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미술관 여름특강 <인문학 썸머스쿨>(2022.7.23- 2022.8.21)을 위한 강의노트]
*본고의 수정본은 문화과학 112(2022년 겨울)호에 "절대자본주의와 미술: 불안정의 정동, 카지노, 신생공간, 예술노동"으로 선게재됨.
절대자본주의와 미술: 심화된 매개 속 자유의 공간은 어디에?
정강산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지 말라.
투자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하라.
이제는 ‘올드 마스터’보다 ‘현대미술’이 유망하다.
단, 본인이 이해하지 못한 작품을 사서는 안 된다.
-Philip Hoffman
문화는 패러독스한 상품이다.
문화가 완전히 교환법칙 밑에 종속되게 되면
문화는 더 이상 교환 불가능한 것이 된다.
다시 말해 문화는 맹목적 소비로 해체되면
더 이상 소비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문화와 선전은 용해되어 하나로 된다.
-T.W.Adorno
미술사와 시장의 간지(cunning)
코로나 19의 확산에 따라 경기 전반이 침체기에 들어섰던 2021년, 역설적으로 미술시장은 호황을 맞았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따라 미술품이 대체 투자처로 주목받은 것, 주식의 불안정성 및 변동성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익률 좋은 실물시장으로서 미술시장에의 조명, 빚투 1, 영끌 2 등으로 끌어모은 개미 MZ들의 미술시장에의 처절한 진입(더불어 자산가 MZ의 진입), NFT의 약진에 따른 기대심리 등이 그 원인으로 셈해진다. 21년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의 총 거래액은 1,438억원으로, 20년 상반기에 집계된 490억에 비하면 3배 규모의 증가다.
물론 경매시장에서 잘 팔리는 장르는 뻔하게 정해져 있다. 불편하지 않은, 인테리어에 적합한, 알록달록하고 직관적으로 독해 가능한 얕은 작업들, 즉 별다른 근심과 걱정 내지 역사적 첨예함이 없는- ‘행복한 작업’ 내지 ‘경매용 작업’, ‘사업가적 작업’이라 할 법한 것이 한 축을 차지한다면, 다른 한 축은 미술사 속에서 마르고 닳도록 정전화된 작업들이 채우고 있다. 그래서 동시대 미술의 첨단에 있는, 여유가 될 때마다 구석구석 서너 군데의 크고 작은 전시들을 섭렵하고 다니는 이들은 그와 같은 시장의 사정이 다만 남의 일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실 사정은 정 반대다. 외려 대중/시장으로 소급되는 ‘행복한’, ‘정전화된’ 작품들이 있기에 범(pan-)예술의 사회적 효용성을 국가에 어필하는 것이 가능하고(예술인 복지법을 옹호하는 수많은 작가들이 ‘대가’들의 작업이나 비엔날레 등의 ‘경제효과’를 끌어왔듯), 그와 같은 어필 속에서 예술 전체에 대한 각종 국가 재정의 예산지원이 합리화된다.
모두가 전위적이고, 불가해한 작업을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가령 모든 음악가가 쇤베르크 식의 무조음악을 생산하거나, 존 케이지 식의 기이한 퍼포먼스를 만드는 상황을 말이다. 또한 모든 극단이 베케트 식의 부조리극을 상연하거나 브레히트 식의 소격효과를 전면에 내세우며, 모든 미술가는 다다 식 퍼포먼스를 일삼는다. 그런 조건에서 동시대 미술의 장(field) 자체를 떠받치고 있는 예술 일반에 대한 예산 지원은 불가능하다. ‘국민의 혈세를 저런 데에 쓰지 말라’며 사자후를 토하는 온갖 국민청원을 시작으로 하여, 문화예술 쪽의 예산 삭감 압력이 거세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3 그런 점에서 ‘행복한 예술’을 생산하는 자들과 ‘전위적인 현대예술’ 종사자는 적어도 대부분의 전시, 공연이 국가예산으로 집행되는 동시대적 조건 하에서는 모종의 공모관계에 있게 된다. 시장 지향적 작가들이 잘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설령 우리가 구별되는 장에 있다 하더라도, 예술 시장의 문제를 쉽게 낮잡아 봐선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연장에서, 매순간 벌어지고 있는 일에 약간의 과장을 섞어 얘기해보자. 누군가 이우환의 작업에 대해 학술논문을 썼다. 그 글은 이슈가 되어 일단의 후속연구자들을 낳았으며, 여기에 국제적인 관심이 더해져 이우환에 대한 국제 컨퍼런스가 개최된다. 대규모의 결산전이 전 세계를 순회한다. 바야흐로 이우환 르네상스다. 여기서 가장 쾌재를 부를 주체는 누구일까? 이우환? 밤낮으로 그를 수발했던 이우환의 가족들? 혹은 이우환의 작업세계에 매료된 추종자들?... 정답은 미술시장이다. 이로써 이우환의 작업에는 신비한 아우라가 한 겹 덧입혀지는 것이고, 이는 곧 이우환의 작업을 보유한 개인/기업/갤러리 들이 노를 저을 때가 되었다는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한 대작가가 작고했다. 여기에 가장 쾌재를 부르는 이들은 누구일까? 작가의 라이벌? 그의 작업들을 유산으로 받을 생각에 들뜬 자식과 며느리? 역시 정답은 미술시장이다. 작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작품이 재조명을 받으며, 미술사적 결산을 하고, 결국 그의 역사를 물화시켜 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시장의 편에서 작가의 사망은 신화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된다. 마치 출판사에서 작가 사망과 더불어 노를 젓듯이. 4 이 사례들은 우리의 자율적이고 내밀한 기호(favor)와 취향의 세계가 부지불식간에 어떤 동일성으로 소급되어, 그것에 복무하는 사태를 보여준다. 이 현실적인 동일성의 기제는 바로 시장이다. 다소의 우악스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들뢰즈 혹은 최근 유행하는 신유물론에 영향을 받은 비평가/작가들이 신나게 허수아비 동일성과 이성주의/합리주의를 공격할 때, 시장은 동일성을 가차 없이 합리적으로 가동시키며 그들을 ‘자산’으로서 무차별하게 소급시켜낸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어떤 작업이 미술사에 남는다는 것은, 그것이 시장에서 불멸할 것이라는 점을 가리킨다.
예술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오늘날 이와 같은 시장에의 참여는 복잡하고 정교한 실천을 통해 이뤄진다. 2017년 전후로 나타난 신조어- 아트테크(Art Tech)란 '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로, 기본적으로 미술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시장변동으로 향후 큰돈이 될 작품들에 투자하여, 돈을 굴려나가는 것이다. 나아가 아트테크는 전시, 음악, 공연 등에까지 확장하여 사용되기도 하는 개념이다. 전시, 공연, 음반 등에 미리 투자하여, 그 실적에 따라 유사 채권-채무관계를 형성하거나, 혹은 부분적인 소유권을 부여하여 배당금을 지급하는 식의 거래를 맺는 것이다(이 점에서 아트테크는 주식과 유사하다). 미술에 한하자면, 이는 미술시장의 리서치 회사와 경매회사, 펀드회사 등이 만들어내고자 하며, 또한 만들어온 실천이다.
2001년 아트택틱(Art Tactic)이라는 미술시장 전문 리서치 회사가 출범했고 5, 2002년에는 크리스티(Christie's Auction)의 베테랑 필립 호프만(Philip Hoffman)이 이끄는 영국의 파인아트그룹(The Fine Art Group)에서 운용하는 파인아트펀드(FAF)가 나타나 미술품에만 전문적인 투자를 시작하여 6- 오늘날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다. 7 2003년에는 뉴욕대 스턴 비즈니스 스쿨(Stern School of Business)의 교수인 메이 젠핑(Mei Jiangping)과 마이클 모제스(Michael Moses)에 의해 ‘메이 모제스 미술지수(Mei Moses Fine Art Index)’가 개발되어 미술투자의 전망을 점칠 수 있게 했고 8, 이후 이 지수 체계는 2016년에 소더비(Sotheby's)에 구입되어, 수시로 투자지표를 발표하는 데에 이용되고 있다.
