찰은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한국노총 건설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각주:4] 건설현장에서 노조가 위력을 과시하며 폭력과 공갈협박을 일삼는다는 명목이었다. 2월에 열린 제8차 국무회의에서 윤석열은 건설현장의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요구, 채용 강요, 공사방해 등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단속해 법치를 확고히 세울 것이라 엄포했고, 같은 날 윤희근 경찰청장은 건설현장 노조 불법행위 단속에 50명 특진을 걸었다고 밝히며 1648명 수사, 20명 구속이라는 성과를 보고했다.[각주:5] 원희룡 국토부장관 또한 채용강요타워크레인 월례비 갈취를 운운하며 강도 높은 처벌이 있을 것이라 을러댔다.

 그러나 건설업에 만연한 불법하도급 계약으로 중간착취가 심해 임금이 다단계 업체들에 착복될 뿐만 아니라 현장 위험을 높여왔고, 시공기간 이외에는 고용이 이뤄지지 않는 건설업 특성상 건설노조가 건설업체에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단체협약의 행사였다. ‘월례비역시 건설업체 측이 공사 속도를 높이기 위해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정해진 과업 이상의 일을 시키고자 지급한 웃돈으로서, 임금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 최근 대법원판결로 인정되었다.[각주:6] 나아가 민주노총 건설노조야말로 일찍이 월례비가 근로시간 외 추가 작업을 종용하고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안전수칙 등을 무시하게 되는 원인이라 간주하여 월례비 근절 캠페인을 공식적으로 진행해왔다. 그럼에도 경찰은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대한 표적 수사를 이어갔고, 국토부는 연일 건설노조가 불법의 온상이라 선전했다. 결국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한 건설노조 조합원이 수사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노동절에 분신하기에 이른다. 이후 건설노조는 열사투쟁에 돌입하여 유족에 대한 사과, 건설탄압TF 해체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싸웠다.[각주:7]

 이에 조선일보는 현장에 있던 동료 조합원이 분신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516일과 17일에 걸쳐 제기했고, 원희룡 장관은 그 보도에 호응하며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 말했다. 이어 18일 월간조선은 유서대필 의혹을 제기했다. 노조가 조합원 죽음을 조작하여 입맛대로 유서를 써 내부결속을 도모한 것이 아니냐는 악의적인 보도였다. 도를 지나친 왜곡에 비난이 빗발치자 월간조선은 12일 만에 공식사과를 했으나 그 같은 보도가 운동의 이미지에 끼친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경찰 또한 건설노조 위원장과 간부들에 대한 수사를 멈추지 않으며 출석과 압수수색으로 압박을 이어나갔고, 결국 건설노조는 요구사항을 하나도 관철하지 못한 채 장례를 치러 열사투쟁을 종료했다.

 이렇듯 우파 정부의 탄압은 정부 차원의 조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수언론과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이뤄진다. 보수언론은 또한 광범한 기층 보수우익 세력에 젖줄을 대고 있으니, 결국 우파의 논리가 정부를 통해 어떻게 관철되는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으로 반노동 분위기가 형성되면, 경찰력은 강세를 띠게 된다고 하겠다. 531, 사측에 임금교섭과 부당노동행위 중단을 요구하며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한국노총 조합원을 경찰이 1미터 가량의 진압봉으로 내려쳤던 강제진압 장면은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 한국사회를 장악한 우파적 헤게모니를 예증한다.

 

 

여성가족부 폐지시도와 비동의 강간죄 기각[각주:8]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0월 여가부를 해체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여가부의 기능 중 성평등’, ‘여성·아동권익증진등을 보건복지부 아래로, ‘여성노동을 고용노동부 아래로 이관하고 여성전담부처를 없앤다는 것이었다. 일찍이 여러 면에서 남성의 표심을 공략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윤석열 캠프에게 여성가족부(여가부)는 좋은 먹잇감으로 비쳤기에, 여가부 폐지를 제물로 삼아 남성들을 위시한 보수층의 분노를 전유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2022년 기준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31.5%, OECD 국가 중 27년째 꼴찌다. 더불어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46개국 중 성 균등도’ 99위로 매번 하위권을 기록했다.[각주:9] 이런 상황에서 여가부 폐지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숱한 여성단체들이 지적했듯, 여가부의 기능을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아래로 두면 여성 관련 입법과 집행이 단일창구로 불가능해져, 성평등 정책과 법은 총괄되지 않고 분산·축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별임금격차와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 육아휴직, 성폭력 등 여성문제에 대한 대책을 방기하는 결과를 낳는다.

