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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ue

안대웅 큐레이터 인터뷰

by 정강산 2018. 7. 6.

(본 인터뷰는 건포도넷에 게시할 목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안대웅 인터뷰

 

진행일시: 2017.4.11.

인터뷰어: 안예슬, 안준형, 정강산

인터뷰이: 안대웅

 

안대웅은 퍼블릭 아트의 기자로서 활동하다 <유능사>의 큐레이터로서 <청춘과 잉여>(2014)전을 조직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안산의 예술공간 ‘LITMUS’에서 독립적으로 전시를 기획했으며 <참여적 박물관>(2015), <피드백 노이즈 바이러즈>(2016), <Bad New Days>(출간예정), <Artificial Hell>(출간예정)을 공동번역 하는 등 전시 외적 작업들을 함께 진행해 왔다오늘날의 예술에서 그가 관심을 가져온 지점은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 조응하는 예술과 공공성의 관계이다. 본 인터뷰는 이와 관련된 세부적인 쟁점을 되짚으며, ‘사회참여예술과 그가 번역한 저서들, 사회적 실천에 관한 질문들을 소개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인터뷰는 서울 모처의 카페에서 4시간가량 진행되었다.



 

정강산 : 일단 첫 번째 질문으로, 안대웅씨가 공공미술과 사회참여예술에 깊이 관심을 기울여 오셨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려진 바가 있는 듯해서, 그것은 차후의 질문에 넣기로 했습니다. 그 외에 좀 더 관심을 두고 계시는 여러 주제들에 대해 말씀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안대웅 : 퍼블릭아트라는 잡지에서 일을 한 적이 있고, 거기서 종종 공공미술을 다루기도 하지만, 저로선 공공미술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퍼블릭(the public)에 관심이 있다고 말해야겠습니다. 민중(people)이라고 부르든 대중(mass)이든 공동체(community)이든 시청자이든 심지어 소비자이든 어쨌든 문화나 미술의 관객 자리에 위치한 사람들 말이죠. 그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더 생산적이고 진보적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이런 것이 제가 중요하게 느끼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 헌데 공공미술이라고 이야기했을 때는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유행처럼 저 멀리 지나가버린 공공미술의 화두가 분명히 중요하고 다시 음미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로 포괄적으로 이해되는 형식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참여미술도 마찬가지이고요. 사회참여예술이라고 선규정하고 질문하셨습니다만, 그에 관해 어떤 작업을 떠올리시나요? 보통은 지식인으로서의 작가가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의제와 명분을 가지고 비판적 시각을 작업에 담는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헌데 회화나 조각은 전혀 사회참여적이지 않을까요? 고전적 매체는 전혀 시대적 의제를 담고 있지 않을까요? 그럼 정확히 어떤 포인트에서 사회참여란 말을 아트 앞에 붙이는 걸까요? 제가 곤란해 하는 지점은 이런 용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특정한 경로로 수입 번역된 미술용어가 파편적으로 제각각 쓰이다 보니 민중미술도 사회참여적미술이고 커뮤니티아트도 사회참여적미술이고 파블로 엘게라의 socially engaged art도 사회참여미술이고 클레어 비숍 같은 사람의 participatory art도 사회참여미술이 되는 상황입니다. 말이 사용성이 없어요. 대중성과 역사성을 결여했다는 거겠죠.

 

정강산 : 클레어 비숍이 “The social turn: Collaboration and Its Discontents”에서 이야기하는바 역시 socially engaged artparticipatory art 사이의 구분을 명확하게 제한하지 않는데, 양자 사이의 구분을 첨예하게 설정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거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나름의 구분이 있을 텐데요. 보신 작업 중에 명확하게 양 개념의 정의를 규정한 작업들이 있을까요?

