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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Costas Lapavitsas. "3. The First Wave of Financial Ascendancy: Marxist Theoretical Responses." in Profiting Without Producing: How Finance Exploits Us All. Verso, 2013. 44-67.

by 정강산 2021. 8. 21.

Costas Lapavitsas. "3. The First Wave of Financial Ascendancy: Marxist Theoretical Responses." in Profiting Without Producing: How Finance Exploits Us All. Verso, 2013. 44-67.

 

 금융화는 성숙한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두 번째 금융우위(ascendancy)를 나타내며, 첫 번째 금융우위는 19세기 마지막 4분기에 시작되어 간전기(interwar)까지 지속되었다. 그 기간 동안에는 (종종 배타적인 무역지구(trading zone)에서 작동하는 카르텔로서 조직된 채) 거대한 독점 기업이 생산의 우세한 단위로 부상했다. 또한 글로벌 금융을 지배했던 독점은행들과 주로 연결되어, 자본수출과 국제금융시장이 강력하게 성장하였다. 동시에, 생산영역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세계무역에서 현저한 우위를 보였던 영국은 독일과 미국으로부터 맹렬한 추격을 받았다. 이러한 기저의 경제적 추세에 대한 정치적 대응물은 주요 자본주의 열강들 간의 군사주의와 제국주의였다.

 금융화는 금융우위의 첫번째 기간(bout)과 명백한 유사성을 갖는다.1 다국적 기업이 글로벌 경제활동을 지배하고, 글로벌 은행들이 국제 금융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며, 자본수출은 실질적으로 성장하고, 특정한 유형의 정치적, 군사적 제국주의가 스스로를 재천명한 채 미국에 의해 주도되어 왔지만 이는 다른 열강들(powers)부터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있다. 그러나 [1,2차 금융우위의]두 기간들 사이에는 또한 중요한 차이들이 있다. [현재의] 금융화는 영토적 제국과 관련된 배타적인 무역구역을 야기하지 않았으며, 은행은 비금융 기업들에 대해 지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일반적인 가계와 노동자들의 경제적 삶에 있어 금융적 관계가 확산되어온 한편으로, 금융영역과 생산영역 간의 심대한 상호침투가 있어왔다.

 금융우위의 첫 번째 시기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 사이의 강도 높은 논쟁을 촉발시켰고, 이는 이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간략히 요약된다. [이에 대한] 중요한 기여는 루돌프 힐퍼딩의 <금융자본>이었는데, 이는 금융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금융화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에 있어 본질적인 출발점이다. 100년도 전에 힐퍼딩에 의해 그려진 결론을 [오늘날의] 금융화 된 자본주의의 조건에 곧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힐퍼딩이 제기한 쟁점, 그가 전개한 이론적 개념, 그리고 그가 끌어낸 당대의 경제, 사회, 정치적 현상들 사이의 연관성은 금융화 분석에 있어 매우 결정적이다.

 힐퍼딩은 그의 시대의 거대한 전환에 대한 원인을 생산의 침체, 제도적 변화, 혹은 정책의 결정에서가 아니라 축적의 근본적 관계들에서 찾으려 했다. 그의 근본적인 주장은, 이 장의 이어지는 절들에서 더 논의되겠으나, 자본주의 생산의 규모가 성장함에 따라 독점체들(monopolies)이 은행에 의해 제공되는 투자 신용(investment credit)에 매우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은행과 산업간에 긴밀한 관계가 발생하고, 결국 금융자본의 부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힐퍼딩은 오늘날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라 불리우는 바의 이러한 전개의 조직적(organizational) 함의를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금융자본은 상호 임명(interlocking appointment), 정보교환, 공동의사결정 등을 통한 금융과 산업 사이의 긴밀한 연결에 의존하도록 되어있다. 힐퍼딩이 '능동적인' 산업자본가와 '게으른(idle)' 금융자본가 간의 잠정적인 대립을 상당히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산업자본가들에게 자신들의 이해(interests)를 부과하여 투자율 혹은 성장률을 낮추는 금리생활자(rentiers)에 대한 시사는 없다. 외려, 금융자본은 은행과 산업자본의 융합으로 비춰졌으며, 따라서 산업자본은 금융운용에서의 이윤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졌다.

 또한 힐퍼딩은 금융자본의 대두에 따른 자본가 계급의 새로운 이윤 형태를 식별하였다. 주식시장에서 미래 이윤은 이자율로 할인되지만, 생산이나 무역에 실제로 투자된 자본은 이윤율을 얻는다. 이자율은 이윤율보다 낮은 경향을 갖기 때문에, 기대 수익이 순현재가치로 바꿔진다면(translated) 주식에 지불된 금액은 실제 투자된 자본[]을 초과한다. 양자의 차이가 바로 '창업자이윤'인데, 이는 주식을 발행한 이들을 위해 일시금(lump sum value)으로서 축적된다. 은행 또한 투자은행업무에 대한 지불로서 '창업자이윤'의 일부를 획득한다. 6장에서 보여주듯, 힐퍼딩의 '창업자이윤' 개념은 자본이득(capital gain)을 포함하여 동시대 금융이윤에 대한 분석에 많은 시사점을 남겨주었다.

 레닌은 힐퍼딩의 금융자본 개념을 빌려옴으로써 그의 제국주의 분석의 이론적 핵심을 세웠다. 레닌은, 비록 힐퍼딩이 독점화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있었지만, 산업자본과 은행자본 양자의 독점으로의 경향을 더 크게 강조했다. 레닌에 의한 주요 이론적 혁신은 금리생활자(rentier)를 제국주의 시기의 자본가계급 내의 중요한 사회적 집단으로서 소개한 것이었다. 이 개념은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었던 영국의 급진주의자 홉슨(Hobson)에게서 빌려온 것인데, 확실히 강력하지만 이 장의 몇몇 절과 이후의 장들에서 보이듯, 금융에 대한 분석에 있어 상당한 혼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레닌은 금융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국가들에 의한 세계의 재-분할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따라서 이것이 제국주의적 경쟁과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 봤다. 결국 레닌은 금융자본이 자본주의 경제를 '조직'하며 따라서 위기로의 경향을 개선시킬 것이라는 힐퍼딩의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힐퍼딩과 레닌 어느 쪽도 금융우위를, 자본이 투기적 금융이윤을 목적으로 유통영역으로 빠져나간 결과로서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힐퍼딩과 레닌 모두-실로 그들 시대의 선도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 대부분은- 위기를 단순히 이윤율 저하 경향의 이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현상으로서 다뤘다. 자본주의 생산의 일반적인 상태가 자본의 지속적인 과도한 유기적 구성의 상승이나 '잉여' 흡수의 실패로 인해 오작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생소한 것이었을 것이다. 나아가 힐퍼딩과 레닌은 금융우위가 자본주의 헤게모니 권력의 '가을'을 나타낸다는 생각에 놀랐었을 것이다. 그와 정반대로, 금융자본의 전형적인 국가인 독일은, 선진자본주의의 첨단을 대표하는 신흥 제국주의 권력이었다. 레닌이 제국주의를 '부패'하고 '기생적'인 것으로 봤던 것은 사실이나, 이는 금융자본이 가장 강력했던 국가들의 생산영역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 전체로서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 장의 나머지 부분은 금융화에 대한 이론적 분석을 발전시키는 것에 대한 전망과 함께, 1차 금융우위의 시기에 대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논쟁들로부터 도출되는 개념들과 이론적 결론들을 논의한다. 본질적으론 주로 힐퍼딩의 작업에 주목하지만, 부분적으로 레닌과 여타의 주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도 다소 자세히 고려된다.