 윤 정부는 여가부가 종합적으로 관장해온 한부모가족 및 아동양육지원과 아이돌봄 서비스로 수많은 취약계층 여성들이 지원을 받아왔다는 것을 모른 체하며, 이외에 성폭력 피해자, 경력단절 여성 등이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 여가부라는 사실을 덮고자 하는 것이다. , 여가부가 남녀갈등을 부추겨 왔다는 정부 주장과 달리, 상기한 압도적인 성별격차 조정을 겨냥하는 부서가 여성가족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여성전담부처 폐지 시도는 여성인권을 과거로 돌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야당의 반대로 여가부 폐지는 일단 보류됐으나, 정부와 여당은 여가부 폐지안을 추후 별도 논의하겠다며 여가부의 역할을 축소할 여지를 남겨두었다.

 이 같은 퇴행은 231월에 발표된 여성가족부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지난 1, 2차 계획에서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로 표현되어왔던 정책은 공공부문 성별 대표성 제고로 명칭이 바뀌었다. 공공부문 여성 비율이 30%에 불과함에도 불구, '여성'을 전면화하길 포기한 것이다. 또한 2차 계획에서 여성폭력 예방교육 실효성 강화항목은 폭력예방교육 실효성 제고, ‘여성폭력 근절폭력 피해 지원으로 표현되며 흐려졌다.

 이런 여성가족부의 수세적인 태도는 정부의 인선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5월 국회 동의 없이 김현숙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임명한 바 있다. 그러나 김현숙 장관은 윤 정부의 여가부 폐지에 앞장설 만큼 여성인권과 여성가족부의 의의에 대한 인식이 없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로 그는 여가부 폐지 공약을 관철하려는 여당의 들러리에 가깝다. 김현숙 장관은 작년 6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여가부 폐지는 명확하다며 윤정부의 여가부 폐지안에 동의하는 자세를 취했으며, 이후엔 여가부가 폐지된다면 상당히 중요한 일을 한 장관으로 평가될 것이라 자평했다.

 이에 따라 비동의 강간죄개정 역시 난항을 겪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발표 당시 강간죄의 성립요건을 폭행 및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법무부가 반대의사를 밝히자마자 여가부는 해당 검토안을 철회했다. 김현숙 장관이 “(여가부가 폐지 되어도)특별히 아쉬울 게 없다고 말했던 그대로다. 현행 형법에서 강간죄는 폭행과 협박에 따라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는 수준에서 성립한다. 그러나 이는 성폭력 피해 양상에 맞지 않는 낡은 정의라는 평가를 받는다. 많은 경우 강간 피해자들은 당황하여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며, 피해자의 반항을 무력하게 할만한 폭력 없이도 강간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에 여성단체들과 유엔 등의 국제사회는 강간죄 요건을 자유로운 동의가 없는 경우로 확장하여 개정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이 같은 흐름에도 불구, 윤 정부의 여성가족부는 법무부와 마찰을 빚지 않고자 눈치를 살피는 상황이다.

 

 

창원 간첩단 사건에서 시민단체 정상화 TF까지

 

