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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예술혁명당 선언 전문

by 정강산 2017. 4. 1.

2015, 1, 16일에 작성된 글



‘oo 일동은 oo을(를) 맞이하여, 제도정치 바깥에 자리하게 될 예술 혁명당이라는 당을 자처하며 예술과 예술가, 전시에서부터 창작행위 전반에 그동안 버젓이 존재했던 문제적 지점들을 지양하고, 그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강령을 발표한다.

 

작가당원에 적용될 규칙에 관한 항목 규정

 

하나, 예술이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점들을 감각화 시키는 작업일반을 가리키는 이름이라면, 그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것이다. 때문에 작가들은 예술의 고유한 정치성에 관해 사유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자신의 작품이 어떤 공간에서 전시되어야 하고 누가 소유해야 하는지 스스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 작업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주체적으로, 정치적으로, 치열하게- 이뤄져야만 한다. 따라서 작가는 작업의 시장성과 대중성을 염두에 둔 나머지, 작업의 형식에 매몰된 의미 없는 단순 재생산을 하지 않도록 한다.

 

하나, 작가는 작업이 지녀야 할 논의의 풍성함을 유념하고, 자신의 작업에 대한 비판적인 비평을 배척하지 않는다.

 

하나, 작가가 스스로의 작업을 근사한 공간에 설치해줄 큐레이터의 부름을 갈망하며 그 수직적 위계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기회주의적으로 문제적 구조에 편승하는 것과도 같기에, 작가들은 그러한 상황을 거부하고 이에 관한 정치적 개입을 시도해야 한다.

 

하나, 예술 작품이 대부호의 콜렉션으로 팔려나가게 하는 일은, 작품의 해석이라는 중요한 예술적 실천을 제단하고 차단하는 일과 같으므로-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소수의 전리품으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하나, 작업은 언제나 특정한 대상을 향해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그 자신의 의미를 전달하기에, 전시뿐만 아니라 개별 작업들 또한 그것을 향유할 관람자들의 사회적 층위를 명확히 설정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 예술가는 노동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적 실천일반이 노동으로 인정되어서도 안 된다. 근본적으로 노동자는 자본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는 반면, 예술가들은 그러한 속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위치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가들이 그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정치적 개입을 시도 할 때는, 노동조합주의적인 접근이 아닌, 사회민주주의적인 접근을 취해야만 한다.

 

큐레이터 당원에 적용될 규칙에 관한 항목 규정

 

하나, 큐레이터는 의미생산자로서 스스로의 사명을 담지한 채 전시의 조직에 임해야 하며, 특정 주제를 미적 대상으로 탐구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그 주제가 인간의 해방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 전시의 구성은 자유롭고 실험적일 수 있지만, 특정 전시에 설치된 작업을 관통하는 개념들과 전시의 서문은 지나친 사변과 현학적인 수사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하나, 전시의 홍보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무절제하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통해 말을 건네고자 하는 대상을 명확히 상정한 후 그에 맞춰 체계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하나, 큐레이터는 자신의 권위와 인맥을 내세워 작가들을 줄 세운 채 그들에게 등용문을 제시하려는 태도로 전시를 조직해서는 안 되며, 세계의 변화와 새로운 사회현상의 출현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는 동시에 신진작가들을 조명해야만 한다.

 

하나, 미술관장과 전시감독, 작가 순으로 배열되는 고루한 전시 오프닝 축사는 예술계의 흐름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전시 오프닝의 실제적 의미를 방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시 오프닝 행사는 최대한 간결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요란한 겉치레 역시 지양되어야 한다.

 

하나, 전시의 아카이브는 단순히 정보의 수집에 따른 나열에 그쳐서는 안 되며, 명백한 관점과 목적이 내재된 채 진행되어야 한다.