 

 

자본주의의 전환에 대한 힐퍼딩 분석의 지적, 정치적 맥락(The intellectual and political context of Hilferding's analysis of capitalist transformation)

 

 루돌프 힐퍼딩은 19세기 말에 마르크스주의를 포용하고 형성했던 오스트리아-독일의 주목할 만한 세대에 속했다. 1894년 그는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비엔나 대학에 입학하지만, 실제로는 정치경제학을 공부했으며, 특히 오스트리아 신고전파들과 논쟁했다. 1896년 저명한 오스트리아 이론가 오이겐 뵘-바베르크(Eugen von Böhm-Bawerk)<칼 마르크스와 그 체계의 종언(Karl Marx and the Close of his System)>을 발간하며 마르크스의 <자본> 1권과 3권 사이의 치명적인 비일관성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2 마르크스는 1권에서 -추상적 인간 노동으로서의 가치에 대한 그의 이론을 따라- 가치대로 교환되는 상품을 전제하는 한편, 3권에서는 상품이 가치로부터 벗어나는 생산가격에 교환된다고 가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마르크스가 깊게 인식하고 있었던, 잘 알려진 바 있는- 가격으로의 가치의 전형(transformation)’문제이다. -바베르크에게있어, 마르크스의 작업에서의 이 명백한 모순의 넓은 함의는, 그것이 신고전파의 주관적인 가치이론에 대한 노동가치론의 열등함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동일한 맥락에서,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생산에서의 노동자의 착취에 대한 이론은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되었다.

 힐퍼딩은 상품교환의 사회적 기초를 강조하는 평론으로 응답했는데, 그 문제는 신고전파 이론이 으레 무시했던 것이었다. 힐퍼딩에게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은 단순히 상품의 상대적 가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교환의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기초를 포착하려 하는 것이었다. 반면 [신고전파의]주관적 가치이론은 개인의 심리적 기호(predilection)에 초점을 맞추며 경제활동의 사회적 구성(constituents)을 파악하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은 따라서 단순히 가격 이론에 대한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전체로서의 사회를 조명하려하는 강력한 수단인 것이다.

 힐퍼딩은 독일에서 칼 카우츠키에 의해 편집되던 <새 시대(Die Neue Zeit)>에 그의 평론을 기고했으나 카우츠키는 그 작업의 질에 감동했음에도 실제로는 게재를 거절하였다. 결국 그 글은 1904년 비엔나에서 -바베르크의 마르크스 비판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는데, 그 영향은 즉각적이었다.3 그 즈음 뵘-바베르크는 비엔나 대학의 교수였고, 1905년엔 유명한 세미나를 시작하는데, 이는 곧 오스트리아 신고전파와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의 유망주들 간의 논쟁의 장이 된다. 가장 저명한 참가자는 요제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였으나 그 그룹에는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또한 있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 중에는 오토 바우어(Otto Bauer)가 존재감이 컸는데, 그는 필경 힐퍼딩이 논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초대했으며, 슘페터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4

 뵘-바베르크에 대해 힐퍼딩이 내놓은 응수의 더 넓은 효과와 중요성은 독일 사회민주당 내부의 수정주의(revisionism)’논쟁의 맥락에 와서야 분명해진다. 1899,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은 사회주의로의 혁명적 이행의 전망을 거부하는 <점진적 사회주의(Evolutionary Socialism: A Criticism and Affirmation)>를 출판했다. 그는 사회민주당 내에서 지대한 영향력이 있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그가 마르크스, 엥겔스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저작에서, 그는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를 믿을 수없다고 선언하며, ‘참된 민주주의로의 사회의 점진적인(step by step)' 전환을 강조했다.5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혁명적 정치를 경험한 바 있는 독일 사민당의 지도자들에게, 베른슈타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책자를 통해 베른슈타인을 공격했고, 사회민주당의 혁명적 좌파를 규합하기 시작했다.6 그녀의 비판은 카우츠키 역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를 거부하도록 했으며, 점차 사민당의 카우츠키주의적 중앙파를 형성시켰는데, 이는 사회주의로의 혁명적 이행이라는 아이디어를 옹호했으며 제 2 인터네셔널 내에 마르크스주의 정통을 향한 풍조를 만들었다. 베른슈타인은 힐퍼딩의 주장을 가차 없이 기각한데 반해, 중앙파는 마르크스의 경제학, 특히 가치이론에 대한 힐퍼딩의 강력한 옹호를 환영했다.7 카우츠키는 힐퍼딩이 <새 시대>에 기고하도록 고무했고, 결국 그가 1906년 베를린으로 오도록 설득했다.

 베를린에서, 힐퍼딩은 당학교(Party School)서 짧게 정치경제학을 가르쳤는데, 그는 독일 시민권이 없었기 때문에 직책을 유지할 수 없었고 곧 로자 룩셈부르크에 의해 대체된다. 이어 그는 1914년까지 당의 주요 일간지인 <전진(Vorwärts)>의 책임편집을 맡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금융자본>을 썼는데, 이는 1910년에 출간되나 상당 부분이 1906년경에 준비되어 있었다. 그 책은 이 장의 남은 부분에서 논의될 이유로 인해 즉각적이고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금융자본>1981년에서야 영어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독일어 원본이 발행된 지 71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거의 한 세기의 3분기동안,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이 핵심적 작업은 앵글로-색슨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대부분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대한 그 영향을 통해서만 알려졌다. 그러나, 1981년 이후 상황은 급격히 변화했고, 이제 힐퍼딩의 고전은 심지어 주류경제학 내부에서조차 영어로 널리 읽히고 인용된다.8

 책의 출간에 이어, 힐퍼딩은 제 2인터네셔널의 지도적 경제학자로 부상했다. 그의 더 넓은 이론적 관점은 또한 이 시기에 명확한 모습을 갖췄는데, 대중 파업과 제국주의의 문제에 대한 에세이들을 포함하여 몇몇은 <새시대>에서 발행되었다.9 힐퍼딩은 마르크스주의를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을 규명하고 사회에 대한 우월한 이론을 제공하는 냉철한 과학적 시도로 간주했다. 정치적 결론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경제의 사회화(socialization)'를 전개시키는 과정을 통해 사회주의의 기반을 다지는지를 설명하려하는 과학적 연구에 기초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도래는 노동계급의 혁명에 달려있다. 이러한 접근의 요소들은 <금융자본> 전반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카우츠키를 포함한 독일 사민당의 많은 이들과는 달리 힐퍼딩은 원칙적인 반전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1918년 진두(the front)에서 물러나 베를린으로 돌아왔고, 로자 룩셈부르크와 그녀의 그룹을 비롯한 사회민주당원들과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1922년에, 그는 당에 합류하여 바이마르 공화국의 진성당원(stalwart)이 되었다. 케인스가 <평화의 경제적 결과(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에서 예견한 바대로, 독일은 상당부분 베르사유조약에 의해 부과된 명예롭지 못한 전쟁배상금으로 인해 지속적인 경제적 문제에 당면해있었다. 힐퍼딩은 독일이 전쟁의 여파를 처리하려 진력했던 1923년과 1928-29, 재무장관을 두 번 역임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힐퍼딩의 활동은 그가 당의 몇몇 정치적 출간물들에서 발전시켰던 조직된 자본주의개념에 의존했다.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화가 막을 수 없이 진행되고 경제와 사회의 합리적 조직화를 위한 기반을 다진다는 개념을 비롯하여, 조직된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 기반은 <금융자본>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연결에서 특히 두드러진 것은 독일 경제가 ‘6대 베를린 대형 은행들을 장악함으로써 공적으로 통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언급이다.10 그러나 힐퍼딩이 조직된 자본주의개념을 제대로 공식화한 것은 <금융자본>을 쓰고 오랜 시간이 지난 1920년대의 일이다.11

 ‘조직된 자본주의는 자본의 집중(centralization)이 경쟁을 억누르는 거대 카르텔의 형성으로 귀결된다고 가정한다. 집중은 또한 은행들 사이에서도 발생하는데 이들 역시 비슷하게 경쟁을 억제하고 신용의 갑작스런 변동을 막는다. 은행들과 산업은 -자본주의적 경제의 무정부성을 줄이며- 그들의 활동을 계획할 수 있고 국가와 함께 고전적인 자본주의적 위기의 출현을 막을 수 있는 금융자본의 거대한 합병체(amalgamations)를 형성한다. 결과적으로, 배상금과 같은 전쟁에 의한 방해요인이 없다면, 경제적 안정성이 일반적으로 우세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적 변화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더 큰 민주주의와 경제개혁을 위해 투쟁해야 했던 것이다. 힐퍼딩의 관점이 <제국주의와 세계경제(Imperialism and World Economy>에서의 부하린의 관점과 대척점에 서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부하린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조직된국민 국가(nation-states)라는 더욱 강력한 개념을 제안함에도 불구,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안정성이 자본주의경제에서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조심스레 주장했다.