문재인 정부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국가정보원법을 개정해 2024년부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고 해당 업무를 경찰에 이관하도록 했다. 숱한 국정원 발 간첩조작 사건과 민간인 사찰이 변혁운동 진영과 시민사회의 활력에 제동을 걸어온 것을 감안하면 이는 확실한 진보였다. 그러나 정부가 교체되자마자 국정원은 대공수사권 재확보를 위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2211, 국정원과 경찰은 전북, 제주, 경남 지역에서 진보계 인사 7명에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북한 공작원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는 혐의였다. 231월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고, 보수언론은 연일 국정원 대공수사권 존속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3월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 자리에서 윤석열은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는 잘못된 것이라 말했다. 5월에는 전교조 강원지부 사무실이 압수수색 됐다. 한덕수 국무총리 또한 최근 6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근본적으로 대공 수사 능력이 약화하지 않도록 하는 대안을 진지하고 적극적이고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같은 달 14일엔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압수수색 됐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은 자주통일민중전위(자통)’라는 모종의 지하조직이 시민단체 경남진보연합 내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세워져 북한의 지령을 받고 반정부활동을 했다는 혐의를 제기했고, 검찰은 관련자들을 구속했다. 재판에 의해 확정된 사실이 아님에도 언론들이 앞다퉈 창원 간첩단 사건이라 명명하며 대서특필했음은 물론이다. 국정원은 집회를 활용한 정권퇴진·반미운동 유튜브, SNS를 통한 여론전 노동자·농민·학생 조직원 포섭 등 혐의 내용을 열거할 뿐, 이 중 하나라도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밝혀진 것은 없다.[각주:10] 더불어 국정원이 주장하는 바, 문제가 되는 북한의 지령이라는 것은 민노총 중심의 정권 퇴진운동을 진행하도록 지시(‘22. 6.),” “반보수 집중투쟁을 전개하라고 지시(‘21. 4.),” “종전선언·평화협정 채택을 주장하는 반미 자주화 시위 개최 지시(‘18. 8.)”[각주:11]등으로, 특별한 지시 없이도 한국 시민사회 자체 동력으로 만들어온 흐름이다. 외려 우리는 위 행간에서 드러나는 국정원의 기획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일체의 변혁 운동/반 정부 운동이 주적 북한에 의해 꾸며지고 있을 것이라는 고전적 우파의 편집증적 공포증의 회복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대한민국의 주적으로 설정된 데서 비롯되는 국민국가의 강력한 알러지 반응을 제하고 보면, 문제의 혐의내용은 일반적인 국가 간 선전 로비에 불과하다. 예컨대 202212, 늘 그래왔듯 미국무부는 자국 및 해외의 반북 싱크탱크와 시민단체들에 최대 150만 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라 밝혔다.[각주:12] 요컨대 미 정부가 민간단체를 통해 대북 정보 유입과 북한 내부 정보 유출사업에 투자할 것임을 공공연히 천명한 것이다. 이 자금을 받는 단체들은 미국의 가이드 내지 지령하에 북한에 자유(자본)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설파하고, 탈북자 인터뷰 및 인권 컨텐츠 생산을 통한 선전 선동 업무를 받는다.

 현실사회주의 체제 약화를 위한 미국의 이데올로기 민간위탁사업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북한만을 향한 것도 아니다. 미국은 수십 년간 쿠바,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좌파가 집권한 국가들 안팎으로 반체제 우익 세력을 공개 지원해왔다.[각주:13] 앞서 적시했듯 국무부 산하 민주인권노동국(Bureau of Democracy, Human Rights, and Labor)을 통해 1977년부터 반공 단체들에 직접지원을 하는 한편, 1983년부터는 유관 독립 기관인 '국립민주주의기금(NED)'을 통해서도 개입한다.[각주:14] 한국 내 반북/반공 단체들 또한 미국의 자금 지원과 더불어 관련 지령을 하달받는다. 그러나 매년 NED 자금을 받고 있는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북한인권정보센터, 북한인권시민연합, 열린북한방송, 자유북한방송, 데일리NK, NAUH(나우) 등의 단체가 국정원의 수사를 받았다는 소식은 들릴 리 없다. 이들은 외려 정부의 비호하에 가열차게 활동한다. 예컨대 통일부나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용역사업을 받거나, 이들 정부기관과 행사를 공동 주최하는 식이다.[각주:15] 즉 최근의 간첩단수사를 매개로 수구 우익 세력이 유도하고자 해온 한국인의 면역학적 반응을 걷어내면, ‘자통의 혐의내용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평범한 이념 선전 수준에 그친다. 다만 그 집행자가 주적 북한이며 공격대상이 대한민국 정부이기에, 자통의 활동은 국가보안법을 통해 불법으로 규정되고 이내 극악한 음모를 꾸민 양 타자화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변혁 실천의 차원에서 그들의 활동이 유효하며 윤리적으로 옳은가의 문제가 남는다. 이는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스탈린주의 경향에 대한 평가 문제이자, 서구 구좌파들이 소련 공산당의 지도 아래 활동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동시대에 북한 조선노동당의 지도 속에서 반자본주의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현재 정세와 부합하느냐의 문제이다. 러시아 혁명의 모델을 정전으로 둔 채 활동했던 과거 한국 변혁운동 진영의 PD세력 전반은 소련의 해체에 따라 실천영역에서도 러시아의 흔적을 깔끔하게 정리해야 했으나, 북한은 여전히 건재하기에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을 강조하는 NL 내 주체사상파 중 일부 그룹은 정세에 따라 북한과 현실적인 연계 속에 활동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착오적일지, 유효한 반체제 운동일지는 동시대 변혁운동 진영 내 실천을 통해 경합하고 증명되어야 할 문제이지, 억압적 국가 장치를 통해 불법으로 선 규정되어 분쇄될 문제가 아니다.