바람잡이들의 선전은 이렇다: 미술품은 실물이 있어 위기 시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리는 주식에 비해 안전자산으로 꼽히며, 취득세, 보유세 부담이 없고, 양도 시에만 세금을 내면된다. 더불어 현재 양도가액(수입금액)이 6천만원 이하면 비과세, 1억원 이하면 필요경비(취득가액)율이 90%까지 적용되어 절세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3,000만원의 그림을 사 9,990만원에 팔았다면, 양도가액이 1억원 이하라 필요경비율 90%가 적용된다. 필요경비 8,991만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10%인 999만원에 대한 세금만 내면 된다. 더불어 국내 생존 작가는 가격이 얼마든 세금이 없다. 이에 더해 문화적 충족감과 후광도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귀한 투자인가? 9
그리고 현재로서 이와 같은 논리에 기대고 있는 아트테크의 주역은 MZ세대이다. 아트바젤이 낸 2020년 아트마켓 보고서는 미, 영, 독, 중, 멕시코 등 10개국에서 100만달러(11억원)이상 자산가 컬렉터 2,569명 중 56%가 밀레니얼 세대이자 Z세대라는 점을 전한다. 10 또한 크리스티의 21년 상반기 NFT 경매에 등록한 고객 중 73%가 신규 등록자이며, 그 평균연령은 38세로, 정확히 밀레니얼에 걸쳐있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옥션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초부터 2021년 상반기 사이 온라인을 통해 판매된 1,000만원 이하 작품들이 59%거래량을 차지하며, 이들 대부분이 MZ세대의 작업이다. 11 진입장벽이 주식 및 코인보다 높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MZ가 주도하는 수많은 아트테크 오픈채팅방이 도처에 깔려있다. 그 외의 채팅 어플리케이션, 온라인 카페 등의 커뮤니티와 비공식 채널들까지 포함하면 그 양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이들 커뮤니티에서는 일종의 비공식 펀드를 마련하여 미술품을 구매, 이익을 나누는 공동구매방식이 대두 중이다. 누군가는 소위 MZ의 높은 아트테크 참여 비율을 두고, 젊은층이 구세대에 비해 문화적 감식안과 가치를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이는 정반대로 볼 수도 있다. 요컨대 그들이 일체의 문화적 가치 관념 자체가 부재한 채로, 모든 것에 거리낌 없이 투자하는 주체상을 체화하고 있다면 말이다(이와 같은 주체상의 배경과 양상에 대해선 후면에서 보다 상론하기로 한다).
물론 그것은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의 시대 자체가 자산증식의 수단으로서 적극적으로 예술을 호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 신세계 백화점은 적잖은 점포들에서 적게는 수 십 만원, 많게는 수 억 원대에 이르는 작품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올해 5월 3일 롯데홈쇼핑에서 김지희 작가의 원화 작품 12점은 최고가가 900만원대에까지 이르는 작품을 포함하여, 시작과 동시에 완판 되었다. 12 지난 문재인 정부하의 문체부는 ‘미술진흥 중장기계획 2018-2022’을 통해, 미술품 기반 금융제도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미술은행을 통한 미술품 담보대출의 보증’을 명시했다. 더불어 서울옥션은 작품평가액의 50%를 대출액으로 해서 미술품 담보대출을 시행하고 있고, 하나은행은 감정가의 30%로 대출액을 산정하여 담보대출을 준비 중이며 13, 올해 초엔 금융권 최초로 미술품 투자신탁을 개설했다. 14 미술품을 중심으로 자산관리를 해주겠다는 것이 그 골자다. 여기서 우리는 새삼스레- 예술자체가 상품의 순환과 유통이 만들어내는 가치사슬의 한복판으로 소급되게 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핀테크(FinTech)의 로두스섬: 유사 증권화된 예술
한편 주목할 것은 온라인 기술과 금융기법의 결합을 통해 전문적인 아트테크 플랫폼이 약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0년 이후로 ‘소투’ 15, 즉 조각투자를 촉진하는 <아트투게더>, <아트앤가이드>, <아트블록(Tessa)> 등과 같은 어플리케이션 기반 회사들은 기존에 자산가들에게만 해당하던 수 억- 수백억대 미술품 투자의 문턱을 극적으로 낮춤으로써 엄청난 각광을 받아 왔다. 이들 조각투자 플랫폼 중 주요 5개 기업 거래액은 지난 2021년에만 거래액이 500억 이상으로, 올해 총거래액은 1000억이 넘을 거라는 예상이 나올 만큼 극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작품의 소유권을 조각내어 투자할 수 있게 한 것이 조각투자의 핵심이며, 최소금액 1,000원을 한 조각 단위로 하여 접근성을 높였다는 것이 혁신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그리하여 수억대의 작품이 18만 조각으로 쪼개져 판매되는 식이다.
이렇게 미술이 금융의 경계를 밟으며 이에 대한 법리적 해석 역시 첨예해지고 있다. 소유권을 분할하는 구조에만 집중하면 이는 그저 작품의 ‘공동소유’로서, 민법과 상법의 적용을 받겠지만, 투자의 수익 기대와 리스크 감수, 정기적인 현금흐름을 고려하면 그 자체 금융상품인 증권(securities)으로서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작품이 기초자산이 되고, 투자자가 그것의 판매결정을 직접 내릴 수 없는 경우에는 파생상품으로도 간주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 17 음악 역시 핀테크의 파고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뮤직카우>와 같은 음악저작권투자 플랫폼은 투자된 곡별로 저작권료를 배당받을 수 있게 설계되어, 저작권자에게 모종의 목돈을 만들어 주며, 곡들의 실적에 따라 투자자들에게는 일종의 배당금을 수취할 수 있게 한 구조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뮤직카우의 ‘음악저작권료 참여 청구권’은 올해 4월 금융당국에 의해 ‘투자계약증권’으로 승인되었다. 이들은 기업이 대행하던 아트펀드의 기능을 보다 세분화, 자동화하여 개개인이 마치 아트펀드 회사와 같은 작동을 하게끔 한다.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자산가들이 일종의 호사스러운 취미로서 컬렉터로 활동하다가, 이따금 유동성이 부족할 때(즉 당장 가용한 현찰이 없을 때), 자신의 컬렉션을 경매회사에 넘겨, 그 어마어마한 입찰금이 세간의 뉴스가 되는 그런 고전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산가든, 직장인이든, 가정주부든, 대학생이든, 모든 이들이 애초에 자산을 증식할 목적으로 목돈부터 쌈짓돈, 푼돈까지를 들고 작품들에 접근하는 국면이다. 수많은 작가와 비평가들이 동시대 기술의 매체적 존재론에 함몰되어 ‘납작함(flatness)' 타령을 할 때, 기술은 금융기법과 결합하여 전혀 납작하지 않은- 역동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과 인간을 입체적으로 다듬어 온 것이다.
