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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by 정강산 2020. 3. 1.

학문이 정치적 헤게모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으나, '상징투쟁'을 위하여, '상징투쟁'을 목표로, '상징투쟁'에서의 유리한 고지 점령 등으로 이어지는 상징투쟁의 원환 운동 속에서 한국 지식장의 한계를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드러나는 범주로서의 '권력' 개념의 편재가 거슬린다. 이것은 그가 본 저작에서 전제로 삼고 있기에 해명하지 않고 있는 역린이기도 하다. 대관절 상징투쟁을 가능하게 하는 실체가 무엇인가? 상징투쟁의 조건이란 사회구성체의 모순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방해하는 실재하는 계급적 배치인가, 사회적 실재를 파악하는 모델을 생산한 이로서 갖는 윤리인가, 학자 개인 혹은 집단의 인정욕구인가? 이러한 상징투쟁의 제조건과 주체설정에 대한 질문을 본 작업과 대질해 보았을때, 그 대답은 김경만 자신이거나 방법론적 개인(혹은 개별의 한국 지식인)이다. 예컨대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우리도 미디어, 사회, 사회운동과 유리된 글로벌 지식장의 하비투스를 체화한 연구집단을 발전시키고 그 안에서 투쟁을 통해 단련된 지식장의 지배자를 배출할 때다." 여기서 함구되고 있는 것은 그 지식의 내용과 실체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굳이 그것을 유의미한 '투쟁'으로 셈할 필요가 있을까. 지식사회학적 접근이 갖는 한계일지도 모르겠지만, 특정 분과학문의 사도를 자처하는 이들에겐 학문이라는게 근본적으로 자족적인 인정투쟁의 도구일 수 있겠다고 짐작해볼 따름이다. 그런 한에서 이 저작은 표현대중의 일원으로서 지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물군상이 내비칠 법한 소외된 자기의식의 서술이다. 더불어 저자의 전제를 인정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한국 지식장의 허수아비들을 꺼내 요란하게 처형하는 것은 과장된 퍼포먼스같다는 인상을 남긴다. 진정 글로벌 지식장에서의 '상징투쟁'의 올바른 방식을 제시하고자 한다면, 아시아성, 주변성, 제도 외부성 등을 부당하게 실체화했던 순진한 시도들(이미 그 밑천을 드러낸)을 부관참시하기보다는 식민지 경험을 통해 '서구적인 것'을 어떻게 지향하게 되었는지, 당대에 형성된 근대적 지식의 경로의존성이 어떻게 현재까지 관철되고 있는지, 영미/유럽의 학술적 헤게모니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본주의적 제도들과 경제력, 군사력에 어떻게 보전되고 있는지, 지식장의 행위소로서의 교수의 임용에서 영어가 갖는 영향력 등을 규명하는게 외려 생산적일 것이다(이 대목에서 김경만은 정확히 자신의 급소를 보호하고 있다). 위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에서 상징투쟁이 관철되는 방식을 유물론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저작은 여러모로 순진한 작업이지만, 그만큼 한국 지식계에서 가시화된 또 다른 소외의 징후를 인류학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면 읽을 가치가 충분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