 국정원이 2016년부터 내사에 착수했던 작업임에도 불구, 7년이 지난 뒤 대공수사권 폐지를 1년 남긴 시점에서야 본 사건을 공론화한 것은 정부·여당과의 협조하에 정보를 마사지하여 공안정국을 형성할 적절한 시점을 기다린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는 국정원의 일탈이 아니라 시민사회 전반의 활력을 거세하여 체제에 대한 부정을 차단하겠다는 거대한 경향-우파적 정신의 일부이다. 그 경향은 최근 문제가 되는 것처럼 교통체증을 명목으로 한 집회시위 제한과 야간문화제 강제해산 같은 방식으로도 나타나지만, 일찍이 예고되었듯 예산을 볼모로 시민단체를 말려 죽이는 방법으로도 나타난다. 20223, 윤석열의 당선이 확실해지자마자 감사원은 시민단체 공금 유용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내 4월 국세청과 행정안전부까지 나서서 시민단체 회계비위를 감시하겠다고 엄포했다. 결국 그해 12비영리민간단체 보조금 투명성 제고는 국정과제로 설정됐다. 235월엔 여당이 시민단체 정상화 TF’를 발족했고, 6월 대통령실은 한 통일 운동 단체가 정부 보조금을 받은 채 보조금 용도와 무관한 윤 정권 퇴진운동강의에 강사비를 사용한 사례를 주요 비위 사례로 꼽으며, 2024년 민간단체 보조금 예산을 5천억 원 가까이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민단체들이 반 보수진영의 온상이라는 현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기한 부정을 지우고 세계를 균질화하려는 충동이 있다.

 

 

윤석열이면의 세력과 논리를 직시하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에 대한 서울교통공사의 6억원대 손해배상 소송 공세와 최근 홍준표의 퀴어퍼레이드 저지 시도 또한 이 같은 충동에 박자를 맞춘 것이라 하겠다. MBC 압수수색. KBS 수신료 분리 징수, YTN 민영화 등 언론장악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흐름에 대항하는 흐름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23627,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빈민해방실천연대를 주축으로 윤석열 정권 퇴진운동본부 준비위가 출범하며 윤석열 퇴진이 민중운동 세력의 공식 의제가 되었다. 이에 반 이명박 대오 구축에 골몰하다 좌파적 의제를 놓치게 되었던 민주개혁 전선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한편으로 존재한다. 민주당 세력을 포괄할 만큼 광범한 통일전선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계급 전선에서 후퇴하며 개별 사회적 사안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지적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퇴진이 목적이 아니라 대항 진보세력의 힘을 키우는 도정 속 하나의 수단으로 접근될 때, 정권퇴진 운동은 대중적 각성을 추동하는 좌파포퓰리즘의 한 형태가 될지도 모른다. 이 속에서 주체들은 노골적으로 민영화, 노동유연화, 기업 규제완화 등을 추진하며 소수자를 기각하는 강성 우파 정부의 정책 일체에 맞서는 등가사슬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기획이 성공하기 위해선 퇴진운동의 선두뿐만 아니라 운동이 성공한 자리에- 조직화 된 좌파 정치세력들이 약진해야만 한다.

