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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오늘날 예술의 양태를 직시하기

by 정강산 2018. 5. 25.

기체상태의 예술을 이루는 기제들


이브 미쇼는 <기체상태의 예술>에서, 90년대 이후로 예술적 형식이 포스트-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조응하는 ‘동시대 예술’로 접어들었음을 주창한다. 결국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이 의미하는 것은 ‘동시대’인바, 이는 어떤 양식적 변화도 불가능해진, 기체 상태에서 유동하는, 부유하는 상태에 놓인 예술이 편재하는 시기라는 것을 가리킨다. 이브 미쇼에게 ‘동시대 예술’은 그나마의 물질성을 암시하고 있었던 '플랫'의 차원을 넘어, 완전히 무형의 것으로 기화된 예술이다.


물론 그의 텍스트는 이론적으로 썩 엄밀하진 않은 느슨한 에세이에 가깝다. 그러나 몇몇 구절은 나름 고민해볼 지점을 시사한다. 


그가 오늘날 예술에서 형식적 갱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을 지적하며 그 원인을 예술의 형식적 갱신자체에서 찾아내는 것은 흥미롭다. 예컨대 “1장: 동시대미술에 관한 작은 민족지학”에서 그는 오늘날 빈약한 예술이 상당부분 레디메이드가 통속화된 것에서부터 예고되어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 한다: 


“결과적으로 레디메이드의 대중화와 통속화, 즉 모든 사람들과 모든 곳을 위한 레디메이드의 민주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본질의 흡수나 기화에 의해 예술 세계의 소멸에 대해 책임을 진다. 레디메이드의 발명은 예술을 절차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비본질화하였다. 이 절차적인 본성의 일반화는 예술을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증기 혹은 가스로 변화시켰다. 이로써, 세계는 하나의 미학적 분위기에 사로잡혔다. 동시에 의식화儀式化되고 성화 聖化된, 각색된 값진 희귀성에 고착된 예술 세계는 작품들뿐만 아니라 참여자 수에서도 점차 조금씩 줄어들고 사라지게 된다.”(pp.50-51) 


이와 같은 진술은 독립적으로 실체화되었을 때 그른 것이 되지만, 다음과 같은 맥락 속에 함께 놓일 때 유효한 주장이 된다. 


“그 밖에는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또는 무의식적으로 예술적이 되며 예술 속에 잠기고 있다. 실제로 세상이 전적으로 아름답게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한 것이 바로 미학의 승리인 것이다.”(Ibid)


“20세기 미술은 어디에서도 똑같은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풍요롭고 다양한 형태와 시각적 창의성으로 현대미술관을 가득 채워 형태들의 시장터로 만들어버렸다.(...) 이처럼 현대미술은 분할되고 세분화된 탐구 속에서 폭력적이고 도저히 진정시킬 수 없는 갈등을 통해 탄생되었고, 가끔은 서로가 너무 달라 상대가 추구하는 바를 모를 수밖에 없었다.”(p.68)



“이 모든 것은 예술의 정치, 사회, 문화적 기능에 대한 확고하고 명확한 개념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방식들이다. (...)지나치게 세속적이라고 판단되는 정치적 과정들을 의도적으로 대체하려는 절대주의와 초현실주의가 보여주는 바대로, 예술 자체가 혁명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다른 한편 이 예술은 미래주의, 소용돌이파, 구성주의가 갈망해 마지않는 전위적인 예술처럼, 문자 그대로 정치적 혁명이 내딛는 걸음걸이와 똑같은 보폭을 내디디며 예술적 혁명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자기 고유의 영역을 통하여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한 혁명을 스스로 이룩해나가기도 한다.”(p.69) 


여기서 그는 옳게도, 모더니즘, 즉 현대예술(modern art)의 시퀀스가 갖는 특징은 그들이 정치와의 변증법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 근거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많은 모더니스트들이 원하고 있는- ‘대작’을 지탱했던 형식적 갱신을 추동한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상이한 이념’이었고, 이 상이한 이념들은 시간성(특히 미래)에 대한 상이한 비전에 다름 아니었다. 허나 사회주의의 몰락과 동시에 부정성이 제거된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서 정치가 정치공학자/전문가들의 기예가 된 것처럼, 예술 또한 그러한 조건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종언을 고하고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이 도래했음을 선언할 때 그 시기가 90년대를 전후로 나뉜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물론 나는 ‘동시대’를 포스트모더니티의 지속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논의를 따라갈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맥락을 살펴볼 수 있다. 역사적 아방가르드 및 (그린버그식의)완고한 자기지시적 작업들을 아우르는 모더니티의 특수한 보편주의와 본질주의가 실은 당대의 독특한 유토피아주의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그리고 유토피아의 이념이 가능케 했던 개방적 시간성을 통해 가능했던 것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예술적 형식 자체에도 이미 내재적인 파멸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동시대 예술의 지표, 과도기로서의 팝아트


