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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50

이방인에 관한 노트 2016년 10월 18일 모든 선험과 소여, 클리셰를 거부하고 끝내 실재를 온 몸으로 끌어안는 단독자 뫼르소. 그는 사랑을 말하는 것에서조차 클리셰를 거부한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나는 기술적 합리성은 그 자체 소여의 언어, 클리셰와 완전히 포개어지는, 추상화된, 합리화된 모더니티를 그린다. 사형집행일 전날 참회를 설파하러 들어온 목사를 향해 그 자신이 어떤 가상에도 기대지 않고 죽음이라는 진리와 마주할 준비가 되었음을 부르짖는 장면은, 어쩌면 니체가 말한 초인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 같다. 카뮈가 그 자신이 실존주의자가 아니라는 말을 잊혀질 때면 한번씩 했다는 사실을 차치 한다면, 우리는 이방인을 어떤 각도로 조명할 수 있을까? 하이데거적 실존주의자? 혹은 상징적 질서의 틈을 말하는 잠재적 라캉주의자(라캉적.. 2017. 4. 1.
아도르노에 대한 노트 2016년 11월 9일 아도르노의 철학은 어쩌면 구체적인 모델을 가진 저항의 유형들에 적대적인 것으로 여겨질 법도 하다. 그의 사회 이론은, 사회의 발생이후로 지속적으로 산출되어온 항상적인 고통, 죄, 비합리성을 강조하며 아마도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의 총체적인 전사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비관적 감수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도르노에게 사회란 그 자체 일반성이 되어버린, 영속적인 지배의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이데올로기 그 자체이다. 그에게 유토피아란 기원적으로 도달 불가능한 것, 즉 모델이 아닌, 하나의 잠재적인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무엇이다. 이는 한편으로 그의 초기강연집에서부터 이론적 정립의 조짐을 보여왔으며 이후 과 , 등을 통해 '닫힌 전체'에 대한 거부와 비판의 몸짓들과, 경험적 요.. 2017. 4. 1.
트럼프에 관한 노트 2016년 11월 11일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참인 것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이를테면 지금 미국 대선을 둘러싼 트럼프의 당선에 대해 회의를 품지않는 일부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윤리적 협박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극과 극- 이 기표의 배열은 우파와 좌파의 특성에 대한 정확한 정리를 함의하고 있다. 오늘날 극과 극의 사이에 위치할 수 있는 정치적 포지션은 온건한 중도를 표방하는 리버럴들로서, 그들은 이러나저러나 초국적인 시장질서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 위에서 규범, 법, 제도, 관습 등의 총체를 적당한 시늉을 통해 조작하는 척하며 사실상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유지시키겠다는 입장을 취하며, 적당한 이윤율의 보장과 적당한 복지, 적당한 제제를 통한 적당한 안정을 통해 전 세계적 교역.. 2017. 4. 1.
혁명을 리트윗할 수 있을까 2016년 11월 29일 아랍의 봄을 이끈 이집트 혁명의 주역-와엘 고님(Wael Ghonim)은 얼마 전 TED강연에서 놀랍게도, "인터넷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틀렸다"며, 구심없는 수평적 네트워크에 대한 찬양을 거둬들인다. 헌데 고님의 반성은 현재 한국의 정세에도 시의적인 반성이지 않을까. sns는 호기심과 문제의식, 부과된 억압 등을 개인적으로 해소시키는 일을 방조하는 동시에 세계의 사건들에 대한 인지의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 놓는다. 어쩌면 이는 양날의 검, 현재의 조건이자 한계일 것이다. 예컨대 이집트의 정치적 조건- 권위주의적 폭압정치, 정보의 흐름에 대한 통제 등의- 에서는 정보에 대한 접근가능성을 확장시키는 sns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진실된 정보와 기만적 정보를 명증하게 분리되.. 2017.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