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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Fredric Jameson. "Nature Weeps(자연의 눈물)" in The Benjamin Files. Verso, 2020.

by 정강산 2021. 8. 21.

Fredric Jameson. "Nature Weeps(자연의 눈물)" in The Benjamin Files. Verso, 2020.

 

정강산

 

*본문은 전문의 직역에 수렴하지만 초반의 몇 구절은 축약되거나 의역된 구절이 섞여있다.

*벤야민에 대한 제임슨의 직접인용구절은 원문상 대체로 출처 표기가 되어 있으나 발제문에서는 생략한다.

*모든 각주는 발제자의 주다. 제임슨의 각주는 별도의 각주표기가 아니라 숫자로 표시해두었고, 본문에선 생략한다.

*여기서 다뤄지는 비애극은 영어로 'tragic drama' 혹은 ‘tragedy'로 번역되어, 독일어 Tragödie와 구별되는 Trauspiel의 의미가 덜 강조된다. 따라서 tragedy 역시 맥락에 따라 비극과 비애극을 혼용하여 번역하였다.

 

1

 제임슨은 <독일 비애극의 원천>이란 무엇인지, 즉 그것이 어떤 위상을 갖고 있던 저작인지 질문한다. 이는 <원천><일방통행로>와 더불어 온전한 단행본의 형태를 가진 몇 안 되는 저작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성기에 독일 바로크에 대한 이러한 상찬은 전(pre) 계몽의 극적(theatrical) 장식물과 미신으로의 노골적인 퇴보가 아닌가? 그러나 제임슨은 이 논문(<원천>)에서 발전된 풍부하고 독창적인 벤야민의 주제론이 당시 독일의 의무적인 아카데믹한 구성으로 인해 심각하게 약화되며 미발달된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벤야민이 <원천>을 통해 말하려는 것을 규정하기에 앞서 그가 말하지 않는 것을 살피는 것이 유익할 텐데, 이는 <원천>의 더 깊은 주제이자 아카데믹한 기능 요구로 인해 방해받는 것으로, ‘비극(Tragödie)과 비애극(Trauspiel) 사이의 구별비극 자체의 본질이 바로 그것이다. 이 주제는 벤야민이 기독교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플로렌스 크리스티안 랑(Florens Christian Rang)과 논의했던 것인데, 1924년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벤야민의 작업의 상당 부분을 가로막기도 했다.[각주:1] 또한 그 주제는 로렌츠바이크(Franz Rosenzweig)<구원의 별(The Star of Redemption)>[각주:2]에서 이뤄진 풍부한 정교화에 기대고 있다. 이들은 더 엄격한 학제적 의미에서 신학적이며, 그들의 비극 이론은 명백히 1차대전의 파괴적인 경험을 반영하며 그로부터 출현했다고 하겠다.

 그런 방식으로 틀이 짜인 채, 벤야민의 작업은 17세기 이후로 이어져온 근대 비극의 불가능성을 설명하고, 근대성의 이해에 대한 핵심으로서 비극의 부재를 파악하려하는 이론들의 긴 전통에 들어간다. 여기서 우리는 고대에 대한 니체의 관계와 멀리 떨어져 있는 유사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텐데, 그는 고전주의자로서 한때 바그너적 오페라를, 멸종해 버린 비극 자체의 형식에 대한 대체물로 승격시킨 바 있다. 고전적인 것에 대한 벤야민의 관계는 그의 작업에서 미발달되어 오직 희미하게만 들리는 일종의 기초 저음인데, 보들레르의 추정상의 고전주의에 대한 주목과 함께 소생하는 정도이다(예컨대 벤야민은 보들레르와 함께 근대는 어떤 새로운 시대의 표지로서 뿐 아니라 그를 통해 이 시대가 즉각적으로 고대를 변형시키고 전유하는 바의 에너지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즉 보들레르에게 예술의 절반은 고전적인 것과 영원한 것이며, 나머지 반은 근대적인 것과 덧없는 것인 것이다. 여전히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의 저자 보들레르는 고대 그리스보다는 로마와 그 자신의 유사성을 찾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기독교가 자리를 잡아 그로서 신성모독과 악마숭배 또한 만개할 수 있는 바의 고전적인 전통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 및 특히 그리스 비극은 그 속에서 지극히 중요한 운명의 모티프가 한계 지어지는 바의 문화적 성좌를 제공하는데, 이 주제는 벤야민 전체 삶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는 그것을 인물의 근대적 범주에 외삽하길 꺼려했다. 바로 여기서 역사가 개입하게 된다: 벤야민의 말대로 동시대의 이념들은 운명이라는 아이디어에 즉각적인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며 벤야민은 그것[비극]을 사고하려 하는 우리의 시도를 미래에 대한 예언의 범주와 관련짓는다. “그 범주 하에서 운명의 예언은 가차 없이 통합된다.” 벤야민이 <원천>에서 강조한 바, 바로크의 비애극에서 전면화되는 것이 전근대의 비극에서 나타난 초월적인 운명과는 달리, 바로 임의적이고 세속적인 역사자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이 점은 명백하다.

 죄있음과 순결함, 행동에 대한 생각들은 운명에 대한 고전적인 이념으로의 가능한 접근양식으로서 탐구되지만, 이어지는 문장이야말로 결정적이다: “비애극에서 이교적 인간은 자신이 그가 섬기는 신보다 낫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 깨달음은 그에게서 말을 빼앗아 가기에 결국 말해지지 않은 채로 남는다. ... 정신적인 말없음(speechlessness), 정신적 유아성에 있어 천재 탄생의 역설은 비애극의 숭고함(sublimity)이며, ...[그 역설은]아마 신보다는 외려 천재가 나타나는 바의- 모든 숭고함의 기초일 것이다.”[각주:3] 벤야민은 -일종의 계몽적 버전의 퇴행인- “천재에 대한 하만(Johann Georg Hamann)[각주:4]의 언어로도 돌아가지 않고, 숭고 및 예술을 일종의 헤겔적 절대로 승격시키는 그것[비애극]의 능력에도 썩 관심이 없어 보인다(실로, 우리는 벤야민에게서 지속적인 반미학적 압력을 고려해야하는데, 이는 잘 알려진 예술 작품의 자율성에 대한 아도르노의 끈덕진 방어와는 대단히 대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없음[침묵]은 중요한 모티프이다. 그 고전적인 버전은 [말없음의] 근대의 결여된 형식과 본질상 상당히 다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1 여전히 누군가는 모든 근대적 침묵들 중 가장 숭고한 기록을 알고 싶어 할 텐데, 그것은 근대적 문장의 대가였던 어떤 발화자-칼 크라우스[각주:5]-의 가장 충격적인 발화행위 중 하나이다. 이 침묵은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관련이 있다:

 

  그들이 이다지도 작았던 때부터 내가 알아온, 시간만 주어진다면 다시금 작아질, 생명체의 세계에선 그러한 퇴행적인 전환이 불가능하기에- 우리가 우리 모두를 무겁게 짓누르는 비대하고 실로 어려운 때로서 받아들이길 선호하는 이 위대한 시간에, 그러니까,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 상상될 수 없는 이 시간에(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그것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죽도록 웃어온, 그들 자신의 비극에 놀란 채 이제는 기분전환을 열망하는, 그렇게 하며 잡혀버린 채, 그 모두에 대한 낱말을 찾으려하고 있는 바의 이 너무나도 성실한 시간에, , 뉴스를 유발하는 공훈들의 악몽 같은 협주곡으로, 공훈에 책임이 있는 뉴스의 악몽같은 협주곡으로 요란한, 이 시끄러운 시간에, 이러한 시간에는, 내게서 아무 말도 기대하지 마라. ... 누군가 말해야할게 있다면, 그를 나오게 해 침묵하게 하라!2

 

 이는 후대에 대한 최대강령적 표현이자 나치즘에 대한 최소주의적 반응이다. 침묵을 통해 말하고자 말없음의 영역을 확장한 바 있는- 말의 의미에 대한 로렌츠바이크식 버전 역시 주목할 만하다:

 

  비극의 영웅은 그에 완전히 대응하는 오직 하나의 언어만을 가진다. 침묵을 지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 비극은 말없음을 재현하기 위해 희곡(drama)의 예술적 형식으로 스스로를 내던진다. ... 극시(dramatic poetry)는 오직 말하기만을 알며, 여기서 침묵이 호소력있게 되는 것은 오직 그 때문이다. 침묵을 지킴으로써, 영웅은 그를 신과 세계와 연결하는 교량을 부수고 스스로를 자아의 차가운 고독으로 올려놓는다.3[각주:6]

 

 그 계보는 그가 번역한 그리스 비극의 행간 휴지(pause)에 대한 횔덜린 특유의 독해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각주:7] 실로 침묵의 개념을 여기서 우리가 중단(interruption)의 변증법이라 불러온 것을 향해 변형시키는 리드미컬한 중단 말이다. 벤야민의 쓰여지지 않은 논문은 어떤 경우이든 판단 너머의 어떤 탈 인격화된 사유양식에 형태를 부여하려는 시도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로젠츠바이크에서처럼 죽음에 대한 발견이거나 랑에서처럼 이교주의로부터의 출현이라기보다는 변증법적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물에 대한 벤야민의 도식에서, 비극의 말없음은 신화적인 것과 고대적인 것으로부터의 출현을 표시한다는 것이며, 이는 농민의 동화(peasant fairy tale)와는 다른 방식으로 비합리적인 것을 극복하는 양식이지만 우리에게 있어서는 마찬가지로 접근 불가능 한 것이다.

