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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홍태영, "루이 나폴레옹의 제2제정과 1860년대의 정치적 자유주의", <국민국가의 정치학>, 후마니타스, 2008. 발제문

by 정강산 2017. 4. 17.

ALEXANDER RODCHENKO, Pure Red Color, Pure Blue Color, and Pure Yellow Color(1921)


5장 "루이 나폴레옹의 제2제정과 1860년대의 정치적 자유주의" , 157-179p

 

 

이 장에서 전개되는 저자의 논의는 1852년부터 1870년까지 존속했던 제2제정의 양태를 분석하고, 이와 나름의 방식으로 대립하고 공명해온 자유주의자들과 공화주의자들의 주장들을 검토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우선 그는 19세기 중반 프랑스 자유주의자들을 관통하던 이념적 기류가 콩스탕과 토크빌의 계기로 이루어져 있었음을 지적한다: “2제정의 성립은 토크빌이 예언한 민주주의적 전제정의 전형적인 형태였다.(...)따라서 제정 시기 자유주의자들에게 토크빌의 문제 제기는 제정이라는 민주주의적 전제정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했다.(...)하지만 토크빌의 문제제기가 전부일 수는 없었다. 콩스탕이 제기한 근대의 자유는 이미 당시의 근대인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그것은 또한 토크빌이 지적한 민주주의의 장기적 과정의 결과이기도 했다”.(157) 여기서 콩스탕과 토크빌의 계기가 의미하는 것은, “일반 이익의 실현자라는 국가에 대한 강조”(158)억압적 전제정으로부터 개인의 자유 영역을 확보하려는 시도”(같은 곳)가 병존하는 시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콩스탕과 토크빌의 문제의식이 각각 다양한 방식으로 광범하게 참조되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콩스탕은 정치체의 안정을 추구하며, 권력의 부문을 5개로 구분하고, 그 권력들 사이의 상호견제를 중시하는 동시에 시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대의제를 정치체의 안정을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당시의 여느 자유주의자들과 유사하지만, 일반의지와 일반이익이 개별자들의 특수의지를 초과한다고 여겼던 많은 논자들과 달리, 일반의지를 특수의지의 총합으로 간주했다는 점에서 독자적이었다. 한편 토크빌은 민주주의 자체의 모순적 계기들에 주목하며, 개인의 부흥과 개인성의 몰락이 병존하는 조건의 평등으로서의 민주주의의 역설을 지적하고, 중우정치라 할 법한 다수의 폭정과 민주주의적 전제정으로의 귀결을 경계했다. 능력 있는 시민에 의한 매개권력을 강조했다는 점에선 루소와 대비되고 기조와 공명하는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논의들이 소구되었던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정치적 지형과 나폴레옹3세의 제2제정이 아돌프 티에르를 비롯한 공화파들의 제3공화국(1871-1940)으로 이행하는 과도기로서만 논의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제2제정을 하나의 정치 모델로서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제2제정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허용하되 정치적 자유주의를 배제하는, 토크빌적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적 전제정으로서 파악될 수 있다. 오늘날 자유주의와 거의 동의어가 되어버린 (대의)민주주의의 위상을 고려하면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루이 필리프 1세를 퇴위시키고 등장한 제2공화국의 출범과 동시에 1848년에 성립된 남성보통선거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제2제정은 그 정당성을 (보통선거로 대표되는)민주주의로부터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적 계기의 존재는 황제와 인민 간의 어떤 매개를 필요로 하지 않”(161)게 해주었으며, 따라서 제정은 인민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163). 이러한 제2제정의 경향은 정치적인 것을 행정제도로 환원하는 것으로”(같은 곳) 드러나게 된다.

 

