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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25

시간 혹은 회화: 종합(불)가능한 양극에 대하여(<뽈뽈뽈>2020.8.14-9.10, 아트스페이스휴, 전시 서문) 은 회화와 시간-운동의 관계설정이라는, 다소 고전적인 주제를 동시대의 지형 내에서 고민해보는 스케치적인 전시다. 이러한 전시의 기본 방향은 대략적으로나마 회화사를 훑어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회화의 역사에서 시간에 대한 탐구를 시도한 사례는 20세기 초의 이탈리아 미래주의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래파 작가들은 도시와 기계, 산업주의적 문명의 역동성에 열광하며 자연스레 움직이는 대상들에 주목했으며, 대상의 잔상을 겹쳐 그리는 방식으로 운동성(시간성)을 표현하는 법을 탐구했다. 이 시기에 제작된 뒤샹의 (1912)는 미래파의 영향 하에서 이뤄졌던 회화의 확장시도를 잘 체현하고 있다. 한편 시간성을 말소하여 평면 자체로 환원된 공간에 대한 탐구야말로 추상표현주의의 요체라 본 그린버그 식의 독해와는 반대로,.. 2020. 10. 8.
행복의 뒷맛은 쓰디쓰다(<행복의 뒷맛> 3.13-4.9 아트스페이스 휴) 행복의 뒷맛은 쓰디쓰다( 3.13-4.9 아트스페이스 휴) 퍼블릭아트, Vol.164. (2020년 5월) p.119 20세기 중후반 이후로 다변화된 예술생산의 체제 내에서 회화 무용론이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미지의 과포화상태가 두드러지는 동시대적 조건에서 유독 ‘왜 하필 그림이냐’는 질문이 곧잘 제기되는 것은 더욱 이해함직하다. 요컨대 그림은 어느새 힘을 잃어버렸을까, 이 질문이 부당하다면, 그림은 어떻게 세계를 성공적으로(혹은 불충분하게) 가리키고 있을까. 본 전시 은 이와 같은 질문을 배면에 품은 채 우리 시대의 회화가 처한 시좌를 가늠하려 한다. 사박, 송승은, 정주원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동시대의 실재의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사박은 ‘무기력한’ 존재들을 그리며, 존재를.. 2020. 6. 9.
비동맹을 향하여, 미네르바의 올빼미들이 날갯짓을 할 시간 1. 서동진은 학자가 아니라 지식인이다. 학자는 분과학문의 틀 내에서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고, 지식인은 세계의 모든 문제에 관해서, 가용한 모든 수단을 통해 입장을 내는 사람이다. 학자는 실정성 속에서 즉자적 앎을 생산하지만 지식인에게 중요한 것은 실정성이 아니라 정세이고 실천이며, 따라서 그가 생산하는 것은 이념이다. 즉 지식인은 이데올로그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예컨대 마르크스의 작업은 어떤 의미에서도 학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칸트 식으로 말하자면 그의 작업은 순수이성의 역동의 최고점에서도 그 기저에 묵묵하게 운동하는 실천이성(인간주의적 도덕의 이성이라기보다는 세계 속 행위로 나아가게끔 하는 수행적 이성으로서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학자가 실정성 속에 갖혀 고전과 텍스트를.. 2020. 6. 9.
어쩌면 늦게 도착한 전시_패브릭 하우스(fabric house)_2019.10.4-11.9 (퍼블릭아트 12월 호에 게재된 글) 씨알콜렉티브의 기획전 는 ‘공예적인 것’의 범주로 소급 될 수 있는 6명의 여성작가들의 작업들을 제시함으로써 ‘공예적인 것’과 ‘여성성’을 유비시키고, 양자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결속하고자 하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전시의 서문은 본 기획이 윌리엄 모리스의 건축 작업 에 대한 오마주임을 밝히는데, 이는 이 19세기 후반 영국 공예운동의 시원이 되는 공간이자- 산업혁명에 의해 질적으로 평준화된 생활세계의 오브제들을 발본적으로 비판하고 공예적 장식성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고자 했던 모리스의 기획이 태동하는 장소라는 사실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 위에서 는 산업주의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에코 페미니즘적 문제설정과 함께, 가능한 공예커뮤니티의 모델을 표방하길 원한다.. 2019.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