 

안대웅 : 제대로 된 평론가라면 용어를 제창하겠죠. 사실 수입된 용어를 가지고 이게 정확한 의미이다 아니다 하는 것도 현장의 관점에서 보면 식민적인 발상이라고 봅니다. 물론 참고는 할 수 있겠지만요.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용어의 긴급성이 다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그쪽의 이야기를 가지고 ‘socially engaged art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것 자체가 사실 불필요하고 소모적이지 않을까요. 미술사 연구로선 또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현장 비평의 관점에선 그렇다고 봅니다. 우리가 실제로 관여되어있는 작업에 대해 적합한 새로운 용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작업이 한국에서는 미술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미진하죠. 그런 작업을 누가 해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평론가에게만 기대기보다는 작가들도 대담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비숍의 ‘participatory art’를 볼까요? 현장에서 그 이야길 하는 작가가 있나요? 몇몇 미술사 논문에서만 짧게 보이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일각에선 영미권에서 participatory art가 중요하고 주목도가 있다고 하니까 우리도 빨리 배워야한다는 식이에요. 그렇게 가지고 온 개념이 우리에게 어떤 쓸모가 있을까요? 무엇보다 그들의 논의는 한국의 미술씬의 작업 맥락에서 동떨어져있죠. 그래서 비평과 이론의 파급력도 미미해요. 심지어 이런 타율적인 상황 모두가 제 몫을 찾아 간다는 ‘participatory’의 의미와 거리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쪽에서 긴급한 것도 한국에서는 아닐 수도 있고, 급진적인 것이 반동적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될 수 도 있고. 따라서 상황에 맞추어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거겠죠. 외국의 비평로부터 방법론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어도, 전적으로 기대서 한국 미술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 것은 애초에 성립이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안예슬 : 사회참여미술에 냉소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냉소의 대상이 되는 사회참여로 염두에 둔 것이 ‘socially engaged art’인가요?

 

안대웅 : 제가 생각하기로 socially engaged artparticipatory art라고 명명되는 작업들이 나오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특정 시점에서 예술이 과연 실제로 진짜로 무엇을 했나하는 반성이 생겼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컨대 이론이든, 작업이든 급진적 아이디어만 띠면 세상이 바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겁니다. 더 복잡해지고, 텍스트 중심이 되기만 하고. 아무리 예술에 정치성, 비판성, 사회성을 가져다 붙여도 실제로 변하는 건 없었던 거죠. 그래서 거기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냉소를 하는 사회참여가 있다면, 진정한 효과를 결여한 탁상공론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한국에선 어떨까요? 성남프로젝트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성남프로젝트는 그 당시에 나오기 힘들었던 정말 지적이고 훌륭한 팀이긴 합니다만, 사회에 대해 예술가가 적극적으로 발언한다는 피상적인 인식을 가져갔던 거 같아요. 방법적으론 변화가 있었지만 사실 현실과발언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죠. 예를 들면 그들은 지역의 특성을 예술가의 사유 재료로 삼고, 그 결과물을 예술 작업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면서 지역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거죠. 헌데 ‘engaged’는 연루된다는 건데요. 이런 작업들이 무언가 연루시키고 있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럴까요? 그 작업을 누가 와서 봤을까요? 어떤 사회적 효과가 생겼을까요? 이런 일방향적인 작업도 우리는 사회참여미술이라고 이따금씩 부르지요. 반면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관심이 있는 작업은 예술로 합의되기 어렵거나 되지 않은 어떤 활동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왜 그게 중요하냐하면, 전문가 집단이 예술이라고 명명한 것은 거의 대다수의 케이스에서 관객을 예술의 전문 감상자로 전제해버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회 속 인구를 100이라고 치면, 5정도의 제한된 인구가 관객으로 준비되어 있고 그 안에서도 특정 경향과 수준에 따라서 1이나 소수점만이 관객으로 남기도 하죠. 그런 경우엔 사회참여란 말을 온당하게 점유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상당한 엘리트주의란 것엔 적어도 이견이 없겠죠. 성남프로젝트의 예술을 고도로 훈련된 미술관객이 아닌 사람에게 보여준다면 대번에 이게 미술이야? 라고 할 게 뻔한 것처럼요. 그런 점에서 이 팀이 구상한 사회에 실제 사회구성원의 역능은 적극적으로 고려되고 포함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것과 다른 종류의 작업의 형태가 있는데, 작가가 스스로 의미 부여를 굳이 하지 않는 방식이랄까요. 예를 들어 2000년대 중반 안산의 리트머스란 공간을 매개로 펼쳐진 사건, <욜라뽕따이>를 보면 그렇죠. <욜라뽕따이>는 뭔가 뚜렷한 주의주장 없이 사실 생각도 그다지 깊이 하지 않고 판만 크게 벌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인종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춤추고 음식을 나눠 먹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많아요.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미지에선 모두 행복해보입니다. 심각한 사회문제 제기도 없고, 역사적 성찰이나 그런 것도 없죠. 완결된 예술 형식도 갖추지 않아서 이게 도대체 작업인지, 그냥 한 번 해본 이벤트인지, 작업이라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작업인지, 그렇다면 저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은 예술 제도가 가진 기존의 범주에선 잘 해결이 안 되지요. 예술인지도 모르고 참여할지도 모르겠고요. 혹자는 이걸 두고 예술을 위해 영문도 모르는 관객을 동원했다라고 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욜라뽕따이>의 케이스에서 떠오르는 첨예한 질문은, 예술 제도의 기준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냥 의미가 없는 것인가, 혹은 다른 방식으로 의미화가 가능한가 하는 문제이죠.

