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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찾았다고 생각했던 답이..

by 정강산 2019. 3. 5.

이론은 회색이다. 나아가 이론은 수단에 불과하다. 변화하는 실재를 따라잡는 것은 결국 실천이다. 그 실천은 필연적으로 조직적 실천이다. 나는 내 나름의 잠정적 결론을 이와 같이 내려놓은채 정작 삶 속에서는 일체의 조직적 운동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어쩌면 다른 이들이 아니라 바로 내가 인지부조화에 걸려있었던 것이다. 나는 기존의 운동은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더 이상 민중은 조직의 대상이 아니며 과거의 급진적 조직의 건설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불가능해졌다고 말해왔다. 만약 그렇다면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마르크스주의자는 이론적 실천이라는 협소한 영역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잠언을 읊고 있어야 하는가. 혁명적 대기주의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정체상태에 처한 객체의 조건을 돌파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정치의 문제라고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나는 어떤 정치를 염두에 두고 있는가? 이론의 정치? 멈추고 생각하면 조직은 누가 할 것인가? 언젠가 세계를 바꿀 파급력을 가진 이론을 누군가 제출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전파하고 그에 기반하여 움직일 기층의 조직이 부재한다면 내가 이론에 걸었던 기대는 무엇이 되는가? 어렸을적 막연하게나마 활동가를 꿈꾸었던 나는 어쩌면 이미 답을 알고 있었을까. 세계는 결국 이론과 실천을 매개할 조직에 의해 바뀌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애써 덮어두었던 질문들이 조직 사업에 동참하지 않겠냐는 권유로 인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세계를 바꾸길 원했던가, 세계를 해석하길 원했던가? 이론과 실천은 무 자르듯 나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멈춰서 생각한다고 될 일도 아닐 것이다. 멈춰서 생각하는데에서 그친다면 그자는 다만 세상을 해석하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멈춰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 생각한 다음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단위를 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실천의 의미이고, 대중운동, 사회운동조직의 의미이다. 이론적 실천이 있다면 실천적 이론도 있다. 실천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얻을 수 없는 이론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여태 평생의 삶을 투신할 조직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 없이 비겁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좌파들은 손에 피를 묻히길 싫어한다고 투덜대면서, 정작 나는 그 피를 묻힐 '손'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좋았던 어제가 아니라 나쁜 오늘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변화의 토대와 맹아는 이미 현재의 객관적 조건 속에 내재되어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포스트모던과, 신좌파와, 깨시민과, 신사회운동을 끌어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내 비위를 지키고 싶은 것인가, 세계를 지키고 싶은 것인가, 알기 어렵다. 객관의 편향과 기회주의에 기대어 있던 내게 주관의 편향과 모험주의가 말을 건다. 이론적 실천은 결국 실천 속의 이론적 실천이라고. 여기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내 인생은 송두리째 바뀔 것이며,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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