 

2

 <원천>의 아카데믹한 틀은 충분히 논리적이고 균형 잡혀있다. 그것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로 희곡(drama)으로서 비애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것과, 두 번째로 비애극 내에서 특히 그 언어와 사유양식에서 작동하는 알레고리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벤야민이 <원천>에서 탐구하고자 하는 바로크의 두 가지 차원이며, 그들은 형식에 대한 내용, 표현에 대한 플롯으로서 대략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한편 이 두 부문 각각은 그 뒤 역시 논리적 이유와 확실한 균형을 가진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문은 그 주제에 대한 이론적 문헌을 검토하며, 나머지 두 부문은 대상 자체와 그것의 주관적 등가물"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 등가물이란 첫 번째 부문의 경우엔 극(drama)에서의 멜랑콜리가 될 것이고, 알레고리 부문에서는 죽음에 대한 생각과 와해(dismemberment)가 될 것이다.

 확실히 이러한 구획들은 서로 상당히 섞일 것이다. (drama)에 대한 지배적인 이론들을 비판하는 첫 번째 장은 진실을 통해 오류를 논증하며, 그로서 그 희곡들에 대한 벤야민 자신의 독해가 정초되는 바의- 비애극과 고대 비극 사이의 근본적인 구분을 해설한다. 한편 알레고리의 초기단계(prehistory)는 필연적으로 바로크 형식에 대한 상술(specification)을 수반할 것이다. 그리고 명백히, 정동(affect)의 문제가 양 부문들 전반에서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것은 벤야민의 탁월함의 티끌을 스치고 그로 하여금 그의 재료들을 서로 독립적으로 분석되는 범주들과 주제들로 나누도록 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논리적으로 만족스러운 배치이다. 그러나 변증법적 이미지혹은 사유-이미지(thought-picture)”의 정수는 유사성, 은유적 결합, 역설적인 연결, 오직 간접적으로 연결된 층위들의 교차를 요구했다. 즉 그가 부르길 즐겼던 형상적 모나드는 뚜렷한 범주들과 추상적인 주제적 제목으로 분류될 수 없으며, 그들 각각이 그것에 선행하고 후행하는 것과 오직 불연속적으로만 관련된 단위를 산출하는 한 실로 추론적으로 전개될 수도 없다. <원천>에 대한 아카데믹한 요구는 매 순간 벤야민 사유의 진전을 막아섰으며, 그 작업의 복잡하고 느린 진행에 기여했다.

 실로, 희곡 형식과 알레고리 간의 매우 중심적인 분할 자체가, 풍부하고 횡단적인 이들 두 층위들 간의 교차-징후와 일시적인 암시로 억눌려지고 격하되어야 했던-에서 일어나는 섬광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예컨대 한편으로 각 부분 내에서 구성(organization)의 압력은 멜랑콜리에 대한 공식적인 장을 일련의 심리학적 관측으로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알레고리적 와해에 대한 마지막장이 알레고리 자체의 현상을, 그 정수가 이미 더 이른 시점에 작성된 멜랑콜리와 태만(acedia)에 대한 논의에서 다뤄진- 파편화의 논리로 축소하지 않았을 때도, 한편으로 그 장은 각본과 상형문자에 대한 건조한 논의로 점점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원천>에서 제기된 주제의 배열이 그의 생 전반에 걸친 작업들에 흩어져 있으며, 때론 다른 맥락에서 더욱 암시적으로 탐구된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심지어 -벤야민이 그 모범적인 형식을 인격화(personification)로서 확인했던- 저 알레고리에 대한 광범한 논의들마저도, 나중의 보들레르에 대한 작업들에서까지 더욱 결실이 풍성하게 밀어붙여지는데, 이는 보들레르의 우울(spleen)에 대한 설명에서처럼, 더 유용한 방식으로 비(non) 초월적인 바로크 역사를 특징짓는 데에 있어 바로크적 멜랑콜리와 근대의(자본주의적) “파국(catastrophe)”에 관해 유익한 조명을 해줄 것이다.

어떤 면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들이 이미 언급된 바 있는 (비애극과 구별되는 것으로서의)비극 자체에 대한 쓰여지지 않은 논의를 거꾸로 가리키는 한편으로, 이 작업에서 고유의 지위를 가진 채 완전히 전개되는 유일한 주제는 이 희곡들 내에서의 인물들(characters)” 및 형상들(physiognomies)에 대한 지도그리기이다. 실로 제임슨은 벤야민이 그때까지 몇 안 되는 노트를 남길 수 있었던 바의 고전적인 비극에 대한 분석을 더 직접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독일의 비애극이라는 이 주제를 고른 것이라 본다. 이 주제는 본질적으로 절규(ranting)와 장황함, 바로크적 허풍, 희곡의 표현적이며 심지어 가극조인(operatic) 언어-벤야민의 공식적인 주제가 되었던-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침묵과 말없음, 운명, 표현없음(expressionlessness)이라는 주제와 함께한다.

 이제 제임슨은 벤야민의 나중의(“세속적인시기의) 작업에 들어가게 될 다양한 재료들을 분별하려한다. 그리고 그는 벤야민의 비판이론의 정수에 있는 이접적인(disjunctive) 읽기를 어떤 분쇄(destruction)로서 제안하고자 한다. 이는, 우리가 여기서 17세기 희곡의 총체(corpus)가 두 개의 관련된 극적(theatrical) 전통에 의해 증대된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Haupt-und-Staats-Aktionen(cheif-and-state plays)[각주:8]이라 불렸던 그로테스크한 정치극들과, 그러한 형식을 소생시키려하는 다양한 종류의 낭만주의 환상 희곡들(dream plays)이 그것인데, 여기에는 <햄릿>과 칼데론(Pedro Calderón de la Barca)[각주:9](La vida es sueño; Life Is a Dream)에서의 비애극 자체의 엄청난 화신이 들어가야 한다.

 

3

 어떤 의미에서, 비애극이라는 장르에 대해 서술하는 <원천>의 첫 번째 부문은 접근”(혹은 Zugang)에 대한 이론을 함축한다. 즉 순수하게 철학적이거나 인지적인 한계와 더불어 역사적인 한계에 있어 우리가 이 바로크 텍스트들을 벤야민이 비극이라는 말로 남겨두고 싶어하는 고전의 혹은 고대의 형식과 구분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에 대한 논의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구분에 대한 인식을 가로막고 비애극이 비극으로 동화되도록 부추긴 것은 근대인으로서의 르네상스 이론가들에 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오용이며, 심지어 니체조차 그것을 오해했다. 비애극은 운명에 대한 낭만주의적 희곡으로 동화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로 하여금 선명한 시각을 가지고 비애극으로 돌아가 그 역사적 독특함을 이해하도록 해주는 참된 비극에 대한 저 역사적으로 충분한 파악을 향한 암시를 찾게 되는 것은 오직 신학”, 더 구체적으로는 로렌츠바이크의 <구원의 별>에서이다.

