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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ue

이완 작가 인터뷰

by 정강산 2018. 7. 6.

<이완 작가 인터뷰: 비판과 위트 사이에서>

인터뷰어: 박진혜, 안준형, 정강산

이완은 인간이 느끼고 있는 일상의 감각들이 사회적 체계와 조응하는 방식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이완의 전 작업을 아우르는 주제는 감각되는 것과 감각되지 않는 것의 관계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반복적인 행위가 항상 동일한 결과를 산출하게 되는 역설을 암시했던 그의 초기작 <A Slide>(2005)에서부터, 어떤 매개와 척도로부터 비롯되는 공정함과 부조리를 유비했던 <우리가 되는 방법>(2011), 각 개인의 고유한 시간들이 전체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동일한 것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고유시>(2017)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자본주의에 특유한 아이러니(irony), 패러독스(paradox), 아프리오리(a priori)를 첨예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차분함과 담담함을 유지한다. 이를 통해 관측되는 것은 비판과 형식의 경계를 구획하는 독특하고 드문 예술적 접근이다. 본 인터뷰는 이완 작가의 작업들과 관련된 여러 맥락들을 되짚으며, 예술적 형식과 비판의 관계를 둘러싼 질문들을 소개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작성되었다.





Q. 첫 번째 질문으로, 으레 정치적인 작가들의 특징은 거칠게 다음과 같이 나뉘는 거 같습니다. 첫 번째로 행동주의를 표방하고 현실을 고발하며 부조리함에 대한 직접적인 재현을 시도하는 모델, 두 번째로 작업 자체의 형식을 첨예하게 구성하는 모델로 말이지요. 조심스럽습니다만, 제 생각에 작가님께서는 두 번째 모델의 비판적 시점 안에서 작업을 진행해 오신 거 같습니다. 소위 ‘정치적 작가, 정치적 작업’이라는 말을 둘러싼 제도적 차원, 작업의 형식적 차원에 대한 작가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완: 사회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품는 것을 두고 정치적 소재의 작업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제 주된 관심사는 아닙니다. 저는 한 사람의 삶을 결정짓는 원인과 과정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역사를 다룰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제 작업을 정치적으로 혹은 사회비판적으로 읽는 분들이 많지만 그것은 작업이 현상을 그대로 들춰내기 때문이지, 제 작업의 의도가 곧바로 비판을 향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덧붙여 많은 예술가들의 작업에서 보이는 사회적 정의나 윤리적 올바름 등에 대해서도 별다른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저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한 인간의 의식이나 취향, 정체성 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런 개인들이 모여 사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개인과 집단은 어떤 심리적 상태에 놓이게 되는지, 그리고 그런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문화는 어떤 모습이고 다시 소속된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제가 가진 주된 관심입니다. 때론 사회과학적인 관점으로 세상에 대해 인식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작업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으레 상관없어 보이는 여러 관점들을 하나로 엮으려고 시도합니다. 어떤 논자는 제 작업을 두고 ‘거울과 같다’고 표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작업은 보는 사람의 편견을 작동시킨다. 사실 작가는 아무런 주장도 하고 있지 않지만, 관객들 각자가 가진 편견을 마주하게 하고 그들의 삶에서 튕겨져 나온 주장을 이끌어낸다."

 

 

Q. 예술작업이 담지할 수 있는 비판의 효과, 내지 유효성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이완: 저는 좋은 예술은 비판적 수단이나 정치적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은 처음부터 도구화되기 때문에, 그것이 좋은 예술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예술작품을 두고 서로 다른 관점의 해석과 토론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당대의 진보를 이끄는데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많은 예술가들의 작업에서 세대, 계층에서부터 피해자와 가해자 이분법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더 분할하는 주장 등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반대로 저는 좋은 예술은 오히려 경계를 지워가며 이미 존재하는 경계 자체를 질문에 부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아시다시피 시간성과 공간성은 '동시대 예술'에서 지속적으로 화두가 되어온 주요한 주제들이지만, 주로 현상학적인 측면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허나 작가님의 작업 중 <프로퍼 타임>과 <더 밝은 내일을 위하여>, <메이드 인>연작과 <우리가 되는 방법>은 각각 시간과 공간의 문제에 독특하게 개입하는 작업이라 생각했는데요, 말하자면 시공간의 문제를 작업의 개념적 요소로 다루면서도 실재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작가님께 시간성과 공간성이란 무엇인가요.