 

정강산 : ‘참여라는 화두를 작가들이 다루는 데에서 대략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의미나 효과들은 작업 자체에서 상정해놓는 무기력한 흐름과 한편으로는 관객을 착취하는, 동원을 일삼는 작업경향들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안대웅 : 관객 착취, 동원, 이런 것은 모든 작업이 사실 하고 있는 겁니다. 페인팅 전시 오프닝에 친구를 최대한 많이 초청해서 공간을 채우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일종의 관객 동원이죠. 혹은 전시라는 형식 자체가 관객을 동원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어떤 동원이냐 하는 문제일 텐데.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작업의 형식 자체가 관객을 포함하는지의 문제이에요. 즉 작업이라고 하는 영역을 어디까지 묶을 수 있느냐는 거죠. 보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관객은 애초에 자율적인 능력을 가진 미디엄일 수 있는 거지요. 한편 제가 참여라는 말을 쓰는 의미를 이야기하자면, 무엇보다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던지는 엄청난 명분들, 화두들을 따라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죠. 대신에 관객들 한명 한명이 가지는 서로 다른 자율성들, 어떤 사안에 대해 자기 결정을 통해 제 지분을 온당하게 가져가려는 시도를 참여라고 봅니다. 스스로의 삶을 다른 사람이 구제해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건 자칫 잘못 들으면 신자유주의적 발상, 모든 것들이 다 네 탓이라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허나 자율성 안에서 개인이 물화되는 지점과 동시에 스스로를 해방하는 차원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봐요. 예술은 그것의 촉매가 될 수 있고요. 그걸 위해서 저는 관객이 작업 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은 보다 적극적으로 관객이 자신의 일부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자율성을 낙관적으로 보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걸 믿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지요. 그걸 위해서 예술은 자신이 조직된 판을 스스로 다시 재고해 봐야한다는 겁니다.

 

정강산 : 번역 하고 계신 󰡔Bad New Days󰡕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여기서 할 포스터는 지난 2-30년 간의 변화들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 핵심 질문은 예술적 가상을 포기하고 실재를 열망하게 된 이후에 예술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대목이겠죠. 그 지점에서 이미 동시대 예술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관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의 예술적 가상이라고 하는 것은 모더니즘적인 의미에서의 미적 가상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할 포스터의 작업은 한편으로는 socially engaged art처럼, 사회적 실재에 직접적으로 가닿을 수 있다는 전제를 지닌 미학적 흐름들에 대한 비판을 포함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선생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안대웅 : 자크 랑시에르와 부리오를 상당히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거 같긴 합니다만, 그 책에서 socially engaged art에 대해서 크게 비판한 것 같지는 않아요. “Post Critical?”이란 장에서 지나가면서 그런 스타일의 작업을 약간 언급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공론장을 만들려고 애쓰는 예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의 예로 등장하는데 가깝다는 인상입니다. 오히려 󰡔실재의 귀환󰡕에서는 뉴장르퍼블릭아트에 해당되는 듯한 비판이 있긴 하죠. “민족지학자로서의 예술가를 보면, 일군의 예술가들이 무얼 하는지 알겠고 올바른 부분도 있음을 인정하지만 타자를 진리의 장소로 만드는 관점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죠. 정확한 워딩은 생각이 안 나는데, ‘타자를 타자로서 간주하면 타자는 타자의 위치에서 움직일 수 없다는 거였죠. 어떤 작가들은 특히나 타자를 타자의 위치에서 움직일 수 없게 만듭니다. 작가는 자신을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좀 위험한 구석이 있어요. 예를 들면, 이건 전해들은 이야기인데요. 세월호 희생자 중에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 있었어요. 리트머스의 송지은 대표가 <응옥의 패턴>이란 작업에서 이들을 만난 적이 있어요. 베트남인인 유가족 분들께서 딸이 타지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왔어요. 그때 한국에서는 그분들에게 사실 관심이 크게 없었죠. 이상한 곳에 방치되어 있다가 미디어 오면 사진 찍고, 정치적으로 이용만 되다가 지쳐서 베트남으로 돌아갔어요. 송지은씨가 리서치를 위해 베트남으로 가서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는데, 오히려 그분들은 딸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심지어 딸이 죽은 다음 본인이 더 건강해졌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당연히 그 베트남 유가족의 삶은 제 나름대로 이어지는 거예요. 죽음에 대한 관념도 다르고요. 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겪었던 어려움이나 부조리함도 생각해야 하지만, 그 사람의 삶을 피해자로 낙인찍는 것도 우리가 감히 할 수 없어요.

