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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히토 슈타이얼에 관한 메모

by 정강산 2018. 5. 26.

히토 슈타이얼


정강산

 

Hito Steyerl: 1966년 독일 뮌헨서 출생. 다큐멘터리 영화를 공부했고,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작가이자 비평가로서 활동하는 동시에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미디어 아트를 강의한다.

topic: 히토 슈타이얼은 주로 (퍼포먼스가 포함된)영상을 다루며, 주제는 광범하다. 허나 그녀 작업의 4할 정도는 디지털상 열화된 동시대적 이미지의 조건을 차용하며, 포스트-인터넷의 경험을 다루는 데에 천착해온 작가이자 비평가다. 그렇다면 그녀의 작업이 김희천, 강정석 등의 작가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어디에 있는가?

->어느 작업이 그러하듯,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메타적으로 반성하여 제시하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스스로의 징후, 증상을 알고 있는지, 혹은 알고자 노력하는지의 여부가 관건인 것. 가상화된, 쪼그라든, 납작해진 경험 자체를 질료로 삼아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에 답해야 한다. 히토 슈타이얼은 (환영적)실재가 된, 동시에 최하층의 조건에 처해있는 이미지를 긍정한다. 그러나 그녀는 동시에 그것이 세계화, 금융화, 부동산 투기, 군사기술, 전쟁, 감시, 자본주의의 파생물이자 그것과 공모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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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_미국, 네덜란드, 스페인, 호주, 스코틀랜드, 대만, 독일, 그리스, 스웨덴, 인도, 이스라엘, 일본, 영국, 폴란드, 한국 등 전 세계를 순회하며 전시를 하며, 베니스 비엔날레, 광주 비엔날레 등 주요 비엔날레 등 대형전시에 항상 초청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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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Internet Art?

201611월 아트인 컬쳐 특집이 포스트 인터넷 아트였는데, 여기서 여러 논자들이 포스트 인터넷이라는 담론을 둘러싼 이런저런 쟁점들에 관해 코멘트를 남기고 있다. 하나 짚어서 읽어보라. 그들이 사용하는 레토릭을 보자.

 

인터넷 상의 예술, 진 맥휴(Gene Mchugh), 가상현실, 2.0, 사물인터넷, 2012년 이후 디지털 네이티브의 등장, 넷아트,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 무화, 1980년대 생, 1990년대 생, 상시접속 시대, 월드와이드웹-> 이들은 모두 포스트 인터넷 아트를 지탱하는 개념 및 조건들.

1. “2.0(Web 2.0)이란 개방, 참여, 공유의 정신을 바탕으로 사용자가 직접 정보를 생산하여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웹 기술을 말한다. 1.0이 인터넷을 통해 일방적으로 정보를 보여주었다면, 2.0은 사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여 쌍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다. 게시판, 댓글, 블로그, UCC, 지식백과 등이 있다.

 

단순한 웹사이트의 집합체를 웹 1.0으로 보고, 웹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의 발전을 웹 2.0이 데스크톱 컴퓨터의 응용 프로그램을 대체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사용자들의 참여, 공유, 개방을 유도산출물을 공유하고, 외부에 개방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2. “스마트폰, PC를 넘어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시계 등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것을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이라고 한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각종 기기에 통신, 센서 기능을 장착해 스스로 데이터를 주고 받고 이를 처리해 자동으로 구동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교통상황, 주변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무인 주행이 가능한 자동차나 집 밖에서 스마트폰으로 조정할 수 있는 가전제품이 대표적이다.”

 

3. “세계 규모의 거미집 또는 거미집 모양의 망이라는 뜻으로, 하이퍼텍스트(hypertext)라는 기능에 의해 인터넷상에 분산되어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정보를 통일된 방법으로 찾아볼 수 있게 하는 광역 정보 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월드 와이드 웹은 WWW 또는 웹(web)이라고 부르며, 1989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럽 원자핵 공동 연구소(CERN)Tim Bernars-Lee가 제안한 것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기 쉽게 만들어 인터넷을 크게 활성화한 주역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 이유는 웹이 문자 정보가 대부분이었던 이때까지의 통신에 의한 정보 전달 방법과는 달리 문자, 화상, 음성에 더하여 다양한 표현 방법을 가능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4. 2012년 이후의 디지털 네이티브의 등장에서 볼 수 있듯, ‘포스트-인터넷담론의 가장 큰 옹호자인 이들은 시지각적 환경의 조건이 애초에 스크린에 매개된 경험을 밑천으로 삼는다. ‘디지털 네이티브, 1세계에서 정보통신기기의 보급이 보편화된 이후에 출생한, 대략 90년대 이후의 출신들을 가리킨다. 여기선 기술적 변화에 따른 세대로서 정체화 된 조건이 돋보인다. 허나 우리는 세계의 눈금을 재는 것이 왜 기술과 세대로 규정지어지는지에 관해 징후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는 소련으로 표상되던 다른 세계의 가능성이 몰락하고, 적대가 부재하는 세계에서 주체의 단위가 사회학적- 생물학적 정체성으로서의 세대로 나타나는 것은 필연이라 생각한다. 결국 그러한 나르시시즘적 투사를 걷어내고자 한다면, 현재의 경험에 침잠할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의 배면을 드러내고자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곧 적대를 드러내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 슈타이얼은 이 지점에 충실하게 천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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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자. 주변적 이야기:

a. 그녀의 글쓰기는 엄밀하게 학적이지는 않은 산문에 가깝다. 그 점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인지, 때때로 렉쳐에서 히토 슈타이얼은 자신은 아카데믹하지 않으니 내 말을 전부 믿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b. 아트리뷰에서 매년 선정하는 동시대 예술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에서 20171위로 꼽혔다. 지젝이 그 자신이 철저히 비판하는 세계화의 수혜자이듯, 슈타이얼 또한 그 자신이 동시대 미술의 넓은 외연의 수혜자.

“Art is powerful. Or at least it’s the construct of powerful forces, not always of the positive kind. This is something Steyerl recognises. ‘Contemporary art is made possible by neoliberal capital, plus the internet, biennials, art fairs, parallel pop-up histories and growing income inequalities,’ she told The Guardian this year. ‘Let’s add asymmetric warfare, real-estate speculation, tax evasion, money laundering and deregulated financial markets.’ Steyerl makes the top slot on this list because she actively attempts to disrupt this nexus of power.”_󰡔2017 Art Review󰡕

https://artreview.com/power_100/2017/

"예술은 강력하다. 혹은, 적어도 그것은 강력한 힘의 구축이며 항상 긍정적인 종류의 것은 아니다. 이것은 슈타이얼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올해 가디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대 미술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에 더해 인터넷, 비엔날레, 미술 박람회, 평행한 화면상에 나타나서 선택할 수 있는 역사와 증가하는 소득 불평등에 의해 가능해졌다. 여기에 비대칭적인 전쟁, 부동산 투기, 탈세, 돈세탁 및 규제 완화 된 금융 시장도 추가해야겠다.‘ 그녀는 이 힘의 결합을 적극적으로 분열 시키려하고 있기 때문에 본 차트에서 1 위를 차지했다.’