 1930년대의 위기는 히틀러를 집권시켰고, 나치는 힐퍼딩을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를 나타내는 유대인 중 하나로 간주했기에 그는 피신해야만 했다. 프랑스의 함락 이후 비시(Vichy) 정부는 19412월 그를 게슈타포에 넘겼고, 추측키론 수일 내 자살 시도 후, 그는 죽게 되었다. 그는 고독한, 환멸에 휩싸인, 상처받은 자이자 정치적 실패자로서 죽었다. 그러나 그의 유산인 <금융자본>은 자본주의의 내적 작동을 계속해서 밝혀주는 선구적인 작업이다.

 

 

힐퍼딩의 이론적 분석의 구조(The structure of Hilferding's theoretical analysis)

 

 <금융자본>의 목표는 동시기 동안의 금융의 주목할 만한 부상(rise)과 관련하여 자본주의의 전례 없는(epochal) 전환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금융 자본이라는 용어는 마르크스 <자본>의 분석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편으로 어떤 역사적 변화에 대한 감각을 전달한다. 힐퍼딩의 책은 기본원칙들(first principles)로 되돌아감으로써 이러한 추정적인 변화를 이론적 용어로 포착하려 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그 저작은 다섯 개의 분석적 부분들로 구성되어있다: 1) 화폐와 신용, 2) 자본의 [금융적] 융통(mobilization); 가공(fictitious)자본, 3) 금융자본과 자유경쟁의 제약, 4) 금융자본과 위기, 5) 금융자본의 경제적 정책.

 힐퍼딩의 이론적 분석의 순서는 확실히 일관적인데, 그것은 고도로 추상적인 경제적 범주들에서부터 더욱 구체적인 위기와 경제정책의 문제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순서는 그 자체로 동시대의 금융화에 대한 분석의 가이드이지만, 힐퍼딩의 책의 구조가 생략과 비약(leap)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가장 중요한 생략은 생산 및 노동과정과 노동시장에 대한 분석과 관련되어 있다. ‘노동계약을 둘러싼 대립(Conflict Over the Labour Contract)’에 대한 끝에서 두 번째 장이라는 사소한 예외를 제외하면, 자본주의 경제의 이들 근본 측면들은 힐퍼딩의 저서 전반에서 논의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만약, 자본주의의 전례 없는 전환이 실로 일어났다면, 그 근원은 필경 생산력과 노동과정에서 발견될 것이다. 힐퍼딩은 <금융자본> 전반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깊게 논의하지 않으며, 실제로 적절한 경험적 증거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접근의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 결과는 그의 전반적인 분석을 약화시킨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생산의 발전을 구체적으로 논증하는 대신, 이 장의 이어지는 절들에서 더 상술되듯 힐퍼딩은 독일 자본주의에 대한 전망에 기반한 일반적인 가정을 제시한다. 불행히도 이어진 독일 자본주의의 발전 경로는 힐퍼딩이 가정했던 것보다 훨씬 자본주의 일반의 전형과 거리가 먼 것으로 판명되었다.

더욱이, 힐퍼딩의 설명은 (기본 원칙들로 돌아가는 금융 분석으로 이루어진) 책의 처음 세 부분들에서 (위기와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으로 이루어진) 마지막 두 부분으로의 비약을 수반한다. <자본>에서의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접근에 따라, 마지막 두 주제들에 대한 적절한 분석은 위기와 자본주의 일반 양자의 역사적 진화를 입증하는 매개의 추가적인 층위들에 대한 소개를 요구할 것이다. 그 매개는 생산영역과 관련될 것이지만, 또한 각 역사적 시대에 특징적인 제도적 전망과도 관련될 것이다. 그러나 힐퍼딩은 이러한 측면에 대해 제공하는 것이 거의 없다.

 이 약점들은 동시대의 금융화 분석에 있어 명백한 중요성을 갖는다. 첫째로, 그리고 외려 명백히, 그들은 현 시대에 대한 힐퍼딩의 결론의 직접적인 유효성을 제한한다. 두 번째로, 더 중요하게는, 그들은 금융화에 대한 분석이 시장의 제도적 틀을 위시하여 생산영역에도 근거해야 함을 가리킨다. 화폐와 금융에 대한 이론적 초점은 -근본적이긴 하나- 그 자체론 결코 금융화의 골간을 포착할 수 없다. 금융화는 단지 금융 체계와 실질적 축적(real accumulation) 사이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생산과 유통 양자에서의 변화들을 포함하는 복잡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 힐퍼딩 이론의 논리적 구조는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개의 분석적 요소에서 명백히 알 수 있듯, 금융화에 대한 이론적 분석에 필수적이다. 그들을 긴밀히 숙고함으로써, 이 책의 남은 부분들에서 금융화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세우는 것이 가능해진다.

 

 

화폐와 신용에 대한 이론과 함께 시작하는 것의 중요성(The importance of starting with a theory of money and credit)

 

 힐퍼딩은 기본 원칙들로부터 분석을 시작했는데, 이는 곧 처음으론 화폐에 대한 이론, 이어 신용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킴으로써 이뤄졌다. 그가 이 문제들에 접근했던 순서는 <자본> 첫 번째 권의 마르크스 고유의 논의에 입각한 것이었는데, 그 순서는 또한 이 책의 4장과 5장에서 채택된 것이기도 하다.13 <경제적 분석의 역사(History of Economic Analysis)>에서의 슘페터의 용법을 사용하자면, 마르크스는 신용에 대한 화폐이론을 개진했다. 이러한 접근의 중요성은 4장에서 상세히 규명된다. 여기서는 일단 그것이 신용에 비해 더욱 근본적인 -선행하는- 범주인 바의 화폐에 기초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마르크스에게, 이론적(그리고 실질적) 내용을 갖기 위해, 화폐의 범주는 신용의 범주에 대한 이론(과 실재)에서 이미 성립되어있어야만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통상적으로 신용체계의 -신용체계의 기초에 놓여있는 바의- 화폐체계로의 붕괴를 수반한다는 것을 강조했다.14 화폐기근(Monetary famine)은 신용위기의 전형적인 특징이며, 신용에 비한 화폐의 선행적이고 근본적인 특징을 반영한다.

 이러한 분석적 순서는 화폐와 신용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변별적인 특징이며, 이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화폐의 개념을 도출하기 위해 본질적으로 신용의 우선적 존재를 전제하는- ‘화폐에 대한 신용이론과 분리시킨다. 슘페터의 <경제발전의 이론(Theory of Economic Development)>은 이러한 접근의 전형이며, 4장에서 보여주듯 또한 신용화폐를 다루는 동시대의 많은 사회학 및 인류학의 접근들에 의해 채택된다. 궁극적으로 화폐에 대한 신용이론은 화폐가 상품교환의 자생적인 결과물이라는 근본적인 구상을 반박하며, 따라서 그들 자신을 고전적 정치경제학뿐만 아니라 신고전파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으로부터도 구별되는 것으로 설정한다.15

 비록 힐퍼딩은 신용과 화폐에 대한 그의 분석을 표준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방식으로 조직했지만, 화폐에 대한 그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비록 그 [상세한] 소견을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제국주의론>에서 레닌은 그의 이론을 두고 오도된이라고 표현했다.16 힐퍼딩의 화폐이론을 자세히 숙고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는데, 첫 번째로는 그 이론과 함께 문제적인 것을 설정하는 데에서 그렇고, 두 번째로는 4장에서 깊게 논의되는 금융화 분석에 필수적인 화폐이론의 근본 요소들을 확인하는 데에서 그렇다.