 비극은 비애극과는 달리 역사에 기대지 않으며, 신화에 기대기 때문에, 비극의 인물은 유혈 낭자한 세속적 역사의 전제군주나 순교자가 아니라 신화적 영웅이다. 그리고 (중세의 우주에 대한 루터의 해체 이후에 오는)바로크가 초월성이 스러지고 있는 세계에 최후의 비세속적인 단말마적 빛을 비추는 곳에서, 비극은 오직 그들을 기소하기 위해서라도 신을 남겨두었다. 즉 니체는 실로 (아르토(Antonin Artaud)를 선취하여) 고대 비극은 그들의 쾌락을 위해 고안된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스펙터클이라 생각했다. 벤야민에게, 인간과 신성의 더 진실한 관계는 비극에서 이교적 인간은 그가 섬기는 신보다 자신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된다라는 깨달음에 의해 포착된다. 이는 표현없음에서 표현된다. 즉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조각상의 눈먼 아름다움이 죽어가는 말없는 영웅을 대체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에 대한 벤야민의 패러다임은 <안티고네><오이디푸스 왕> 등의 표준적인 소포클레스적 장면들에서라기보다는, 법으로 신화를 극복하는 데에 있어 역사를 재천명하는 3부작 비극 오레스테이아(Oresteia)[각주:10]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프롤로그의 결론부에서 나오듯, 두 번째 주제 혹은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게 된다. 다시 한 번 역사적 접근, 그러니까 어떤 연속, 전통이 아니라 가볍게 이동하위험의 순간에그 자신을 내어놓는 과거를 구성하는 저 모나드들과 어떻게 접촉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크라는 이름이 새겨진 특징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명명된 단독성을 절대적 차이, 타자성, 가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지표로 받아들이는 것인가? 필경 우리의 시대에 더 접근 가능한 비애극의 경험에 의해 대체되어, 비극의 경험은 우리가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바의그러한 잃어버린 순간을 제공해온 것으로 보일 것이다. 우울과 알레고리의 방식을 통한 보들레르에 대한 작업은 소급적으로 이 점을 확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는 결합된 저 역사적 시기들 양자 모두를, 히틀러 시대가 아니라면, 바이마르 시대의 세 번째 것에 연결하거나 혹은 이제 우리가 겉치레 전쟁[각주:11]이라 부르게 된 한층 더 특이한 모나드(인간 삶 자체만큼이나 필멸의, 덧없는 모나드인)에 연결하는 한층 더한 우연이 있다고, 한층 더한 점성술적 연결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인가? 그 경우, 독자로서 우리의 작업은, 우리가 다시, 재편성된 별들과 조화되며 현재에 대한 우리 자신의 존재론을 재숙고하라고 요구하는 그러한 기간 속에 있지 않은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혹은 우리의 독해가 이제는 봉인된 비극의 무덤과 더 긴밀히 닮아가는, 외려 어떤 희미해지는 과거로의 고고학적 탐험이 아닌지 여부를 말이다. 우리는 한 번 더 적대적인 신들(행성 지리학의 무자비한 법칙, 호머적(Homeric) 전쟁의 필연성, 신화의 유한성과 비운 등)에 맞서는가? 혹은 그 한가운데에서 미친 전제군주와 찬탈자들이 날뛰고, 음모가들이 작당하며, 성자들이 기쁘게 순교를 받아들이는 바의 깨지고 훼손된 신체들의 알레고리적 풍경에 가까운 무언가에 맞서는가?

 이는 실로 1부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일종의 전장 투어를 제안하는 선택지이다. , 말하자면 그것은 근대의 비극이 가능한지 여부와 그 영웅이 무엇처럼 보일지에 대한 벤야민 버전의 끝없는 질문이다. 형식들 사이의 혼란과 비애극과 진성 비극의 동일시는 이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데, 이는 역시 근대의 비애극이 가능한지에 대한 두 번째 질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벤야민은 때로 성자를 비극적 영웅의 근대적 화신과 동일시하며 그로서 그 질문을 긍정하는 데에 있어 로젠츠바이크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비애극은 순교극(martyr-drama)을 통해 성자의 비극 형식으로서 판명된다. 그리고 누군가 다만 그 특징을 칼데론에서 스트린드베르크(Strindberg)에 이르는 여러 많은 스타일의 희곡에서 인식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신비극(mystery play)의 형식에 여전히 미래가 있음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러한 확언은 썩 설득력 있진 않으며, 벤야민은 그 자신의 추론을 반박하고자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라는 운명적인 순간으로 돌아간다. “순교극은 비극의 패러디로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니체가 그리스적 정신의 진정한 끝이자 와해로서 소크라테스를 고발하고, 이성과 철학의 발생 속에서의 영웅성의 상실을 고발했던 바의 열정을 잊을 수 없다. 니체처럼, 벤야민은 그것의 재탄생을 오페라에서 정립하고자 할 것이다. 비록 그에게 있어 결국 이 새로운 형식을 낳는 것은 비애극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다른 후예는 형식과 역사기술(historiography)로서의 재판(trial)이 될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 양자는 동일하다(벤야민이 동조하지 않을“Die Weltgeschichte ist das Weltgericht(세계사는 세계의 재판이다)”는 쉴러(Schiller)의 유명한 헤겔적 모토를 보여준다).

 끊임없이 극적(theatrical) 희곡의 외관상의 자율성을 타개하려 위협하는 이 고조된 재판의 상황은, 벤야민이 비극에 대한 그의 명상에서 아이스킬로스에게 허용하게 될 특권적 위치를 소급하여 설명한다. 그는 로젠츠바이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쓴다. “소포클레스(Sophocles)와 에우리피데스(Euripides)에게서, 영웅은 말이 아니라 ... 오직 논쟁하는 것을 배운다.”4 이 과정은, 계몽의 헌법이나 적법성에 의해 내려 받은 것이 아니라, 외려 그가 소렐과 볼셰비즘에서 찾은 신적 폭력에 의해 내려 받은 바의 근대 정치에 대한 독특한 진술과 소렐에 대한 주석 등 폭력에 대한 에세이에서도 다시 나타나듯, 법에 대한 벤야민의 양가적인 명상에 있어서 중요한 순간이다. “아테네 법의 가장 중요하고 두드러진 특징은 디오니소스적 파열이자, 도취된 무아경의 말이 갈등의 규칙적인 시야계를 초월할 수 있었던 사실, 더 높은 정의가 대립하는 정파들에 대한 재판으로부터라기보단 살아있는 말의 설득력 있는 힘에 의해, 무기를 통한 전투나 지시된 어구 형식에 의해 허용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죄인판별법을 통한 재판의 실행은 로고스의 자유에 의해 방해된다.” 제임슨은 그러한 구절이 디오니소스적 파열과 비극적 영웅의 망연자실한 침묵 간의 변증법적 동일성을 함축한다고 본다. 즉 양자 모두 죽어있는 법의 규범에 대한 살아있는 말의 우선성을 단언한다는 것이다. 또한 양자는 형식적인 중단, 중지이자 "표준적인“(혹은 규범적인)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삶의 동질적인 시간내에서의 단절적이고 모나드적인 계기들이다. 그리고 침묵과 황홀경의 말 양자 모두 비애극의 허풍과 날뛰어대는 인물들에 의해 취소되고 부정된다.

 그러한 경우에, 우리는 그가 역사에 있어 역사적인 것으로 발견한 것에 대한 벤야민의 가장 특징적인 주목을 재발견한다. 즉 위기와 전환의 거대한 계기들이 그것인데, 변증법적으로 그들은 선과 점의 이율배반을 재생산한다. 다시 말해 한계와 경계처럼, 그러한 계기들은 오직 중단일 수 있거나 혹은 의미 없는 전후(befores and afters)에 의해 앞서거나 뒤서는 모나드적 에피소드들로서 그들 자신의 자율적인 가치를 떠맡을 수 있다.

 여기에 또 다른 게 있다. “바로크 희곡에서 보이는 역사의 자연사로의 전환이 간과되었던 것처럼, 비극의 분석에 있어서 전설(legend)과 역사 간의 차별 또한 마찬가지로 간과되었다.” 비극은 역사를 전설(legend)에서 나타남으로써, 전설(myth)을 극복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으로 들여온다. 반면 비애극은 초월성 없는 역사를 선고받으며, 이 역사란 비애극이 오직 자연의 범주, 주기, 유기체, 계절, 영원한 회귀를 통해서만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이다. (역사와 자연의 이러한 변증법은 아도르노의 취임강연[프랑크푸르트, 1932]에서의 주목할 만한 제안의 주제인데, 여기서 그는 우리가 자연을 역사의 측면에서, 역사를 자연의 측면에서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한편, 비애극에서는 어떤 정지(standstill)로 되는 바의 역사의 재현이라는 역사적 문제는 필연적으로 아래로 넘겨지며, 첫 번째로는 더 순수하게 Haupt-und-staats-aktionen의 극적(theatrical) 스펙터클로, 이내 낭만주의로 보내지는데, 여기서 그것은 벤야민의 작업에서 잠시 동안 보이지 않다가, 상당히 다른 형식으로, 보들레르, 재료 찾기(finding material), 혹은 기술적(technological) 미디어의 유물론적 재구축과 재문제화에 대한 작업에서 다시 나타난다. 벤야민은 소설 자체의 문제에는 실로 전혀 관여하지 않았는데, 이는 괴테의 <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 표도르 글라드코프(Feodor Gladkov)<시멘트(Cement)>, 도스토옙스키의 <백치(The Idiot)>, 켈러(Gottfried Keller), 혹은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소설(Threepenny Novel)>처럼 개별적인 작업들의 경우를 제외하면 거기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장르로서의 소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화인, 심지어 바흐친이 번역하려 계획했던 바의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으로 만족했으리라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루카치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다소 소설 자체의 구조에 의해 부추겨진 형식의 문제들이, 그에게 흥미롭지 않았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즉 그들은 이야기꾼에서 표면화되고 중심적으로 그의 관심을 끌었던 것처럼, 경험과 그 서사들에 대한 소설의 관계에도 불구, 생산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의 심리학은 그에게 있어 이야기의 기예(art) 혹은 "서사시적 희곡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되었다.