이는 어떤 서사구조를 갖는가? 한국일보의 한 저널리즘적 에세이는 그 인식구조를 웅변적으로 드러낸다. “‘인간의 가장 수준 높은 정신을 감각적으로 구현해 내는 능력’(헤겔) ‘삶의 긍정이자 축복, 삶을 완성시키는 것’(니체) 그런 예술의 환금성과 시장성을 따지는 게 여전히 불편한가. 그러나 예술은 열심히 그리고 만들고 찍어 내는 예술가들의 열정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고 후원해야 한다. 화랑에서, 경매에서, 아트페어에서, 온라인 상점에서 치르는 가격은 신진 작가, 젊은 작가, 가난한 작가에 대한 투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위한 투자다.(...)” 18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식의, 수많은 규칙들이 이미 정립되었다: 1.원로 대가의 회화, 드로잉 등에서 시작하라. 2.판화보다는 사진이 낫다. 3.저평가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여 ‘가치투자’를 하라. 4.구매하려는 작품이 작가의 전체 레퍼토리에서 어떤 맥락과 위상에 있는지를 공부하라. 5. 스스로 안목이 부족할 땐 경매사를 택하라. 6. 안목에 자신이 있다면 갤러리로 가라. 7.미술시장 정보에 대한 전문적 조언자를 옆에 두라. 8.그림 살 때는 대출이 불가하니 여유자금으로만 투자할 것. 9. 1차 시장을 공략하라. 누군가 소장하기 전, 첫 시장가격이 가장 저렴하다. 10. 추천작에 휘둘리지 마라. 등등. 『나는 샤넬백 대신 그림을 산다: 똑똑한 여자의 우아한 재테크』, 『월 10만원 그림투자 재테크』 등의 투자서는 이처럼 수없이 복잡한 공리계로 구축된 미술투자의 기예를 가르친다. 19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술은 환원할 수 없는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이자 소우주를 형성한다는, 고전적 미학은 완전히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예술이 환원 불가능한 차이의 표지이자 소우주가 되려면, 그것을 그 자체로 향유하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지배적인 주체는 그와 같은 ‘차이’의 배면에서 교환가치로 소급되는 ‘동일성’을 발견해낸다.
신자유주의와 초-개인화된 삶의 재생산: 비트코인 = 예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누군가는 예술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고, 혹자는 특정한 형식이 시장과 공모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그보다 결정적인 것은 자본주의가 점차 촘촘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아트테크 현상은 그 자체로 독립된 현상으로 봐선 안 되며, 정확히 한국에선 2010년대 전반에 걸쳐 꾸준히 심화되어온 비트코인-이더리움-도지코인 등의 암호화폐 20/주식/부동산 투자열풍의 연장에서 봐야한다. 희소한 것의 자산화는 자본주의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비트코인을 하면서, 미술품 조각투자를 욕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혹은 작업의 깊이에 대해서 어떤 식견도 없이 푼돈을 들고 달려드는 이들을 조소하면서, 동시대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거리낌이 없는 것 또한 이율배반적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예술은 그 유일무이한 차이의 표지로서의 기능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의사(pseudo-)상품과도 같은 것으로 호명되는 것이다. 21
아도르노의 주장이 무색하게도, 예술의 진리계기를 담보하는 비동일성은 (특히 금융화된 국면의) 자본주의에서는 (더더욱) 지켜지지 않는다. 나아가 그와 같은 예술의 자산화 경향은 모든 것을 투자와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삼고, 개개인을 투자자로 호명해내는 신자유주의와 금융화라는 실재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기실 아트테크에서 전제되고 있는 재테크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그와 같은 금융화된 개인을 전제하는 말이다. ‘재테크’의 영어 상 대응어는 그저 ‘investment’, 즉 ‘투자’이다. 투자는 사업에 필요한 돈과 물자를 대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 기업의 실천이다. 그러나 우리가 ‘재테크’라고 할 때, 그것은 금융수익을 얻기 위해 자산을 투자하는 재무활동으로서 개인이 그와 같은 기업적 실천을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는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기 보단, 미국을 기준으로 하면 60-70년대부터 진행되어온 경향의 심화- 확장에 따른 결과이다.
[그림 1]이윤율의 역사적 동향(미국의 민간경제) 22
20세기 전반기에 미국을 필두로 한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은 과업수행에서의 인간의 동작을 과학적으로 추산하여 효율적인 관리법을 고안한 테일러주의(최적화/표준화/동기부여의 3원칙으로 특징지어지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의 도입으로 테일러주의를 실천한 포드주의, 체계적으로 수직 통합된 기업모형을 고안한 슬론주의 등을 통해 이윤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그것이 한편으론 전후 극적으로 도달된 호황의 근본 원인이었다. 23 [그림 1]의 뒤메닐과 레비가 추계한 1900년부터 1950년대까지의 이윤율의 추세선이 그와 같은 호황의 시퀀스를 보여준다. 그러나 점차 과잉설비로 말미암아 이전만큼의 비율로 투자금을 거둬들이지 못하게 되면서, 유보이윤이 점차 증가하게 된다. 생산영역의 낮은 이윤율 앞에서 기업들이 점차 저축을 늘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시에 60년대 이후의 추세선에서 볼 수 있는 바의 이윤율의 하락에 맞서, ‘공공부문’에 대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공격이 시작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이 국면에서 국가와 자본은 시장메커니즘의 완전균형을 전제하는 경제이념을 필두로 하여, 국가의 재정정책 축소, 감세, 노조에 대한 공격, 공기업/공공부문 민영화, 고용유연화, 전방위적인 규제완화 및 자본자유화 등으로 이윤율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대대적인 시도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동반된 것이 금융화이다. 유보이윤으로서 저축된 돈들은 주식, 채권, 부동산, 펀드 등으로 흘러들어가 금융부문을 비대하게 했으며, 이어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궁지에 몰리게 된 노동계급들에게 대출되는 대금으로 사용되어 왔다(오늘날 대출 혹은 할부 없이 휴대폰, 집, 차, 가전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소득 상위 10%를 제외하곤 없다시피 한다). 그리고 그 빚의 비중은 점차 어마어마한 규모로 확대되어왔고, 금융부문 역시 그 빚에서 나오는 이자로 몸집을 불려나갔다. 금융화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위험을 곡예에 가까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말미암은 2007-8년의 미국 발 세계금융위기 자체가 바로 그 고리에서 터져 나온 것이었다. 당시 미연준은 경기 부양을 위해 초저금리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는데, 이에 은행들이 주택 융자에 대한 금리를 줄여, 집 구매를 위한 대출이 용이해진 것이 그 발단이었다.
이내 내 집 마련의 꿈을 품은 하층계급 노동자부터, 투기를 목적으로 한 중산층과 자산가들에 이르기까지- 수요가 주택에 몰리며 주택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고,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한 금융회사는 어떻든 수익을 내는 구조였기에 주택을 저당 잡아 돈을 빌려주며 주택담보대출을 저신용자(sub-prime)들에게 확장했던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여기서 나오는 이자수익을 묶어 증권으로 판매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경기과열로 저금리 정책이 종료되고, 부동산 수요가 줄기 시작하며 거품이 빠지자 상황이 반전된다. 저금리 국면의 종료와 함께 주담대의 대출금리가 올라 채무자는 상환연장 시 갱신된 금리로 이자를 내야하게 되는데, 여기서 저소득층들은 원리금(원금과 이자)을 못 갚는 일이 비일비재해지고, 저당 잡은 주택 역시 애초에 설계된 증권의 이자를 충당하지 못할 만큼 거품이 터져버린 것이다. 따라서 주담대의 이자 수익을 묶은 증권이 부실화되고, 이 증권을 기초 자산으로 한 각종 파생상품 역시 휴지조각이 되어버리면서, 결국 대형 투자은행들과 보험회사, 펀드회사를 필두로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세계 각국의 산업들이 줄도산을 하게 된 것이다.
이상의 극적인 사례에서 자명하게 볼 수 있듯, 금융화 이전까지 단순히 생계부지 내지 급전이 필요한 상황에서만 간헐적으로 동원되던 가계신용은, 이제 금융기법의 발달과 광고기법의 발달로 말미암아 하나의 일상 문화로 자리 잡기에 이른다. 이미 활성화된 규모를 넘어선 전세자금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은 말할 것도 없고 24, 내구소비재 구입에 으레 따라붙는 (이자를 붙인)할부, ‘신용카드, 마이너스 통장’과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우리가 이런저런 소비재를 구입할 때 이용하는 ‘휴대폰 결제’역시 마찬가지이다. 더불어 매년 한국의 대학생 100명중 10명에서 15명 정도는 계속 학비에서부터 생활비에 이르는 학자금 대출을 이용 중이다. 25 그리하여 문제가 되는 것이 가계부채이다.