 

c. 영미권에서는 적잖은 이들이 슈타이얼의 글과 작업들에 대해 2차 작업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그를 다룬 논문은 김지훈의 것을 제외하곤 전무하다. 아무튼 한국에서 슈타이얼 작가론을 쓰기에 좋은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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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 양태 소개:

초판과 개정판의 차이가 엄청나다. 요컨대 전반적인 번역어에서 질적 차이가 있다. 본래 초판의 마지막 2장을 차지했던 "면세미술""총체적 현존재의 공포-미술 영역에서 현존의 경제학"은 조만간 출간될 "면세미술: 전지구적 내전 시대의 미술"에 첨부될 예정이라 개정판에선 빠졌다. 대신 김지훈의 해제가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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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관련된 비화:

한국에 히토 슈타이얼을 소개하는 데에서 김실비와 김지훈의 알력싸움은 숨겨져 있다. 애초 판권을 물어온 데에는 김실비의 공이 컸지만, 김지훈이 번역 전반을 뜯어고치면서 '역자'를 누구로 할 것인지를 둘러싼 신경전이 있었다. 김실비의 열렬한 방어 끝에 결과적으로 기존 번역자를 유지하되 김지훈이 감수를 하는 것으로 크레딧이 들어갔으나, 이는 히토 슈타이얼이 아마도 기꺼이 비판할 주목 경제에서 히토 슈타이얼의 유명세가 만든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허나 초판 보다는 개정판이 믿을만하니 개정판으로 보는 것이 좋다. 김실비는 히토슈타이얼의 제자이지만, 글을 본업으로 삼는 이가 아니어서인지 적지 않은 구절에서 치명적인 번역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예컨대,

 

a. "자유낙하: 수직 원근법에 대한 사고 실험" 1번 각주에서 "Post Foundational Political Thought"를 언급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김실비는 여기서 "foundational"'근본주의적'이라 번역한다. 그러나 '근본주의적'에 해당하는 적합한 영어는 'fundamental'이다. 'foundational''정초주의', '토대주의', '기초주의'로 번역되는 것이 적절하다. 이어 나오는 'groundlessness''근본없음'보다 '근거없음', '기초없음'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ex_"다른 선택지가 순환 논증이거나 무한 후퇴라는 것을 확인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명백한 선택지는 다른 것들을 지지하는 기본적 믿음을 제시하는 토대주의라는 것을 알아냈다.[2] 가장 유명한 토대주의자인 데카르트는 자신의 존재와 이성에 대한 명확한 관념에서 기초를 발견하였다. 반면 로크는 경험에서 토대를 찾았다. 기초는 경험을 강조하는 경험론이나 이성을 강조하는 합리론과 같이 다양한 인식론적 강조점을 반영하지만 양자를 혼합할 수도 있다."[1]_wikipedia토대주의항목을 참고하라)

 

b. 미술의 정치학- 현대미술과 포스트 민주주의로의 이행전체에서 등장하는 현대미술의 본래 영문은 ‘modern art’가 아니라 “contemporary art”로 되어있다. 따라서 동시대 미술이 현대 미술과 구분하여 용례화 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치명적인 실수다.

 

c. 112p태곳적 축적에 후기 개념주의적 입김을 한김 불어넣는다라는 대목에서 ‘primitive accumulation’이 마르크스의 시초축적’, 혹은 원시축적을 설명하는 개념에서 차용된 것임을 감안할 때, 이미 정착되어 널리 쓰이는 번역어인 시초축적내지 원시적 축적으로 고쳐 읽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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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녀는 저자/비평가이자 작가이기에, 각 영역에서의 작업은 나누어 설명될 필요가 있다. 우선 저자로서의 작업을 먼저 살펴보자. 헌데 그 전에 잠깐 스펙터클이후 제기되어온 이미지 비판의 전통이 열어놓은 결과를 잠깐 살펴보자.

 

스펙터클/시뮬라시옹: 이미지의 존재론인가, 물신주의 비판의 갱신인가?

 

시뮬라크르란 결코 진실을 감추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야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긴다. 시뮬라크르는 참된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모두 모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보드리야르에게 시뮬라시옹은 시뮬라크르(재현된 이미지, 즉 문화산업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가 실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간단하다: ‘원본이 복제물보다 우월하다는 플라톤 식 가설은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 가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 반면 현실은 가상의 영향력에 그 자리를 내준다는 것.

 

현대적 생산 조건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모든 삶은 스펙터클의 거대한 축적물로 나타난다. 매개 없이 직접 경험했던 모든 것이 표상 속으로 멀어진다.(...) 스펙터클은 이미지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이다.”

기 드보르, <스펙터클의 사회>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비판은 실재이자 가상, 주체이자 객체, 구체이자 추상인 귀신들린 상품에 대한 비판이었다. 즉 그것은 표상비판이 아니라 존재론 비판인 동시에 인식론 비판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는 왜 상품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논증하는 것이었다. 대상적 사유형태로서의 상품의 조건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허나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개념은 철저히 마르크스와 루카치에 기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의 현상학적 변화들을 실체화시킴으로써 존재론화 하고, 단지 플라톤식 표상비판을 반대방향에서 전개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어왔다. 생각해볼 만한 쟁점이니 참고하라.

 

변혁 주체의 문제- 사회 변혁의 주체는 누구인가?

->당시 60-70년대 서구 사회의, 풍족한 동시에 철저히 구획되어가던 경제적 조건의 효과로서, 일상생활, 경험 비판의 계기가 열림. 이는 우리의 적은 부르주아가 아니라 따분함, 지루함, 권태로움이다라는 식의 에토스로 가득 찼던 68이 증언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미적 비판이 힘을 얻게 됨에 따라 변혁의 주체는 조직된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아방가르디스트가 되었던 것. 절반은 옳지만, 절반은 그르다. 물론 예술가로서 우리는 이러한 효과의 한계를 인식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에 대한 미학적 비판을 급진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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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의 제문제: original- 경험은 가능한가?