 어쨌든 이러한 비애극과 비극 사이의 논쟁은, <햄릿>은 비극이 아니며, 그가 그것의 "인상학적 사이클(physiognomic cycle)"이라 부른 것을 통한 형식으로서의 비애극의 새로운 주관성으로 이동한다는 설명으로 중단된다. 주관성은 (정확히 어떤 시점이 아니라면)인물(character)이라는 매개를 요구하기에, 여기서 멜랑콜리적인 것은 급작스레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즉 그것은 제임슨이 어딘가에서 사색가(Grübler)로 간주했던 인물(figure)인데, 이 인물은 <원천>의 두 번째 파트에서 나오는 주관적인 인상을 다루는 이로서, 알레고리스트이다. 사색가는 실로 산보객(flâneur), “수집가, 위조자, 도박가등 벤야민의 인상학들의 리스트에 포함되어야하는데, 이 책에 나오는 전제군주, 찬탈자, 모략가, 순교자 또한 여기에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외관상 그의 사유에 본질적인 인물들의 극적 배역(dramatic cast)을 구성한다. 그것이 또한 교활하고, 독단적이며, 약탈적이고, 불안해하며,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이며, 갈팡질팡하고, 무능하며, 일에 미칠 수 있었던, 그리고 다른 많은 외관상 양립할 수 없는 것들로 될 수 있었던 벤야민에 대한 수많은 문헌에 의해 불행하게 채색되어온 멜랑콜리라는 주제를 상대하는 데에 최선으로 보이는 것은 외려 전기적이고 소설적인 독해라기보단, 이런 방식에 있다. 실로 오늘날, 누군가는 벤야민과 -벤야민 자신이 그와 똑같은 제목을 한 에세이에서 날카롭게 비난했던- “좌파 멜랑콜리의 습관적인 연결에 다만 통탄할 수 있을 따름이다. (제임슨은 그 자신이 벤야민에 대해 행했던 초기의 미국적인 연구를 볼 때, 이러한 오해에 여느 학자들처럼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오해는 벤야민이 이런 상태와 거기에 얽매인 알레고리스트, 사색가, 기호와 징조에 대한 독해자 등의 지식인의 유형과 함께 묘사했던 바의 생생함으로 돌려져야 한다. 벤야민은 그의 시대에서(à ses heures) 역시 알레고리스트(that)였으나, 이러한 특성묘사는 공격적인 좌담가이자 기민한 주석가이며 시대정신의 진단자이고 야망있는 필경사이자 저널리스트이며 애호가이자 세계 여행자로서의 면모를 놓치게 된다.)

 사실상, <원천>의 이러한 부문은 심지어 4체액론(four humors)[각주:12]의 시대 이전부터 전해져 온 멜랑콜리의 이론들에 대한 순수하게 역사적인 일람표로서 나타난다. 보들레르의 우울(spleen)은 그에게 이러한 흥미로운 열정에 대한 더 나은 오프닝을 제공할 것이며, 여기서 멜랑콜리는 색다르고 더욱 생산적인 방식으로 역사와 관계할 것이다. 여기서 잠재적으로 풍부한 많은 양의 주관적 재료는 오직 알레고리적 태도에 대한 <원천>의 마지막 장에서 불붙기 시작한다. 여전히 여기저기에서, 누군가는 이 같은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멜랑콜리의] 완강한 자기 흡수(self-absorption)에서, 그것은 죽은 사물들(objects)을 구제하기 위해 그들을 그 숙고 안으로 포용한다.” 수집가는 근처에서 맴돌지만, 시인이 아니라면 연재소설작가(feuilletonist) 역시 그러하다. 초월성이 없이 죽어있는 역사의 풍경은 여기서, 사색가 햄릿이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요리크(Yorick)의 해골과 같이, 그에 대해 세목들(items)이 생각에 잠겨 숙고될 수 있는 바의- 사물의 세계로 분해되어 버렸다.

 대학 학위논문의 요구사항으로 인해 벤야민을 짓눌렀던 비애극의 내용과 그 형식 사이의 인위적인 분할은 이제 여기서 <원천>의 후반부에서의 알레고리에 대한 설명의 궁핍으로 이어진다. 그 첫 번째 장은 그 주제에 대한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연구들이 검토되는 바의 1부에서 이어진 계획을 반복한다. 여기서 벤야민은 동시대의 연구에서 더욱 불충분하게 조사된- 주로 르네상스와 상형문자 및 다른 형식의 상징적 활자들에 대한 르네상스의 매혹에 집중되어 있는 칼 기로우(Karl Giehlow)의 연구와 더불어 주요 낭만주의 역사가이자 알레고리적 도상학의 이론가였던 크로이처(Georg Friedrich Creuzer)[각주:13]를 다루는 데에 다소 시간을 들이게 된다. 이러한 언어에 대한 주목은 벤야민 역시 속했던 바의 필적학자(graphologist)를 과도하게 매혹하기 시작할 뿐 아니라, 그를 본질적으로 징후학적인 알레고리 개념으로 향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 어떤 대상, 어떤 관계도 절대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의미할 수 있다.” 이 글(writing)로서의 알레고리에 대한 좁은 관점은, 벤야민이 옳게 관측했듯, 그 과정에서 활자(script)이자 엠블럼(emblem)으로서 세계와 역사의 개념을 확고히 할 것이다. 그것은 현실을 분해할 것이고(극적으로는 궁중의 공간에 집중된 채), “그것을 해산(dispersal)'집적(collectedness)’의 법칙으로 복종시킬것이며, 그로서 파편 자체의 낭만주의적 안정화를 위한 기반을 놓을 것이었다.

 그러나 활자는 필수적으로 그 독자를 위한 공간을 요구한다. 이는 알레고리적 희곡 자체의 배역을 넘어, 본질적으로 희곡의 독자인 구경꾼을 포괄하도록 벤야민의 인상학적 인물 배역을 확대한다. 놀랍지 않게도, 이들은 멜랑콜리 환자(the melancholiac)와 그것 자체의 고유한 변증법의 형상에서 요약된다. “고립된 것과 하찮은 것에 대한 환자의 심원한 매혹은 고갈된 엠블럼에 대한 낙심한 포기로 이어진다.” 그러나 벤야민은 이미 멜랑콜리에 대한 그의 관점의 정수를 1부에 투여했기 때문에, 어찌되었든 그 문제에 대한 학적 주목의 결여가 그를 별로 할 게 없도록 남겨둔 이곳에서 그가 더 말할 것은 별로 없다 (그는 이미 1부에서 훗날 국가 사회주의자가 되는 문학사가인 치자르츠(Herbert Cyzarz)의 바로크에 대한 선구적인 1924년 작업에 많이 의지했다).

 주제와 재료에 대한 동일하게 편향된 배분이 이 절에서 일종의 내용의 형식을 향한 배열을 결정할 것인데, 이는 본질적으로 운문(verse)의 형식과 그들의 과시적 장식 (유령과 꿈, 그러나 또한 엠블럼과 상연(staging))을 다룬다. "사실 이러한 시는 여기서 축어적(verbal) 이미지에 갖혀 있었던 풍부한 의미를 직관적인 노래에 풀어내는 데에 무능했다. 그 언어는 물질적인 표시(display)로 무거웠다. 시는 결코 덜 고매했던 적이 없다.” 그러나 알레고리의 쓰여진 언어는 사물을 의미에 대한 중심을 벗어난(eccentric) 포용으로 예속시킨다.” 동일한 방식으로, 그것은 벤야민 자신의 해석적 구상을 복속시킨다. 1부에서 플롯과 인물들의 관점으로부터 관찰되었던 것은 여기서 순전한 허풍처럼, “순수한 인상에서의 방만한 기쁨에 대한 호소로, 니체에게서 영감을 받은 듯한 오페라를 향한 비애극의 진화에 관한 벤야민의 제안을 당연하게도 끝내 추동하게 될 환원으로- 점차 작아진다. 이는 벤야민의 대개 비음악적인 작업에서 탐사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가능성이다.

 여전히 1부의 모델을 따르는 이 마지막 부문은, 알레고리의 주관적인 차원에 대한 분석을 위한 장소를 표시해야한다. 그러나, 1부의 바로크적 주관성에 대한 풍부한 묘사는 이 흥미로운 영역의 박진감 넘치는 모든 것을 흡수해버리며, 알레고리적 주관성이라는 주제를 더욱 높고 추상적인 신학의 영역에 남겨두는데, 이는 말하자면 그것이 "생명 없는 시(corpse poetry)"의 바로크적 알레고리에서의 문제인 한, 그 주제를 부활(resurrection)의 환영(vision)에 남겨둔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쟝 세즈넥(Jean Seznec)[각주:14]의 고전적인 작업에서 탐구된) 오컬트의 르네상스적 부활과 이교의 신에서 기독교적 악마로의 유명한 중세적 좌천(demotion)과 함께 출발하여, (셰익스피어의 이아고(Iago)나 웹스터(John Webster)의 보졸라(Bosola)에서처럼) 악마적 영역에 의한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대한 몰두와 악마 자체에 대한 숭배에서 정점에 달하게 되면서, 이러한 해피엔딩으로의 배배꼬인 길을 찾을 것이다.

