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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조재 개인전_Art Space Loo(2019. 10. 1- 11. 4)

by 정강산 2019. 11. 12.

「번역물」


 조재의 5번째 개인전 「번역물」은 스스로 즉자적 도관이 되어 도시적 감각을 번역하는 과정을 작업의 주요 공정으로 삼아온 전작들의 연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 관람자는 작업으로부터 도시적 풍경 나아가 도시적 감각장의 단면과 편린, 부분들을 독해하려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작업으로부터 직접적인 도시의 상을 간취하는 것은 완전히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시도인데, 왜냐하면 조재의 작업들은 하나의 단자로서 불가해한 도시적 감각의 혼란 상태를 그대로 흡수하여 펼쳐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조합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그녀는 파편화에 머무르고자 한다. 이는 우리가 아직 도시에 관한 어떤 총체적 묘사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전반적인 지적 무기력의 상태를 반영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신자유주의 이후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적 테러가 범람하지만 그들의 개별적인 특징들을 귀납하여 그들이 테러를 저지르는 데에 이른 과정을 추론할 수 없듯, 우리는 다만 조재가 포화상태를 넘어선 도시적 감각장을 상대하며 도피처가 될 만한 자신만의 아기자기한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Dismantling Mass>연작과 <Suming up Flexibility>연작은 이러한 과정을 잘 드러내준다. 제목이 희미하게나마 암시하듯, 그녀가 수행하는 공정은 총체로서의 도시적 감각장의 덩어리 혹은 도시적 질료들을 분해하고, 그리하여 유동하는 것들을 요약하는 일이다. 그러나 구별 불가할 만큼 난해한 색면들이 일종의 추상으로 제시되어 있는 만큼, 그 요약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되어있다. 요컨대 그녀는 온전한 요약에 실패함으로써 충실하게 현재의 파편화된 세계를 드러낸다. 이 작업들은 마치 도회지의 네온사인 불빛사이를 거닐고 난 뒤에 망막에 남는 혼란스럽고도 알록달록한 잔상처럼, ‘덩어리’를 분해하고, 그들을 ‘요약’하는 작업이 근원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려 보이는 것이다. 전시장을 채우는 짧은 클립들로 이루어진 사운드 역시 비슷한 심상으로 관람자를 인도하는 듯 하다. 예컨대 전자 피아노, 일렉트로닉 사운드, 캐스터네츠, 나레이션, 젬베 등을 통해 맥락 없이 명멸하는 소리들은 어떤 총체적 종합을 가로막는 장치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모든 공정이 불가해한 세계를 마주한 주체의 일종의 유토피아적 보상행위에 가까운 것이라는 점은<Space151>과 같은 작업에서 드러나는데, 여기서는 점토, 철사, 병, 풍선 등이 본래의 쓰임으로부터 탈각되어, 그 자체 자율적인 논리를 지닌 모종의 새 공간의 부분들로 배치되어있다. 여기서 재료로 사용된 공업적 오브제들은 도시라는 그 자신의 근원을 삭제하는 동시에 보존하며, 도시와 무관한 형형색색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면서 도시의 가능한 다른 모습을 암시하는 것이다.

 

 한편 <넓적한 동그라미>와 <기다란 덩어리>, <Line> 연작 등은 후기 근대적 마천루들이 만들어내는 환등상을 견딜만한 것으로 바꾸어내는 알레고리적 오브제들을 보여주는데, 예컨대 <넓적한 동그라미>가 기능을 잃어 더 이상 감관(sense organ)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조명장치를 유비한다면, <기다란 덩어리>는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에 대한 추상을, 은 고층 건물에 수직으로 늘어선 간판 행렬들에 대한 대응물을 보여준다. 마치 이들이 실재 세계에서 견딜 수 없는 것인 동시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는 대상이기도 하다는 듯, 조재는 도시의 형상들 일부를 채집하여 그들을 용인할 수 있는 매력적인 오브제로 치환하려 한다. 결국 그녀가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도시의 총체성을 지시하는 일의 불가능성, 공업적 질료들이 새로운 배치 속에서 드러내는 유토피아적 충동, 감각의 차단과 선별적 채집을 통한 형상의 재구축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도시의 시작과 더불어 생겨나고, 도시의 소멸과 함께 사라질 여러 가능한 이야기들 중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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