 

정강산 :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분은 타자를 타자의 위치에 머물게 하는 것은 타자라는 어떤 인식, 개념을 투사하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겠지요.

 

안대웅 : 어떤 권력을 가진 주체가 타자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이상, 그 바라보고 있는 관계 안에서 타자는 타자에서 해방되지 않아요. 때문에 약자를 재현하는 방식 이외로는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본다면 그건 너무 이상해요.

 

안예슬 : 아까 이야기하신 것에 이어 드리는 질문입니다만, 예술의 자율성이 개인을 물화시키는 지점에 관해 말씀하시며 관객 역시 해방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때의 해방이란 관객이 자율성을 획득한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요?

 

안대웅 : 비슷합니다. 비숍 같은 사람은 심지어 위임된 자율성이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죠. 자율성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발현될지 모르는 거예요. 우리가 뭔가 규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될 거라고 생각하는 곳에서도 자율성이 발생합니다. 심지어 권력자가 감시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섣불리 판단할 수 없어요. 모던한 작업들에서 그 용례는 작품의 자율성’, ‘작가의 자율성등이라 쓰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도 자율성이 있을 수 있는 것이죠. 관객 자신의 감각이 미적으로 현전한다는 차원의 자율성이 있을 수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정강산 : 작년 하반기에 진행하셨던 참여적 전회에 대한 질문을 드려보고 싶은데요. 그 당시에 비숍의 사회적 전환을 전면으로 비꼬는 듯한 인상을 받았거든요. 다시 말해 사회적 전환이라는 개념으로 비숍이 비판하고자 했던 작업적 경향들을 그대로 큐레이팅을 하신 것 같기도 한데,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의 큐레이팅 노트를 보면 윤리적 체제와 재현적 체제의 양자로부터 부과된 이중구속의 상황이 참여예술의 핵심이라고 정리하신 부분이 있었어요. 헌데 비숍이 관계미학이나 사회참여예술을 비판했던 지점을 제 식대로 정리하자면, 그런 작업들은 관계를 실체화시킨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완성되는 어떤 관계가 있을 거라 가정하고 있기에, 보이지 않는 적대적 관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비숍은 그 연장에서 관계의 미학이 경험경제와 조응한다는 표현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비판들을 당연히 알고 계셨을 텐데, 큐레이팅 노트에서는 그런 비판에 정면으로 맞붙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혹시 이런 비판에 대해서 생각하신 지점이 있으신지요.

 