 알레고리는 물론 그 자신의 역사적 결정인자(determinant)를 가진다. 그것은 "그 자신을 가장 역구적으로 확립시키며, 여기서 순간과 영원은 서로 가장 가까이서 대결했다 ... 그것은 단지 순간이 아니라 죄 역시도 명백히 우상과 육체의 영역에(province) 자신의 집을 갖는 것처럼 보이는 바의 이러한 사유양식의 전개에 절대적으로 결정적이었다. 죄에 의해, 알레고리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의미의 실현을 그 자체에서 찾는 것이 방해된다.”

 그것이 슬퍼하는 까닭은 기독교의 자연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애도의 충실함(mourn-fulness)은 그것을 말이 없게 만든다. 모든 애도에는 침묵으로의 경향이 있다.” 어떤 언어적 형식으로서의 알레고리는 이러한 침묵을 이름들로 보상하며, 이 이름들은 그 자체 역설적으로 이름이 붙여지는 데까지 추락한 자연의 무능력을 표시한다. “알레고리스트에 의해 오직 읽혀지기 위해, 불확실하게 읽혀지기 위해, 그리고 고맙게도 오직 그에게만 매우 중요하게 되기 위해 얼마나 더 그렇게 이름이 붙여지지 않는가.” 이는 악마적인 것(the demonic)이 마왕적인 것(the satanic)으로 되는 지점이다. “세속의 침통함이 알레고리적 해석의 한 조각에 대한 것인 것처럼, 악마같은 환락은 물질의 승리 속에서의 그 좌절감과 함께 있게 된다.” 이러한 지점에서 악에 대한 환상이 나타나고, 그와 함께 선과 악, 그리고 판단의 복잡한 변증법이 나타나는데(선과 악, 판단 양자 모두 우리가 기억하듯 언어의 추락의 결과이다), 이는 이 추락한 세계 너머 부활의 재출현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즉 바로크와 반 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의 풍경인 세속성 너머의 저 마지막 역사적 초월성의 알레고리적 후광 말이다.

 알레고리를 어질러진 세계-그 구원이 바로크의 일광(sunburst)만큼 환영적인-의 파편이라 비난하는 것은 실망스러운 결론이다. 벤야민은 보들레르와, 알레고리가 인격화(personification)의 형태를 취하는 근대성의 세속적 폐허를 재발견하기 전까지는 알레고리의 신체와 영혼 사이의 화해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벤야민은 순전한 무게와 세속적인 물질 자체의 중력에 의해 위로 향해진 숭고함의 효과를 전달하기 위해 건축술의 언어가 불러내진 <원천>의 서론의 마무리를 자랑스러워했다.

 

 주관성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천사와도 같이, 알레고리에 의해 도로 데려와지며, 신비한 중력에 의해(ponderación misteriosa) 천국에서, 신에게서 굳게 유지 된다 ... 이러한 형식의 강력한 설계도(design)는 그 결론까지 충분히 숙고되어야 한다. 즉 오직 이러한 조건 하에서만 독일 비애극의 이념에 대해 논하는 것이 가능하다. 거대한 건축물들의 폐허에서, 그 설계도(plan)에 대한 아이디어는 더 작은 건축물들에서보다, 아무리 그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해도, 더 인상적으로 말을 건넨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독일 비애극은 해석할 가치가 있다. 알레고리의 본질에 있어 그것은 폐허이자 파편으로서의 시작으로부터 착상된다. 다른 것들은 첫날 그랬던 것처럼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이러한 형식은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그 최후까지 보존한다.

 

 불행히도, 순수형식적인 측면에서, 이 휘황찬란한 수사는 무가치한 대상에 대해 너무 많은 조사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에 대한 그 자신을 향한(심사위원들과 더불어) 변명으로 축소될 수 있다.

 우리는 벤야민의 작업들을 어떤 발전상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지 않다. 여전히, 바로크에 대한 이 보상받지 못한 노고는 단지 그의 다른 여러 관심사들에 대한 벤야민의 탐구에 있어 어떤 중단을 표지했던 것만은 아니다. 즉 그것은 또한 그들 중 몇몇을 정련함으로써, 그가 그로부터의 돌파구를 고안해야만 했던 바의 정지를 표지했다. 아마도, 이런 점에서 앞으로의 전개를 위한 로드맵은 부적절하진 않을 것이다.

 

4

 그러나 우리는 <원천>의 유명하고 수수께끼 같은 서문, ‘인식-비판적 서론(the Epistemo-Critical Prologue)’에 대한 어떤 마지막 말없이 그것을 내버려두고 갈 수 없다. 그것은 역사적 다양성(variety)에 대한 추상과 벤야민이 맺는 관계에 있어 한층 더 나아간 정교화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 서론에서 불러내진 그 유명한 성좌가 벤야민적 에피소디즘(episodism)[각주:15]의 형식적인 범주들을 재생산하는 것을 본 바 있다. 즉 주제들 혹은 모티프들의 한 무리와 그 편제(formation)- 단절의 논리가 그 자체 내에서 재생산되는 모나드로의 분할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 서론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여기서 사유들의 질서에 대한 무언가를 다루고 있다고 믿도록 고무한다 (“성좌가 별들에 대한 것이듯, 사유는 사물들에 대한 것이다”). 추상적인 사유를 경험적인 대상과 잇는 연결의 문제에 있어 새로운 편제가 그들 사이의 관계들을 치환함으로써 보편의 문제를 대체한다. 그 연결의 문제는 분류를 명명의 행위로 변형시키고 전체 철학적 연결(conjunction)을 신학과 창세기(Genesis)에 대한 책으로 다시 실어 나름으로써 그것이 해치우는 딜레마이다. 그는 숄렘(Scholem)에게 작은 자신감도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도입은 영락없는 후안무치함이네 ... 언어에 대한 내 초기 작업은 ... 이념들에 대한 이론으로 치장했네.” 그러나 심지어 이러한 고백에서도 그가 생략하고 있는 것은, 이 서론에서 문제가 되는 사유가 평범한 추상이 아니라(그 자체 알레고리적으로 자본화 된 채), 외려 역사적 명칭(designations)과 역사적 시기에 대한 이름들이라는 것이다. 아도르노를 후기자본주의의 논리로서의 명목론(nominalism)에 대한 문화-비판 이론으로 향하게 할 보편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 바로크의 이념에 대한 숙고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독일적 전통을 따라, 벤야민은 인간의 발전을 물질에서 정신(spirit)으로의 운동으로 봤다. 그러나 성좌의 형상에 있어 플라톤적 함의는 상부구조에 대한 벤야민의 연구에서 내재적인(제임슨이 염려하는 바, 필연적인) 관념론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그의 작업의(그리고 역사에 대한 그의 관점의) 매우 색다르고 훨씬 더 독특한 특징, 즉 급진적인 단절 자체를 강조한다.

 성좌는 필연적으로 서로 분리된 독특한 배치들(groupings)이고, 빛점들(points of light)의 엄청난 다양함을 포함하며, 근대의 입각점과는 완전히 다른데, 그들 중 몇몇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과 은하들로부터 온 것이고, 다른 것들은 우주론적으로 가까이 있지만 천문학의 공간에서 서로 관련이 없이 있다. 벤야민의 구상은 거기서 점성술적 그림이 인간의 주관성에의해 구축되는 바의 방식이 아니라, 외려 이미지의 가지성과 다른 별의 배치들로부터의 그 거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들이 황도12(zodiac)처럼 상상적인 순서로 재조직될지 모른다 해도).

 그럼에도 일단 확립된 사물과 이름 사이의 연관은 양쪽 모두의 방식으로, 왕복으로 작동할 수 있다. 즉 인식비판적 서론에서 그것이, 사물들(이 경우엔 별들 자체)이 그들과 한때 함께 있었던 바의 이름을 대신하게 되는 어떤 뒤바뀜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다. 그러나 여기에 사물(things)”이라는 용어와 현상(the phenomena)- 이는 가장 많은 부분에서 벤야민의 관심을 끌며, 존재론적이기보다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것이다- 사이의 이차적인 혼선이 남아있다. 즉 사물들은 (명명되길 요구하거나 신적 근원과 함께 하는 그들의 원래 이름을 통한 접촉을 회복하길 간청하며, 아담(Adam)을 에워싸는 세목(items)들과 같은) 정적인 객체들(objects)의 세계를 입안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도시와 풍경에 대한 표면적으로 더욱 객관적인 묘사인 <원천>, 예컨대 인간적으로 구축된 객체들, 이내 제도와 사유를 다룬다. 그들은 역사적이며, 그로서 그들의 표현과 편제는 갱신된 숙고를 요청한다. 예컨대, 하나의 사건이, 성좌는 차치하고서라도, 별이 될 수 있는가?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점성술의 언어로 특징지어져 나타나는 사유는 어떤가?