->가장 직접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험이 실은 철저히 자본주의에 매개되어 있다는 것, 따라서 매개되지 않은 경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상황주의자들의 테제였다. 허나 비서구 사회를 향한 초기 일부 모더니스트들의 원시주의적 투사 속에서만 비서구의 본래적인 원시성이 나타날 수 있듯, 본래적인 경험이란 환상적인 투사에 그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본래적 경험은 괄호치고, 사회적 변화에 따라 본래적 경험은 사후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는 과감한 주장을 해볼 수도 있다. 허나 골치아픈 문제이니 참고만 하시라. 모더니티 비판, 자본주의에 대한 미학적 비판의 전통의 혁신에서 그들이 기여한 공을 야박하게 평가해선 안 될 것이다.

(아도르노 등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문화산업비판의 연장 및 구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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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자유낙하, 다시점, 선형원근법, 권력, 포스트-스펙터클(슈타이얼이 언급하진 않는 듯하지만), 포스트-인터넷, 항공사진, 조감도, 세계화, 전쟁, 감시, 금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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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의 추방자들󰡕 각 장 요약 및 발췌록.

 

a. 자유낙하- 수직 원근법에 대한 사고실험

 

선형 원근법은 수학적이고 평평하며 무한하고 연속적인, 균질한 공간을 산출하고 이를 현실이라 천명한다.(...)선형원근법은 공간을 변형시킬 뿐만 아니라 선형시간의 개념을 도입하는데, 이에 수학적인 예측 및 선형적 진보가 딸려 나온다.” 19p.

 

선형 원근법은 주체를 시각의 중심에 둠으로써 그 권위를 강조하는 반면, 주체를 대개 객관적이라 여겨지는 재현의 법칙 하에 종속시킴으로써 개별성을 약화시킨다. 주체와 시공간의 이러한 재발명이 서구 및 서구적 관념의 지배를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재현, 시간 ,공간의 기준을 재정립시킨 추가적인 도구였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22p.

 

각 패널에서 선형 원근법은 인종적이고 종교적인 선전 및 그에 따른 잔혹행위들을 위한 매트릭스가 된다. 이렇게 소위 과학적인 세계관은 누군가를 타자로 표시하기 위한 규준을 마련하는 데 일조했으며, 따라서 타자에 대한 정복과 지배를 정당화했다.(...)그러나 현 상태는 조금 달라졌다. 우리는 또 하나의 혹은 몇 가지의 새로운 시각적 패러다임을 향한 전이 상태에 처한 듯하다. 선형 원근법은 다양한 유형의 시각으로 보충되었고, 결론적으로 시각 체계로서 지배력이 흔들린다 할 정도로 그 지위가 변하고 있다.” 23p.

 

“20세기 들어 선형원근법의 해체가 다양한 영역에 걸쳐 보다 심화되기 시작했다. 영화는 다변화된 시각적 관점을 표현함으로써 사진을 보완한다. 편집은 관찰자를 교란시키고 선형 시간을 와해시키는 데에 완벽히 걸맞는 장치가 된다. 회화는 대체로 재현을 포기하고 큐비즘, 콜라주 및 다양한 추상 안에서 선형 원근법을 무너뜨린다. 시공간은 양자물리학과 상대성이론을 통해 재상상되는 한편 지각은 전쟁, 광고 그리고 컨베이어 벨트로써 재편성된다.” 26p.

 

->여기서 슈타이얼은 세계에 대한 인지, 인식, 직관을 가능케 하는 감각의 조건으로서 근대의 '수직원근법'에 주목하고, 이것이 점차 사라져 왔다는 점을 논증하며 변화된 자본주의의 기술적/정치적 환경이 새로운 감각조건을 창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특정한 보는 방식(, 시점)을 특정한 물적 조건의 반영으로 보는 모티브는 제법 깊은 전통이 있다.

예컨대, 조야하게 읽으면 객관적으로 여겨지는 세계지도가 서구 중심적으로 작성된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떠올려 볼 수 있고, 다소 호의적으로 읽자면 기술복제 시대에 조응하는 예술작품에 대한 벤야민의 역사화처럼, 포스트 인터넷 시대에 조응하는 예술작품의 조건에 천착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판단은 자유.

 

이러한 항공 재현(그 안에서 착륙은 사실상 하나의 특권화 된 주체를 구성한다)은 우리가 자유낙하의 조건에 기거한다는 가설에 어떻게 연결되는가? 답은 간단하다.(...) 선형 원근법이 정지한 상상적 관찰자와 지평선을 설정한 것처럼,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관점도 부유하는 상상적 관찰자와 안정된 상상적 바닥을 상정한다. 이는 새로운 시각적 정상성을 발생시킨다. 곧 감시 기술과 스크린에 기반을 둔 오락거리로 안전하게 압축된 새로운 주체성이다.”30-31pp.

 

->이는 독립적인 것으로 보이는 다시점적, 조감도적 이미지의 등장이 선형 원근법의 몰락을 반영하며, 이것이 자본주의의 특정한 기술적 변화와 관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작업을 스펙터클, 시뮬라시옹 등을 통한 이미지 비판의 조건을 파악하려는 시도로 독해할 수 있는 대목인데, 스펙터클은 TV, 영화 screen을 향한 비판이었기에, 그녀의 생각엔 인터넷 등장 이후 보다 심화되고 이미지 향연의 양태를 어떻게 볼 것인지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 그녀의 작업은 동시대적 시각장에 대한 인지적 지도그리기 시도라 볼 수 있다.

 

그녀는 본문에서 우리가 어떤 기초도 없이 '자유낙하 상태'에 있다고 말하는데, 이때 '자유낙하'란 수직 원근법의 세계에서 자연스레 전제되었던 '주체' 개념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해졌다는 점에 대한 알레고리다. "다수의 항공사진, 3D급강하, 구글맵, 파노라마""가상의 부유하는 관찰자와 고정된 지면을 상정"하는데, 이 관찰자의 시점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것이다. -객의 전도, 혹은 인간, 사물 모두의 객체화. 허나 그녀는 이것이 오늘날의 시각적 조건 자체이기에, 저항 또한 바로 이 위에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평선 및 관점의 다변화와 탈선형화를 인정한다면 시각의 새로운 도구들은 분열과 방향 상실의 동시대적 조건을 표현하고 나아가 변경하는데 또한 쓰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35p.

 

->아도르노를 인용한 데에서 그녀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녀의 작업은 결국 현재 (이미지의)조건에 대한 부정이자 긍정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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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빈곤한 이미지를 옹호하며

 

빈곤한 이미지는 허접쓰레기 또는 리핑된 것(rip)이다. AVIJPEG파일, 해상도에 따라 순위와 가치가 매겨지는 외양의 계급사회 내의 룸펜 프롤레타리아다. 빈곤한 이미지는 업로드되고 다운로드되고 공유되고 재포맷되고 재편집된다. 그것은 화질을 접근성으로, 전시 가치를 제의 가치로, 영화를 클립으로, 관조를 정신분산으로 변환한다.” 41p.