안대웅 : 비숍의 주장엔 수긍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한국의 커뮤니티아트를 예로 들어보죠. 아까도 언급했지만 형식적 측면에선 대게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먹고 놀다가 사진 찍고 헤어지는 게 전부입니다. 행복한 상태임을 증명하기 위한 강박 같은 것도 있어 보이고요. 커뮤니티아트에 대한 비판은 보통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말하자면 관객을 향한 진정성을 가지고 작업의 윤리를 따지기 시작하는 거지요. 제 경험상 유독 커뮤니티아트엔 윤리를 평가 기준으로 많이들 세워요. 페인팅이나 여타 다른 작업에 내세우는 기준과 판이하게 다르죠. 아마 한국의 공공미술 비판 담론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왜냐하면, ‘공공’, ‘커뮤니티라는 말을 달았으면 책임을 지라는 거죠. 그래서 작업의 미학적인 측면을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여나 미학적인 측면이 있다면 더욱 난리가 나요. 사람들의 삶을 재료로 겨우 개인적인 예술 작업에 자의적으로 사용, 실험했다는 거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2016년 이후 리트머스에서 일하면서 해당 공간의 아카이브를 접하게 되면서부터 소위 커뮤니티 아트의 계보에 있는 작업들이란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죠. 사회적인 측면만큼 미적인 측면 또한 중요한 것이고, 따라서 이타적인 제스쳐만큼 예술가의 욕심도 포함돼 있는 것이죠. 거짓과 진실이 혼재되어 있기도 하고 시 행정이나 정부 정책에 대한 반영과 위반 등도 있고, 복합적이었어요. 예술 제도가 가진 미적 기준이나 세간의 윤리적 잣대로 가르기엔 작업의 스펙트럼이 포함하고 얽혀있는 요소가 많았던 겁니다. 조금은 예술적이기도 하고 윤리적이기도 하고, 사회적이기도 하고 미적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커뮤니티아트라고 묶여서 이야기 되는 작업에 내려진 많은 평가들이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적인 차원만큼 미적인 차원을 재평가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게 실패한 커뮤니티아트의 오명을 한 꺼풀 벗겨낼 수 있는 단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참여적 전회를 조직할 당시엔 무엇보다 젊은 작가와 함께 그런 부분을 좀 짚고 넘어가잔 생각을 했던 거죠. 경험경제 이야길 하셨는데요. 부리요의 관계미학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산물이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거 같아요. 지적하신 것의 대표적인 예를 한국에서 찾자면 <스크랩> 같은 행사가 떠올라요. 정확한 워딩은 생각 안 나지만 미술 작업을 구매하는 경험을 팝니다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 매끄러운 경험을 위해서 이케아식 쇼핑 컨베이어벨트를 흉내 냈었고요. 뿐만 아니라 어떤 맛집이 뜬다고 하면 우르르 가서 웨이팅 한두 시간 걸려서라도 먹고 오고 그걸 다시 SNS에 올리고. 경험경제라는 건 일상화된 부분인 것 같아요. 굳이 관객참여 전시가 아니더라도 전시는 이미 경험경제 체제 안에 있어요. 미술관에서도 체험 프로그램을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프로모션하고 있고 그게 없으면 관객에 불만신고가 들어오기도 해요. 그러니까 관객, 공중, 일반인 뭐라고 부르던지 그런 사람들이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건 맞아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 같은 것이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관객이 움직일 용의가 있다는 건 큰 변화인 거 같아요. 그게 물론 위험하고 보수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관객의 움직임 그것 자체는 사실 과거 많은 진보적인 작업이 바랐던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관객이 어떤 경험 내용을 갖게 할 것인지를 신경 써야지, 관객이 경험한다는 사실 자체를 지레 걱정하는 건 소극적인 태도라고 보고요. 그래서 어떤 경험의 내용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나오는 이슈 중 하나가 적대인 것 같아요. 만약 토론에서 한쪽은 계속 말하는 데 한쪽은 계속 듣고 수긍만 한다면 그게 민주적인 모습일까요. 외려 서로 주장을 개진하고 싸우는 모습이 더 민주주의의 의미에 가깝겠죠. 경험도 비슷한 거라고 봐요. 무리 없고 무해하다고 생각되는 경험은 전자일 가능성이 높죠. 뭔가 불편하고 잘 이해 안 되고 화가 나고 반론하고 싶고 설득 당하기도 하는, 그런 경험의 질이 중요하겠죠.

 

정강산 : 기획 당시에 가장 염두에 두신 것이, 사회참여예술을 둘러싼 비판에 대한 전면적인 반박이라는- 제가 본 인상이 맞는 건가요?

 

안대웅 : 전면적인 반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셜한 작업에 대해서는 반만 동의를 합니다. 제가 다른 글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예술이 소셜한 차원으로 너무 가버리면 제가 ‘NGO 아트라고 부르는 것이 돼요. 어떤 작가들은 사실 정확히 NGO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 활동이 뭐냐면 예를 들어 정부나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대신 짚어주고 풀어주고 고쳐주고 있는 거죠. 국소적인 차원에서는 체제 비판적일 수 있지만, 전체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는 체제를 유지시키는 문화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봤을 때 그들의 작업은 주머니 속 혁명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아예 예술이 예술 쪽으로 가버리면 잘 아는 모더니즘 담론, 사회와 유리됩니다. 심지어 아방가르드조차도 예술 안에서 뭔가 혁신을 거듭하는 것 같지만, 혁명은 일어날 기미가 없는 거죠. 한쪽만 있으면 종국엔 반동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그 두 가지가 항상 같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강산 : 그렇다면 참여적 전회에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건, 자율성과 타율성에서 양자의 긴장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작업들을 구하는 것이었나요?