 이들 모두는 저 유명한 서론에 대한 추가적인 분석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처음의 신비적인에세이들과 미디어에 대한 후기의 고찰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더 세심한 독자들을 항상 괴롭혀온 벤야민에서의 신학적인 것에 대한 쟁점에 관해 갱신된 질문을 제기한다). 그 서론은, 실로, 어느 벤야민의 다른 텍스트들에 대한 몰두 이후에 항상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 마찬가지로 서론에 대한 이러한 독해의 과정으로 되돌아올 중단과 중지의 쟁점은, “숙고의 과정에 가장 적합한 형식[으로서의] 계속되는 호흡의 중단이라는 아이디어에 의해 처음엔 가볍게 다뤄진다. 몇몇 적절한 벤야민적 주제론에 대한 베일에 싸인 그러한 다른 많은 암시들은 우리가 계속 나아감에 따라 우리를 괴롭힐 것이고, 여기서 더 조사될 수는 없는데, 여기선 다만 바로크와 같은 개념의 지위에 대한 조사를 가장하여, 성좌에 대한 공식이 마침내 나타날 것이며, 철학적 해답이 아니면 최소한 유용한 코드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바로크는 어떤 단일한 개념적 범주 하에 포괄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면상 시대 구분하는 장치인 그것은 역사적이며 동시에 초역사적이지만, 또한 양식적이며, 끝내, 벤야민이 전개했듯, 정동적이고 속 특정적(generic)이기도 하다 (벤야민이 규정했듯, 비애극은 특정한 장르이다). 한편, 특정적으로 바로크적 언어 양식 혹은 재현양식(알레고리) 등과 더불어, 바로크적 우주론이 있다. 이는 물론, 바로크가 플라톤적 천국의 단일한 별이라기보다는 성좌인 이유이며, 우리는 마땅히 이것이 개념적 수준에서 의미할 수 있는 것을 살펴야 한다.

 여기선 세 개의 별개 요소들 혹은 용어들이 작용한다. 개념(concepts), 사고(ideas), 현상(phenomena)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플라톤적이거나 혹은 다른 무엇인) 사고는 현실(a reality) 혹은 현상에 대응하며, 그것은 그러한 현상을 명명하여 급박한 복잡성에 대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고 전제할 수 있다. 이러한 감각은 우리가 사고란 그들[사고]의 개념이 아니며, 그들[사고]의 법칙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강화된다 (사고의 대상에 대한 개념도, 저 대상의 법칙도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식(knowledge)에 기여하지 않는다 ... 그들은 영원한 성좌이다.”

 따라서, 다양한 개별적인 개념들-어떤 현상에 대한 개념적 요소들”-, 우리가 성좌라고 부르게 될 하나의 패턴으로 형성된다. 이러한 개념적 요소들은, 모든 실천적 목적에 있어서, 가장 극단적인 현상형태, 즉 그 법칙이라기보다 예외, 평균적인 형태라기보다, 가장 터무니없는 버전에서 -예컨대 국가와 희곡, 인간 신체와 감정과 같은 어떤 형식의 외부적 한계에서-, 그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 가장 잘 도출된다. 따라서 과학 혹은 추상적인 장르나 범주에 대한 지식에 봉사했을 수도 있을 개념은 그들이 (과학이나 지식이라기보단) 외려 진리(truth)를 섬기는 방식으로, 그로서 그들 스스로를 이름 혹은 본질로 드러내면서 여기서 조정되고 더 극적으로 상호 관련된다.

 개념들의 한 무리를 어떤 성좌로 함께 연결하는 것은 따라서 어떤 사물을 명명하고 그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다. 성좌를 형성한다는 것은 어떤 사고를 명명하고 그로서 그 본질을 진리로서 발견하는 것이다. 이는 논리 혹은 추상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사유는 의도(intention) 없이, 명명 행위에서 나타나며, 그들은 철학적 숙고에서 갱신되어야 한다. 이러한 갱신에서 말에 대한 태고의(primoridial) 이해 양식이 복원된다. 그리고 그렇게, 그 역사의 과정에서 ... 철학은 ... 사유의 재현을 위한 투쟁으로 ... 항상 남게 되는 바의, 제한된 수의 말들을 재현하기 위한 투쟁이다.”

 여기서 우선 논해야할 것은 "의도"에 대한 저 독특한 환기이다. 그 용어는 지식과 진리 간의 구별이라는 더 친숙한 맥락으로 되돌아온다. “그 개념에 고유한 의도에 의한 것으로 결정되는- 지식의 목표(object),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의도 없는 존재의 상태이며, 사유를 구성한다.” 제임슨은 우리가 벤야민이 비극에 대해 묘사할 때 로젠츠바이크에게서 빌려온 “expressionless(표현없는)”이라는 개념을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문장의 완전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본다. 그것은 그리스 조각상의 텅 빈 눈이며, 다소 인간의 심리 너머, 심지어 인간 주체성 너머에 있는 어떤 상태이고- 원한다면 스피노자의 제 3종의 인식(third way)이라 해도 좋을 것이나, 확실히 변증법에 고유한 이념이며, “주체의 철학들에 대한 동시대의 공격에 고유한 이념이자, 판단 너머에 있는 상태이다 (, 니체적 의미에서, 선악의 너머에, 윤리적 이분법 너머에, 그리고 덧붙이자면 알튀세르적 방식으론 이데올로기 너머에). 벤야민이 표면상 초시간적이거나 영원의 기묘한 언어와 덜 고상한 본질 영역에 대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다. 따라서 성좌들에서 경험적 개념들을 닮는 것은 개별적인 말들을 그들의 추락한 상태에서 구제하고, 앙상블로서의 그들을 어떤 이름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즉 성좌는 어떤 이름이며, <원천>의 경우에 그것은 바로크이다.

 한편, 이러한 과정의 중요한 특징은, 우리의 현재 맥락에서, 이름들 각각의 분리이며, "순수한 본질들 간의 교통 불가능한 간격"이자, 성좌들 사이의 발본적인 단절이다. 철학 자체를 격하시키는 것(혹은 우리가 보았듯, 그것에 이름과 말들, 공간적 접합들에 대한 영구적인 투쟁을 선고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발본적인 단절인 것이다. 추상과 판단으로의 언어의 추락은 철학 그 자체의 부상과 동일하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벤야민의 사유를 다른 방식으로, 오늘날 우리가 이론 혹은 변증법이라 치하하고 싶어 할지 모르나, 반체계적 사유와 글의 형식을 엄격하게 조건 짓는 바의, 일종의 야생의 사고(pensée sauvage) 혹은 세심한 경험주의(tender empiricism)"로 봐야하는 이유이다. <원천>에서 바로크라는 이름의 의미론적 격동들(convulsions)은 다만 이러한 일반적인 과정의 두드러진 한 사례일 뿐이다.

 성좌들은, 달리 말해, 일종의 몽타주인데(들뢰지언들이라면 그들을 agencements 혹은 assemblages라 부를 것이다), 그것의 형상적 함의는 동일성이라기보단 외려 차이에 있다. 그들은 체계에 대한, 혹은, 괜찮다면, 철학 자체의 체계성에 대한 가시적인 반론이다. 더 나은 표현이 있으면 좋겠지만, 벤야민이 때로 (우리가 나중에 돌아와 다루게 될)“변증법적 이미지들이라 부르길 즐겼던 것의 구축과 효과를 관장하는- 이러한 원칙은 또한 벤야민적 형식의 본질과 그 형식의 브레히트적 미학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언급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벤야민의 산문 작업의 귀결은 정확히 성좌로 형성된 집단의 이러한 단절이다. 즉 독자가 실로 결코 복구시킬 수 없는 바의 어떤 연속성을 요청하는 간극과 공백 말이다. 그들은 결코 "도로 함께 붙여지지 못하는 것의 부서진 조각들을 구성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가 번역가의 임무에서 제기하듯), 그러한 의미에서 독자는 또한 일종의 번역가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 선행해야 하는 것은 최초의 파괴의 행위이며, 이것은 필연적으로 독자/해석자의 첫 번째 행위가 된다.

브레히트적 몽타주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동일한 작동을 제공하는데, 여기선 친숙한 연속성들(예컨대 어떤 행위나 사건에 대한 관습적인 이해)은 우선 부서지고, 이어 완전히 달리 보이는 무언가의 형태로 재구축된다. 이는 그 유명한 소격 효과(V-effect), Verfremdung 혹은 estrangement의 두 계기이다. 브레히트가 벤야민과 공유하는 것은 중단, 분리, 간극에 대한 최우선의 강조이다. 이상적인 브레히트 희곡은 일련의 자율적인 에피소드들이며, 각각은 일종의 모나드인데, 그것의 재구축된 통일은 어떤 묘사, 노래, 혹은 내려오는 플래카드에 의해, 즉 그것의 이름에 의해 관장된다.