 

전투적 영화, 실험영화 및 고전 영화와 비디오아트 작품의 희귀본들이 빈곤한 이미지로 재출현한다는 점은 또 다른 층위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들의 상황은 이미지 자체의 내용이나 외양을 뛰어넘어 이 이미지가 주변화 되는 조건들, 즉 온라인에서 빈곤한 이미지로 유통되게 만드는 사회적 힘의 성좌를 폭로한다.” 49p.

 

그러나 이렇게 발생한 기회들이 진보적인 목적에만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혐오 발언, 스팸 및 잡다한 쓰레기 역시 디지털 접속을 타고 퍼져 나간다. 또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진행 중인 원래의 축적 및 사유화의 거대한 (그리고 어느 정도는 성공적인) 시도들에 오랫동안 종속된 지대, 가장 경쟁적인 시장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따라서 빈곤한 이미지가 유통되는 네트워크는 연약한 공통의 관심사를 위한 플랫폼이자 상업적이고 국가적인 의제들의 격전지를 구성한다.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재료가 있는가 하면, 어마어마한 양의 포르노와 편집증 또한 공존한다.” 53p.

 

빈곤한 이미지는 더 이상 진짜에 대한, 진짜 원본에 대한 것이 아니다. 대신 이미지 자체의 실제적인 존재 조건들, 즉 군집형(swarm) 유통, 디지털 분산, 균열되고 유동적인 시간성들에 대한 것이다. 이는 순응주의와 착취에 대한 만큼이나, 반항과 전용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59-60pp.

 

빈곤한 이미지를 변호하며에서 제기되는 빈곤한 이미지들에 대한 태도는 최종적으로 양가적이지만, 열화된 이미지들이 반항과 전용에 대한 것이라 언급하는 부분은 보드리야르의 '과잉순응'과 닮아있다. 기호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전략은 기호를 내파시키는 것이고 이는 기호의 속에서 그 작용을 가속화/과장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 그런 맥락에서 슈타이얼은 적극적으로, 열화된 이미지를 통해 작업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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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당신이나 나 같은 사물

 

보위의 영웅은 모범적이고 획기적인 공적을 거둔 과장된 인간은커녕 우상조차도 아니다. 그는 탈인간적 미를 가치로 삼아 빛나는 상품이다. 그는 하나의 이미지이며, 그 이미지를 넘어서지 않는다.” 65p.

 

“(...) 주체가 되기 위한 투쟁이 자가당착의 수렁으로 빠지면서 또 다른 가능성이 대두한다. 반대로 객체와 나란히 선다면 어떨까? 객체를 그대로 인정한다면? 사물이 되지 못할이유도 없지 않은가? 주제가 없는 객체는 어떠한가? 여러 사물 가운데 하나가 된다면?” 67p.

-> 주체, 즉 전일적인 시점을 갖춘 단일한 시선을 갖기 위해 분투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다시점적이고, 자유낙하하는 기초 없음의 상태-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만 한다는 사실이야 말로 진리 아닐까? 따라서 외려 이미 항상적인 노출과 박제로 객체화된 인간의 조건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 통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보통신혁명-인터넷-세계화의 제문제를 사고하지 않으려는, 혹은 여전히 인터넷 바깥에 실재가 있다고 주장하는 지루하고 보수적인 모더니스트들은 저리 가시죠?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이미지는 현실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 세계의 파편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물이다. 당신이나 나 같은 사물이다. (...)그러나 주체성이 더 이상 해방을 위한 특권적인 장소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저 이 사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 것이다.” 68p.

-> 여기서 슈타이얼은 이렇게 말한다: ‘이미지는 이미 가상이 아니라 실체이다. 위상적 수준에서 그것은 당신이나 나 같은 대상인 것이다‘. 이는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제기된 보드리야르적 맥락의 연장에서 독해 할 수 있다.

 

사물 되기의 호소력이 증가한다고 해서 꼭 무한한 긍정성(positivity)의 시대에 도달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한 예언들은-우리가 그것을 믿는다는 가정하에-욕망이 자유로이 넘쳐나고, 부정성(negativity)과 역사가 과거의 것으로 치부되고, 생명의 충동이 온갖 곳에 행복하게 넘실거리는 시대를 찬양한다. 천만에, 사물의 부정성은 역사적 충격의 장소를 표시하는 멍으로 식별될 수 있다.” 71p.

->부정: 반정립: 아도르노에 관한 맥락. “역사의 고통을 자동 기술하는 예술처럼, 오늘날 파편화된 사물과 (이미지화된)객체화된 주체는, 객관적 역사의 지표다. 지금의 이미지를 외부에서 비판하지 말고, 내부에서 비판하라는 것.

 

그렇다면 이미지라 불리는 특정한 사물은 어떠한가. 디지털 이미지가 그 자체의 빛나는 불멸의 복제품이라는 생각은 완벽한 신비화다. 오히려 디지털 이미지조차 역사의 바깥에 있지 않다. 그것은 정치 및 폭력과 충돌하여 멍이 들었다. (...)디지털 이미지의 멍은 자신의 자글자글한 글리치(glitch)와 픽셀화된 아티팩트이고, 리핑과 전송의 흔적들이다. 이미지는 훼손되고, 산산조각나고, 심문과 조사의 대상이 된다.” 72p.

 

사물로서의 이미지에 참여하기란 그것의 잠재적인 동인, 상상 가능한 모든 목적을 위해 동원될 수 있는, 반드시 유익하지만은 않은 동인에 참여하기를 뜻한다. 그 참여는 활발하고 심지어 바이러스성(viral)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온전하거나 영광스럽지 않을 것이다.” 77p.

-> ‘좋았던 어제가 아니라 나쁜 오늘에서 시작하자’. ‘이 폐허를 응시하라’.

 

영웅은 죽었다. 사물이여 영원하라!” 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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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쳐 소개: 2018. 1

미시건에 소재한 건축 및 도시계획 타브만 컬리지와 제휴한 예술-디자인 교육 센터서 진행된, <Bubble Vision: Aesthetics of isolation>라는 렉쳐로, 거품, 버블(bubble: 거품, 환상, 사기, 방위구역)의 계보를 통해 가상현실을 짚어보는 대한 짧은 강의이다. 많은 강의와 (하룬 파로키, 데이비스 조슬릿, 리암 길릭 등과 진행한)대담이 있지만, 이 발표에선 이 강의가 슈타이얼의 관심을 잘 드러내고 있는듯 하여 그 내용을 소개하려 한다.