 

비평가 및 평론가에게 적용될 규칙에 관한 항목 규정

 

하나, 비평가들은 보다 정제된 언어를 통해 작품과 세계의 관계를 매개하고 비판하는 스스로의 사명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예술의 평론은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고, 그것이 어떤 맥락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예술제도 및 예술적 실천과 관련된 정치적 의미를 발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나, 예술을 세계와 유리된 외딴섬으로 만들고자 하는 일체의 시도들에 저항하기 위해서, 비평가들은 현실을 간취하고자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어야만 하며 그 자신의 뚜렷한 정치적 관점을 담지한 채 비평에 임해야만 한다.

 

하나, 비평가들은 작가론에만 치우친 활동을 지양하고, 그와 더불어 예술일반과 사회, 정치를 포함한 광범한 대상에 관해 이야기를 건넬 수 있어야만 한다.

 

모든 당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에 관한 항목

 

하나, 예술가가 세상을 바라본다는 건 기존의 보는 방식을 포기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가하는 고통스러운 환골탈태의 과정이어야 한다. 스스로의 부리를 돌에 쪼는 솔개와 같은 격렬한 자발성이 필요하다.

 

하나, 작업을 진행할 때, 글을 구성할 때, 세계를 파악할 때- 현실과 유리된 상태에서 특정 사안에 대한 사변적인 불평을 늘어놓는 것을 넘어, 대상에 관한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식을 강구한다.

 

하나, 동시대의 문제적 지점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시도할 때는, 언제나 그 개입의 형태에 대한 유효성을 고민해야만 한다.

 

하나, 예술적 조형물 혹은 결과물의 구성뿐만 아니라, 예술적 활동 일반을 둘러싼 환경과 제도에 정치적으로 개입하는 것 또한 예술적 실천의 일환이다.

 

하나, 다양한 형태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에 예술가들이 대거 동원되는 것은, 예술적 실천 일반이 공적 영역에 위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나름의 급진성을 지닌 것이지만-그 전에 그것이 작업의 형식에 대한 고루함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지, 혹은 자본의 보편적 지배를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검토해야만 한다.

 

하나, 국제적 비엔날레는 스타와 명사화된 예술가를 양산해내는 주요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한 흐름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는 일은, 도처에서 작업과 열악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예술가들의 삶의 처우를 방관하겠다는 것과 같다. 따라서 국제 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하는 것과, 그 파급이 야기하는 현상은 언제나 비판적으로 재고되어야만 한다.

 

하나, 전시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장소, 그를 통해 담론이 생산되는 장소, 예술가들이 거주하는 장소 등은 해당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반동적인 재개발사업의 대상으로 변질되어왔다. 이렇듯 자본이 야기한 보편적 질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예술가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속한 체제 자체를 전복하기 위한 여타의 정치적 활동들에 연대하고 동참하는 일을 병행해야 한다.

 

하나, ‘협업’과 ‘관계 맺기’라는 동시대 미술의 화두는 원자화된 개인들이 범람하는 세계에서 자그마한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지점에서 얼마간의 중요성을 띠고 있는 듯하지만, 그것은 자본의 보편성을 간과한 무기력한 자족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의 삶을 파편화시키고 우리를 궁핍에 허덕이게 하는 조건들을 근본적으로 철폐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생산관계에 대한 부단한 염두와 개입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예술적 실천에 관련된 방법론은 체제자체에 대한 비판과 거부로 이뤄져야만 한다.

 

하나, 고정된 수입원이 없어, 간헐적인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만 하는 예술가들의 삶의 양태는 결코 멋진 것이 아니며, 칭송받아서는 안 된다. 예술가들은 스스로의 삶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 해 정치적으로 조직되어야만 하며, 그 문제에 집단적으로 개입해야만 한다.

 

하나, 예술이 현실을 다루지 않고, 그 자체의 폐쇄회로 속에서 스스로의 규범을 복제하고 답습하는 데에 진력한다면, 우리는 낚싯대 수집과 같은 차원으로 전락한, 취향으로서의 예술을 얻게 될 것이다. 허나 그와 동시에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예술이자, 세계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에 대한 명징한 관점을 작업에 투사함으로써 우리의 작업이 취향의 범주 속으로 포섭되지 않게 할 것이다.

 

이상, 00월 00일, 00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