[그림 2]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상위 10개국 26
가계부채의 규모를 통해 우리는 현재의 경제가 얼마나 허약하고 위험한지 또한 알 수 있다. 올해 6월에 발표된 국제금융협회 조사에 따르면 22년 1/4분기를 기준으로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2%를 기록, 36개국 중 최대치를 찍었다[그림 2].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가계 전체가 스스로 생산한 재화 규모 이상의 빚 위에 서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림 3]에서 볼 수 있듯, 9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급속하게 하락되어온 가계 저축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 빚더미가 모종의 이유로 구조적으로 상환이 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 귀결이 앞서 살펴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본 것과 같은 식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것은 자명하다. 특히 코로나 이후 보다 심화된 경기침체국면에서 부채는 더욱 증가했고, 인플레를 잡기 위한 미연준의 단독 결정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물가상승 와중에 대출금리가 상향되자, 최근 금융위는 압도다수의 채무자들이 원리금 상환이 구조적으로 불가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대대적인 이자 감면 방안을 발표할 수준에 이르렀다. 28
그리고 이와 같은 부채는 국가와 자본의 수준에서 봤을 때, 엄청난 통치의 기예가 된다. 그것은 인민을 끊임없는 소비의 굴레에 밀어 넣고, ‘빚투’에서 나타나듯 능력 이상의 투기를 하게 할 뿐더러,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노동을 연장하게 하기 때문이다. 빚을 갚으려면 직장에서 제 아무리 부당한 조건에 내몰려도 묵묵히 자신의 조건을 감내하며, 스스로의 고삐를 죄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내가 투자한 기업에서 파업이 일어나거나 급진적 정책이 시행되는 것을 참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금융화의 진척과 함께 사회운동 전반, 나아가 급진적 변혁운동 전반의 쇠락이 있어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림 4] 서울시 아파트 3.3m당 가격 추이(2003-2018) 29
다른 한편으로 실질임금의 정체와 하락은 재테크의 실천을 부추기고, 합리화해왔다. 바로 이러한 조건에서 M-M'를 취하고자 하는 금융화된 주체가 등장하게 된다. 마르크스가 도식화한 자본의 일반공식은 기본적으로 산업자본의 것으로, M-C-M'의 구조를 가진다. 이 도식은 화폐를 투입하여(M) 기계, 설비, 재료 등의 고정자본과 노동력 상품을 구매하고(C), 노동력가치의 탄력성을 이용하여 잉여가치가 추출된 상품을 생산한 뒤, 그것을 시장에 판매함으로써 가치의 실현과 동시에 더 큰 화폐를 손에 넣는 과정(M')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는 대부자본의 편에서 바라본, 요컨대 이자 낳는 자본의 공식 M-M' 구조 역시 언급한 바 있다. 금융화된 세계에서 모든 주체는 적극적으로 M-M'의 실천에 참가한다. 그리고 이는 세계 전반의 물신성(fetish), 나아가 물화(reification)의 심화를 암시한다.
산업자본의 편에서 바라본 도식은 가치 생산의 흔적이나마 보존하고 있지만(C), 대부자본의 편에서 바라본 도식은 그야말로 어떤 실물의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어딘가에서 더 큰 크기로 불어나 돌아온 마법 같은 과정이기 때문이다. 31 그리고 이 M-M'의 실천은 오늘날 편재하는 주식/펀드/채권/파생상품/코인/부동산/미술품 투기의 매순간마다 관철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합당한 것이기도 하다. 2000년대 이후의 서울시 아파트 가격 상승 추이를 보여주는 [그림 4]와, 2000년대 이후의 실질임금 하락 추이를 보여주는 [그림 5]가 선명한 대비를 통해 보여주듯, 가계의 노동소득만으로는 내 집 마련, 내 차 마련이라는 것이 옛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재테크는 엄청난 소득불평등을 만회하기 위한 인민의 처절한 사투이기도 하다. [그림 6]은 노동, 자본, 토지 등으로부터 나온 소득 일체, 즉 사회 전체에서 분배된 소득의 집중도를 보여준다. 32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은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약 45%를 차지했다.
[그림 6] 세계 상위 1%, 상위 10%의 소득점유율 33
이런 조건에서 나타나는 심상은 간단하다. 소위 ‘건실한 삶’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산을 굴려 자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의 말대로, 내가 돈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 고교생, 심지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건물주가 꿈’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와 같은 경향의 표현이다. 그리하여 매일 매일의 증시, 금융시장 등의 소식을 좇지 않는 것은 게으른 것으로까지 인식된다. 웬만한 투자 컨설팅 전문가들은 으레 다음과 같은 잠언으로 경종을 울린다. ‘게으르게 전세하지 말고 월세를 하라’는 것이다. 전세에 들일 목돈으로 현명하고 근면하게 투자를 하라는 것이 그 골자이다.
빚 갚는 주체와 카지노하는 주체의 동일성
달리말해, 금융화의 한편에는 빚 갚는 주체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카지노하는 주체가 있다. 보다 공식적인 표현으로, 한편에는 채무자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채권자/투자자가 있다고 해도 좋다. 양자는 분리되기도 하다가, 완전히 중첩되기도 한다. 투자와 혼연일체가 된 대중의 심상을 예표하는 ‘빚투/영끌’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예컨대 대학생이라면 학자금 생활비 지원 대출을 받고, 자영업자라면 소상공인 코로나 안정자금대출을 받은 채, 더 안 좋게는 제3금융권에까지 대출을 당겨와- 영혼 까지 탈탈 털어 빚을 낸 뒤 그것으로 코인/주식/미술품 등에서 카지노를 하는 것이다. MZ세대가 미술품 조각투자를 주도하는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금융화 이후 세계의 변화 양상이 순수하게 집약되는, 신자유주의적 주체이자 동시에 희생양의 순수표본이 바로 MZ세대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그 과정은 전두환 정권 때부터 진행되어오다, 87년 이후로 박차를 가해왔다. 80년대 초 주요은행들의 금융자율화를 명목으로 민영화가 추진되었고, 87년에는 한전과 포항제철의 민영화 방안이 발표되며 34, 동시에 투자신탁회사, 생명보험회사, 카드회사 등이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부터는 금리자유화 조치가 시행되었고, 주식시장이 외국인투자자들에게 개방되었으며, 금융 자율화 및 개방으로 외국 증권회사들이 한국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금융자산과 부채 역시 급격히 증가해왔다. 35 이런 와중에 97년 IMF사태가 터졌고, 정부는 완전히 침체된 민간경제를 살리기 위해 98년 ‘내수진작 종합대책’을 내놓는데, 이는 신용카드의 수수료 인하 및 인출한도 확대, 내구소비재 할부의 금리 인하, 주택담보대출의 활성화를 골자로 하고 있었다. 즉 더욱 적극적으로 빚을 내어 소비함으로써 수요를 충당시키겠다는 것이었다. 36 한국은행은 기업위주로 조직된 대출법령을 완화하여 가계대출을 적극 권장했다. 그 결과 경제활동인구 1인당 신용카드 평균 보유수는 1999년 1.8장에서 2020년 3.9장으로 2배 이상 증가했고, 97년 GDP대비 약 50%선이던 가계부채는 이제 100%를 뛰어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늘어나는 빚을 탕감하기 위해 더욱 카지노에 의지하는 경향이 심화되었음은 자명하다. 그리하여 2000년대 중반의 투기 열풍은 한 세대를 거쳐 2010년대 후반 다시 MZ에 의해 가열되어 왔던 것이다.