 

이 강의에서 슈타이얼은 동시대의 문제적 아이콘으로서 버블’, ‘(광학적)구슬을 조명하며, 이 단일한 형상을 통해 가상, 환영, 이동성, 폭락, 기만, 불안정성, 인류세(Anthropocene)등을 유비시킨다. 이 모든 게 동일한 세계의 여러 측면들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버블이란 개념은 부풀어 오르다 터지는, 형체가 흐릿하고 불안정한, 부유하는 세계의 심상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T1Qhy0_PCjs

 

페이스북 VR 관련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s2U9lXEnHns

Intro: “가상현실에 관해 얘기하려 한다. 왜 가상현실이냐 하면, 나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인데, 즉 우리가 말하는 것에 비해 가상현실은 썩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허나 나는 이제 우리가 이 새로운 시각적 패러다임을 생각해볼 때라고 느꼈다.”

 

Body: 201711월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49393407만 원)에 낙찰된 <살바토르 문디>라는 1500년경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업에 등장하는 예수가 들고 있는 구슬 언급.

 

(여기서 슈타이얼은 “1500년 경의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전후 동시대 예술 경매 속에서 팔렸다는 게 흥미롭다. 논쟁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이 지금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날 그것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에 명백히 이를 동시대의 아이템으로 다뤄야 한다고 제안하려 한다.... 가격도 흥미롭지만... 이 모든 것들이 상이한 가상의 버블 시장과 금융 투기에 의해 결여 된 시대를 대표하게 만든다. 허나 이는 또한 동시대의 시각적 기술의 또 다른 측면을 가리키는데, 저 구원자가 손에 들고 있는 크리스탈 구체, 즉 세계를 표상하는 신비한 물건을 봐라. 이는 흥미롭게도 VR고글의 렌즈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가상 현실과 360도 기술이 원형 렌즈, 구체를 통해 기본적으로 정의 되는 것이다라고 한다),

 

실제 세계의 재난 지역을 돌아다니는 페이스북 VR 채팅 시뮬레이션에서 마크주커버크와 레이첼의 가상현실 아바타가 다른 공간으로 접속 할 때 클릭하여 사용하는 순간이동 구슬 언급. 여기서 이 구슬은 캘리포니아에서 푸에르토리코로 이동하게 해주는 아이콘이다. 아바타는 까불면서 푸에르토리코의 허리케인, 홍수 참사 지역을 중개하는데, 조악한 아바타의 비실물감과 긴박한 재난 현장의 모습은 기괴한 심연을 만드는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달에도 순간이동하여 갈 수 있다는 것이지만, 살바토르 문디로 돌아오면, 우리는 또한 우리가 실제로 그 영역을 클릭하는 것을 그려 볼 수 있는데, 그 안에는 이 페이스 북 장면이 있었고, 다시 다른 버블, 즉 다른 구체를 클릭 하면, 그들이 가고 싶었던 곳으로 순간 이동했던 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를 보여주는데, 요컨대 그들이 사용한 배경은 허리케인, 재난, 허리케인 뒤의 푸에르토리코였고, 분명한 건 현재 세계가 기후 변화 시대에, 푸에르토리코의 불안정한 환경적, 경제적 시절에 세계를 구해줄 수 있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많은 구원자(salvator mundi)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건 한 측면이다. 허나 또한 그것은 현실의 주요 특징 중 하나를 보여준다. 360도의 시뮬레이션 비디오는 실로 역설적인 무엇이다. 왜냐하면 360도의 비디오 영상은 단순히 장면의 중심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당신을 중심으로 돌게 되는 것이다. 구체의 우주처럼 말이다. 허나 동시에 당신의 신체는 으레 그 풍경에서 사라진다. 즉 당신의 공은 중심에 놓여있으나, 당신은 그곳에 없는 것이다. 운이 좋다면 손이나 머리 정도는 보일지도 모르지만. 허나 당신의 몸통은 그 풍경 속에서 사라지는데, 이때 몸은 존재하지 않는 것, 투명한 것이 된다. 우리는 단지 도처에 편재하는 것으로 터져 나가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내가 말했듯 구체, 원형, 둥근 렌즈들의 모양을 띤 이러한 종류의 시각을, 누군가는 버블 비젼이라 부를 수도 있으리라).

 

제프 쿤스가 모나리자를 차용하고 화면 하단 중앙에 설치함으로써 관객의 모습이 그 안에 비치도록 한 구슬 언급. 이때 관객은 작품과 함께 구슬에 비추어 셀카selfie를 찍을 수 있으며, 이는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듯 동시대 예술이 현존에 천착하는 상태를 암시한다.

 

개인화된 알고리즘이 특정 정보만 편식하게 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필터 버블'에서의 구슬, 부동산 금융과 아트 마켓에 영향을 미친, 끝내 터지고 폭락하는 버블 경제에서의 구슬 언급.

 

"이제 최근 수십년간 부서졌던 버블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속되며 다중의 작은 버블로 터져 나가게 된 것 같다"

 

지구학자들이 채취한 아이스 버블은 좀 다른 버블을 품고 있는데, 여기서 버블은 과거의 대기 상태에 대한 단서를 주며, 이를 인류가 산업을 통해 배출해 온 현재의 이산화탄소 농도와 비교해볼 수 있다”(이때 버블은 현재의 버블이 전혀 다른 맥락에 놓여있음을 증거하는 지표가 된다).

 

버블은 네덜란드의 황금시대 회화에서도 널리 통용된 수사학이었다. 이는 무의미함, 불안정성을 암시하는 '바니타스' 정물 회화에서 종종 그려졌다. 당시는 식민주의와 국제 무역의 초창기였고, 부의 축적에 따라 예술 시장이 팽창한 시기 였으며, 이때 바니타스 회화는 당시 부상하던 상인 계급을 끌어들였다.”

 

"인간은 거품 속에서 전체 우주를 구성한다."

 

이어 그녀는 해리포터에서 등장하는 구슬의 마법적 맥락, 사우디 아라비아의 반 극단주의 센터에서 트럼프와 이집트, 사우디 정상이 기도를 하기 위해 손을 모은 구슬의 정치적 맥락(미래의 테러 활동을 예측하고 제압하고자하는), 반지의 제왕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팔란티어라는 구슬(이는 정밀한 데이터 마이닝을 통해 금융 및 데이터 분석을 주로 시행하는 벤처 기업의 기술 이름이기도 하다. 가디언은 이 팔란티어라는 기술이 초 혹은 년 단위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미리 알 수 있게 해줄 것이라 소개했다.) 등을 언급하고, 오늘날의 크리스탈 볼은 데이터 기반의 예측에 기반 한다고 말한다. 이는 곧 리스크를 예방하는 것이다.