이브 미쇼는 레디메이드 외에도 큐비즘과 다다이즘을 그러한 형식적 파멸(형해화)을 추동한 전거로 셈한다(p.84). 허나 우리는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적 형식을 예고했던 대표적인 사례로서 팝아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60년대의 팝아트는 이른바 '(많은 경우 무분별했던)차용'과 '혼성모방', '향수'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의 포문을 열었던 시도였다. 주지하다시피 ‘기체상태’의, 편재하는, 식별하기 어려운 동시대 예술의 과도기적 형식으로서 제시되었던 것이 어쩌면 바로 팝아트일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이념적 장소를 구성하는 것과 무관한 ‘정보적 평면’의 공간이 개방되었다는 것은 한편으로 어떤 형식(form)도 하나의 스타일/패션으로 조립할 수 있는 혼성모방의 조건이 된다. 요컨대: 


"레오 스타인버그는 라우센버그와 존스의 콜라주-회화 작품에서 또 다른 패러다임을 감지했고, 그것을 '평판(flatbed)화면'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회화는 더 이상 자연풍경을 바라보거나 들여다보는 수직적인 틀(창문 혹은 거울 혹은 실제로 추상적인 표면)이 아니라, 이질적인 이미지들이 하나의 텍스트로 짜여진 수평적 장소, 즉 "정보를 나열해 기록하는 평면"이 된다."(Art Since 1900's, p.487)


물론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리처드 해밀턴, 제임스 로젠퀴스트, 에드 루샤, 게르하르트 리히터, 지그마르 폴케 등의 작업이 추상표현주의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에 대한 발본적인 비판을 개시하고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측면에서 긍정적인 함의를 가진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동시에 우리는 경험세계가 규격화된 소비제들로 채워져가는 세계의 양태를 미메시스함으로써 모더니즘적 저자성을 가장 극단적인 수준에서 비난 할 수 있었던 초기 팝아트의 '물화'의 반복이 시장과 예술 고유의 영역에 대한 시장주의적 냉소와 공모하게 되는 지점을 고려해야 한다. 요컨대 공산품의 생산과정을 그대로 차용해온, 대량생산 가능한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과, 시장 및 문화산업에 친화적인 그의 라이프 스타일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고전적인 예술가 모델은 레디메이드와 다다 등의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의해 공격받아 왔으나, 팝아트에 이르러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파산에 이르렀다. 이브 미쇼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예술가는 점차로 저주받은 창작자에서 벗어나 시나브로 사업가, 커뮤니케이션 업종 종사자, 마술사온 무속인으로 가는 도중에 선 사회적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 등으로 변모해간다." 역사적으로 독특한 이러한 종류의 예술가 모델은 공장factory을 운영하며 명사들과 어울리고 적극적으로 미디어를 이용하는 사업가로서 스스로를 위치지운 워홀의 등장에서부터 이미 가시화되었던 바 있다. 이제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워홀주의자들을 목도할 수 있게 되었다. 편재하는 미디어 장치를 통해 자신을 어디까지 재현할 것인지를 고려하며 자기홍보의 기예를 발휘할 때, 예술가는 부지불식간에 워홀의 전철을 따른다. 이런 측면에서 할 포스터가 팝아트를 “네오 아방가르드”로서 호명함으로써 그로부터 아방가르드의 유효한 반복을 발견하고자 했던 것은 한편으로 과도한 논증의 비약이라 볼 수도 있다. 극단적인 긍정성으로부터 곧바로 곡예에 가까운 기술로 부정성을 읽고자 하는 것은 많은 논자들이 겪는 낙관적인 충동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팝아트는 아방가르드의 이상이 정반대의 측면에서 실현된 현실에 정확히 복무하기 때문이다(물론 오늘날 이러한 팝아트의 효과는 또 다른 층위에서 관철되고 있다. 보리스 그로이스가 <예술의 진실성>에서 주장했듯, 작품의 생산이 온라인을 통한 항상적인 접속 가능성에 기대게 되었을 때, 그 이전까지 대중들과 유리되어 베일에 싸여있던 천재의 시간은 다시금 완전히 붕괴한다. 모더니즘적 '대작'을 지탱하던 시간성의 조건은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에 의해 대체되었다.). 