정리해보자. 금융화는 1.실물투자의 쇠락과 부진. 2.기업의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 증가 및 금융수입의 증가 3.(앞서의 항과 관련하여, 실물투자에서의 동력 상실과 더불어) 고용 유연화 4.소득불균등 확대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결과이며, 이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생활세계의 금융화란 결국 전 국민의 (카지노)플레이어화/빚쟁이화이다. 그러나 작가들의 실천에서 그 영향을 직접 느끼기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응축(condensation)과 전치(displacement)를 거쳐, 무의식의 수준에서 전연 다른 방식으로 관철되었기 때문이다.
불안정의 정동과 신생공간, 그리고 예술노동
따라서 작가들의 실천에서 금융화의 영향을 발견하는 것은 일종의 도약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헤게모니적 정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명실상부 그것은 불안정성과 관련된 것이다. 이는 생명보험, 장기손해보험, 상해보험 등을 포괄하는 민간의료보험시장의 규모가 우선적으로 증명한다. 사회 어디서도 삶의 안정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개개인은 각자의 자산 현황에 맞춰 자력으로 시장적인 해결을 도모하며, 그것은 기본적으로 보험에의 수요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규모는 2001년 4조 5,803억원에서, 2011년 27조 4,000억원, 2016년에는 40조원 가량으로 불어왔다. 37 이에 더해 자기 계발하는 주체의 귀결로서 FIRE(Financial Independence+Retire Early)족과 그에 대한 반동으로서의 YOLO(You Only Live Once)족을 보자. 양자 모두 동시대 특유의 ‘불안정성’에 대한 반응의 결정체로서, 한편에는 편집증적이리만치 치밀한 생애주기 설계로 계획 하에 ‘정상궤도’를 밟아가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일종의 자포자기로서 생존을 위한 무수한 실천과 규범으로부터 아예 이탈하여 현재만을 사는 유형이 있다.
이 불안정성에 주목할 때, 우리는 의미심장하게도 생존형 투기열풍이 심화되어왔던 2010년 중반기 국면의 한복판에서 동시에 주목받기 시작한 2014-2015년의 ‘신생공간’을 규정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즉 신생공간은 이미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자식이었다. 그들은 오늘날의 세계가 열어놓은 불안정성에 반응했다. 그리하여 여타의 ‘이념과 노선’이 아니라, ‘생존’자체가 전면화 된, 기이한 공간 경향이 나타났던 것이다. 알다시피 신생공간의 특징은 ‘기회추구’에 있었다. 90년대의 대안공간이 모종의 제도 외부성을 표방하며 각 공간 특유의 기획과 지향들을 갖는 특징을 가졌다면, 2010년대의 신생공간은 어떻게든 제도의 바지자락이라도 붙잡기 위해 일단 작업을 내고 보는, 모종의 생존신고 외에는 이렇다 할 지향이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당시 이슈가 되었던 강정석의 글이 소급적으로 증명하듯, 실상 그들을 연결하는 것은 SNS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38
그 연장에서 신생공간의 주역들이 ‘청년관’이라는 나이브한 기획에 공명했던 것은 바로 그와 같은 금융화된 일상이 전제하는 불안정성이 만들어낸 굴절된 렌즈효과에서 연원한 것이었다고 해도 좋다. 39 그리하여 그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신설되어야 할 새로운 ‘관’이 왜 극빈층 작가, 내지 여성, 퀴어, 혹은 지역작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필 ‘청년’이어야 하는지, 설령 시각장의 세대교체가 이미 이뤄졌다 해도 그것을 당시 임근준의 주장대로 기성 작가들이 부러 외면했던 것인지 등은 반성하지 못한 채 생존을 위해 자그마치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돌이켜 보면 그 예술행동의 영어로된 부제가 "Save the Museum"이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 자리에 "Museum" 대신에 'us'를 넣으면 모든 것이 해명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Save us"). 그러나 그 삶의 실존적인 불안을 ‘기성의 꼰대작가’와 ‘우리의 작업을 몰라주는 국립현대미술관’에 투사한 것이 청년관의 패인이었다. 결국 방향이 잘못 잡힌 운동이 으레 그렇듯,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은 등장한지 채 5개월도 되지 않아 2015년 4월 이후로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예술노동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아사에 가까운 죽음이 기폭제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금융화의 제반 메커니즘 형성이 대강 완결된 2010년대 이후로 예술노동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일견 노동의 범주를 확장적으로 사고하는 급진적인 기획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그 기저에는 ‘생존’을 위해 예술의 사회적 유용성을 처절하게 어필하는 수세적인 절규가 있었다. ‘예술의 부흥은 선진국의 지표’, ‘예술의 지원과 노동자성 인정이 결과적으로 사회에 더 큰 수혜로 돌아올 것’ 등등으로 이어지는- 예술노동론을 뒷받침했던 수많은 이데올로기적 구절들을 떠올려보라. 예술인 복지/작업환경 개선을 비롯, 예술노동론을 의제로 활동하는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실질적 전신이었던 2011년의 집담회 “밥먹고 예술합시다”는 예술노동론이 모종의 불안정성에 대한 반응이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것은 한때 예술가들이 이념 지향으로 모여, 준 정치조직의 성격이 짙었다면 40, 이제 금융화된 세계에서 예술가들은 ‘생존’ 지향으로 모여 모종의 조합주의의 실행자가 된다는 사실을 예표했다.
그러나 예술노동 및 예술인 처우개선과 관한 한- 쟁점이 되어야 할 것은 ‘예술인’에 대한 차등적인 복지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질서에서 이탈된 자들을 품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의 건설이자 그것을 가능케 할 보편적인 운동을 조직하는 일이다. 나아가 다시는 사회안전망과 공유지를 이윤의 원천으로 삼을 수 없도록, (벤야민 식의 은유를 빌자면) 자본주의적 역사의 시계를 폭파시키는 일이다. 애초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금융화 경향 자체가 이윤율 저하에 맞선 자본의 공격의 일환으로 기획되어온 경향임을 감안한다면, 사회안전망을 건설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이윤원리’를 생산하며, 그것에 공모하는 현실의 모든 물질적 실천들을 낱낱이 비판하고 지양시켜 내야하는 것이다.
총체적 매개의 심화, 그리고 가능한 외부
한편 금융화와 동시에 미술의 제도/시장으로의 매개가 심화되어왔다. 이는 1. 자산가/중산층/관람대중의 증가, 2. 실물경제의 이윤율이 하락하며 쌓인 유보금이 금융과 동시에 새로운 투자처로서의 미술장으로 흘러들어와 시장과 제도를 팽창시킨 것, 3. 정치적 전위와 공명하는 아방가르드의 이념이 쇠락하고, 예술이 위험한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컨텐츠로서 지원되어야할 대상으로 현상하게 된 것 등이 큰 요인이다. 물론 3번의 항-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몰락과 예술제도의 심화 사이의 선후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달리말해 제도/시장의 매개가 심화되었기에 아방가르드의 몰락이 있었던 것인지, 혹은 아방가르드의 몰락을 틈타 제도/시장이 촉수를 뻗은 것인지의 여부는 모호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과 서유럽을 기준으로 하면 아방가르드의 몰락과 제도/시장의 확장이 6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상황주의 등등의 급진적 예술조류가 당대 그들의 활동 와중에 시장에 팔리는 것, 혹은 국가예산에 얽매여 있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컨대 도시를 무목적적으로 거닐며 스펙터클에 매개된 감각에 균열을 내는 표류(dérive)의 실천을 위해, 기 드보르가 구슬땀을 흘려가며 예산 기획서를 작성하는 장면이 상상되는가? 혹은 한국의 역사적 아방가르드라 할 법한 민중미술의 오윤이 예술지원을 위해 작업을 들고나가 심사를 받고 있는 상황은? 정확히 그들의 힘이 쇠락함과 동시에 지원과 제도화는 심화되었다.
