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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조재작가 개인전 리뷰

by 정강산 2018. 10. 26.

<5분 쉬고 30초씩(공간사일삼): 파편화와 총체화의 변증법>

 

무언가 알 수 없는 형상으로 펼쳐진 잡동사니들, 그들과 비슷한 정도로 형해화된 페인팅, 전시공간에 5분마다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 이들은 우리가 <5분 쉬고 30초씩>에서 확인 할 수 있는 전시의 3가지 측면들이다. 언뜻 서로 무관하게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부분들은 모두 일관된 방법론을 통해 도출된 결과물로서, 도시 구석구석에서 채집한 오브제들과 심상들에 대한 작가의 무의식적 구성/반응을 근간에 두고 있다. 즉 조재가 행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공정인 셈이다. 1. 도시를 걷고, 2. 자질구레한 오브제를 줍고, 때론 구매하며 3. 도시의 풍경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인상(impression)을 받은 채, 4. 이러한 인상을 바탕으로- 앞서 주웠던 오브제들을 사용하여 특정한 형상을 조립하는 것. 물론 우리는 그녀가 걸었던 도시의 풍경이 정확히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없으며, 그녀가 무엇을 느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조재가 무언가를 보았고, 전시장에 놓인 오브제들은 모종의 번역을 거친 대상들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보도블럭, 철사, 용수철, 고무호스, 비닐, 깔때기 등의 오브제들을 형형색색으로 덧칠된 클레이 점토와 함께 무작위로 배치한 <Room33>, 완두콩 혹은 신호등을 연상케 하나 그들 중 어느 것을 재현한 것도 아닌 <18138>은 이러한 불가해성을 잘 드러낸다. 그녀는 나름의 규칙으로 도시의 단상들을 조립하고 배치하였으나, 그 결과물은 뚜렷한 의미로 독해될 수 없는 것이다. ‘단일한 덩어리를 분해한다는 제목을 한 페인팅(<Dismantling Mass131>) 2점 또한 이러한 측면을 암시한다. 해체된 대상을 일관된 의미로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조재가 자신의 작업 프로토콜로 삼았던 채집재구성이라는 행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달리말해, 왜 그녀는 도시의 풍경들과 오브제들을 채집하고 재구성해야만 했을까? 그리고 재구성된 작품들은 어째서 독해되기를 거부하는가? 당연하게도 조재가 작업의 재료들을 채집을 통해 구한다는 것은 오늘날 (시지각적)경험의 조건들이 잘게 조각나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일찍이 도시 속에서 경험은 구경과 소비를 통한 채집대상의 축적 과정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질적이고 매혹적인 것들이 도사리는 유혹의 공간-환등상(Phantasmagorie)으로서의 도시는 이제 (벤야민의 시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더더욱 극도로 풍부하지만 동시에 파편화된 감각을 제공하며 자신의 부분들을 채집하길 권한다. 조재가 도시적 풍경의 여러 디테일들에 매혹되어 그들을 그러모으는 것은 바로 도시의 요구에 충실한 주체의 반응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천연덕스럽게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짧게 편집-절취된) 30초짜리 경음악이 반복적으로 5분간의 침묵을 방해하는 것은 다소 비관적이게도 주체의 감각적 이상상태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속에서 동시에 제기되는 것은 바로 재구성에의 요구다. 즉 파편화된 경험적인 대상들의 총합으로는 획득될 수 없는 전체에 대한 인식을 얻기 위해, 주체는 조각난 경험의 편린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상징화하고자 하게 된다. 분열증에 빠지지 않고 인식의 동일성을 확보하는 시도이기도 한 이러한 요구는, 결국 단편적인 심상들을 종합하여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조재의 작업은 근대적 도시공간을 거니는 군중의 감각과 산책자의 감각 사이에서 동요하며, 이러한 주체와 경험의 변증법을 충실하게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연장에서 본 전시는 전시장에 설치된 오브제들 이면에 있는- 그들이 구성된 수행적(performative) 맥락을 함께 고려할 때서야 일말의 해독 가능성이 주어지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재의 오브제들은 그 자체로 불가해하지만, 그러한 불가해한 작업이 도출되는 필연성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명시적으로 도시를 언급하지도 않을뿐더러 그저 내밀한 심상을 아기자기하게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에서 작업은 쉬이 독해되기를 거부하지만, 동시에 바로 그를 통해 그녀는 오늘날 경험의 양태에 대해 질문한다. 요컨대 조재는 다음과 같이 묻는 것처럼 보인다. 도시의 내적 논리들에 침잠하는 것과 경험 사이에는 어떤 인과가 있는가, 도시 내부에 있지만 그 외부를 상상하는 일은 가능한가


조재 작가 블로그: http://www.jojae.com/work/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