 

안대웅 : 노력했지만 힘들었지요. 워낙 그런 작업이 드물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억지스러운 것인가, 지금 시점에서 불가능한 것을 만들려 하는 것인가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물론 그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죠. 리트머스 시절에서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은 박찬국 선생이었습니다. 그 분은 이중구속이라고 하는 걸 즐겨야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자꾸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정강산 : 리트머스에서 큐레이터로 일하시면서 전시를 조직 할 때 지침으로 두셨던 거시적인 가이드라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안대웅 : 저 개인의 지향점도 있지만 공간의 지향점도 있는 거고. 안산의 지리적인 장/단점도 있었고, 그런 것을 총체적으로 보고 기획을 생각하는 거지만.. 전반적으로 사회적 실천social practice’을 밀자고 하는 건 있었어요. 보셨다시피 좀 더 수행적이고, 소위 관객참여적인 작업을 추구하는 신경향의 작가들을 많이 소개를 하는 거였죠. 리트머스를 아시는 분들은 보통 NGO 단체처럼 알고들 계세요. 조금 아시는 분들은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그런 공간도 있어야 된다는 식으로 당위적으로 생각하시고 모르는 분들은 그냥 대안공간이라고 생각하시고.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에 리트머스의 정체성은 커뮤니티아트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당시에 리트머스에 관여하는 작가분들이랑 이러 저러한 스터디를 하며 제안했던 게 있어요. ‘커뮤니티 아트라는 말을 당분간 쓰지 말자고. 내부에서도 커뮤니티라는 말이 만능열쇠처럼 사용되는 감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무슨 작업이든 간에 커뮤니티 말만 나오면 이해도 되고 화해되는 지점들이 리트머스 안에서 반성되었던 거 같아요. 커뮤니티 아트, 공공미술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무얼 할 수 있느냐를 고민할 필요가 있었죠. 최소한 미술계 사람들과 안산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이타적인 행위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리트머스는 예술을 하는 곳이고 그걸 잘 하는 사람이 모인 곳이기에, 예술이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예술과 작업으로써 발언하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이주 노동자 문제 같은 이슈를 기존의 방식처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던 겁니다. 한편 리트머스에서는 사회적 실천이라는 의제를 가져갔지만 개인적으로 그에 대해 전적으로 투신하고 계속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저는 퍼블릭이라 부르든, 대중이라고 부르든, 매스라고 부르든, 그런 사람들에게 예술이 무엇일지, 우리가 하는 것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좀 웃기게 들리겠지만 예술을 통해 어떻게 조금이나마 사회와 세계가 나아지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그런 관심에서 나온 하나의 행동주의적 차원이 사회적 실천이에요. 미디어적 실천이든 행동주의든 페인팅이든, 기본적으로 사회를 재현하고 선규정으로 정체된 현상으로 제시되는 것보다는, 그런 것들이 움직이면서 뭔가 변하는 지점들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정강산 : 예술은 삶 자체를 물질적으로 변화시키는데 기여한다기보다는, 상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지하고 가야 된다는 정도로 읽으면 될까요. 예술이 사회운동과 구분되는 변별점을 지닌다는 점에서, 분명 실효적인 측면에서는 여타의 사회적 실천들보다 훨씬 부족할 수 있을 테지만, 한때 아방가르드가 예술에 걸었던 기대 같은 것들이 있었잖아요. 변화된 세계의 상 자체를 암시하고 있거나 그것을 강하게 드러내어 보여주는 식의 역할 말이죠.