미국을 기준으로하면, 60년대 중반 이후 연방정부, 주정부, 기업, 재단에 의한 예술의 지원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연방예술기금의 지원 금액은 66년 180만 달러에서 83년 1억 3,100만 달러로 증가했고, 기업 지출은 2천2백만 달러에서 4억 3천6백만 달러로 증가했으며, 펀드는 3,800만 달러에서 82년 3억 4,900만 달러로 증가했다. 동시에 좀처럼 팔리지 않던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작업들이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41 예술은 힘이 빠졌고, 시장과 제도는 관용의 폭을 넓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술이 국가/시장을 벗어나 생산되는 케이스는 점차 소멸되게 된다(이 대목에서 모더니즘의 소멸 혹은 상황주의를 기점으로 한 (서구)아방가르드의 소멸과 미술시장의 팽창 및 제도 심화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80년대 후반부터 박차가 가해진 금융화와 더불어, 화랑(갤러리)은 (70년대에 차츰 생겨나기 시작하나) 실질적으로 90년대에 그 설립이 가속화 되었으며, 2000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2008년 기준 121개 화랑 중 43%가 2000년대에 설립되었다. 42 그리고 2020년 기준으로는 503개의 화랑이 운영 중으로, 불과 10년 사이에 두 배 이상의 성장폭을 보였다. 경매회사는 2008년 기준 총 9개로, 2개는 90년대 후반에, 나머지 7개는 2000년 이후 설립된 것이다. 아트페어 역시 90년대 활성화 되어, 2000년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총 29개중 21개가 2000년대 들어 개최된 것이다. 아트펀드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2006년에 처음으로 운용되었으며, 2008년 말 4개 운용사에서 5개 펀드가 운용되었다. 당시의 미국발 금융위기에도 끄떡없이, 2009년 말에는 하나의 펀드가 운용 완료되었고, 총 5개 운용사에서 7개 펀드가 운용되었다. 그 규모 또한 불과 1년 만에 불어나, 2008년 5개 펀드의 순자산총액이 672억이었던데 비해, 2009년 6개 펀드의 순자산총액은 1003억에 달했다. 43 그리고 동시에 결코 팔릴 수 없을 것 같았던 민중미술들이 팔리게 된다(60년대 후반의 제도화와 더불어 당대 미국적 전위였던 추상표현주의가 시장으로 빨려 들어갔듯).
그리하여 동시대 미술의 한편에는 금융화된 시장과 주체로 말미암아 무차별한 동일성이자 자산으로서 호명되는 예술이 있고, 한편에는 그에 직간접적으로 기댄 채 국가에 의해 세탁된 기금에 의존하는 예술이 있게 된다. 작가/비평가/큐레이터를 막론하고, 하고 싶은 작업이 있어도 프로젝트 심사에서 떨어지면 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며, 반면 하고 싶은 작업이 없어도 매 분기의 기금을 놓칠 수 없어 관성적으로 작업을 기획하여 낸다. 미술사를 의식한 채 무언가 실험하고 고민하는 입장에서라면 시장지향보다는, 그나마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후자를 선택 하는 것이 나을 것이나(나 또한 예술지원 사업을 통해 국가의 돈을 타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이러나저러나 그것이 총체적 매개의 심화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2000년대 전반에 걸쳐 관에 매개된 예술실천을 비롯한 미술시장의 팽창이 있었던 시점과, 2000년대 후반 이후 미술투자의 물화된 방법론이 결산되어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 겹친다는 것은 정확히 동일한 것의 다른 표현들이다. 44
그렇다면, 본 글의 제목에서 언급했듯, 가능한 자유의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 요컨대, 위와 같은 조건에서 예술가가 자유를 구하고자 한다면, 그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여기서의 가능한 저항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그와 같은 흐름은 기본적으로는 일정 수준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로 보인다.
1. 동시대 미술의 담론장에서 암묵적으로 나름의 ‘전위적’ 매체로서 최전선을 형성하는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은 서양화/한국화 등에 비해 객관적으로는 경매/아트페어/펀드 등을 포괄하는 미술시장 전 영역에서 여전히 판매실적이 최하위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미술 자체의 자기의식을 보존하려는 충동으로서, 시장화에 대한 무의식적 반발로 보인다.
2. 1의 심화 확장의 차원에서, 작가들 수준에서는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 식의 전략도 유효할 것이다. 금융화된 세계에서 미술은 그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전혀 의심받지 않는, 물화된 오브제가 된다. 마치 상품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파로키는 실체화된 이미지를 비롯하여, 상품에 대해, 그 생산과정 자체를 날것으로 조명함으로써 탈신비화를 꾀하고자 했다. 예컨대 완벽한 광고이미지를 생산하기 위한 촬영의 현장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어떤 편집과 절취, 선택이 존재하는지를 조명함으로써 그들이 모종의 사회적 관계임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을 비롯, 일군의 작가들이 전용하는- (이미지가 생산되는 과정 자체를 다시금 메타적으로 촬영하는 식의 구조를 지닌) 이미지의 이데올로기 비판이라 할법한 전범을 만들어 냈다. 어쩌면 동시대의 작가들은 예술의 생산과정 자체에 대해 그와 같은 작업을 할 때가 된지도 모른다. 예술 자체가 왜 사회적 관계일 수밖에 없는지, 그것이 주조되는 과정 자체를 날 것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누군가 조각투자를 시도하는 와중에 그와 같은 작업을 떠올리고, 조금이라도 망설이거나, 모종의 분열증을 느낀다면, 그와 같은 전략은 절반은 성공한 셈이라 하겠다.
3. 한편으론 역사에 대한 인식이 중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작품의 거래가 아무런 반성 없이 투기성으로 이뤄질 때, 우리는 그것을 마치 현무암과 화강암, 주상절리의 파편들을 가져와, 역사의 퇴적물들을 사고파는 기이한 광경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와 같은 외부적 시선을 담보해야 그 물화된 현상 형태에 속지 않는다. 45 그리고 이는 비평가를 비롯, 작품 수용자의 과제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물화된 경전적 역사가 아니라, 운동하는 역사의 흔적으로서 작업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연장에서 미술사와 역사유물론적 관점을 결합하는 작업이 긴요해 보인다. 역사유물론은 모든 실체화된 것을 사회적 관계로 해소하며, 물신을 거부하는 역사에 대한 이론이다. 이것은 이행의 시간에 대한 고려가 없이 그저 삽화적이고 연대기적인 사건의 나열으로 정체될 수 있는(바로 그렇기에 때로 시장과 공모하고 마는) 미술사의 공백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4. 아도르노는 20세기 전반기에 대두한 문화산업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문화상품의 수용에서 사용가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교환가치에 의해 대체되며, 향유 대신에 표를 사서 공연장에 참석한다는 사실 자체나 어떤 예술분야의 잡다한 정보에 정통하다는 것이 더욱 중요시된다. 진정한 애호가나 감식가 대신에 명예를 얻으려는 자들만이 들끓는다.” 46 이제 우리는 문화산업이 아니라 고급예술에 대해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래 예술은 자본주의적 노동생산물로서의 상품은 아니다. 따라서 그것이 사용가치를 지닌다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예술의 유용성이란 여타의 재화들이 가지는 구체적 유용성, 쓸모와는 관계없는, 예술 자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종의 자산이자 유사상품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 체계적이고 벗어날 수 없는 바의 가격을 가지게 된 이상, 우리는 예술의 교환가치와 더불어 그 사용가치를 논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나의 지적기획으로서, 예술의 사용가치를 사수하는 것이 나름의 저항일 수 있지 않을까. 라캉이 안전하게 통속화되고 물화된 정신분석학에 맞서 ‘다시 프로이트로 돌아가자’고 했듯이, 다시 예술 본연의 사용가치라 할법한 것에 어울리게, ‘감상으로 돌아가자,’는- 모종의 감상 부흥운동을 해볼 수도 있겠다.