 그러나 다시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윤석열은 스스로 사람이 아닌 조직에 충성한다고 밝혔듯 당파성이 없는 기능인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때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과 국정농단특검에서 특별수사팀장을 맡으며 우파들과 척을 질만큼 테크노크라트로서의 기능에 충실했던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문재인 정권 당시의 검찰 기능 축소 시도에 대한 반동으로 강성 우파들에게 땡겨진얼굴마담에 불과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우리는 퇴진운동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와중에도 그 배면의 비서실, 주요부처와 여당, 그들의 언어에 쾌감을 느끼는 기층 대중을 염두에 두는 편이 좋다.

  1. 여기서 나는 소수자를 선험적인 약함 혹은 실체적인 규모와 무관한, 특정 담론 구조 내에서 헤게모니를 쥐지 못한 구성적인 바깥의 부분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이런 맥락에서 소수자라는 표현에는 피해-가해의 일방적 권력 개념은 존재하지 않으며, 가변적인 힘 관계를 표현하는 미덕이 있다. [본문으로]
  2. 업무개시명령 발동 조건인 정당한 사유국가경제에 대한 심각한 위기가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점, 나아가 개시명령 자체가 강제노동을 종용하는 성격을 띠어 위헌적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 또한 지적되어야 한다. [본문으로]
  3. 기실 탄압은 이보다 앞서 이뤄질 수 있었다. 윤 정부는 226월부터 7월까지 이어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한 데 이어 당시 경찰청장 후보였던 윤희근까지 파업현장 시찰을 돌려 경찰력 투입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대우조선 파업은 정부의 개입 없이 일단락되었으나 470억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취하되지 않아 오는 921에 첫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본문으로]
  4. 이는 경찰에 의해 2212월부터 진행된 건설현장 갈취·폭력 등 불법행위 단속의 연장에서 이뤄진 것으로, 경찰청장으로 임명된 윤희근이 정부 기조에 맞춰 실행한 노동개혁-노사법치주의의 경찰판 기획이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5. 이내 특진 인원은 6월 중순 경까지 90명으로 확대되었다. [본문으로]
  6. 홍준표, 타워크레인 월례비, 정부는 공갈대법원은 임금, 매일노동뉴스, 2023.6.29. [본문으로]
  7.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TF’ 자체는 2210월부터 발족하여 국무조정실,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경찰청 등이 적극 가세해왔다. [본문으로]
  8. 본 절은 다음 기사를 추려 재구성 한 것이다. 정강산, 눈앞 실리 위해 성별갈등 악용...거꾸로 가는 성평등시계, 민플러스, 2023.5.10. [본문으로]
  9. 성 격차 보고서는 한 국가 내의 상대적 격차를 지수화한 것으로 절대적 수준의 성평등을 측정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으나, 상대적 성별 격차 또한 주요하게 다뤄져야 할 요인이라 할 것이다. [본문으로]
  10. 「「자통민중전위국가보안법위반 사건 중간 수사 결과, 국가정보원, 경찰청, 검찰청_보도자료, 2023.3.15. 1. [본문으로]
  11. 위의 글. 5-6. [본문으로]
  12. “DRL Notice of Funding Opportunity (NOFO): DRL FY22 DPRK Increasing Access to Information Programs Statements of Interest,” U.S. Department of State, DECEMBER 13, 2022. [본문으로]
  13. “Request for Statements of Interest: DRL Promoting Democracy and Human Rights in Cuba,” U.S. Department of State, MARCH 31, 2022. ; “Western Hemisphere Programs,” U.S. Department of State Archive. [본문으로]
  14.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공식 지원까지 합하면 그 규모는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예상된다. [본문으로]
  15. 예컨대 다음을 참고하라. 2020년도 국정감사결과 시정 및 처리 요구사항에 대한 처리결과보고서, 대한민국정부, 2021. 특히 5, 7, 19, 20쪽을 참고하라;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국민인식 및 차별 실태조사: 2014년도 인권상황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 국가인권위원회, 201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