 

이완: 말씀대로 제 작업은 현상학적으로 바라본 세상에, 과학적 실재론으로 접근하여, 유물론적인 표현을 시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저는 궁극적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예술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설의 영역에 있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 중에 하나의 주장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시간성은 팽창하는 우주의 모든 물질에 적용되는 불가역적인 공통 법칙이기 때문에 개별성을 구분 가능하게 하는 좋은 기준계가 됩니다. 예컨대 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의 차이에서부터 각국의 정치와 경제, 각 개인의 삶과 문화가 모두 달라지듯 서로 다른 환경에서 쌓은 시간들이 만들어낸 차이들을 생각해보면 시간성과 공간성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고유시>에서 세계 도처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고유한 것’의 차이를, 시간을 경유하여 제시하려 했고, <우리가 되는 방법>에서는 획일화된 무게를 통한 강제력이 만들어내는 공정함의 극단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고유시>와 <우리가 되는 방법>에서 공통된 점이 있다면, 각자의 다름을 드러내는 하나의 기준을 특정한 집단에 적용시켰다는 것입니다.



Q. <메이드 인> 연작은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자본주의의 불투명성과 국제적 수준의 분업에 관해 이야기를 건네고 있습니다. 헌데 여기서 노동을 대하는 태도는 독특합니다. 여러 아시아 국가들의 현장에서 수행한 노동은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촬영되어 정적인 나레이션과 함께 제시되는데, 이는 어떤 감정적 이입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작가님께 노동은 무엇인지, 혹은 노동의 어떤 측면을 다루고자 하셨는지, 덧붙여 이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주목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이완: 지금 우리 삶을 작동시키는 원리와 원칙들은 우주의 법칙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수 만년 동안 싸우고 투쟁하며 만들어낸 시스템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상태건 아니건 간에 현재는 과거의 완벽한 결과입니다. 지금의 인간은 자연과는 전혀 상관없이,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구조 안에서만 생존 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한 끼의 간단한 식사 안에도 전 지구적인 역사와 구조가 모두 담겨있습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인간이 자연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인에게서 생존의 방법은 은행계좌를 개설하고 카드를 사용하는 법을 습득하거나, 마트의 영업시간을 파악하는 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상상을 초월하는 효율성이 가능해진 이 시대에 가장 비효율적으로 한 끼의 식사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능해지고, 무엇이 불가능해졌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아시아를 돌며 노동력이 착취되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마주할 때, 저는 예술가로서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어떤 예술가들은 이른바 ‘약자’들과 연대하여 사회운동과 비슷한 행동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오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고민의 과정에서, 다시금 이러한 소재주의적 예술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보다 근본적인 것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순된 상황을 함께 논의하고,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예술적 가능성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Q. 저는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이 오늘날의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비상품'의 양태를 제시하는 사고실험을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닭고기와 안료를 섞어 만들어진 야구공은 야구공의 모양을 의태하고 있으나, 그 기능으로는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 대상으로 제시되며- 소비 불가능한 대상이기에 함께 배치되어있는 장바구니와 조화롭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상품을 암시하는 바스켓 속에, 일종의 불량품과도 같은 비상품이 담겨져 있는 거죠. 다른 방식으로 읽자면, 그 오브제는 스스로 야구공의 기능을 탈각시켜 비상품이 되고자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유용도와 관계없이 임노동을 통해 생산되어 가격을 부여받는 순간 결국 비상품이 되는데에 실패하게 되므로- 작품의 제목에서 암시된 "불가능성"을 쉽게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환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 작업에는 상품경제에 대한 레퍼런스가 짙게 깔려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작가님이 기능을 잃은 오브제를 통해 특별히 염두에 두신 지점이 있으신지 궁급합니다.

 

 

이완: ‘기능을 잃은 오브제’가 아니라 ‘기능이 변화된 상품’이라고 말하는 게 더 잘 어울리는 말인 것 같습니다. 하나의 완전한 상품이 그 고유한 기능과는 전혀 다른 기능으로 사용되어질 때, 견고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이것을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요? 미국식 대형마트에서 가져온 하나의 상품으로 미국의 대표 스포츠인 야구를 상징화 한 작품으로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시스템의 과정을 초월해서 최종생산품이 된- 닭고기로 된 야구공이 미술작품으로 유통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떤 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까요? 이것이 견고함에 균열을 일으키는 일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작업에서, 상품이 지닌 가치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인식체계까지도 결과물에 연결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제 작업은 생각보다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Q. 최근에 관심을 갖고 계신 주제나 심상에 관한 얘기를 나눠주실 수 있는지요.