5. 또한, 본 지면에서 깊게 상론하지 못했지만, 금융화의 맞짝은 비정규직이다. 47고용유연화를 비롯, 하락한 실물부문의 이윤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갖은 시도의 연장에서 파생된 자산가들의 빚놀음이 바로 금융화이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아트페어 35개중 총 종사자 353명에서 65.1%가 비정규직이다. 더불어 503개 갤러리 종사자 1375명 중 약 40%가 비정규직이다. 달리말해, 우리가 이 장(field)에서 활동하면서 마주치는- 소위 '실무 담당자’ 중 대강 절반이 비정규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떤 예술노동론자들도 기관을 지탱하는 실제 ‘노동자’들의 근무조건에 대해 의제를 제기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는 것은 새삼 놀랍다.
6.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화와 그 상이한 계기로서 예술의 자산화/신생공간/예술노동론 등의 현상들을, 그리고 당분간 계속해서 다채롭게 터져 나올 예술계의 이런저런 증상들을 전체 자본주의 발전의 한 국면으로 내속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침범당하는 자율성, 불안정성에 내던져진 삶 등의 실재가 비단 예술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전체를 규정하는- 현재 자본주의적 조건이 도달한 모순적 실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런 지평에서만이, 반(anti-)신자유주의 나아가 반자본주의의 기획과 예술적 실천을 관련지을 수 있으며, 미술사가 힘없이 시장을 위한 수사학으로 미끄러지고 전유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가능한 저항은 여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2022.7.23.
- ‘빚내서 투자’의 준말로, 2020년 후반에 생긴 신조어이다. 2000년대 초반에 등장했던 ‘빚테크’와 동일하게, 심화된 금융적 기제에서 연원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 ‘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의 준말로, 2020년 후반 주식/부동산/비트코인 투자 열풍과 더불어 금융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본문으로]
- 이것이 과장처럼 여겨진다면, 대중적인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기생충에 대한 한줄 평-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문구가 얼마나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는지 떠올려보라. [본문으로]
- 가령 올해 이어령의 사망 직후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수많은 저작들을 보라. 요컨대 피카소의 죽음과 동시에 그의 작품 소유자들이 눈물을 훔치며 경매장으로 달려갔을 것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본문으로]
- ‘Art Tactic’이란 말 그대로 ‘예술 전략’을 의미한다. 말 자체만 놓고 보면 기성의 미술흐름을 비판하는 아방가르드의 첨예한 방법론에 관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나, 이때 ‘전략’은 시장과 재무를 향한 것이다. [본문으로]
- Noah Horowitz. Art of the Deal: Contemporary Art in a Global Financial Market.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1. p.144. [본문으로]
- 이들의 수익구조는 펀드 구매자들의 목돈을 모아, 모종의 기금을 마련하고, 그 돈을 굴려 미술품에 투자하여 차익을 얻는 것이다. 파인아트그룹의 파인아트펀드는 여전히 평균 7%이상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파인아트그룹이 운용한 파인아트펀드 1호는 초창기에 연 수익률 약 50% 가량을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다. [본문으로]
- 이 지수는 1875년 이후의 경매데이터를 취합하여, 특정 경향의 작품이 시장에 도입되었을 때 언제 어느 선에서 가격이 결정되어 왔는지를 추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마디로 미술시장의 트렌드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 그러나 (경매)거래 수수료가 10%-20%가량 되며, 환금성이 낮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려주지 않는다. 더불어 무수한 아트펀드 회사들이 으레 내걸곤 했던 목표 수익률(10-20%)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마이너스 수익으로 시장에서 퇴출되어왔다는 사실 역시 알려주지 않는다. [본문으로]
- Clare McAndrew. "Global Wealth and Collector Perspectives" in The Art Market 2021. Art Basel and UBS, 2021. p.287 참조. 물론 여기서 압도적인 파이를 차지하는 것은 Z세대보다는 밀레니얼 세대이다. [본문으로]
- 양승준. “GD도 RM도... 주식 대신 그림 사는 MZ세대.” 한국일보. 2021.7.16. 오전 4:30 게시. 참조. 2022.7.22. 오전 1:09 접속. https://url.kr/fugawq [본문으로]
- 이는 ‘작품’이 갖는 희소성 자체에 대한 물신, 상품에 아우라를 불어넣는 홈쇼핑 특유의 기예, 대기업의 홈쇼핑에서 다룰 만큼 공신력 있는 작가라는 소비자들의 믿음(따라서 아트테크가 가능한 작가라는 믿음)이 작용한 결과였다. [본문으로]
- 물론 은행으로부터 미술품 담보대출이 시행된 것은 오래전의 일이나, 그것이 한동안 거의 사장되었다가 최근의 금융화 경향과 더불어 다시금 대두되는 맥락이 중요하다. [본문으로]
- 김유신. “"50억 그림 같이 사실 분"…부자들 전용 미술품투자 신탁 나온다.” 매일경제. 2022.2.27. 오후 6:15 게시. 참조. 2022.7.22. 오전 1:30 접속. https://url.kr/pomivy [본문으로]
- 소액투자’의 준말로서, 2020년 후반의 투자열풍과 함께 등장한 개념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 조각투자 플랫폼을 둘러싼 법리적 해석이 첨예한 가운데, 올해 4월 금융위원회는 ‘조각투자 등 신종증권 사업 관련 가이드라인’을 내놓아 조각투자 플랫폼의 ‘증권성’에 따른 규제 범위를 적시했다. [본문으로]
- 파생상품이란 증권, 주식, 채권 혹은 현물 등의 상품을 기초 자산으로 둔 채, 그들의 가치변동에 따라 이익이 생기는 금융상품을 말한다. 심지어 바람, 강우, 기온 등의 날씨에도 적용하여 거래될 수 있는데, 예컨대 미국에서 ‘허리케인 피해가 발생하여 주정부의 긴급구호자금이 필요할 때, 일정 규모 이상의 주정부 채권을 사들이기로 한 거래’ 자체가 하나의 금융상품이 되는 식이다. [본문으로]
- 최문선. “[최문선의 욜로 라이프] 미술품 투자, 즐겁고 보람되지 아니한가.” 한국일보. 2017.3.15. 오전 4:40 게시. 2022.7.22. 오전 2:39 접속. https://url.kr/jvnwex [본문으로]
- 윤보형. 『나는 샤넬백 대신 그림을 산다: 똑똑한 여자의 우아한 재테크』. 중앙북스, 2020.; 한혜미. 『월 10만원 그림투자 재테크』. 쌤앤파커스, 2021. [본문으로]
- 한국 최초의 암호화폐 거래소는 2013년 4월에 개장한 <코빗>이었다. [본문으로]
- 예컨대 특정 디자이너와 콜라보를 하여 한정판으로 내는 나이키 운동화의 구매권을 쥐기 위해 줄을 서서 응모하는 광경을 떠올려보라. 예술은 존재자체가 그와 같은 ‘한정판’이다. 적절한 장치만 주어진다면 그것이 의사 상품으로 전화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본문으로]
- 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김덕민 역. 그린비, 2009. 34쪽. [본문으로]
- 전쟁 시 막대한 잉여가 군비증강에 돌려짐으로써 생산적 투자에 투입되는 비중이 줄어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가 늦춰지고, 전쟁의 파고 속에서 살아남은 자본이 낮은 가치로 평가된 고정자본들을 흡수하며 이윤율의 걸림돌이었던 기계설비가 새롭게 집계된 것이 또한 전후 고이윤의 요인일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 조귀동. “[단독] 올해 전세대출 평균 금액, 작년보다 21% 늘었다.” 조선비즈, 2021.11.11. 오후 2:33 게시. 2022. 7.22. 오후 2:59 접속. https://han.gl/BjOvM [본문으로]