 이러한 공유된 단절의 논리는 벤야민과 브레히트 사이의 선택적 유사성을 구성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예술과 역사 자체(우리가 보게 될 것처럼)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어떤 격하된 형식으로서 "판단에 대한 벤야민의 평가에 있어 우리가 읽어왔던 독해를 확증한다. 이에 대한 브레히트의 버전은 다음과 같다:

 

  메티가 말하길: 우리의 경험들은 대개 너무나 빠르게 판단으로 바뀐다. 우리는 이러한 판단들을 기억하고 있으나, 우리는 그들을 경험이라 생각한다. 본래, 판단은 경험만큼은 썩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경험을 신선하게 하여, 그들에 기반한 새로운 판단에 항상 가닿을 수 있기 위해서는 특정한 기술이 필요하다. 메티는 그러한 종류의 지식을 눈덩이와 같은 최고의 것이라 불렀다. 그들은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으나, 그리 오랫동안 유지될 수는 없다. 그들은 또한, 예컨대 호주머니 속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5

 

 여기서 브레히트의 행위에 대한 강조는, (구체적) 경험이라는 지극히 중요한 현상학적개념과 판단이라는 개념(이는 보통 부정과 긍정을 번갈아 오간다) 간의- 벤야민의 동일한 구별에 흥미로운 교차광을 던진다. 실로, 벤야민의 방식에서, 우리는 고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에 대한 그 나름의 최초의 교대를 관측할 수 있다. 한편으론 그것은 미학적으로 새로운 것(the New)과 생산으로서 안정화되며, 다른 한편으론 그것은 경험의 상실이자 퇴조이다. 이것은 니체적 의미에서 실로 판단에 대한 가치전환이다. 이것은 윤리적 이분법을 재정초하며, 역사적 맥락에 의지하여, “정치적으로그 과정을 좋음(건설) 혹은 나쁨(퇴보)으로 재평가한다. 따라서 여기서, 추상과 체계에 대한 벤야민의 반철학적 공격의 정수에서, 역사 자체와 그것의 유동적이고 상황적인 판단은 낡고 정적인 철학적 윤리학을(마찬가지로 미학 역시) 대체한다.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라면, 벤야민에게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드물게 사용되는 용어이며, 알튀세르에 의해 제안된 포괄적인 규모(여기서 그것은 한편으로 세계관의 등가물이 되며, 다른 한편으론 일종의 사르트르적인 근원적 선택에 대한 등가물이 된다)로까지는 접수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임슨은 이러한 신중함이 또한 이데올로기적 식별이 내재적 비판이나 내재적 독해에 있어서는 믿을게 못 된다는 벤야민의 날카로운 감각에 의해 조정되었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벤야민이 종종 부정적 판단과 긍정적 판단 사이에서 망설이는 이유이다. 예컨대 그 유명한 아우라는, 진실하거나 참된 경험의 귀중한 생존을 특징지을 수 있으며, 혹은 고대의 논리로의 의심스러운 퇴행과 그러한 퇴행의 궁핍함에 대한 그럴듯한 대체물과 보상책을 드러낼 수도 있다. 내재적인 분석은 이러한 모호성을 해결할 수 없다. 오직 상황의 화용론만이 그걸 할 수 있다. 이것이 -항상 화용적인- 벤야민의 판단이 때로 겉치레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즉 그것은 항상 정치적이다(그의 말들과 그의 권고를 보라!). 그것은 언제나 상황에 의존하며, 이때 텍스트로부터 추론된 이데올로기적 입장은 유용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활력이 넘치거나 파시즘적일 수 있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이러한 상황적 혹은 화용적 성질의 유용함은 텍스트에 대한 내재적 분석에서 추론될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텍스트 외부적(extra-textual)이며, 따라서 순수 학문적 목적에 대해 항상 물의를 빚는다.

 시대구분에 있어서, 표현주의의 연대를 확실히 하는 것은 이러한 기이한 바로크의 거울상에서 많은 것을 알게 해 줄 것이고, 우리가 벤야민의 독특한 역사개념 자체로 올 때, 우리는 다만 지금에 대한 인식의 역사기술적인 역동을 이해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가장 파괴적인 유럽의 대립이자 심원하게 오래 지속되는 중유럽의 트라우마였던 30년 전쟁의 시체와 주검들로 어질러진 채, 루터의 혁명이 초월성의 종말을 가져오는, 그러나 음울함과 상실된 불멸의 자연에서 예비적인 바로크의 일광으로서 머무르는- 이 기간의 과도기적 본질을 이해해야만 한다. 세속화는 의심의 여지없이 저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그것을 고조시켰고, 종교적 퇴행에 대한 동기는 심지어 바이마르의 신화와 종교에 대한 열정에서보다 여기서 훨씬 더 완전히 부상한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인물들 중엔 셰익스피어보다는 웹스터와 더 유사한- 벤야민의 섬뜩하고 장황한 연극조의 부활을 당대 최고의 소설가였던 그리멜스하우젠(Grimmelshausen)[각주:16]의 중편소설을 희곡화한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Mother Courage and Her Children)>(1939)과 나란히 두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6

 사실, 그러나 벤야민에게서 바로크는 몇몇 라틴 아메리카의 작가들과 학자들이 (네오 바로크라는 용어 하에) “(Boom)"[각주:17]마술적 리얼리즘에 대한 대안으로 소생시키려 시도했던 바의 이 같은 초역사적 범주가 되진 않는다. 외려, 벤야민은 그것을 한편으론 쇠잔에 대한 멜랑콜리로, 다른 한편으론 그것의 가시적인 혹은 상형문자적인 언어로- 이들 첫 번째를 두 번째에 대한 장식적인 표현으로 만들면서, 알레고리에 대한 이중의 범주로 동화시킨다.

 이것이 바로크가 보들레르의 파리에서 대문자의 문제이자 인격화된 추상으로서 재등장할 수 있는 방법이다. la Douleur(고통) 혹은 la Mélancolie(우울) 말이다. 동시대에 대한 이 발언보다 보들레르 언어의 이러한 차원을 더 잘 드러내는 것은 없다. “고티에는 그의 어조가 대문자들과 이탤릭체들로꽉 차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치 자신의 목소리에서 낯선 이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이 말했던 것에 깜짝 놀란 듯 ... 보였다.” 라블레(François Rabelais)[각주:18]의 냉혹한 언어처럼, 이러한 말들은 그의 입에서 나와 물화되고 이미 알레고리적 대상으로 전환되었다. 보들레르를 낭만주의자들의 감상주의(sentimentalism)로부터 구제하는 것은 어떤 물화인데, 그들은 보들레르보다 앞서 왔으며, 그 시인[보들레르]이 아마도 그들의 고전주의로서 생각해왔을 저 보석 같은 대상성을 그의 시들에 빌려주었다(“예술의 절반).[각주:19]

 그러나 제임슨은, 좋든 나쁘든, 바이마르 시기의 예술적 분위기에 있어 보들레르의 알레고리적 성취를 향해 비평가들의 눈을 열리게 해줬던 것은, 바로 벤야민과 브레히트에게 똑같이 어떤 감상적이고 사회-민주주의적 휴머니즘으로서 혐오되었던, 표현주의라고 제안한다. 표현주의자들의 O-Mensch[각주:20]식의 토로는 보들레르의 추상적인 감정들보다 본질상 덜 알레고리적이지 않다. 양자 모두 주관성을 표현하고, 동시에 주관성을 재조직하고 재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양자 모두 심원한 정치적, 사회적 위기들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표현주의자들이 인간성이 그 선(goodness), 우애, 명예로운 그 이상에 대한 힘을 되찾게 되는 어떤 광대한 감정을 소환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면,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냉소와 악의의 역설, 운명적인 비참과 복합적인 환멸의 분위기를 발했다. 표현주의는, 보들레르 시의 개화기와 마찬가지로(특히, 벤야민에게 소중한, “파리지엥의 장면들”), 좌절에 대한 표현이자, 1848년의 혁명과 더불어 뮌헨 혁명[각주:21]의 실패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나 표현주의가, 벤야민이 그가 혐오하는 진보로 동화시키게 될- 강요된 낙관주의로 저 재난을 극복하려 했던 곳에서, 보들레르는, 플로베르처럼, 그 잔재에 대한 환멸의 쓴 잔을 마셨고, Angoisse(불안), Mélancholie(우울), Destruction(쇠잔) - 장기적으론 벤야민의 동시대인들이었던 퇴보한 알레고리스트들의 그릇된 희망과 관념적인 분투보다 더욱 활기 넘치며 니체적인 회의주의를 심리적으로 입안하려 했다. 여기서 반동의 빙하기의 어려움을 위해 미래의 혁명적 주체를 준비하는 것은, 퇴행적이고, 성마르며, “화난 괴테”(보들레르!)의 반역적인 악마숭배인- 혁명적 낙관주의 자체이다.