 

이완: 최근엔 남북한과 주변 강대국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정치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우리의 삶은 굉장히 많은 변화 앞에 놓이게 될 텐데, 작가들도 이러한 변화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Q. 대안공간 풀에서 진행하셨던 작업에서부터 꾸준히, 자본주의 혹은 생산양식의 어떤 지점들을 가시화 시키는데 상당히 집중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께서 그런 주제에 천착하게 된 계기와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이완: 제 작업은 아주 긴 장편 소설처럼, 평생에 걸친 과제입니다. 따라서 풀에서 진행한 개인전도 그 과정의 일부이고요. 각각의 개별 작업들은 독립적이기도 하지만 제 작업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챕터들로 역할 합니다.

 

이완이라는 작가가 세상을 어떤 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것들을 이성적으로 혹은 감각적으로 체험 가능한 영역으로 끌고 오려고 하는지를 주목해서 본다면, 보다 더 다양하고 즐거운 지점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제가 본 <우리가 되는 방법>은 <5.06kg>을 다듬어낸 작업이었습니다. 여기서 수집된 물건들은 전체 무게에 대한 물건 개수가 나누어져 도출된 평균값에 맞춰 절단되고, 그 고유한 특징들을 잃습니다. 이는 제게 상품에 관한 알레고리로 보였는데, 마르크스 가치형태론의 변주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거울의 표면과 동일한 질감을 만들기 위해 여러 오브제들을 극단적으로 마모시켰던 <그들에게 처한 불가역적이 기준의 증거>도 역시 그렇고요. 이러한 작업을 진행할 때 참조하신 레퍼런스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이완: 하나의 기준을 집단에 적용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각각의 가치는 어떤 기준으로 교환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인가? 하나의 기준을 이러한 것들에 대입하는 것은 공정한가?

 

이와 같은 질문 위에서, <우리가 되는 방법>에선 사실상 교환/사용가치가 상실된 상품들을 사용할 것이었기 때문에, ‘물리적인 무게’나 ‘길이’처럼 물리적으로 측정 할 수 있는 기준을 떠올렸고, 그중 질량 값으로 어떤 ‘공정성’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공정함일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사실 불균형한 상태를 균형 상태로 맞춘다는 말 자체에도 어떤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정함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설정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을 통해, 60개의 개별 사물들이 가진 물리적 질량 값을 활용해 평균무게를 모두에게 적용시킬 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에 앞서 일차적으로 '거울이 되어야 한다'는 절대적 기준을 개별 사물들에 적용시켜 오브제들의 다름을 드러내고, 그 속에서 서열이 만들어지게 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물리적 공정함과 기준의 공정함을 실시한 작업이었지만,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한 작업입니다. 아마도 관객들은 어떤 강제력 앞에 놓인 수동적 개체들을 바라보며 지금의 정치적 상황이나 개인과 집단에 대한 가능성, 지젝이나 랑시에르, 마르크스의 이론 등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겠지요.

 

 