2제정의 또 다른 특징은 중앙집권화인데, 이 속에서 강해지는 것은 도지사의 권한이다. 이때 도지사는 황제의 주권의 대리인으로서, 그들에겐 도 단위에서 코뮌의 상세한 활동들을 점검하면서 정치적 생활을 지도하고 경제활동을 증진시키는 임무가 맡겨”(같은 곳)진다. 이러한 중앙집권화는 태양왕 루이14세 식의 절대왕정의 전통이 잔존해온 프랑스적 전통의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제2제정의 중앙집권성은 관선후보(관료들이 선정한 후보)를 통해서 관철되는데, 여기서 선거는 보나파르트주의자들에게 직접민주주의의 한 과정이라기보다는 주권의 위임 과정일 뿐이었다. , 민주주의적 정당성을 확인받기 위한 위에서 아래로의 표상 과정일 뿐이었다”(165). 이러한 표상의 정치는 오늘날 시민사회가 발달하지 않은 개발도상국들에서 여전히 보이는 모델이지만, 시민사회의 견제가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선진국들에선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요컨대 탈 중심화된 권력’, 즉 라클라우가 말하는 텅빈 기표로서의 권력의 공간이 민주주의의 조건으로서 자리 잡은 것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며, 전통적으로 군주정 혹은 전제정의 전유물이었던 권력을 제한하고자 하는 지난한 급진 공화주의의 흐름 속에서 더디게 형성되어온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경제적 자유의 확대를 통한 물질적 부의 성장과 그에 따른 정치적 무관심은 이 시기의 특징”(166)이기도 했는데, 까닭인즉 당시엔 시민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부재했거니와 아직 그러한 교육의 시행이 광범하게 합의되지도 않았고, 자코뱅 이후 수많은 공화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 보수세력 간의 정치적 대립이 극심한 가운데 정부의 안정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2제정의 또 다른 특징을 구성하는 것은 언론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통제이다. 저자는 보나파르트주의자들이 행한 언론 비판이, 시민 일반의 의지를 담지한 민주주의의 실현으로서의 보통선거와 계급적이고 당파적이며 비순수한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여론을 구분지음으로써 이루어 졌음을 지적한다. “언론은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는 수백만의 프랑스인들에게는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167), 나라 전역에 왜곡된 의견을 전파함으로써 공권력의 정당한 발휘를 방해한다는 것이 그 비판의 요지다. 이어 그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극단적인 형태들이 20세기 정치사에서 여러 모습으로 재현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가 염두에 두는 것은 파시즘, 나치즘 등의 전체주의체제 혹은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현실사회주의체제 등 일 것이다.

 

이후 저자는 전제정하에서 편재하게 된 보통선거로서의 민주주의를, 자유주의자들이 어떻게 전유하는지를 검토하고, 정제정에 맞서 제기되는 자유주의적 처방의 원형적인 형태들을 논한다. 1860년대 입법부의 강화와 함께 시행된 제정의 자유화 조치는 국제정세와 내부의 실정에 대한 압력이 과잉결정된 것으로서, 이러한 환경에서 미국의 남북전쟁이 열어젖힌 자유주의자들과 공화주의자들 사이의 광범한 동맹이 발생한다. 여기서 저자가 내세우는 상징적인 사건은 “1865년 발표된 지방분권화를 요구하는 낭시선언”(169)티에르가 1864년에 행한 프랑스에 필요한 자유들이라는 의회 연설”(같은 곳)이다. 이를 통해 1860년대 보나파르티즘과 자유주의, 공화주의 간의 대립은 첨예하게 심화된다. 허나 그들 내부에서도 노선의 결은 상당히 대립적이었는데, 2제정의 몰락 이후 제3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티에르를 비롯한 자유주의 반대파와 올리비에 등의 제정적 자유주의자 간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티에르는 전제정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며 거부한 반면, 올리비에는 전제정을 유지하는 속에서 자유의 확장을 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급진파와 온건파 간의 이러한 대립은 어떤 측면에서 흥미로운데, 적어도 정치적인 것의 문제설정 속에서 이 사례들을 검토할 경우 위의 반목이 실은 (루루슈-스자크?), 로베스 피에르-온건 산악파, 마르크스-사회민주주의자들, 볼셰비키-멘셰비키 등으로 끊임없이 재현되어 온 문제라는 점이 그렇다.

 

이어 제정에 의해 관철된 보통선거를 통해 유발된, 정치적 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인지를 재구성하기 위한 자유주의자들의 기획들이 직접 검토된다: “무엇보다도 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한 것은 공론장의 활성화라고 할 수 있다.(...)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한 것은 정치적 자유를 통한 여론의 활성화였다. 정치적 자유는 집회, 결사, 언론의 자유 등을 의미하는 것이었”(172-173). 이는 시민들 스스로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인식하게함으로써 정치적인 것을 활성화시키려는 의도”(같은 곳)였다. 이와 동시에 제기되었던 것은 지방분권화에 대한 요구로서, “행정의 중앙집권화가 황제의 전제적 통치에 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코뮌을 통해 작동될 지방분권화는 곧 시민의 정치참여 기회를 늘리고 그들의 의식을 고양하며 황제의 권한을 축소시킬 계기로서 이해되었던 것이다. 저자가 인용한 로장발롱에 따르면, 반대파들에게 지방분권화의 요구는 이와 같은 측면에서 지속적인 무기가 되어주었는데, 흥미롭게도 이는 (다소 맥락은 다르지만)세종시로의 국회 이전 계획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문제이다. 이후 저자는 현대의 자유민주주의 제도나,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을 파악함에 있어 이러한 과정들의 복잡한 중첩과 상호작용들을 이해하는 일의 중요성을 환기하며 글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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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6장에서 소개되는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등장과 "노동에 대한 권리"의 출현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부터 1871년 제3공화국에 이르는 대략 100년의 기간동안 심화된 자유주의, 공화주의, 민주주의라는 이념들은 사실상 근대 정치체의 핵심적인 문제제기들이 나타나는 장소였으며, 생산과 유통, 교역을 비롯한 경제의 문제들의 합리화를 추구하며 황제(혹은 군주)와 인민 사이의 '매개'권력을 나름의 방식으로 설정하려 했던 시도에서 각축하면서도 일정한 연합을 구성할 수 있었다. 이는 곧 일정한 통치체계가 도달하여 관리할 수 있는 지리적 경계선을 따라 근대적 '국가'가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했으며, 그러한 국가의 구성원이자 대상으로서의 '국민' 혹은 '시민'이 발명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허나 자유주의와 공화주의가 끝내 수용할 수 없었던 민주주의 고유의 문제로서의 '수의 정치'는 대의제로 봉합되었으며, 이는 결국 주권의 문제를 세금의 지불이 가능한, 정치체의 작동원리를 잘 인지하고 있는 합리적이고 능력있는 시민의 전유물로 한정하는 것이었다. 이는 프랑스 혁명을 부르주아 혁명이라 부르는 까닭이기도 하다. 


