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0일
19세기 말 발족된 영국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자들과 부르주아들의 싱크탱크이자 권력 장치였던 자유와 재산방어연맹(Liberty and Property Defense League)이 당시의 빈민법과 임금문제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던 것처럼,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타자로서의 북한'에 대한 이데올로기투쟁에 나서며 어버이 연합에 돈을 댄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르크스적 견지에서 기업가들의(자본가들의) 경제적 활동 일반은 그자체 자본주의적 정언명령의 실현이다. 소여의 이데올로기가 인도하고 유도하는 공간에 몸을 맡긴채, 자본축적의 타성이 지시하는대로, 주어진 법칙에 즉자적으로 대응하면 우리는 누구나 자본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의 특이점과 몇몇 역사적 예외상태를 제외하고는(1917년 10월 혁명 이후 근 6년에 걸친 반혁명, 1959년 쿠바혁명군이 아바나에 입성한 이후 마찬가지로 근 6년에 걸친 반혁명, 사회주의혁명 이후 1980년대의 베트남 등) 결코 파업 혹은 '항구적인' 조직운동과 같은 계급적 '선택'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점에서 자본가들은 외려 경제적 운명론과 관계한다. 그렇게 혁명적 단절의 징후가 명백히 드러나기 직전까지 분명히 그들은 철저하게 개인임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비주체로서, 비계급으로서, 실질적인 계급투쟁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체제를 구성하는 보편과 개별, 전체와 부분, 일반과 특수사이의 관계에 적용되는 힘의 비대칭성이란 바로 위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대자적인, 스스로의 행위가 정치적 장에서 어떤 위상을 가질 것인지를 반추할 줄 아는 자본가들의 경우 또한 그리 적잖게 존재한다. 이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객관화된 이데올로기로서, 이데올로그로서 용감하게, 은폐된 계급투쟁에 나선다. 우리가 이들을 진지하게 주목하지 않는다면, 이는 일상에 공공연하게 편재하고 있는 이데올로기투쟁에 관해 함구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Not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업을 위한 노트 (0) | 2017.06.01 |
---|---|
죽지 않고 산다는 것 (0) | 2017.05.11 |
이대 시위에 관한 중언부언 (0) | 2017.04.01 |
이방인에 관한 노트 (0) | 2017.04.01 |
아도르노에 대한 노트 (0) | 2017.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