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모두182

예술가들이여, 미적 형식에 대한 물신을 거부하라: 좀비-모던 담론을 비판하며 2015, 9, 25에 작성된 글 El Lissitzky, Lenin Tribune(1920)순수한 형식이라는 환상 알다시피 약 18세기 이전까지 정태적인 것으로서 과거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해왔던 미학과 예술은, 자본주의적 삶의 양태의 확산에 이은 자본의 필연적 전화로서의 제국주의 전쟁 1차 대전 전후로 그 존재론을 새로이 구성하게 되고, 단편화라는 기치 아래 아름다움 일반으로부터 탈주하여 단절과 불편함, 충격 등을 그 기반으로 삼았다. 미래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상황주의, 플럭서스 등으로 이어지는 아방가르드의 흐름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각 사조의 문제설정은 각기 차이가 있는 것이었지만, 지독하리만치 생생하게 다가온 세계의 모순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며, 그것을 비판하고, 변화하는 세계와 연계된.. 2017. 4. 1.
예술혁명당 선언 전문 2015, 1, 16일에 작성된 글 ‘oo’ 일동은 oo을(를) 맞이하여, 제도정치 바깥에 자리하게 될 ‘예술 혁명당’이라는 당을 자처하며 예술과 예술가, 전시에서부터 창작행위 전반에 그동안 버젓이 존재했던 문제적 지점들을 지양하고, 그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강령을 발표한다. 작가당원에 적용될 규칙에 관한 항목 규정 하나, 예술이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점들을 감각화 시키는 작업일반을 가리키는 이름이라면, 그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것이다. 때문에 작가들은 예술의 고유한 정치성에 관해 사유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자신의 작품이 어떤 공간에서 전시되어야 하고 누가 소유해야 하는지 스스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 작업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주체적으로, 정치적으로, 치열.. 2017. 4. 1.
예술가들이여, 추상에서 규정으로 전화하라: 핌피현상으로서의 청년관을 비판하며 2015, 4, 16에 작성된 글 El Lissitzky, Composition(1920) 논의를 전개하기에 앞서, 나는 본 글이, 젊은 예술가들의 ‘정치적 결집’을 공격하는 주장으로 이용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현행미술제도가 총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에 이의를 가진 사람은 (아마)없을 것이다. 다만 그런 개혁적 움직임의 과정이 ‘청년관’에 대한 요구로 외화한 시점에서, 그 청년이라는 프레임을 통한 예술가들의 주체화 과정을 재고하자는 제안 정도로 이 글을 파악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청년관이라는 구호의 등장 최근, 스스로를 청년이라 칭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정치적 결집이 곳곳에서 약진하고 있다. 공장미술제에서 열린 토론을 통해 발생한-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둘러싼 관념적 대립에서부.. 2017. 4. 1.
예술가들이여, 맑스를 읽자: 세계를 파악하고 드러내기 위하여 2014, 9, 12일에 작성된 글 El Lissitzky, Proun 99(1924) 논의를 전개하기에 앞서 밝히건대,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까닭은- ‘예술’과 ‘정치’라는 도저히 묶이지 않을 것처럼만 보이는 두 개의 항으로부터 공통분모를 찾고자 했던 시도와 관련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오늘날 예술가로서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술가들은 그 자신이 수행해야할 작업에 대한 당위를 대관절 어디서부터 정립하고 있는가, 혹은 해야만 하는가, 라는- 고리타분한 질문이 필자로 하여금 본 글을 구성하게끔 추동한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우선 예술가가 가져야할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뒤로 넘겨둔 채로 반추하건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구성원들로 하여금 잉여가치를 영속적으로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 2017. 4. 1.