 

안대웅 : 저는 보여준다고 하는 것들 보다는 예술 이후의 세계가 변하는 게 아니라 예술 자체가 변해야한다, 예술 자체와 함께 세계가 변해야한다고 보는 입장인 것 같아요. 예술의 구조가 세계를 포함하고 있어야지 예술의 구조가 변했을 때 세계의 구조가 같이 변하겠죠. 통칭해서 제가 재현의 예술이라고 하는 것들, 생각이든 이미지이든 사실이든 무언가를 재현해서 보여주는 것들은 굉장히 느리다고 봐요. 왜냐하면, representation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다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아무것도 못하는 데 나중에 또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고. presentationrepresentation 사이의 작업은, 프리젠테이션 되었다가 죽어서 미술관에서 리프리젠테이션 되는 것이라고. 위험해 보이는 재현 작업들이 이제 왜 이렇게 국립현대에서 전시할 수 있냐하면, 그 사이에 시간차가 엄청난 안정성을 부여해주기 때문인 거 같아요. 그 사이에 관조할 대상이 되는 거죠.

 

정강산 : 이제 다른 질문을 드릴 텐데요, <청춘과 잉여>를 기획하시면서 한동안 비평, 기획동인 유능사로 활동하게 된 계기와, 유능사로서 작업했던 기획들이 궁금합니다.

 

안대웅 : 퍼블릭아트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2012-2014년 사이에 함께 일했던 최정윤씨와 저는 볼만한 전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공서, 국공립 미술관의 지원금으로 진행된 전시들은 끊임없이 있었고, 젊은 작가들은 가끔씩 예술가의 생존담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했었습니다만, 큰 호응은 없었죠. 나머지는 관례적인 블록버스터 전시들이 있었고요. ‘현대미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시대성에 대한 질문일 수 있겠죠. ‘계속 무언가 끊임없이 하기를 요청받고, 심사의 대상이 되고, 발굴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 있으면서도 뭔가 충족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간략하고 파편적인 계보 같은 것을 생각했었지요. 예를 들면 서양의 담론에서는 최근의 이론들에서도 클레멘트 그린버그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그런 것들이 그들의 역사이니까 자연스럽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혼용되어서 경험치들이 쌓이고, 그런 것들 속에서 작업을 하게 되는데 우리는 그런 게 아니었죠. 그러다 보니 그 당시에도 같이 이야기를 해보면, 젊은 작가들은 선배세대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관심이 없고 몰랐습니다. 당시 여러 재단들에선 상을 주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는데 실질적으로 새로운 작업이나 재밌는 현상이 없었죠. 그런 상황에서 저희는 <청춘과 잉여>를 통해 일종의 약한 계보학같은 것을 보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왜 나타났으며, 누구와 비슷한가 하는 것들을 추적하면서, 우리가 관심이 있었던 작가들을 놓고 연결을 시켜본 것이죠. 그러면서 그 속에 반복은 뭐가 있고 차이는 무엇이 있는지를 파편적으로 그려보려고 했었어요. 2000년대 초반 혹은 90년대 후반에 활동했던 선배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수입이 된 상태였고, 그 당시에 무언가 공부를 해야 할 것이 있었지요. 그 상황에서 여러 가지 담론이 만들어졌다면, 그 이후 세대에게는 담론이라는 것이 없다고는 볼 수 없어도 인지파악이 안 되는 상황처럼 보였죠. 다들 고아처럼 그냥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당시 잉여라는 표현을 썼던 겁니다. 그래서 청춘과 잉여였어요. 헌데 저는 세대를 대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세대론에 대해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입장이었지요. 오히려 연속적인 계보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이완, 박찬경을 두고 이완 승이라고 글을 썼었더라고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청춘과 잉여>를 둘러싼 오해가 많은 거 같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저의 경우 <청춘과 잉여>는 그냥 순수하게 미술적 탐구였습니다.

 

정강산 : 한때는 권미원씨의 작업에도 관심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권미원씨 같은 경우에는 장소특정성 자체를 굉장히 넓은 개념으로 상정하고 그 내부에 퍼블릭아트 등의, 대중 혹은 공개적 영역을 지향하는 쪽의 작업들을 호명했던 것 같은데요. 한편으로 논지에 따라서는 그런 구분이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장소특정성이라는 것이 하나의 담론에서 출발한 것이었기에 애초에 공공미술과 큰 접점이 없었던 것 같아요. 엄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구분을 할 테지만, 대지미술이 관제화된 공공미술에서 으레 참조하는 개념이 된 것처럼, 장소특정성과 공공성 및 공공예술 양자의 어떤 위상을 구분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변에서 흔히들 지역성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가져갈 때는 양자의 차이가 무화되는 지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는지요.

