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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김영환, <영국자유주의의 기원>, 혜안, 2013. 98-108p. 발제문 (인용절 각주 생략)

by 정강산 2017. 5. 11.


Akvarell på papper, I Donbass(1925)


홍태영, "루이 나폴레옹의 제2제정과 1860년대의 정치적 자유주의", <국민국가의 정치학>, 후마니타스, 2008. 8장 서브텍스트

 

신자유주의는 다른 자유주의의 기원과는 달리 자유방임의 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나왔다. 신자유주의 사상의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린T.H.Green은 벤담주의의 개인주의적 원칙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공격했다. 자유방임의 자유주의가 산업화로 인해 생겨난 많은 사회문제들에 대해 국가의 특별한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거나, 설혹 국가의 역할을 인정했다 해도 효율의 관점에서 관료적으로 접근했다면 신자유주의는 이런 문제들을 자유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자유는 억압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단계로 나아간 것이다.(98)

 

그린은 국가행위의 일정한 영역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특히 그린은 고용의 영역에서 계약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계약의 두 당사자는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신자유주의는 19세기 말 홉하우스L.H.Hobhouse와 홉슨J.A.Hobson에 의해 이론적으로 정치해졌으며 세속화되었다. 19세기말쯤 영국에서 자유주의의 새로운 경향이 뚜렷하게 감지되었다는 점은 1890년 대륙의 한 관찰자가 영국에서 나타난 자유주의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자유주의 학파의 사회주의라는 명칭을 붙였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99): 

 

홉하우스는 규제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사회적 자유와 비사회적 자유를 구분했다. 비사회적 자유는 다른 사람의 이해와 무관하게 그의 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였고 규제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여기에 반해 사회적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을 선택해야 할 자유이며 규제가 가능한 영역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함께 사는 사람들이 향유하는 자유였다. 어떤 행위의 사회적 결과에 대한 경험이 확대될수록 사회적 양심도 확대되며 규제의 영역도 커지게 되는 것이다. 홉하우스는 개인이 완성되어 나가는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 다윈주의의 진화 개념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사회적 다윈주의와는 달리 협동을 진화의 중요한 원리로 간주했다. 즉 사회적 다윈주의가 생존경쟁을 신성시한 반면, 홉하우스는 사회가 상호협조를 통해 발전해 나간다고 믿었던 것이다.(100)

 

홉슨 역시 스펜서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스펜서와는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스펜서와 같이 사회적 행위는 유기적 전체로서의 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관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홉슨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삶을 이끌어 나가는 유기적 사회로 진화해 나가야 한다고 믿었다.(...)그러므로 그는 산업의 공공통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제시했다. 어떤 산업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성격을 갖는 경우, 산업은 공적으로 통제되어야 했으며 그런 것들로 철도, 전기, 에너지 부문 등을 들 수 있었다.(101)

 

자유주의가 여러 개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자유주의에 여러 가지 함의가 담겨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기원을 갖는 자유주의는 아무런 공통점을 갖지 않는 것일까. 이러한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가 공통으로 근거하는 가치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러한 것들 중 하나로 지적할 수 있는 사항은 권력과 관련된 것이다. 여러 기원을 갖는 자유주의는 그것의 출발점에서 모두 권력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왕권이든, 귀족의 권력이든, 독점세력의 권력이든, 관습의 권력이든, 다수의 권력이든 어떤 형태의 권력이던 간에 그 권력에 저항하고 그 권력을 통제하려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또 하나 지적해 볼 수 있는 것은 자유주의가 권력과 관련해 항상 정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자유주의는 왕권에 대한 저항, 인간의 권리에 대한 요구, 세습 특권에 대한 항의, 독점에 대한 저항, 선거권에 대한 요구,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주장이 바뀌었지만 그러한 주장의 밑바닥에 정의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역사적으로 다섯 개의 기원을 보여주는 영국의 자유주의는 현재의 자유주의를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살아남아 있는 네 개의 자유주의 중 자유방임 자유주의와 벤담적 자유주의는 협력하고 있으며 급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이들과 대항관계에 놓여 있어 자유주의는 분열되어 있는 상황이다.(...)자유방임 자유주의는 뉴라이트의 보수주의와 연결된 반면, 신자유주의는 시장사회주의와 협력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자유주의라는 용어가 종종 선택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자유방임적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 진영을 자유주의라고 부르지 않고, 이들에 대해 좌파 혹은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자유방임적 자유주의는 자유주의를 선점하고 이 용어에 대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역사는 자유주의의 운반자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105-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