무라카미 다카시 등은 사실 워홀 이후 막혀버린 역사에 대한 지표이다. '아니매'의 형상을 따라 그리며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진 '플랫'한 세계를 반영하는 흐름들은, 형식적 측면에서 이미 팝아트의 자장 속에 있지만 가상화된 이미지가 이미 실재를 뛰어넘었다는 점을 보다 강조하며 스펙터클과 상업적 이미지들에 대한 현상학적 서술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외려 본인들의 재현행위가 갖는 효과를 반성적 수준에서 파악했던 초기 팝아트작가들보다 즉자적인 수준에 머문다(초기 팝아티스트들에게 공산품의 이미지에 대한 모방은 일종의 의도이자 전략이었으나, 예술의 거의 모든 경계가 무화된 시점에서 그러한 제스처를 반복하는 것은 텅빈 형식을 답보하는 데에 그친다). 


앞서 언급했듯, 이브 미쇼가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이라 일컫는 동시대 예술의 '기체성'은 그 기원을 소급해 갈 때 이미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통속화되었을 당시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팝아트는 레디메이드에서부터 '모든 것'이 될 수 있게 된 예술이 상품의 양태 자체로 전화하게 된 시점을 보여주는 지표로서 기능했다. 말하자면 팝아트의 시퀀스였던 60년대 당시 서구권에서 일상적인 삶의 풍경은 의미심장하게도 점차 미학화 되어갔다.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다시, 이는 거대서사 및 미래의 시간을 상대하는 대문자 정치의 상실과 맞물려 관철된다. 상품화의 편재에 이은 체계의 심화에 따라, 마치 중력과도 같이 영속적인 현재가 유일한 시간인 것으로 보일 때 정치는 1.생산적이고 긍정적인(positive)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귀류법의 무한 퇴행을 반복하거나(사변적인 정치철학에 골몰하는 이들), 2.당장 모든 변화가 가능하다며 조증상태에 빠지거나(타인의 경계를 침해한 이들을 향한 윤리적 협박과 사과요구를 유일한 실천의 단위로 삼는 pc주의자들), 3.좋았던 옛날의 원전을 훈고학적으로 섬길 뿐이다. 


유토피아주의를 생산적으로 다듬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에서 이론과 실천을 매개할 이념은 부재한다. 이는 헤겔적 의미에서 내용과 형식을 매개할 단위를 찾지 못한 예술이 쇠퇴에 빠지리라는 예언과도 관련이 있다. 이제 예술은 1.모든 예술을 귀류법적으로 비판하며 예외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미학을 생산할 책임을 방기하거나(ex:예술에 외재적인 비판들) 2.지금-여기에서 충만한 현존을 느끼며 일시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허무는데 쾌락을 느끼거나(ex:사회 참여예술, 관계미학, 공동체 미술), 3.불성실하게 고전적인 형식주의로 되돌아가려는 모더니즘적 충동에 빠져드는 것이 되었다(ex:신추상). 이런 측면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보여줬던- 목적을 향한 도정으로서의 정치가 상실된 것과 아방가르드가 보여줬던- 목적을 향한 형식으로서의 예술이 몰락한 것은 동시에 주목될 필요가 있다. 일전에 지적했듯, 미래를 잃은 ‘동시대 예술’은 미래 없는 ‘동시대 정치’와 일치한다. 어떤 적대도 없이 모든 것이 가능한 사회에서, 가능한 것은 유토피아주의를 재앙으로 묘사하고, 그렇게 단언함으로써 미래를 억압하는 일이 된다.


문제는 이들 모두가 어떤 지점에서는 현재에 결박된 시간을 흐르게 하기 위한 단말마에 가까운 시도들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즉 ‘기체상태의 예술’이 차이, 개별성 등에 맹목적으로 동조하며 무분별한 다원성, 주목경제 하에서의 상품화에 침잠하는 것을 쉽사리 비난하기 어려운 까닭은, 그것이 탈식민, 탈냉전, 세계화, 신사회운동, 탈중심화된 네트워크 등의- 마냥 부정하기 어려운 변화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내리는 일일 것이다. 즉, 상품화에 저항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미학화된 일상을 비판하기 위한 예술의 전략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