 

안대웅 : 예컨대 안산문화재단에서 리트머스에 연락이 오면, ‘스마트허브에 작업을 해야 되는데 시각적인 차원에서 그 환경이 개선되어야 하고, 그 컨텐츠가 안산이랑 연관이 있어줬으면 좋겠다, 안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장소특정성이라고 하는 것이 공공미술과 합쳐지는 것 같은데, 이때 양자는 공무원적 발상에서 합쳐진 것이죠. 일단 공공미술은 90년대에 나온 담론이고, 60-70년대에는 장소특정성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뚜렷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대지미술 등의 흐름은 그때에는 확실히 제도비판이었죠. 물론 차차 사진으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미술관에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작업이었지요.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론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해소되고 정치성이란 것이 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 시점에, 폴리티컬political이라고 하는 것을 대체할 수 있을만한 좀 더 행정 친화적인 퍼블릭public이 발견된 거 아닐까, 하는 겁니다. ‘폴리틱에는 지원해 주기가 그렇지만 퍼블릭에서는 대중적 명분이 명확하죠. 제가 말하는 맥락은 공공미술이라고 하는 게 정부 보조금 같은 것과 뗄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일단 규모가 있어야 하고 외부에 설치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드니까요. 그렇다면 장소 특정성이라는 것은 말씀하신 대로 공공미술과 상관이 있을 수도 있죠. 물론 여기서 공공미술이라는 것이 뭐냐할 때, 우리가 최소한 스타일에 대한 합의를 봐야 할 것입니다. 한편 장소특정성이라고 하는 것은 물리적인 것에서 부터 관념적인 것까지 가지고 갈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장소라는 개념 자체가 되게 구체적이기도 하면서 추상적이니까요. 장소에서 중요하게 관심을 두는 건 위상학입니다. 저는 장소 특정성이라고 하는 개념을 재발굴해야한다고 봅니다. 장소성이라는 것, 장소특정성은 옛날에 나이브하게 이야기했을 때보다, 지금은 구체화시키고 실현시키기 더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럴수록 장소특정성이라는 것에 더 매달려 볼 필요가 있겠죠. 어떤 사람은 장소라는 전통적인 개념 자체가 불필요해졌다고 믿어요. 장소는 문화적 경계이고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틀인데, 어디나 다 균질화되는 상황이니까요. 디지털 시대의 창작자, 익명의 저자, 가상공간, 그 사이에서 떠도는 익명의 컨텐츠, 사이버밈, 디지털 스트림을 따라 부유하는 주체 등등 이런 걸 소재로 삼는 작업들을 봐도 그렇고요. 그런 시점에서 어떻게 장소에 특징, 특색을 다시 회복할 것인가는 것은 중요한 질문이죠.

 

정강산 : 장소의 맥락과, 특히 작업이 배치됨으로서 발생하는 효과가 장소특정성의 핵심이라면 그것은 포기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말씀이시겠죠.

 

안대웅 : 장소특정성은 장소의 위상학적 관계에 대한 것들을 잘 포착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미술용어이죠. 우리는 그것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쓸모가 없어지면 새로운 용어를 발견해도 되겠지요.

 

안예슬 : 마지막으로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동시대성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동시대라는 단어를 가지고 무언가 정의를 내린다고 했을 때, ‘동시대성은 시대착오를 통해서 시대에 들러붙는 것이라는 격언에 동의하는 편인데요. 큐레이터로서 동시대성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실 수 있으신지요.

 

안대웅 : 그런 관점을 가진 사람만이 동시대성이라는 단어를 규정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숲 안에 있으면 숲을 보지 못 보기 때문이지요. 한편으로 종종 단절의 수사학을 가지고서 동시대 개념을 정의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보곤 하는데요.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왔고, 많은 경우 문제를 호도해왔죠. 무엇보다 ‘contemporary’라는 말은 모던이란 말이 너무 역사 특정적인 사용성을 띠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시간성을 반영하지 못해서 편의상 등장한 용어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역사화 된 시간성이 아닙니다. ‘동시대라고 말할 때, 우리는 최소한 과도기에 살고 있는 거고, 포스트 당대성 혹은 포스트 동시대성 운운하며 컨템퍼러리가 낡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겠죠. 저는 위기감을 조성하며 책임질 수 없이 다음의 무엇이 도래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사람은 크게 신뢰하지 않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