- 현재는 한국장학재단이 학자금 대출 업무 전반을 관장하며 사그러든 추세이지만, 일전 2000년대 하반기, 은행 등의 금융회사들이 학자금 대출 업무를 위임 받았을 때는, 여기서 발생한 채권을 묶어 ‘학자금유동화증권; 학자금대출증권(SLBS; Student Loan Backed Securities)’으로 판매하며 증권투자를 권하는 국면이 있기도 했다. SLBS는 한마디로 대학생들의 미래 소득을 통해 금융회사와 투자자들이 배를 불리는 수익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본문으로]
- 신지환, 이상환. “한국, 가계부채 〉GDP… 세계 36國 중 유일.” 동아일보 비즈N. 2022.6.7. 오전 3:00 게시. 2022.7.22. 오후 3:15 접속. https://url.kr/jlmxck [본문으로]
- 박종규. 『한국경제의 구조적 과제: 임금없는 성장과 기업 저축의 역설』. 한국금융연구원, 2013. 9. 현재 가계 저축률은 2010년대 이후 다시 상승국면에 있으나 이전의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본문으로]
- 전슬기. ““세금으로 코인 빚 갚아주나”...금융위 “원금 탕감은 없다.”” 한겨레, 2022.7.18. 오후 4:37 게시. 7.19. 오전 2:51 수정. 2022.7.22. 오후 4:47 접속. https://url.kr/lq4kzn [본문으로]
- 김유림. “대한민국 집값, 15년의 기록: 세종 4배, 서울 2.2배 올랐다.” 신동아, 2018.10.17. 오후 5:00 게시. 2022.7.22. 오후 5:10 접속. https://url.kr/j3gnk2 [본문으로]
- 류난영. “정부, 올해 임금상승률 5%대 예상.” 뉴시스, 2012.4.26. 오전 5:00 게시. 2016.12.28. 오전 12:34 수정. https://url.kr/ueao4c [본문으로]
- 동시대의 합리적인 시민들이 무당을 비롯한 각종 무속인들에 심취한 이들을 비웃으면서 한편으로는 비트코인과 주식에 열광하는 것이 기만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산업자본 우위의 헤게모니가 의심 없이 관철되던 시기에 마르크스가 파악한 상품물신이 1.0 버전의 주술이라면, 금융화는 사회 전체에 걸린 자본주의적 주술 2.0이라 해도 좋다. [본문으로]
- 이것이 자산가치가 아니라 ‘소득’으로서 유량(flow)으로 집계된 것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저량(stock)으로 집계된 자산불평등은 보다 극적이다. 2011년 기준으로 상위 10%가 58.21% 만큼의 부를 차지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이정훈. “코로나로 불평등 가속...상위 10% 자산, 하위 50%의 190배.” 한겨레, 2021.12.8. 오전 5:04 게시. 12.9. 오전 2:35 수정. 2022.7.22. 오후 7:39 접속. https://url.kr/hwnebp [본문으로]
- 이경원. “[단독] 한국 소득불평등 맨 얼굴 국제DB 통해 첫 공개.” 국민일보, 2014.9.12. 오전 4:03 게시. 2022.7.22. 오후 7:08 접속. https://url.kr/so5rv7 [본문으로]
- 이후 한전의 민영화는 한동안 반대에 부딪혀 답보상태에 있었으나 97년 IMF의 구조조정안과 동시에 재개된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6개 자회사로 분할 시도가 있었고, 이명박 정부 하에서 인력 감축 및 봉급 삭감 등 구조개편이 추진되어왔다. 그리고 최근 윤석열 정부 하에서 다시 민영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본문으로]
- 비금융법인의 실질금융자산과 부채 추이를 비롯, 주식시장을 비롯한 한국 금융부문의 성장과정을 자세히 추적한 다음의 작업을 참고하라. 김의동. “한국경제의 금융화 추세와 함의: 1987년 이후 추세를 중심으로.” 『경제연구』 제 22권(3). 2004. [본문으로]
-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송명관. “87년 체제와 대중의 금융화.” 『진보평론』, 제77권(2), 2017. [본문으로]
- 각 통계치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김계현, 신성철. 『민간의료보험의 유형별 영향에 관한 연구』. 의료정책연구소, 2006. iv쪽.; 최기춘, 이현복.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의 역할 정립을 위한 쟁점.” 『보건복지포럼』 제 248호(6), 2017. 31쪽.; 정형준. “민간의료보험 실태와 문제점.” 『월간 복지동향』 제 244호(2). 2019. 5-13쪽. [본문으로]
- 강정석. “서울의 인스턴스 던전들.” 반지하 홈페이지, 2015. 5.27. 오후 8:16 게시. 2022.7.22. 오후 9:38 접속. “SNS의 타임라인을 통해 상대적으로 쉽게 효과적 홍보가 가능해졌다. 괜찮은 로고만 만들어두면, 엉뚱한 곳에서 일을 벌여도 된다.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만큼 홍보하고, 사용자들의 개별 타임라인에 친근하게 파고든다. 이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매우 적어졌다. 지도 앱의 그래픽을 통해 이동하는 걸 즐기게 된 사람들 덕에, 구석진 곳[9]에도 관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생공간’들은 활동하기 시작했다. 사실 대부분의 신생공간은 SNS와 지도 앱을 기반으로 한 공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https://han.gl/ldEOG [본문으로]
- 당장 ‘청년관’의 기획 자체의 발의가 2014년 12월에 있었던 신생공간 주도의 좌담회 <안녕 2014, 2015 안녕?>을 통해 이뤄진 것이었다. [본문으로]
- 서울에서 그와 같은 ‘정치적 예술가’들의 명맥은 90년대 후반 <아트스페이스 풀>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며 포스트 민중미술 내지 사회지향적 의제를 지닌 채 활동했던 <포럼 A>(1998-2005)를 기점으로 끊겼다고 해도 좋다. 현재로선 강주영, 김선영, 김효영, 서평주, 진세영 등이 조직하고 있는 부산의 <공간 힘>(2014-)이 그 계보를 동시대 장에서 맥락화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간 힘>이 다뤄온 전시 범위는 여성의 생산노동에 관한 것에서부터[<끈적이는 바닥>(2022 5.10-6.10)], 난민과 국민국가의 한계[<존경하는 ( ) 여러분>(2022.6.21-7.17)], 자연과 문화(혹은 인간)의 관계[<하민지 개인전: 짐승이 산다>(2014.10.17-10.31)], 플랫폼 자본주의의 양상[<픽셀화되는 세계>(2021.9.28-10.24)], 제국주의의 문제[<주피터프로젝트>(2021.12.3-12.30)]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본문으로]
- 다이아나 크레인. 『아방가르드와 미술시장』. 조진근 역. 북코리아, 2012. 19-23쪽 참조. [본문으로]
- 183개 화랑 중 121개 화랑의 응답을 반영한 결과이다. 자세한 내용은 각주 43번의 보고서를 참고하라. [본문으로]
- 문화체육관광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조사결과요약." 『2008년도 미술시장실태조사』. 2010. [본문으로]
- 예컨대 2006년 이후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다음과 같은 저작들을 보라. 김순응. 『돈이 되는 미술: 성공하는 미술투자 노하우』. 학고재, 2006. ; 박정수. 『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 비엠케이, 2007. ; 정일주, 민병교, 이나연. 『그림으로 30억을 번 미술투자의 귀신들』. 이지북, 2008. ; 론 데이비스. 『론 데이비스의 미술투자 노하우』. 아르타, 2008. ; 한국미술투자연구소. 『2009 미술투자 가이드북: 아트스타 200인 철저분석』. 아트인베스트, 2009. ; 박상용. 『미술시장 뒤집어 보기: 거꾸로 읽는 미술투자 노하우』. 오픈아트, 2009. [본문으로]
- 이때 외부란 ‘초월적 시선’으로 내재성을 벗어나는 것이라기보다는, 제임슨적 의미에서 ‘안과 밖’, ‘현상과 본질’ 등의 해석학적 모델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본문으로]
- M. 호르크하이머, Th.W.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 김유동 역. 문학과지성사, 2001. 238쪽. [본문으로]
- 문화체육관광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21년 미술시장조사(2020년기준)』. 2021. 65, 139쪽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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