 

고스트 인더 쉘(공각기동대)에서 사이보그화된 신체를 가진 주인공을 언급.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서 다시 등장하는 구슬의 은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자는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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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작업을 살펴보자.

Works.

 

Lovely Andrea (2007)-

https://ubuvideo.memoryoftheworld.org/Steyerl-Hito_Lovely-Andrea.iphone.m4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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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Alert (2007)-

https://vimeo.com/68195540

 

Hito SteyerlDocumenta 12Red Alert (2007) Lovely Andrea (2007) 두 편의 영화에 대한 인터뷰:

히토 슈타이얼은 이미지 이동의 복잡성, 이미지들의 의미가 변해가는 방식을 조사한다. 에세이 영화인 '사랑스러운 안드레아 (Lovely Andrea)'(2007)에서 히토 슈타이얼은 20년 전 자신이 도쿄에서 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로 삼았던 오래전의 결박사진을 찾고 있다. 이 영화는 결박; 의존성 - 독립성; 자유 을 연결한다. 슈타이얼의 결박은 미디어상 사진 기록과 이미지가 어떻게 현실을 변형시키는지에 대한 보편적인 은유이다. 이미지는 진실을 수립하는 데 어떻게 기여하며, 권력 관계에서의 그들 역할은 무엇인가?

 

슈타이얼은 "Red Alert"(2007)"결박 영화 Lovely Andrea의 필연적인 결과"로 발전 시켰다. 그녀는 비 시간 기반 양식으로 다른 형식의 조합을 만들었다. ‘적색 경보는 또한 알렉산더로드 첸코 (Alexander Rodchenko)1921 년 삼부작 '부드러운 패널 (Smooth Panels)'를 오마주한다. 로드 첸코 (Rodchenko)는 세 가지 기본 색을 흑백으로 그렸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그림의 끝이라고 믿는다며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슈타이얼은 비디오 역시 마찬가지로 "외부 한계에 도달했다"고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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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IKE(2010). 삼성 모니터를 부수고, 균열 속에 RGB 값이 난반사되는 모습이 촬영된 간결한 퍼포먼스. 이 작업은 ‘TV를 깨고 밖으로 나가자는 상황주의의 제언, 혹은 금간 화면에서 드러나는- 시각적 가상의 물리적 조건’, ‘가상과 실재의 균열지점등에 관해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혹은 스크린의 물질성을 드러냄으로써 스크린이 가상이 아니라 대상, 즉 오브제가 되는 지점을 보여주는 것. 요컨대 여기서 그녀의 질문은 간단하다: “실재와 가상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스크린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가? 스크린은 실재인가? 데이터화된 정보가 전제하는 물리적 조건은 무엇인가?”

작업 자체는 60-70년대 전위 예술가들이 할 법할 만큼 단순하지만, 그녀의 저술과 다른 여러 작업들로 인해 너그럽게 읽힌다.

https://www.youtube.com/watch?v=WpGobhaYT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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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rds, (2012)

->퍼포먼스 영상이다. 감시카메라 각도의 촬영이 인상적이다. 전쟁과 가장 동떨어져 보이는 미술관이 전쟁에 기대고 있는 조건에 대해 언급한다. 미술관은 어떻게 이미 감시와 통제의 구역이었는지에 관해 질문. 미국 시카고 현대 미술관에서 촬영된 이 작품은 군인과 경찰 경력이 있는 론 힉스라는 미술관 보안요원과의 인터뷰에서 시작된다. 그는 열띤 어조로 전쟁 전술을 설명하며 미술관 안에서 총을 겨누는 자세를 취하는 등 전쟁의 제스쳐를 극적으로 재상연한다. 미술관 내부에 편재한 감시의 시선, 사회에 내재한 통제, 전쟁. 전쟁과 감시는 모든 미술관이 그러하듯 보안과 통제에 대한 우리의 강박적 제도 안에 편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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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Not Be Seen: A Fucking Didactic Educational .MOV File (2013):

그녀의 영화 '보이지 않는 법 : 빌어먹을 교훈적이며 교육적인. MOV* 파일'(2013)'실제 세계'의 장면과 디지털 오락 사이에서 쾌활하게 튀어 오르는 교육용 비디오의 형식을 취한다. 몬티 파이썬 (Monty Python)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비평과 유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보이지 않는' 방식이 억압적인 동시에 해방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MOV: 애플사에서 만든 동영상 형식으로 ‘Quick Time Movie’라고도 한다. Windows의 기본 동영상 포맷인 avi와 같이 여러 가지 동영상 압축 코덱(Codec)을 담을 수 있는 컨테이너 포맷이다. 애플사는 마이크로소프트사보다 GUI(Graphic User Inter­face)개발이 앞서 있어 동영상에 대한 기술개발이 먼저 이루어져 용량대비 화질이 우수해 상용 편집용 소스는 대부분 MOV포맷으로 출시된다. MOV는 대부분의 코덱에서 합성에 필요한 알파채널을 담을 수 있고 Animation코덱과 같은 비손실 압축코덱도 있어 프로덕션에서 영상편집 및 합성 간 소스포맷으로도 주로 사용한다. (만화애니메이션사전, 2008. 12. 30, 한국만화영상진흥원)

https://www.youtube.com/watch?v=LE3RlrVEyuo

1.무언가를 카메라에 보이지 않게 하는 방법: 가리기, 제거하기, 스크린에서 퇴장하기, 사라지기, 이것은 분해능 타켓*인데, 이미지의 가시도를 측정할 때 쓰인다.

 

*(resolution target: 이미지 또는 사진의 분해능 평가에 쓰이는 타깃으로, 명암 교대로 규칙적으로 배열된 막대로 구성된 것: 분해능(Resolution)_인접한 두물체를 얼마나 잘 구분 할 수 있는 능력. 계측기나 기계적으로 본다면 얼마나 작은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기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렌즈와 같은 광학기기에서는 해상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의 분해능 타겟과 사막지대 군사기지의 조감도가 오버랩 된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글에서 빈곤한 이미지와 해상도 높은 이미지를 대비했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동시대적 이미지의 위계를 설정하는 조건으로서 분해능 타겟과- 공중전을 가능케 하고 원근법적 주체의 시점을 객체화시킨 항공이미지, 군사기지의 일치에 대한 은유적 표현인 것.