허나 혁명과 함께 시작된 공화국에 대한 요구는 그 태생부터 봉기의 정치에 기반하여 관철되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초과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어떤 계층 혹은 계급도 집단성을 통해 정치를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공화국의 배면이 암시하던 테제였던 것이다. 즉 국가의 형태로 봉합된 사회를 언제나 초과하여 존재하고, 삶-정치와 경제의 문제를 아우르는 불균일한 인민의 집단성과 관계들의 총체로서 존재하는 무엇이 드러나기 시작했다(형태적으로 유비하자면 국가 혹은 사회를 가격에, 사회적인 것을 가치에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로써 훗날 뒤르케임과 콩트 등의 작업에서도 징후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와 사회적인 것의 관계가 명확해진다. 로버트 오언에 의해 첫번째로 사용되었으리라 추측되는 '사회주의' 또한 그 기원에서부터 자본주의하의 인간형으로서의 개인(주의)에 대한 반테제로서 통용되며 불균질한 '집단'의 의미를 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듯, '사회적인 것'은 인민의 다수성(과 욕구)에 기반한, 특정한 집단의 규칙과 형태, 작동원리를 규정하는 무엇이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스스로가 충분히 대표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출현한 초기 산업노동자들의 조직들은 '노동에 대한 권리'를 역설하며 사회주의의 기획 안에 포섭되게 된다. 서동진이 동즐로를 참조하여 강조하듯(변증법의 낮잠, 2014), 한때 국민국가 내에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물질화 되었던 집단성 혹은 연대로서의 사회적인 것은 '사회'와 (유적존재로서의 인간의)'노동'이라는 항의 관계를 짐작하게 해준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푸코의 주장 혹은 <아메리칸 유토피아>(An American Utopia: Dual Power and the Universal Army, 2016)에서 전개되는 제임슨의 주장 또한 각종 사회보장의 철회(와 후행하는 갖은 이데올로기들)로 특징지어지는 신자유주의의 시퀀스 이후로 사회적인 것을 어떻게 사유하며 다시금 복원할 것인지를 다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 사회적인 것을 회복하기 위한 실천의 공간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조직된 노동운동의 부흥과 좌파적 역량의 강화는 사실 역사적으로 무관하지 않으며, 이는 사회보장제도의 관철을 견지하고 그 후퇴를 막는데에도 필수적이고, 새로운 사회의 형식을 결정하는데에 결정적인 작인으로 기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서동진이 말하듯 사회적인 것의 문제는 경제의 문제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물론 사회보장을 '생명정치'의 연장에서 파악하는 푸코적 견지에선 좌우의 구분이 무관해질 것이다). 허나 그가 말하는 "노동의 정치"는 착취에 저항하는 전통적인 노동의 정치라기보다는, 프레드릭 제임슨이 자본을 실업에 관한 책이라 언급했던 사례를 경유하여, 실업 내지 비노동의 문제설정에서 출발하는 노동의 정치에 가깝다. 이는 그가 즐겨 참조하는 물신주의 비판의 견지에서, 노동은 그 자체로는 명백히 자본과의 적대가 아닌 포함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고, 잉여가치의 근원은 '항상적인 실업을 통해 유지되는' 노동력가치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본주의의 축적은 언제나 실업을 통해 작동한다. 허나 당장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조차 바라기 힘든 상황에서, 비노동의 문제설정에서부터 출발하는 노동의 정치의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이러한 지점에서 그러한 정치는 가능하며, 전례는 존재했는가 따져 볼 지점이 있을 것이다. 혹은 경제와 독립된 부문으로서 사회적인 것을 정의하는 것은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