 

 

화폐(Money)

 

 힐퍼딩은 우선 일반적인(generic) 두 유형의 사회를 가정함으로써 화폐의 필연성(necessity)’을 설정한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실행과 계획을 통해 의식적으로 조직된 편과, 시장 교환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조직된 편이 있다.17 후자는 명백히 각 생산자들의 수고를 비인격적인 방식으로 승인하는 어떤 수단을 소유해야만 한다. 즉 힐퍼딩에게 이것은 화폐의 규정적인 측면이다. 4장에서 보이듯, <요강(Grundrisse)>의 마르크스의 화폐에 대한 개략적인 논의에 이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가 확실히 있다. 그러나 힐퍼딩의 주장은 상품의 모순적인 본질과 가치형태에 대한 분석을 통해 나온 가치(혹은 보편적 등가물)의 독립적 형태로서의 화폐에 대한 마르크스의 도출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18 화폐의 필연성에 대한 그의 이론은 완벽히 추상적이며 상품의 가치와 화폐 사이의 통합적 연결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화폐 유통과 화폐 형태들에 대한 힐퍼딩의 분석은 몇몇 강점이 있다. 마르크스를 따라, 힐퍼딩은 유통에 요구되는 화폐수량의 결정 원리를 제시했다.19 그는 불태환화폐를 유통 수단으로서의 화폐기능에 연관 지으며 상품화폐와 불태환화폐를 구분했다. 그는 불태환화폐의 과잉 발행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 주장했기에, 불태환화폐에 대한 그의 분석 역시 표준적인 마르크스주의적 형식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의 글들은, 금을 자본주의 화폐 체계의 불가결한 측면으로 다루는 기본적인 경향으로 특징지어졌다.

 힐퍼딩은 또한 불태환화폐(fiat money)와 신용화폐를 구분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였고, 후자를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과 관련지었다.20 다시 마르크스를 따라, 그는 신용화폐가 사적 채무증서 혹은 환어음을 발생시키는 자본가들 사이의 신용거래에서 출현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힐퍼딩이 축장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대해 논의했을 때, 그는 사실상 마르크스를 갱신했다.21 자본 3권에 걸쳐 흩어진 마르크스의 설명을 한데 모음으로써, 그는 산업자본이 정상적인, 순환적 운동을 거침에 따른 화폐축장의 형성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그가 제공한 근본적인 통찰은-역시 맑스에게서 비롯되는바- 화폐축장은 연이어 은행에 의해 신용으로서 전개되도록 동원된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화폐에 대한 힐퍼딩 논의의 세 측면은 동시대의 금융화 분석에 중요한데, 이 모두는 마르크스의 화폐이론으로부터 도출된다. 우선 무엇보다도, 힐퍼딩은 화폐를 신용과 금융 구조의 초석이라 간주했다. 두 번째로, 그는 성숙한 자본주의에서의 화폐의 주요 형태들-상품[화폐], 불태환(fiat)[화폐], 신용[화폐]- 을 확실히(그리고 이론적으로) 구분했다. 세 번째로, 그는 신용의 구조적 기원을 자본순환의 정상적인 작동에서 체계적으로 창조되는 화폐 축장에 위치시켰다.

 그러나 화폐, 특히 그 형태와 기능에 대한 힐퍼딩의 취급은, 또한 금융화 분석의 목적에 있어 상당한 결함을 갖고 있다. 힐퍼딩은 금이 발전된 자본주의 화폐체계에 대한 필연적인 화폐 형태라고 넌지시 전제하는 듯한데, 이런 측면에서 그는 필시 그의 시대의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가치 없는 신용화폐에 의한 금의 환치(displacement) 분석을 위한 여지를, 더 중대하게는, 20세기 전반에 걸친 국가에 의한 신용화폐의 의식적인 관리를 위한 여지를 거의 남겨두지 않았다. 화폐에 대한 이들 특징 양자는 금융화에 있어 매우 결정적이다.

 이러한 부재는 그가 나중에 조직된(organized)’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게 되는 이론가임을 감안하면 다소 놀랍다. 왜냐하면, 20세기 전반에 걸쳐 점차 강력해진 조직된자본주의의 한 가지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정확히 국내 신용 화폐에 대한 관리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에 의한 국내 화폐에 대한 독점적 통제는, 대부분 다양한 시장의 탈규제를 통해 금융화가 야기해온- ‘무질서로의 경향을 철회해왔다. 국내 신용화폐에 대한 국가의 관리는 특히 금융화가 야기해온 위기를 직면함에 있어 금융화에 본질적이었다.

 금융화 분석을 위해 요구되는 화폐이론은 마르크스와 힐퍼딩의 분석을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사이에 오는 수십 년 간의 심원한 화폐적 변화와 긴밀히 연결되도록 양자의 통찰을 발전시키려 해야 한다. 우선 한 가지 이유는, 국내적, 국제적 거래에서의 금의 강제적 배제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20세기의 자본주의 순환(circulation)에서 실질적인 현실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로는, 다양한 형태의 신용화폐에 의한 동시대 화폐적 과정(monetary processes)의 점차적인 지배를 분석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4장은 마르크스의 화폐분석을 화폐 이론의 더 넓은 맥락 내에 위치시키고, 이어지는 두 쟁점들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이들 주제에 관해 논한다.22

 첫 번째로, 금융화의 화폐적 기초는 중앙은행에 의해 독점적으로 발행되는 국내 화폐의 점진적인 출현에 의해 만들어져왔고, 국가 채무증서(instruments of debt)에 의해 뒷받침되어 왔다. 이는 경제에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여 현대 국가의 힘에 기대며, 신용화폐와 불태환화폐(fiat money)의 측면들을 결합하는, 가치 없는 법정화폐(legal tender)의 한 형태이다. 그것은 또한 관례, 관행 그리고 그 화폐성에 대한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신뢰를 지탱하는 법적 실천들에 크게 의존하는 화폐의 한 형태이다.23 국내 화폐의 이러한 형태는 자본가계급이 금융영역으로부터의 추출을 포함하여 이윤추출을 보호하기 위해 화폐적 과정을 조종할 수 있도록 허용해왔다.

 두 번째로, 금융화의 화폐적 기초는 화폐의 국제적인 기능, 즉 세계 화폐에 의해 만들어져왔다. 이는 필시, 힐퍼딩은 매우 간과하긴 했으나, 마르크스에 의해 논의된 화폐의 가장 독특한 기능이다. 마르크스 주장의 골간은, 세계적 무대에서 화폐의 상품적 측면은 완전히 회복되고, 화폐의 명목(fiat)적이고 신용적인 형태들은 주변화되며, 금이 다시금 대권을 장악한다는 것이다.24 비인격적인(그리고 비 국가적인) 상품화폐는 세계화폐, 즉 축장, 지불, 그리고 가치이전의 국제적인 수단으로서 기능하길 요청받는다.