 

그것은 한 장의 사진으로서의 세계의 해상도를 측정한다. 해상도는 가시성을 결정한다. 해상도에 의해 포획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간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전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자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어 계속 나오는 것은 1950, 60년대 미 공군이 항공사진과 항공비디오를 보정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사막에 설치한 회색판과 분해능 타겟의 이미지, 사진이 됨으로써 보이지 않게 되는 방법, 2000년대 도입된 새로운, 픽셀 모양에 기반한 분해능 타겟.- 1996년 위성사진 해상도는 픽셀당 현실의 12미터가 표시되었지만, 오늘날엔 엄청난 해상도로 재현된다. 이제 우리는 보이지 않기 위해서 1픽셀보다 작거나 같아야한다. )

 

영상: 사라짐으로써 보이지 않게 되는 13개의 방법이 있다. 1.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커뮤니티에서 살기 2. 투명망토 입기 3. 슈퍼히어로가 되기 4. 여성이 되고 50살이 넘기...

 

->결국 여기서 슈타이얼이 논하는 것은 타자, 광학기술, 사유화된 주거구역, 전쟁, 재현, 가상을 둘러싼 시선의 정치학. 응시에 따라 나오는 권력의 문제를 논하며 본다는 것의 조건, 본다는 것의 긍정성과 부정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

 

테이트에서 관련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Being Invisible Can Be Deadly' | TateShots

https://www.youtube.com/watch?v=kKAKgrZZ_ww

 

 

간략한 인터뷰 내용: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항상 특정한 포획의 형식에 보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불행한 일인데,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 과도한 양의 항상적인 감시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반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 나는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으로 매우 기술적인 훈련을 받았으며, 다큐멘터리 영화를 공부했다. 어떻게 해야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출발점 혹은 맨 처음의 질문은 단순히 내가 사라지거나 감시로부터 보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그게 출발점이었다. 처음의 구상은 몬티 파이썬 (몬티 파이튼은 영향력 있는 몬티 파이튼의 비행 서커스를 창출한 영국의 희극 그룹이다. 이 서커스는 1969105일에 BBC를 통해 중계된 영국 텔레비전 희극 스케치 쇼였다. 45개의 에피소드가 4개의 시리즈를 걸쳐 만들어졌다. 파이튼 현상은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더 발전하여 쇼, 영화, 음반, 책 등으로까지 영향력이 커져나갔다. 이 그룹이 희극에 끼친 영향은 비틀즈가 음악에 미친 영향과 비유되고 있다._wikipedia)의 비행 서커스 스케치에서 나왔는데, 그들은 이것을 1970년에 만들었다. 이것은 보이지 않기 위한 방법이라 불리어진다.”

 

영상: 이 장면엔 40명의 사람이 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 영상에서 우리는 여러분께 보이지 않는 방법을 보여줄 것이다.

 

이건 교육용 영상이고, 내 비디오는 사실 오마주다. 그건 다섯 유형의 행동들로 보이지 않는 방법에 대한 매뉴얼이고, 챕터 다섯개로 되어있는데, 이는 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일련의 다른 설명을 담고 있다. 비록 다소 매우 실천적이지만 그들은 완전히 실천적이지는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그들이 단순하게 모든 종류의 상황에서 작동하는 걸 알 수 있다.”

 

영상: 사라짐으로써 보이지 않게 되는 13개의 방법이 있다. 1.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커뮤니티에서 살기 2. 투명망토 입기 3. 슈퍼히어로가 되기 4. 여성이 되고 50살이 넘기

 

보통 내가 동시대의 현실을 볼 때, 믿기 어려운데, 왜냐하면 너무나도 환상적(말하자면 격렬하게 몽상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상력이 없다. 이들을 떠올려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이 픽션을 알맞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마 당신은 지금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이건 또 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청중의 입장에 세우려 해보며, 그들이 그냥 놀고 쉴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며, 또한 앉는 것이 아니라 누울 수 있게 하며, 자거나 그 어두운 공간에서 그들이 원하는 걸 하는 거다. 나는 사람들을 연루시킬 수 있는 레토릭을 만들려고 한다. 비록 그들은 내말을 안 들으려 하겠지만. 나는 명백히 소통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반면, 당신이 내게 더 중요한 것은 충실한 태도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작업에서의 주창자, 내용, 생각에 대해서 말이다. 그게 우선순위다. 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최근의 소비자 기술에 맞추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최근의 소비자 기술은 어떤 종류의 기술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을 표현하거나, 욕망과 갈등의 수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따라간다는 것은 결합을, 즉 그들을 둘러싼 복잡한 결합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미래엔 앞으로 이 시점까지 내가 누구였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역사는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출생의 개념에 대한 불명료한 레퍼런스인데, 그녀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탄생시키는 능력, 무언가 새로운 것은 창조하는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그건 당신 스스로 당신의 과거에 의해 정의되지 않기 위해, 미래를 정의하고 창조하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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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the Museum a Battlefield? (2013)

https://vimeo.com/76011774

1. 독일계 은행을 촬영하는 장면과 전장을 찍은 푸티지를 대비시켰다. 마치 은행의 배면이 직접 촬영된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유발하는 듯하다.

2.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독일의 개선문)에서 촬영한 모습이 바로 전장의 이미지와 오버랩된다. 화해의 상징으로 된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찍은 이미지는 독일제 무기에 의해 끔찍하게 살해당한 쿠르드족 여전사의 흔적을 비춘다.

3. 군수 산업회사 록히드 마틴에서 생산한 코브라 헬기에 붙는 미사일과 독일계 금융기업 DZ 뱅크 사옥 구글어스 사진을 유비시킨다. 건축물의 구조 자체에 숨어있는 공격성에 주목하는데, 결국 여기서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지구적 연결성에 관한 얘기이다. 전쟁을 지원하는 군수 회사, 그 군수 회사를 지원하는 금융은행, 국가, 자본은 연결되어있다는 것. 따라서 미술관은 전쟁터라는 것이다. “총알은 일직선상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원을 따라 순환하며 날아간다. 전장에서 미술관으로, 미술관에서 다시 전장으로,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을 죽인다.”

