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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27

사라진 매체로서의 매개 비평이 다루는 매체는 세계의 특정한 사태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문제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해석 행위는 필연적으로 개념을 경유하기에, 나는 ‘매체로서의 개념’에 관해 얘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간과된, 혹은 모두가 알고 있다고 전제함으로써 피상적인 수준에서만 논의되고 있기에 ‘무시된’ 매체 중 하나는 바로 ‘매개(mediation)’라는 개념이라고 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때 ‘매개’라는 낱말이 가닿는 내용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그것은 사회적 관계, 공적인 것이며, 혹은 사회, 국가, 시장, 화폐이고, 또는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과 시간 등이다. 다시 말해 매개는 매 순간 인간의 경험과 행위를 규정하는 기제이며, 논리적 수준에선 발단 혹은 원인, 전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2018. 7. 6.
동시대의 시간성에 개입하는 사례로서의 예술작품 인간의 규정소가 특유의 종적 방식으로 물질대사를 수행해야하는 경험세계의 ‘육신’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부여된 ‘상징적 정체성’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존재론에서 본질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을 구분하는 작업은 대상의 속성을 파악할 수 있는 위상과 층위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필수적이다. 적지 않은 철학적 작업들은 바로 이렇게 존재에서의 ‘본래적인 것’, ‘참된 것’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전개되어왔다. 조에(Zoe)와 비오스(Bios)의 차이를 논하며 생체적 삶과 정치적 삶을 구분하는 아감벤, ‘그저 존재함’과 ‘살아있음’을 구분하는 오스카 와일드, 존재자와 존재를 이격시키며 존재란 언제나 특정한 시간과 구체적인 상황 속에 놓인 것임을 역설하는 하이데거, 즉자적 존재와 대자적 존재 사이의 위계를 .. 2018. 7. 6.
SNS의 부정성(나뉘어진 글들을 모아 재구성한 단상) "언젠가 놀라운 발명에 의해서 모든 개인들이 집을 나서지 않고도 끊임없이 정치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어떤 장치를 통해서 표현할 수 있게 되고 이렇게 표현된 의견들이 자동으로 중앙에 등록되고, 사람들은 그 의견들을 단지 읽어보기만 하면 되는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다. 이는 결코 특별히 집약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국가와 공론장이 남김없이 사유화되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공론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인데, 수백만명의 사적 개인의 의견이 여전히 그와 같이 일치한다고 해도 그 결과는 단지 사적인 의견의 총합이기 때문에 공론으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집단의 의지도, 일반 의지(volonté générale)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며, 오직 모든 개별적 의지의 총합, 즉 전체 의지(.. 2018. 3. 23.
빵과 밥에 대한 에세이 󰡔음식에 대한 에세이󰡕 1.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족, 벗들과 대화를 하며 함께 음미하며 먹을 때 '음식'을 먹는 것이고, 혼자 살기 위해 먹을 때 '먹이'를 먹는 것이라고. 이러한 주장을 충분히 헤아리자면, 이는 끼니를 대충 라면으로 때우거나 혼밥을 하며 고고한 도시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이들을 향한, 혹은 점차 퍼져나가는 개인주의적 문화를 향한 일침으로 기획된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마 그는 타인이 아무리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살을 부대끼며 함께 먹는 것이 인간다운 모습임을 강변하며 공동적 행위의 마지막 보루였던 '식사'라는 행위를 지키고자 했을 것이다. 허나 나는 여기서 서투른 문화비평의 부족함을 본다. 식사가 부재하는 문화는 이미 변화된 생산양식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 2018.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