 힐퍼딩의 책은 1914년에 폐기되기 직전, 금본위가 그 정점이었을 때에 쓰여진 반면, 세계화폐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점은 금이 국제적 화폐 융통을 지배했을 때에 전개되었다. 간단히 말해, 19세기 하반기 대부분 동안, 스털링(금으로 자유롭게 태환되는)은 국제적으로 신뢰성있는 축장 및 지불수단으로서 기능했다. 즉 런던은 전세계에 어음(clearing)과 대출 편의(facilities)를 제공했다. 런던의 어음(bill)은 세계무역에 자금을 융통했으며,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의 금 축장은 세계화폐의 최종적인 원천이었다. 금에 대한 접근성은 위기의 외부적 압력에 맞설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을 나타내는 반면, 국가들 간의 금의 이전(금의 유출)은 경제위기의 국제적 차원을 특징지었다. 힐퍼딩과 레닌이 제국주의에 대한 각자의 분석에서 세계시장의 순수하게 화폐적인 측면에 대해 그다지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세계화폐의 기능은 금융화의 조건들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세계화폐는 1971-73년 사이의 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 이래로 금과 확실한 연관을 갖지 않아왔다. 현재의 조건에서는 미국의 달러가 세계화폐에 가장 가까운 화폐 형태이다. 그러나 달러는 신용화폐와 불태환화폐(fiat money)의 측면들을 결합한 가치 없는 (미국의)법정화폐(legal tender)이다. 그것에는 비인격적이고, 가치를 함유하는 금의 특성이 명백히 결여되어 있다. 잘해봐야 달러는 준(quasi) 세계화폐이며, 그 자체 현재 세계시장에서의 신뢰와 관습에 의존할 뿐 아니라 지배적인 제국주의적 권력으로서의 미국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힘에 의존한다. 금융화가 전 세계에 걸쳐 촉수를 퍼뜨리면서, 정확히 달러의 이러한 측면은 전 세계로부터 미국으로의 가치이전을 허용해왔다. 달러는 동시대의 제국주의에 힐퍼딩과 레닌의 시대에는 없었던 화폐적 측면을 더해왔다. 그것은 또한 특히 대부자본(loanable capital)의 글로벌한 유입과 관련하여, 세계시장의 긴장과 불안정성을 상당히 악화시켜왔다.

 

 

신용(Credit)

 

 신용에 대한 힐퍼딩의 분석은 그의 화폐분석보다 더 확고한 기반위에 있으며, 그의 이론의 진정한 힘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의 태도와 언어로, 힐퍼딩은 그들의 내재적인 특징에 따라 자본주의적 신용관계들에 대한 분석적 층위를 만들어냈다.25 신용관계들에 대한 이러한 근본적인 배열은 금융화 분석을 돕기 위해 5장 이하에서 제시되는 신용체계에 대한 이론적 논법을 특징짓는다.

 더 구체적으로, 우선 힐퍼딩은 상업(혹은 무역) 신용에 대해 논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적 기업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나며, 환어음의 형태를 취한다.26 이것은 금융기관들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신용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힐퍼딩 분석의 혁신적인 요소는 상업신용을 유통 신용(circulation credit)’과 관련지은 것이었다. 여기서 상업신용은 일반적으로 유동자본(circulating capital)에 대한 비금융 기업들의 필요에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발달되는 것으로 가정되었다.

 화폐(혹은 은행banking)신용은 더 발전된 형태의 신용인데, 이는 화폐의 대출을 수반하며, 금융기관들에 의해 매개된다. 더 나아가, 은행은 어음(bills)을 그들 자신의 신용으로 대체함으로써 상업신용의 흐름(flows)에 개입하고 그것을 집중시킨다. 힐퍼딩 시대의 제도적 현실에 맞춰, 은행은 어음을 발전된 신용화폐의 형태로서 순환하는 그들 자신의 은행권(banknotes)으로 할인한다고 전제되었다. 은행은 또한 산업자본의 회전(circuits)에서 발생한 유휴 화폐 축장을 모은다고 가정되었는데, 이는 그들[은행]이 대부가능 화폐자본으로 만들고, 대출을 통해 운용 자본가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자율을 거둬들이는 자본 혹은 투자신용이다.

 이어 힐퍼딩에 의해 취해진 중요한 진전은 투자신용의 공급을 산업 기업들에 의한 고정자본의 형성과 관련지은 것이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그가 금융자본의 개념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하였다.27 힐퍼딩은 투자신용이 필연적으로 은행과 기업 간의 긴밀한 연결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관측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고정자본투자에 자금을 융통하며, 그것의 상환(repayment)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은행은 정보를 모으고 기업 운영을 감시하게 된다. 이 날카로운 통찰은 신고전파의 은행이론이 [기업에 대한]감시(monitoring)의 중요성과 은행과 기업 간의 책임(commitment)' 관계에 대한 인식을 시작하기 수 십년 전에 발전되었으며, 이 책의 5장에서 간략히 논의된다. 더 나아가, 동시대의 주류 이론과 달리, 힐퍼딩은 힘 관계를 잘 살폈고, 은행의 감시활동이 그들로 하여금 산업자본을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힐퍼딩은 자본주의 생산의 규모와 고정투자가 시간에 걸쳐 성장함에 따라, 산업기업들은 점차 투자신용에 의지하도록 강제될 것이고, 따라서 은행의 지도 아래 있게 될 것이라고 역설함으로써 잘못 나아갔다. 힐퍼딩에게, 이는 최종적으로 금융자본의 부상으로 이어지는 자본주의의 근원적이고 영속적인(secular) 경향이다. 그의 주장의 이러한 측면은, 스위지가 일찍이 1940년대에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에서 지적했듯, 확실히 잘못되었다. 투자에 자금을 융통하기 위한 은행 대부에 대한 산업기업들의 더 막대한 의존으로의 영속적인 경향은 없다. 반대로,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로, 선진국들에서의 투자요구는 점점 더 유보이윤(retained profits)을 통해 충족되어왔다. 이러한 추세는 금융화를 뒷받침한다.29

이러한 측면에서, 힐퍼딩은 그의 시대의 선도적인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투자에 대한 자금융통에 관해 구체적인 분석을 하지 않은 것에 있어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대신에, 그는 경제의 규모가 성장함에 따라 고정투자에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외부 자금에 대한 기업들의 의존이 증가할 것이라는 추상적인 주장에 기댔다. 이러한 주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발전된 자본주의의 영속적인 경향이라는 그 주장에 대한 실증적인 뒷받침은 거의 없다. 힐퍼딩은 그가 발전된 자본주의의 미래라고 간주한 19세기 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의 기업과 은행 간 신용거래로부터 과도하게 일반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반대로, 7장과 8장에서 실증적으로 논증되듯, 금융화는 기업과 은행 사이의 점증하는 분화(distance)와 증가하는 금융의 상대적 자율성 및 가계로의 금융의 선회로 특징지어진다.

 

 

주식 시장(Stock markets)

 

 이어 힐퍼딩은 주식자본(joint-stock capital), 주식시장, 선물시장, 자본주의적 기업으로서의 은행에 주목했다. 이 주제들에 대한 그의 분석은 다시금 마르크스에게 기대지만, 그러나 또한 매우 독창적이며, <자본>에서의 마르크스의 산만하고 매우 산발적인 언급들을 넘어선 진일보를 나타낸다. 주식자본에 대한 그의 논의는 특히 자본에 대한 관리(control)로부터 소유권의 분리를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힐퍼딩은 주주와 고전적인 자본주의적 사업가 사이의 구별을 포함하여, 자본가로서의 주주의 성격(character)을 상론하기에 이른다. 마르크스를 따라, 힐퍼딩은 주식에의 투자를 대부(moneylending)와 유사한 것으로 다뤘다.30 주식이 쉽게 팔릴 수 있고 주주가 자본의 수익을 큰 문제 없이 보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식에 투자된 자금은 사회 내 대부가능 화폐의 거대한 풀에서 연원한다.