 

발췌 번역본:

미술관은 전쟁터인가? 보통은, 미술관은 전쟁터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사회적 실재와 격리된 상아탑이다. 그것은 5%를 위한 놀이터다. 만약 예술가가 사회적 실재를 가지고 무엇이든 해보려 한다면, 분명히 명백한 것은 미술관 안에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격리되고 고립된 영역이 전쟁터가 될 수 있을까? 혹은 전쟁을 위한 것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어떤 때 미술관은 당연하게도 전쟁터가 된다. 그들은 역사 내내 그래왔다. 그들은 고문실이었고, 전쟁 범죄, 내전의 장소였고, 또한 혁명의 장소였다. 에이젠슈타인의 <10>중 한 시퀀스를 보자. 볼셰비키가 겨울 궁전을 공격했을 때, 그들이 실제로 공격한 것은 주로 (~)미술관과 같은 곳 이었다. 우리는 군중이 어떻게 미술관을 점령하고, 정부를 찬탈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아마 당신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은 2012년이고, 상황이 많이 변했다라고 말이다. 나는 그에 동의한다. 그러나 또한 그다지 많이 변하지는 않았기에,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봉건적인 예술 컬렉션은 부유한 후원자, 귀족에 의해 이뤄졌고, 이들은 그들의 부를 전시에 투자했다. 오늘날 예술의 공간들은 전형적인 메트로폴리스처럼 전세계적으로 통합되는 국가들 속에서, 봉건적 체제를 향해 뒤로 이동하고 있다. 다시, 유연하게 바뀌면서, 이 공간들은 부와 거품 같은 돈 곁에 서성인다. 이건 내가 온라인에서 발견한 렌더링(2차 창작물?)인데, (...) 렘쿨하스의 OMA(네덜란드에 소재한 건축 회사)스튜디오에 의해 착안되었으며, 이에 따라 우리는 이전의 겨울 궁전을 구겐하임의 또 다른 프랜차이즈로 발전시켰다. 다시 앞으로 가자면, 내부의 전투에 관한 이야기는 혁명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모든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서곡인가?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다른 시선에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전쟁터가 되거나 그렇지 않은 미술관의 시선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쟁터의 시선에서 보는 것이라면, 현대 미술 공간- 미술관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그리고 거기서 그것은 어떻게 보일까? 하나의 특정한 예를 들어보자. 이곳은 wan의 사우스 리젼(카메룬 혹은 브라질의)의 어떤 산에서의 전장이다.

 

자막:

1. “민병대원 중 한명이 등장하여 이 쪽에서 나온 군인과 민병대원들이 공격했다고 말했다.” 2. “그들은 철수했고, 그들은 이미 동그라미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둘러싼 원을 조금 넓혔다...”

3. “그뒤 10대에서 15대 사이의 코브라 헬기가 나와 폭격을 시작했다.”

(...)

->자신의 친구가 PKK* 여성 지부 단원으로서 1998년 처형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임을 언급.

*PKK: “쿠르디스탄 노동자당(쿠르드어: Partiya Karkerên Kurdistan, PKK)1970년대에 세워진 무장 단체로,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이 이끌었으며 그가 붙잡힌 1999년까지 유지되었다. 당의 이념은 민족주의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여성주의는 터키 남쪽, 이라크 북서쪽, 시리아 북동쪽, 이란 북서쪽에 걸쳐 있는 쿠르디스탄에 쿠르드족의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 북대서양 조약 기구, 유럽 연합 등의 국제 단체는 PKK를 테러 단체로 간주한다. 1948년 이후 37,000명 이상이 터키 정부와 쿠르디스탄 노동자당 간의 분쟁 때문에 죽었다.“

 

자막: 친구가 어떻게 죽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친구와 함께 38명의 사람이 둘러 쌓여있었고, 그들을 다시 볼 수 없었다.

->총알의 순환-> 총알이 휘는 원티드의 영화장면에 관해 이게 가능한지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 “허나 이 총알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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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quidity Inc. (2014)

https://www.icaboston.org/art/hito-steyerl/liquidity-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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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the Internet úäCì@?ù.1HcpiÙîfê¿Dead, (2014)

https://vimeo.com/162183292

편재하는 새로운 시지각적 장을 표현한 작업이다. 제목에서부터, 내용, 형식에까지 깨져있다. “빈곤한 이미지를 변호하며에서 논하는 열화된, 깨진, 조악한 이미지들의 픽셀들과 RGB조합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창을 여러 개 띄운 것은 산만한 상태를 얘기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중 우키요에 부분은 프린트해서 얼마 전 옥션에서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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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ory of the Sun (2015)

https://vimeo.com/182657047

https://www.youtube.com/watch?v=FyqqiELBDZM

https://www.youtube.com/watch?v=3zBGoSqq-gA

작품의 중심에는 영화와 컴퓨터게임에서 자주 활용되는 모션캡처 기술이 자리잡고 있다. 슈타이얼은 모션캡처 기술을 이용해 작은 일 하나까지도 모두 기록물로 남기는 현대 사회의 현상을 종합적으로 은유했다. 뒤이은 장면에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담당했던 기록물 전달자 역할을 아바타 형태의 이미지들에게 떠넘긴다. 슈타이얼은 그 책임을 미술관 안에서, 그것도 유럽 내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된 예술마당인 비엔날레라는 공간 속에서 분명하게 인식하는 방식을 택했다.

 

->직접 전체를 관람하지 못했지만, 작업 자체가 세련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실제 촬영 영상에 게임 설정화면을 덧입힌 형식이 두드러진다. 김희천도 사용하는 방식이라 익숙하다. 은유로 가득 찬 이미지 파편들이 등장한다. 예컨대 모니터 조각을 연상시키는 유리조각들, 광학의 시초를 연상시키는 전구 등을 보라.

1.‘스탈린의 두상을 쏴대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가상적 경험과 게임이 이념을 이미지화 하고 압도했음을 말하는 듯하다.

2.캐릭터들이 레닌의 초상을 뒤로 한 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춤추는 것은 근대 미학의 쟁점이자 전장이었던 미추의 변증법을 초과한 큐트의 등장을 논하는 듯하다. 여기서 그녀는 가상감과 포스트모던, 가와이의 유비적 연결을 제안한다.

3. ‘이미지는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제 2의 자연이다.’라는 자신의 잠언을 실현시킨 듯하다. 데이터 서버를 관장하는 저장소를 배경으로 캐릭터들은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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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인터뷰

The EYE Art & Film Prize 2015

https://www.youtube.com/watch?v=tyXUBGsldHs

The EYE Art & Film Prize was created by Dutch Film Museum EYE and the Paddy and Joan Leigh Fermor Arts Fund in 2015.

The EYE Art & Film Prize is awarded to an artist/filmmaker whose work unites film and art and demonstrates quality of thought, imagination and artistic excellence.

The aim of the prize is to highlight an artist/filmmaker whose work makes an important contribution to exploring the intricate relationship between contemporary art and film.

The first winner, German artist Hito Steyerl, was announced at the annual EYE Gala i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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