 

 

 

 

  1. 1차 대전 기간에 Rang은 독일의 전쟁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등 진성우파의 면모를 보여줬으나, 벤야민과 교류하기 시작한 1920년을 즈음하여 그는 독일의 국가주의로부터 완전히 돌아선다. 그는 <원천>의 집필에 큰 영향을 주었고, 벤야민은 그런 그를 두고 니체 이후 독일적인 것에 대한 가장 깊이 있는 비판자라고 불렀다. [본문으로]
  2. 독일의 유대계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프란츠 로젠츠바이크(Franz Rosenzweig)<구원의 별>1919년에 완성되었고, 1921년에 출간되었다. 이 저작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신, 세계(우주), 인간이 창조, 계시, 구원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계시는 내재적이고, 신에 대한 사랑은 세계 자체로 회귀함이라, 그것이 구원의 요체가 된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3. 이 영역된 인용문에서 벤야민은 sublimity를 칸트적 의미에서의 숭고와 간접적으로 관련짓고 있다. [본문으로]
  4. 루터주의 철학자이자 칸트 당대의 인물로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활동한 칸트 철학 이후의 주도적 인물들 중 한명으로 셈해지며,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에서 벤야민이 중요하게 언급한 바 있고, '신적 겸양'이라는 그의 개념은 벤야민의 언어철학에 중요한 맥락을 제공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다음을 참고. Alexander Stern (2017). “The Mother of Reason and Revelation”: Benjamin on the Metaphysics of Language. Critical Horizons, 19(2), 140156. [본문으로]
  5. 오스트리아의 극작가이자 기자, 시인, 풍자가 등 여러 포지션의 문필적 위치를 가졌던 인물로서 <인류 최후의 날들(Die letzten Tage der Menschheit)>(1918) 등 여러 작업을 남겼다. [본문으로]
  6. 여기서 로렌츠바이크의 비극은 벤야민이 염두에 둔 바로크 비애극으로 치환하여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7. 횔덜린은 시인이기 이전에 그리스 고전의 탁월한 번역자였다. 횔덜린에게 있어 번역과 시의 작업이 함의하는 바를 상술하는 연구로는 다음을 참고. David Constantine. “Service abroad: Hölderlin, Poet-Translator A Lecture.” Translation and Literature Vol. 20, No. 1. pp. 79-97. [본문으로]
  8.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중엽까지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랑극단의 상연목록에서 지배적이었던 연극 형식. 주로 농부로 설정된 광대가 등장하는 희극으로서, 드라마와 즉흥극이 결합된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당시엔 출판된 희곡이 얼마 없었고, 대부분이 비극이었기 때문에 그 텍스트들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레퍼런스로서 이용되었으며 주요 사건은 익살스러운 에피소드가 이끌되, 짧은 막후극(Nachspiel)이 부대적으로 첨가되는 식이었고, 주로 고대의 신화적이거나 역사적-정치적 내용을 다룬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희곡이나 오페라에 기반하고 있었다. [본문으로]
  9. 스페인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바로크적 극작가이자 군인. 제임슨이 언급하고 있는 <La vida es sueño>1636년에 출판된 그의 출세작이다. 이 희곡은 전반적으로 삶의 의미에 대한 고뇌와 번민을 다루고 있으며, 여기서 등장하는 가상의 폴란드 왕자 세기스문도(Segismundo)의 다음과 같은 대사는 이 시기의 바로크적 파열과 함께 발생한 것이 모종의 세속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준다: “What is life? A frenzy. What is life? An illusion, A shadow, a fiction, And the greatest good is small; For all of life is a dream, And dreams, are only dreams.” 한편 여기서도 등장하는 부자갈등(세기스문도는 왕인 자신의 아버지와 갈등한다)은 바로크 희곡의 보편적인 특징으로 제시되는 바, 이는 이 무렵 가시화되기 시작한 중세적 전통과 새로운 세속적 공허 간의 역사적 갈등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10. 기원전 5세기경 아이스킬로스(Aeschylus)에 의해 쓰인 3부작 비극이다. 클리템네스트라(Clytemnestra)에 의한 아가멤논(Agamemnon)의 죽음, 그리고 오레스테스(Orestes)에 의한 클레템네스트라의 죽음에 이은 오레스테스의 재판을 다루고 있다. [본문으로]
  11. phony war/phoney War; 19399월부터 19404월까지 서부전선에서 지속된 기간으로, 독일의 폴란드 급습 이후로 프랑스의 독일 자르 구역 침공을 제외하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기간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12. humorism; 고대 그리스 철학 및 4원소설에 영향을 받은 감정/기질론으로서, 이들의 배치에 따라 인간의 성격양태가 조절되는 바의 기분의 4 실체를 가리킨다. 우울(Melancholic)-흑담즙(Black Bile), 냉담(Phlegmatic)-점액(Phlegm), 분노(Choleric)-황담즙(Yellow Bile), 쾌활(Sanguine)-(Blood) 등의 대응관계를 설정한 것이 특징이며, 셰익스피어의 우주론이자 당대 서양 의학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본문으로]
  13. 독일의 고고학자이자 철학자로서, <고대인들의 상징과 신화; 그리스를 중심으로(Symbolik und Mythologie der alten Völker, besonders der Griechen)>라는 저작으로 유명하다. 고대의 현시로서 상징을 숙고하며, 호머와 헤시오도스의 신화가 동양의 펠라스기인(pelasgian)들로부터 연원한 것이라 주장했으며, 이를 통해 문화를 단일한 민족에 대응시키는 당시 독일에 편재했던 낭만주의적 민족주의를 반박했다. [본문으로]
  14. 20세기 전반에 걸쳐 활동한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신화학자. [본문으로]
  15. 일종의 심각한 망상장애 내지 편집증으로서, 자신의 삶 전체가 텔레비전 쇼라고 생각하는 정신적 질환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16. 17세기에 활동한 독일의 대표적인 바로크 문학가이자 민중소설가로서, 당대에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던 귀족적이고 고상한 문체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생생한 언어를 주로 구사했다. 30년 전쟁 시기에 직접 군인으로 복무했으며, 전쟁 말기엔 신성로마제국 하의 슈트라스부르크(Strasbourg) 지역에서 주교로 일했고, 독학한 글로 틈틈이 유토피아 문학과 여행문학에서 영향을 받은 풍자적인 작업들을 내놓았다. 브레히트가 나치 독일과 덴마크를 위시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들을 비판하고자 각색한 <Lebensbeschreibung der Ertzbetrügerin und Landstörtzerin Courasche>(1669)는 본래 총 4권으로 기획된 짐플리치시무스(simplicissimus; in Latin, simplest, very simple etc) 전집 시리즈의 한 부분으로서, 30년 전쟁에서 산전수전을 감내하며 전쟁 통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다루며, <모험적 독일인 짐플리치시무스(Abentheuerliche Simplizissimus Teutsch)>(1668)에 이은 또 다른 이야기다. 이 시리즈는 모두 30년 전쟁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 군상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다른 작품에서 동일한 사건이나 배경들이 교차되는 것이 특징이다. [본문으로]
  17. 2차 대전 이후 세계적인 규모와 내용으로 성장하며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해나간 현대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적 추동력을 일컫는다. 본 개념 자체가 엄밀한 문학적 특징들을 포괄할 수 있는 정도로 섬세한 것은 아니지만 라틴 아메리카 소설의 시대 구분을 위해 유효한 분석단위로 도입되곤 한다. [본문으로]
  18. 16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프랑스의 르네상스 문필가이자 그리스 연구자로서 그로테스크 및 풍자적 산문으로 유명하며, 바흐친의 저작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훔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에서 급진적인 민중적 웃음 및 카니발의 담지자로 조명된 바 있다. [본문으로]
  19. 앞서 제임슨이 언급했듯, “보들레르에게 예술의 절반은 고전적인 것과 영원한 것이며, 나머지 반은 근대적인 것과 덧없는 것인 것이다.” [본문으로]
  20. "O Mensch, bewein dein Sünde groß(오 그대여, 너의 죄에 비통해하노라)” 제발트 하이든에 의해 1530년에 쓰인 루터주의 찬송가이며, 예수의 수난을 다루는 가사로 점철되어있다. [본문으로]
  21.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으로의 이행에 가교를 놓은, 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봉합되어 버린 혁명. 1차 대전에서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민중들이 노동자 병사 평의회를 결성하여 전쟁을 중단시키고 제정을 몰락시켜, 독일사민당을 중심으로 임시적인 공화국을 선포했던 것이 그 내용이다. 이 과정은 191811월부터 약 3달간 진행되었으나, 독일사민당 우파 에베르트가 로자 룩셈부르크, 칼 리프크네히트 등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을 진압하고 이내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함으로써 종결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