 관리로부터의 소유권의 분리는 유동성을 유지하는 한편으로, 주주를 이자와 유사한 수익을 벌 것이라는 기대 하에 화폐자본을 굴리는 행위자(agent)로 변모시켰다. 실질적으로, 주주는 불로소득자(rentier)인 것이다. 항상 힘 관계를 유의하면서, 힐퍼딩은 관리로부터 소유권의 분리의 주요 수혜자가 결국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 지출(outlay)으로 큰 기업들을 통제하게 되는 대주주들임을 강조했다. 주식자본주의(joint-stock capitalism)의 등장은 주주 민주주의가 아니라, 주주 과두제(shareholding oligarchy)를 낳았다.31

 주식 자본의 구체적인 특징에 대한 힐퍼딩의 초점은, 그의 책이 갖는 강점 중 하나이며, 금융화 분석을 위한 주요한 요소를 제공한다. 관리로부터 소유권의 분리, 자본주의적 소유권자의 주주로의 전환, 거대하고 비인격적으로 운영되는 회사의 등장은 20세기 전반에 걸친 자본주의의 전환에 있어 근본적이었다. 그들은 또한, 이 책의 6장에서 보여주듯, 상당한 정도로, 금융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힐퍼딩에게, 이들 현상은 경제의 발전적인 사회화에 있어 본질적인 요인들이었다. 그는 거대 주식회사들이 시장의 불안정성과 무정부성을 줄이는 데에서 뿐만 아니라 미래를 계획하는 데에서도 상당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간주했다. 비록 그것이 성숙한 자본주의에 대한 힐퍼딩의 접근을 특징지었다 해도, 이러한 가정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활동적 자본가의 주주로의 전환은, 더 나아가 이윤과 금융자산가격에 대한 함의를 지닌다. 이러한 맥락에서, 힐퍼딩은 할인된 미래 이윤으로서의 주식가격결정에 대해 처음으로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제공했다.32 이것은 그의 책의 혁신적인 부분이며, 'founder’s profit’으로 더 잘 번역될 수 있을 창업자 이윤(promoter’s profit)’, Gründergewinn의 개념을 포함하는데, 이는 마르크스의 작업에선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창업자 이윤은 일반적으로 금융이윤 분석에서, 특수하게는 자본이득(capital gains)분석에서 중추적인 개념이다. 금융화에서 그 개념의 중요성은 직관적으로 명백하나, 6장에서 상론되듯 그것을 동시대의 자본주의에 바로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창업자 이윤에 있어 힐퍼딩 주장의 핵심은 주주가 화폐 대부자와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주식에서의 기대수익은 이자율(리스크 프리미엄을 더한)과 동등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마르크스의 금융분석은 평균이자율이 보통 평균이윤율 아래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힐퍼딩에 의해 채택된 관점이다.33 주식 가격은 한 기업의 기대이윤을 할인한 것으로부터 연원하기 때문에, 그 함의는 심원하다. 덧붙여, 기업에 투자된 실제 자본(actual capital)은 기대 이윤의 할인된 가치와 같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실제 자본) 할인율은 (더 높은)이윤율일 것일 반면, 전자의 경우(주식)에 사용된 할인율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합한)이자율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주식 발행을 통해 마련된 총가치는 실제로 기업에 투자된 자본의 양보다 더 클 것이며, 그 차이는 창업자 이윤이다. 힐퍼딩에게, 창업자 이윤은 기업의 현가계상된(capitalized) 미래 이윤, 즉 이자를 지급한 이후 운용자본가에게 남는 이윤에 해당한다. 주식발행자-또한 주식 발행을 관리하는 은행-는 기업의 미래 이윤을 단번에 획득할 수 있다. 따라서, 창업자 이윤은 금융자본의 부상에 기여하는 또 다른 요소이다.

 힐퍼딩의 개념은 금융화에 특징적인 막대한 금융이윤의 분석에 대한 통로를 열어준다. 금융시장의 발전된 대부가능 자본과 금융자산가격, 잉여가치의 기대 유입과 자본 이득 간의 관계는 금융이윤의 결정에 필수적이다. 덧붙여, 기업의 미래 이윤과 자본 이득 사이의 이론적 연결은 필연적으로 대부가능자본 처리(handling)에 연루된 다양한 행위자들 간의 소득(remuneration)율의 차이에 의존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6장에서 보여주듯 창업자 이윤의 개념은 금융이윤과 자본 이득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힐퍼딩은 금융시장 거래를 통한 은행이윤이 또한 기업미래이윤의 배당(share)을 나타낸다고 단언했다.34 그는 이러한 이윤이 주식시장에서의 사회 신뢰(confidence of society)를 유지하는 반면 화폐자본이 주식거래에 관계함으로 인해 은행에서 생긴다고 주장했다. 이는 썩 힘 있는 주장이 아닌데, 왜냐하면 투자 은행 이윤은 은행에 의해 금융시장에서 거래하는 행위자들에게 제공되는 다양한 서비스로 이어지기(accrue for) 때문이다. 더불어, 금융화 과정에서 금융 시장에서의 은행 수익성이 유망한 영역은 금융시장의 자기계정거래(trading on own account)여 왔고, 이는 명백히 다른 이들의 대부가능 자본을 끌어다 이윤을 창출하는 것을 포함해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만약 금융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더 풍부하게 동시대의 금융이윤을 분석하고자한다면, 힐퍼딩에 의해 열린 분석적 통로는 더욱 발전될 필요가 있다.

 

 

금융자본과 무역블록(Finance capital and trading blocs)

 

 이어 힐퍼딩은 그의 주요 이론적 혁신을 제안했는데, 금융자본에 대한 개념이 그것이다.35 간단히 말해, 자본주의가 성숙함에 따라, 고정자본 수요(requirements)의 증가를 동반하면서 생산의 규모가 팽창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계속되는 시설과잉(over-capacity)으로 인해 자본 이동성(mobility)은 축소되고 이윤율의 균등화는 방해된다. 고정투자에 투입된 막대한 양의 자본을 가진 산업 부문들은 이윤율을 높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이들 부문의 자본가들은 서로의 기업을 합병하고 인수하기에 이르는데, 그로서 경쟁, 순환적 변동(cyclical fluctuations), 상업 중간상(commercial middlemen)이 제거된다. 즉 수익성(profitability)이 높아지며 자본의 집중화가 심화된다.

 주식회사(Joint-stock companies)는 특히 자본집중화에 적합한데, 왜냐하면 그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지분을 통해 기업에 대한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집중화는 또한 은행으로 확산된다. 거대 주식은행의 출현은 정확히 은행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산업 경쟁의 더한 감소를 추동한다. 따라서, 성숙한 자본주의는 수익성을 보호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집중화된 자본에 의해 지배된다. 힐퍼딩은 카르텔과 트러스트를 비롯하여, 집중화된 자본의 조직적 형태들에 관해 상세한 논의를 제공했다.36 스위지는 힐퍼딩의 논의가 의구심 없이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서술할 만큼 깊게 감동했다.37

 힐퍼딩에게, 금융자본은 집중화된 산업과 은행 자본에 근거하여 나타난 자본의 새로운 형태였다. 실로, 그것은 양자의 혼합물이었다. 기업들은 고정자본형성에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돈을 빌리고, 은행은 주식시장의 유동주식(floating shares)에서의 선도적인 역할을 맡음으로써, 거대 은행들과 산업 기업들은 한데에 모아졌다. 은행은 그들의 자기 자본의 상당량을 유동적인 화폐형태로 보유하는 한편으로, 기업운영에 깊게 연루되었고 창업자 이윤의 형태로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은행은 산업자본에 대한 상당한 파워 어드벤티지를 갖게 되었다- 금융 자본에 있어 그들은 그것의 행동과 작용을 지시하는 고위 파트너였다.