Q. 2년전, 디올의 협찬을 받아 제작하신 <한국여자>가 여성혐오논란에 휩싸여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는 여성에 대한 재현 방식의 제문제가 사회 전반의 첨예한 쟁점으로 떠올라 있던 상태였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기댄 주장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시점이었기에, 작품을 철수하게 된 상황이 이해도 갑니다만, 핸드백을 든 여성이 유흥가 골목에 서있는 장면을 구성한 것만으로 '혐오'라는 표현을 적용할 수 있을지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이 작업이 의도한 바가 무엇이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이완: 3년 전 파리의 디올 본사로부터 작업을 의뢰 받았을 때, 나는 유럽의 이른바 ‘럭셔리브랜드’가 한국에서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식민지를 거친 제 3세계 국가들이나, 경제력이 급부상한 개발도상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지만, 한국인은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굉장히 예민합니다. 게다가 계층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실제로 필요한 투자보다 타인에게 비춰지는 모습에 대한 투자가 먼저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유럽의 럭셔리브랜드 제품 판매량이 한국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이유는 치열한 경쟁과 계층이동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사회분위기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고등학교 고가 패딩점퍼 경쟁 신드롬이나, 루이비통가방이 ‘3초 백’이라 불릴 정도로 불티나게 판매되었던 사실들, 그리고 반 지하 월세방에 살면서 유럽의 고가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통계들만 봐도 한국인들은 이미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길러져왔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차별과 그에 잇단 적대심을 발생시키는 이런 상황 속에서 명품이라 불리는 고가사치품들의 높은 판매량은 빈부격차를 감추고 표면적인 이미지경쟁력을 높이고 싶어 하는 이 시대 한국인의 욕망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예술작품을 포함하여, 광고나 미디어에 등장하는 여성에 대한 재현 방식의 문제는 함께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선행 되어야 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흘러내려왔던 인식의 변화일 테고, 예술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위해 힘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몇 년 전 그 작업을 둘러싼 일반적인 해석이 작가의 의도와 같을 것이라는 오해를 받았고, 저는 언론을 통해 그러한 의도는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중들이 그렇게 보더라도 별로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예술작품이든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관객이 해석할 여지는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 저는 그러한 해석들을 존중합니다.

 

그럼에도 <한국,여자>라는 작업이 제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당대의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요한 문제와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는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충돌하며 긍정적인 미래를 설계하고 진보를 이루기를 바랍니다.



Q.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지난 30~40년간 세계화에 조응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관철되었었고, 어떤 이들은 이러한 상황에 맞물려 대형전시 및 국제 비엔날레가 나타나는 경향을 논하곤 합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도 참여 하셨습니다만, 작업을 통한 비판을 관철해온만큼, 이러한 지점들에 관해 염두에 두신 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완: 앞으로 세계화는 더 빠르게 진행 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기술의 발전이 세상의 모든 물리적 거리와 시간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베니스비엔날레라는 미술올림픽이 지닌 다층적인 의미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지만, 예술은 산업이기 이전에 인간의 고유한 정신적 행위이기에, 제도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은 ‘지금의 시대에 필요한 예술적 관점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시장의 중심에서 오락화 되어 가는 부분을 예술가들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자본의 예술사랑은 아마 앞으로도 막을 길이 없을 겁니다.

 

 

Q. <고유시>와 관련된 다소 기술적인 질문입니다. 여기서 작업은 세계 각국의 여러 계층, 성, 인종, 연령 등으로 나뉘어진 이들이 각자 어떤 시간성을 체감하고 있는지를 대별해 보여줍니다. 이때 작가님께서 개별 인물들을 찾아낸 방법과 그들을 선정한 기준에 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이완: 지난 5년 동안 정말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습니다. 비행기만 약 120번을 타고 항공사에서도 가장 높은 VIP가 될 정도로요. 정말 초현실적인 시간들을 보낸 느낌입니다. 전 세계의 문화와 삶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정말 위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추천하는 일입니다.

 

아무튼 저는 <메이드-인> 시리즈를 진행하며 <고유시>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문하는 국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설문을 하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녹음하고 영상으로 담아왔습니다. 직접 인터뷰를 한 사람들은 수백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허나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할 고유시 시계는 애초에 1200여개였습니다. 저는 1200명의 데이터가 필요했고 페이스북을 통해 구글 서베이로 나머지 인원들을 모집했습니다. 가본 적이 없는 아프리카대륙과 남미 쪽 사람들의 데이터는 인도의 서베이 회사에 의뢰해서 진행했습니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공간의 한계로 시계는 668개만 선보이게 되었지만, 수집된 1200명의 데이터와 한 끼의 식사에 담긴 추억들을 담은 자료들은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Q. 평소 작업을 진행하실 때, 트리거가 되는 것이 주로 독서의 경험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각 작업마다 발단을 제공했던 책들과, 그 독서 내용들에 관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완: 독서가 작업의 개념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책에서부터 작업이 시작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예전엔 경제이론서나 사회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요즘은 사실 책 읽을 여유도 없어서 사둔 책들을 쌓아두고만 있는 상황입니다.

 

새로 출간될 예정인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단편집의 표지 디자인을 그리기도 했습니다만, 공교롭게도 가장 최근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와 단편들을 읽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최근 진행 중인 작업이 있다면 간단히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완: 현재는 육아에 전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