 금융자본에 대한 힐퍼딩의 개념은 마르크스주의적 사유의 발전에서 막대하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것은 그의 동시대인들, 무엇보다도 제국주의론에서의 레닌에 의해 널리 받아들여졌다.38 20세기의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 문헌에서 대개 레닌의 영향으로 인해 금융자본은 종종 독점자본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 유효성은-1950년대 1960년대의 전후호황과 같이- 힐퍼딩 시대의 조건과 거의 닮지 않은 상황에서도 때로 단언되어 왔으며, 심지어 레닌의 제국주의에 대한 이론에 비판적인 관점을 채택해온 작가들에 의해서도 그랬다.39

 힐퍼딩의 개념은 상당한 주의를 갖고 다뤄져야 한다. The tendency toward monopolistic competition has been present throughout the twentieth century, including since the 1970s. However, in practice, a broad range of relations has prevailed among contemporary industrial and financial capitals, often with national characteristics. Moreover, as was noted above, there is no universal long-term tendency for industrial capital to rely on bank loans to finance fixed capital formation.

 

In short, finance capital does not adequately capture the complexity and range of relations between industrial and banking capital in the course of the twentieth century. Nevertheless, the concept is still important because it focuses attention on the organic and institutional links that have emerged between these two types of capital in the course of capitalist development. Links of this nature were merely incipient when Marx wrote Capital, but have become characteristic of capitalism since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and exhibit a variety of forms across particular countries.

 

Banks are not the dominant partner in bankindustry relations under conditions of financialized capitalism. Even in provision of external finance to industry, banks compete against other financial institutions, including pension funds, money trusts and insurance companies. Furthermore, industrial and commercial capitals systematically engage in financial activities on own account. These include independent issuing of debt in open markets (commercial paper, bonds, warrants, and so on) supplying consumer and trade credit, engaging in foreign exchange markets as well as transacting in forward, futures and derivatives markets. Evidence for the altered practices of both enterprises and banks under conditions of financialization is adduced in chapters 7 and 8.

 

Crises

 

Hilferding ascribed crises primarily to disproportionalities between the departments of the total social capital. In the great Social Democratic debate on capitalist economic crises, he thus broadly sided with Mikhail Tugan-Baranovsky’s approach in Les Crises industrielles en Angleterre. He certainly rejected underconsumptionism which was soon to receive its developed form by Luxemburg in The Accumulation of Capital. While Hilferding believed that crises were an integral part of the behaviour of the capitalist economy, he dismissed the notion that capitalism would inevitably collapse of its own accord, as Schumpeter has noted approvingly.40 He also discussed the role of credit and money capital in exacerbating the business cycle.

 

Of greater significance, however, was his analysis of the changed form of crises due to the emergence of finance capital, hinting at his later concept of ‘organized capitalism’. Cartels and large banks make banking crises less likely as well as less severe by suppressing competition. Since cartels and banks operate on an enlarged scale of accumulation, they can guarantee a minimum volume of production and circulation, thus also reducing the disruption of credit in a crisis. Furthermore, joint-stock corporations can rationally assess the prospects of production and profitability. Finally, large banks are able to take a more rational view of the credit requirements of the economy, thus reducing the speculative use of credit characteristic of the early days of capitalism.

 

For Hilferding, these factors ameliorated crises as capitalism developed, although he also thought that crises could not be finally eliminated by finance capital. In this connection, Hilferding claimed that Germany and the US were the paradigmatic countries of advanced capitalist relations, dismissing England for her ‘backward’ credit system.41 This view was pivotal to his analysis of imperialism, considered below.

 

Imperialism

 

Hilferding’s theory of imperialism has been fundamental to the classical Marxist analysis of imperialism largely because of its influence on Lenin. The issue of imperialism is, of course, relevant to the analysis of financialization and aspects of it are considered in subsequent chapters. Suffice it at this point briefly to revise key arguments from the classical Marxist debates at the turn of the twentieth century which will help specify the content of subordinate financialization in subsequent chapters.

 

Discussion of imperialism inevitably turns on Lenin’s work, the standard reference point for Marxist analysis since the end of the First World War.42 Lenin’s theory, moreover, has left its imprint on political practice in developed and developing countries throughout the twentieth century. Examining the large literature attached to these phenomena would require a separate volume. Thus, Lenin’s work is considered exclusively from the perspective of its differences and similarities with Hilferding’s analysis with a view to establishing a theoretical framework for financialization. The importance of Hilferding’s Finance Capital in this respect lies in providing economic foundations for Lenin’s theory, including the core concept of finance capital.

 

The classical Marxist debates on imperialism were concerned with the sudden surge of European imperial expansion during the last quarter of the nineteenth century, rather than with imperialism as a general historical phenomenon. It should be stressed that this is a merit, in view especially of mainstream theories that have often defined themselves in opposition to the Marxist approach.43 By and large, classical Marxist theories avoided bland historical generalizations and related imperialism to well-defined economic processes of their era. They typically sought to account for phenomena such as the ‘scramble for Africa’ and the rise of militarism among European powers at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se events had a shocking novelty for societies that had not known a major European war since 1815 and were pervaded by the ideological belief that capitalism meant rational progress in human affairs. It is also worth mentioning that classical Marxist explanations of imperialism shared common ground with the theory advanced by the liberal Hobson in Imperialism, for whom imperialism resulted from underconsumption at home that created the need to send capital abroad. Note further that Marxist theories were far more soundly based than Schumpeter’s view of imperialism as an unfortunate ‘atavistic’ aspect inherited from feudalism by a fundamentally peaceful capitalism.44

 

Not surprisingly, there were substantial differences among the classical Marxist theories of imperialism. Thus, Kautsky linked imperialism to the need to secure markets internationally as well as to the tendency of agriculture to lag behind industry as capitalism developed. To ensure an adequate supply of agricultural commodities, industrial countries colonized agrarian countries.45 For Kautsky, imperialism was an international policy chosen by the bourgeoisie, which could also be altered in a peaceful direction. In contrast, Luxemburg, in part three of her Accumulation of Capital, argued that the capitalist economy faced an insuperable problem in securing sufficient domestic demand to realize rising volumes of surplus value. This led to a search for foreign markets as capitalism matured, involving violence and political domination of one country by another. Imperialism, for Luxemburg, was not a matter of policy but a process that sprang from the deep core of capitalist accumulation.

 

Hilferding treated imperialism as a policy of the bourgeoisie, but the true strength of his theory came from his focus on the historical inevitability of imperialism, particularly for Germany which had developed late. To establish his thesis, Hilferding drew directly on the concept of finance capital as well as on ideas that were common currency among Viennese Austro-Marxists. His point of departure was the aggressive tariff policies that were generally adopted in the last quarter of the nineteenth century. This phenomenon had already been examined from a Marxist perspective by Bauer, who related imperialism to a shift from the protective tariffs of early capitalism (seeking to shield domestic industry) to the aggressive tariffs of mature capitalism (seeking to destroy foreign industry).46 It is important to stress this point in view of today’s not infrequent and erroneous association of nineteenthcentury capitalism with ‘free trade’. In practice international capitalism was characterized by increasing restrictions on trade from the 1870s to the outbreak of the First World War, with the exception of Britain.47 Classical imperialism was closely associated with high and rising trade barriers.

 

Hilferding gave theoretical depth to the analysis of aggressive tariff policy by relating it to finance capital.48 Cartels favoured aggressive tariffs because these resulted in an exclusive territory that shored up profitability and stabilized domestic combinations of enterprises. Therefore, competition among finance capitals took place via creation of exclusive, tariffprotected territories, instead of merely selling commodities. On this basis, Hilferding developed an argument explaining the export of money capital. The creation of exclusive territories limited the scope for other cartels to increase commodity exports, thus encouraging the export of money capital. Hilferding took capital export to mean capital invested abroad which remained under domestic control and whose profits were repatriated, that is, a type of foreign direct investment. He evidently thought that export of capital took place toward less developed countries that offered lower wages and other advantages to corporations.

 

Hilferding concluded that the imperialist policy of finance capital represented a major rupture with the laissez-faire policies characteristic of mid-nineteenth-century Britain. The model countries of finance capital were Germany and the US. Finance capital joint-stock capital in association with banks made possible the mobilization of Germany’s scattered resources allowing the country to catch up. Late development also meant weaker social opposition to advanced technology. As Germany overtook Britain, its finance capital came to rely on the state, particularly on military power to sustain the creation of exclusive territories. Imperialism inevitably led to competition in armaments, to constant threat of war among the imperialist countries, and to racism toward the dominated.

 

To recap, Hilferding related imperialism to the epochal transformation of capitalism represented by finance capital. Imperialism sprang from the transformed mechanisms of capitalist competition and accumulation. It thus had a specific economic content that gave rise to phenomena such as the emergence of giant cartels and banks, aggressive tariffs, and export of capital. At a stroke, Hilferding was able to account for key political phenomena, such as militarism and the threat of war, while also arguing that the working class had to oppose imperialism.

 

It is hardly surprising that Hilferding’s theory appealed to Lenin, who adopted the concept of finance capital as well as the view of territorial (imperial) exclusivity through tariffs and the consequent export of capital. From Hilferding also came the notion of rising militarism as well as of finance capital deploying the state in order to succeed in international competition. Reliance on Hilferding, finally, is apparent even in the subtitle of Lenin’s main work on imperialism (the ‘highest’ or ‘latest’ or ‘new’ stage of capitalism) which echoes the subtitle of Hilferding’s book (‘the latest phase of capitalist development’).

 

Nevertheless, Lenin placed his own stamp on the theory of imperialism, thus turning it into standard reference for Marxists. Lenin produced, above all, a political pamphlet that was concerned with the outbreak and likely outcomes of the First World War. To be sure, the work rested on voluminous research on the major capitalist economies, plus a theoretical analysis of the periodization of capitalism. Lenin, furthermore, was concerned to provide empirical substantiation for his claims, and his short book carried far more factual data than Hilferding’s tome. But it remained primarily a political intervention, as is evidenced by its emphasis not only on territorial exclusivity among cartels but also on the territorial redivision of the world as a cause of imperialist war.

 

In terms of its theoretical underpinnings, moreover, Lenin’s work differed from Hilferding’s in two respects. First, while accepting the concept of finance capital, Lenin presented it as the outcome of rising monopoly tendencies within industry and finance.49 There is no doubt that Hilferding had also stressed monopolistic (and cartels), but Lenin’s emphasis was of different order of significance. He placed enormous importance on the intrinsic tendency in capitalist economies for laissez-faire competition to be replaced by monopolistic competition dominated by giant enterprises and giant banks. Thus, finance capital resulted from the coming together of enterprises and banks, with the latter holding the upper hand. Note also that while Lenin’s argument rested on a theoretical understanding of capitalist competition, it lacked Hilferding’s analysis of the forms of credit and the financial requirements of industrial corporations. Bukharin’s Imperialism and World Economy, incidentally, also relied on rising monopolies and finance capital, though going well beyond Hilferding Bukharin claimed that the world economy comprised competing national units resembling gigantic enterprises.

 

Second, and more significant, Lenin admired the liberal Hobson and borrowed several of his arguments. Hobson, in Chapter 4 of his Imperialism, had stressed underconsumption and capital export, believing that imperialism entailed the emergence of ‘parasitical’ capitalism that exported loanable capital and lived off bond coupons. Lenin adopted much of Hobson’s view, claiming that the leading imperialist countries systematically absorbed interest payments from poorer countries across the world.50 These ‘rentier’ countries, furthermore, contained a ‘labour aristocracy’, a thin layer at the top of the working class that was bought off with some of the coupon clippings. Hilferding kept aloof from such ideas. This was probably related to his theoretical analysis of the credit system as a mechanism for the reallocation of idle sums of money within the capitalist class. The implications of this point for the analysis of financialization are profound, as is shown briefly below but also in chapters 5 and 6 of this book.

 

What is the relevance of these theories for the analysis of financialization and the evolution of capitalism in late twentieth century?51 It is worth noting at the outset that 66 classical Marxist theories of imperialism offer stronger insights into contemporary capitalism than the dependency theories of the 1960s and 1970s. The vast literature on ‘underdevelopment’, for instance, has become rapidly dated in the face of financialization and global deregulation. It is true that dependency theorists have focused far more than the classical Marxists on the form taken by capitalism in the countries of the ‘periphery’. But, even in this respect, the emergence of dynamic industrial capitalism in the ‘periphery’ above all, in East Asia hardly fits with ‘the development of underdevelopment’.52 Similarly, the emphasis of classical Marxist theories on political economy is a strong advantage compared to much contemporary theorizing on ‘global’ capitalism. The latter often focuses on the political, sociological, military, ethical and moral aspects of modern imperialism, rather than its connection to capitalist accumulation.53But even explicitly Marxist work on contemporary imperialism has generally been short of foundations in political economy.54

 

The classical Marxist theory of imperialism has an immediate relevance to several of the key features of financialization. Thus, it stresses the centralization of capital as a typical trend of mature capitalism; mergers and acquisitions have been a salient feature of global economic activity since the 1970s, providing scope for the extraction of financial profits. By the same token, multinational corporations dominate the world market, as is shown in subsequent chapters. Furthermore, the theory identifies the export of capital as integral to imperialism, but also as an aspect of fundamental transformation of capitalist economies. The world market since the late 1970s has been characterized by successive waves of capital exports that have shaped global financialization, discussed in chapters 8 and 9.

 

But there are also aspects of the classical Marxist theory of imperialism that are currently irrelevant, or highly specific to the first bout of financial ascendancy. Thus, while contemporary imperialism seeks territorial control, there is no dominant tendency toward aggressive tariffs or exclusive territorial rights, much less toward formal colonial empires. Furthermore, the tendency toward capital export is not the result of territorial exclusivity, and nor is it characteristic merely of relations between developed and developing countries. The greatest capital flows have occurred among developed countries; more poignantly, in the 2000s there have also been reverse net flows of capital from developing to developed countries. This is a striking aspect of financialization connected to the contemporary role of world money, which is absent from the classical Marxist theories of imperialism.

 

It is remarkable in this respect that the dominant imperialist power, the US, has become a huge borrower, relying on inflows of loanable money capital even from developing countries to finance domestic consumption. This phenomenon fits badly with classical Marxist perceptions of dominant imperialist countries as world lenders, not to mention the notion of ‘parasitical’ imperialists living off coupon clippings from lending abroad. At the same time, command over world money has allowed the US to extract benefits directly from even the poorest countries in ways that would have been impossible in the classical era, as is shown in Chapter 8. This is a key aspect of global domination as well as of subordinate financialization. 67 These observations point to an underlying weakness in Hilferding’s overall analysis of capitalist transformation and imperialism. As was mentioned at the beginning of this chapter, Hilferding sought to establish structural, ‘endogenous’ reasons for the emergence of finance capital but without analysing the evolution of production and the labour market; moreover, throughout his exposition, he focused mainly on Germany and Austria. Yet, the structure of the capitalist financial system and the connection between banking and industrial capital do not easily admit of ‘endogenous’ theorization, as is obvious with a century’s hindsight.

 

Relations between production and finance tend to be historically specific, and subject to institutional and political factors that shape the financial system. The links between industrial capital and the credit system in the period of financialization have been far more variable than the simple picture of increasing reliance of industry on banks which Hilferding assumed. Moreover, financialization has witnessed the rising involvement of workers in the workings of the financial system in ways that would have been unthinkable to classical Marxists. While the classical Marxist debates on the first bout of financial ascendancy remain indispensable to analysing financialization, the current period is qualitatively differ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